ANMELDEN마흔여섯 번째 관인이 찍혔다.이름을 되찾은 사람, 새 이름을 고른 사람, 백지장에서 쓰던 별명을 그대로 쓴 사람. 어느 쪽도 본래보다 덜 진짜가 아니었다.마지막 백발의 여자는 붓을 들지 않았다.그녀를 증언할 사람은 충분했다. 백지장에서 함께 산 이들이 잠꼬대와 걸음,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까지 알았다. 운설은 오래된 갈비뼈 골절과 손목 화상을 기록했고, 물목지기는 십이 년 전 강을 건넌 날짜를 기억했다.부족한 것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 기억을 묶을 표지를 여자가 아직 원하지 않았다.“관인을 받으려면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현승은 닦아 둔 인장을 내려놓지 못했다.여자는 빈 호적 한가운데 아련이 그려 준 문 모양만 놓았다. 네모 아래 한 치가 비어 있는 그림이었다.“나는 이름을 세 번 가졌소.”첫 이름은 가난한 부모가 지었다. 둘째 이름은 빚쟁이가 붙였다. 셋째 이름은 허담이 죽은 호적에서 떼어 왔다. 세 이름을 부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값을 요구했다.“넷째는 아직 싫소.”“이름 없이 관문을 지날 수는 없습니다.”“그럼 여기 살지.”여자는 담담했다. 그러나 열린 백지장에 스스로 머무는 것과 이름이 없어서 못 나가는 것은 달랐다.선우현은 옛 수해 조항 옆에 붙은 판례를 떠올렸다. 이름은 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름이 아직 없다는 이유로 몸을 가둘 수도 없었다.“관문을 지날 때마다 이 문 그림과 증인 장부를 함께 보이면 되게 하시오.”“매번 설명해야 합니다.”현승이 말했다.“이 사람은 평생 남이 붙인 이름을 설명하며 살았소. 이번에는 관문이 설명을 들을 차례요.”한겸은 임시 통행문을 따로 만들었다. 이름 난을 넓히지 않고 문 그림이 들어갈 자리를 그대로 두었다.한겸은 수해 조항을 다시 읽었다. 조문에는 새 이름이라 쓰지 않고 본인이 알아듣는 표지라 적혀 있었다.“글자가 아니어도 됩니다.”“문 그림을 이름으로 쓰겠다는 거요?”“이 사람이 부르면 돌아보는 표지면 됩니다.”한겸이 여자에게 물었다.“이
허담의 심리는 종이를 만드는 마당에서 열렸다.그가 평생 가장 깨끗한 자리를 골라 펴던 흰 종이 위에 검은 장부를 놓았다. 허담은 포승을 받지 않았다. 달아나지 않겠다고 해서가 아니라, 마흔일곱 사람이 그가 도망가는 모습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내가 지붕을 주었소.”허담의 첫 말이었다.“겨울마다 몇이 얼어 죽는지 아시오? 관청 문밖에서 이름이 없다고 쫓긴 사람을 내가 데려왔소.”한겸이 물었다.“데려올 때 물었습니까?”“굶는 사람에게 선택이 어디 있소.”“선택이 없으니 그대 것이 되었소?”허담은 어릴 때 강둑에서 죽어 가던 사람 셋을 보았다고 했다. 관청은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시신도 거두지 않았다. 그는 처음 백지장을 샀을 때 그런 사람을 데려와 밥을 주었다.첫해에는 문에 빗장이 없었다. 둘째 해 한 사람이 선금을 받고 달아나자 빗장을 달았다. 셋째 해 구매자가 호적을 요구하자 죽은 이름을 샀다. 작은 빗장과 빈 종이가 해마다 하나씩 늘어 마흔일곱 사람의 문이 되었다.“처음부터 사람을 가둘 생각은 없었소.”유경이 물었다.“몇 번째부터는 있었습니까?”허담은 답을 찾지 못했다. 큰 죄가 한날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죄를 작게 만들지 않았다.허담은 검은 왼손을 폈다. 젊은 날 가마가 넘어졌을 때 일꾼을 밀어내고 대신 데어 생긴 손이었다. 그 한 번의 선행을 그는 평생의 소유권처럼 들고 있었다.“나도 이 손을 내놓았소.”류단이 손목의 죽을 사 자를 보였다.“우리는 손뿐 아니라 이름까지 냈어요.”유경은 비용 장부를 읽었다. 한 벌 솜옷이 품삯 석 달, 감기약 한 첩이 반년. 허담이 베푼 모든 것은 이자를 달고 돌아왔다. 사람들은 빚을 갚을수록 더 오래 그의 것이 되었다.운설은 치료 장부를 내놓았다.허담이 산 약으로 살아난 사람 열둘. 잿물과 종이 가루 때문에 병든 사람 마흔하나. 살린 수와 병들게 한 수를 서로 지우지 않았다.“좋은 일을 했으니 나쁜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죄가 있으니 살린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에요.”
