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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낙청연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있는 하인들에게 다가가서 차분하고 느긋하게 물었다.

“내가 시킨 일이라고 했느냐? 그럼 말해보거라. 내가 언제 어디서 너희들더러 여기로 오라고 했느냐? 언제 내 처소로 들어오라 어떻게 얘기했느냐? 게다가 이건 왕비의 처소다. 감히 이곳에 들어갈 생각을 했느냐? 내가 무슨 조건을 약속했길래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

그녀의 연이은 질문에 무릎을 꿇고 있던 하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맹금우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도움을 바랐다.

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조용히 그 모습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고 낙청연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홀로 이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조리 있게 얘기했다. 낙청연은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말해보거라. 