남궁완은 가마를 타지 않고 왔다.진흙 묻은 장화를 신고 한겸과 같은 말에서 내렸다. 혼례 뒤에도 왼손 약지의 가락지 자국은 남아 있었고, 부채 대신 관인함을 들었다.“왜 남궁가 도장이 필요해요?”운설이 인사보다 먼저 물었다.“필요 없어요.”남궁완은 관인함을 열었다. 남궁가 인장 자리는 비어 있었고 열두 가문 공동 구휼창의 새 인장만 들어 있었다.“죄를 상속하지 않기로 한 가문들이 이름을 되찾는 비용도 나누기로 했어요. 종이와 먹, 한 해 먹을 곡식까지만.”“사람 이름에 세가 보증을 붙이지 않겠다는 뜻이군.”선우현이 말했다.“한 번 붙인 이름으로 너무 오래 사람을 가졌으니까요.”남궁완은 선우현의 지팡이와 젖은 붕대를 보았다. 걱정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으나 다가가 손대지도 않았다.“검이 없어도 자꾸 다치는군요.”“검이 없어서 이 정도요.”“그 말은 운설에게도 합니까?”“매번 듣고 있어요.”운설이 대신 답했다. 세 사람 사이에 오래전 가락지와 인수의 그림자가 잠깐 왔다가 지나갔다. 누구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남궁완은 운설과 단둘이 손 씻는 방에 들어갔다. 두 여자는 같은 대야에 손을 담그지 않았다. 각자 물을 갈고, 마주 선 채 소매를 걷었다.“그가 아비가 될 뻔했다면서요.”남궁완이 물었다.“열하루짜리였어요.”“잘했을까요?”“달걀 세 개 삶는 데 사흘 걸렸어요.”남궁완이 웃었다. 웃음 뒤에 아주 작은 것이 남았으나 운설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남궁완도 가지지 않은 삶을 운설에게 미안해하라 요구하지 않았다.“지금의 그 사람은 검을 들었을 때보다 어렵군요.”“그래서 더 오래 봐요.”운설은 젖은 손을 닦았다. 두 여자는 한때 같은 남자의 다른 미래였고, 지금은 서로 다른 법판에 제 이름으로 서 있었다.한겸은 쥐가 갉은 수해 조항을 반나절 읽었다.그는 서고지기가 붙여 둔 종이 조각까지 떼어 빛에 비췄다. 조항 아래 지워진 판례 하나가 있었다. 임시 호적을 받은 뒤 본래 가족이 나타나 사람을 재산처럼 데려가려 한 사건
첫째 증인은 몸이었다.운설은 마흔일곱 사람을 다시 진찰했다. 백지장 장부에 적힌 오래된 흉과 지금 몸의 자국이 같은지 확인했다. 단, 옷을 벗어야 보이는 흉은 본인이 원할 때만 썼다.한 남자는 등에 매질 자국이 있어도 보이지 않겠다고 했다.“그러면 증언이 약해져요.”유경이 걱정했다.“약해져도 돼요.”운설이 답했다.“살기 위해 또 몸을 내놓으라고 하면 백지장과 다르지 않아요.”남자는 대신 어릴 때 부러진 왼쪽 어금니와 맥의 불규칙함을 허락했다. 몸을 아는 일에도 문이 있었다.다른 여자는 얼굴의 점을 쓰지 말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그 점 때문에 세 번이나 잡혔다고 했다. 운설은 점을 기록한 옛 장부 줄 위에 먹을 덧칠하지 않았다. 덧칠한 흔적도 누군가에게는 다시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아예 새 장을 열어 여자가 고른 왼손 손금 두 줄만 그렸다.“나중에 이것도 싫어지면요?”“다시 고쳐요.”“호적을 계속 고쳐도 됩니까?”“몸은 계속 달라지잖아요.”운설은 법보다 몸의 쪽을 믿었다.둘째 증인은 생활이었다.함께 일한 사람들이 서로의 잠버릇과 식성을 적었다. 류단은 유경이 죽에 파가 들어가면 끝까지 골라낸다고 썼다. 유경은 류단이 기침을 숨길 때 오른쪽 어깨부터 올라간다고 썼다.정필에게는 증언할 사람이 많았다. 불을 놓은 밤을 본 시장 사람과 백지장에서 풀칠을 함께한 사람이 모두 있었다.“나쁜 일을 적어도 살아 있는 증거가 되오?”그가 물었다.“좋은 일만 한 사람은 더 의심스럽소.”선우현이 답했다.정필의 장부에는 방화와, 불을 끄는 사람에게 지하칸 위치를 알려 준 일이 같은 날 적혔다.셋째 증인은 길이었다.연도하는 설로상단 장부를 내놓았으나 문제가 생겼다. 백지장에 사람을 들인 옛 상단과 지금 증언하는 상단이 같은 이름이었다. 한 집의 잘못을 한 집의 말로 씻는 셈이 될 수 있었다.“내 도장을 빼시오.”연도하가 말했다.“그러면 길 증언이 모자라요.”“내가 넣으면 법이 모자라지.”그는 상단 도장 대신 물목마다 독립된 마부
관청의 봉인은 흰 종이보다 빨랐다.백지장 쇠문과 여덟째 문 문설주에 같은 날 붉은 봉인이 붙었다.무호적 인원을 사사로이 숨기거나 부리는 일을 금함.숨기는 것과 살리는 것이 한 줄에 묶여 있었다.아련은 봉인을 뜯지 않았다. 대신 그 아래 작은 종이를 붙였다.안에 마흔일곱 명 있음. 숨기지 않음.현승이 다시 와 종이를 떼려 하자 류단이 문 안에 섰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검문을 만나면 죽은 호적을 도용한 죄로 붙잡혔다.“우리를 여기 두면 숨긴 거고, 내보내면 죄인이래요.”류단이 말했다.“법이라는 문은 앞뒤로 다 잠겼네요.”현승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도 사흘째 옛 호적책을 뒤지고 있었다.봉인 때문에 약방에서 보내는 약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운설은 처방마다 환자 이름 대신 허락한 표식을 쓰고, 현승이 보는 앞에서 직접 건넸다.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의 기침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백지장 사람들은 봉인 안쪽에서 일을 멈추지 않았다. 종이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마를 씻고 창문을 넓혔다. 관청이 작업장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도, 자기들이 머물 집으로 고치는 일까지 금할 조항은 없었다.유경은 매일 문 앞에 새 수를 붙였다.오늘 살아 있는 사람 마흔일곱.다음 날도 같은 수였다. 법이 세지 않는 동안 자기들이 먼저 세는 일이었다.“살아 있는 것을 의심하는 게 아니오.”“그럼 무엇을 의심하오?”선우현이 물었다.“이름이 누구 것인지.”죽은 호적 하나를 되살리면 그 이름으로 상속된 땅과 빚, 혼인과 죄까지 함께 돌아왔다. 허담이 한 사람에게 죽은 이름 셋을 붙인 탓에 어느 이름을 살릴지도 정할 수 없었다.“새 이름을 주면 되잖아요.”아련이 말했다.“누가 주지?”현승이 되물었다.“본인이요.”“사람이 제 이름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으면 죄인도 빚진 자도 모두 이름을 바꿀 거다.”“남이 마음대로 바꾸는 건 됐잖아요.”아이의 말에 현승의 손이 봉인 위에서 멎었다.선우현은 관청 서고로 갔다.
백지장은 사흘 동안 종이를 만들지 않았다.가마의 불을 끄고 잿물을 강으로 흘려보내지 않았다. 흰 강은 비를 먹으며 조금씩 본래 흙빛으로 돌아갔다.마흔일곱 사람은 떠나지 않았다.갈 곳이 없는 자도 있었고, 기억하는 고향이 너무 멀어진 자도 있었다. 무엇보다 관청은 죽은 호적을 들고 길에 나선 사람을 다시 백지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구했는데 왜 못 나가요?”아련이 물었다.그녀는 묘선과 함께 수레를 타고 왔다. 선우현의 전서구를 지키느라 문을 열어 둔 채 시장 사람들과 사흘을 보낸 뒤였다.“문은 열렸는데 길이 없어서.”류단이 답했다.아련은 그 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덟째 문 현판에서 붉은 고삐 조각을 떼어 백지장 쇠문에 묶었다.“그럼 여기에도 문을 만들어요.”일은 종이보다 먼저 바뀌었다.누가 일할지도 각자 정했다. 폐가 상한 류단은 가마에서 떨어진 장부방을 택했고, 굽은 손가락의 유경은 붓을 오래 쥐지 않도록 한 시진마다 사람을 바꿨다. 방망이질을 싫어하는 이는 닥나무를 삶았고, 강을 무서워하는 이는 마른 창고를 맡았다.예전에는 허담 한 사람의 종이 울리면 모두 움직였다. 이제는 아침마다 하고 싶은 일과 못 하는 일을 먼저 말했다. 대답하는 데만 반 시진이 걸렸다. 생산한 종이는 절반으로 줄었으나 다친 손도 절반으로 줄었다.닥 방망이를 내려놓고 가마의 묵은 잿물을 모두 퍼냈다. 운설은 작업장을 치료 순서대로 나눴다. 숨이 짧은 사람은 강바람이 드는 창가, 화상 깊은 사람은 물 가까운 방으로 옮겼다.연도하는 남은 종이값을 미리 치르지 않았다. 대신 새 종이가 팔릴 때마다 일한 사람 이름과 품삯이 같은 줄에 적히는 장부를 만들었다.“이름이 없는 사람은요?”유경이 물었다.“그 사람이 고른 표식을 쓰오.”“관청이 안 받습니다.”“관청보다 먼저 먹는 장부요.”품삯은 호적을 거치지 않고 일한 손에 돌아갔다.아련은 품삯 줄마다 손의 특징을 그렸다. 검지 끝이 없는 손, 손바닥에 별 모양 흉이 있는 손, 먹을 잡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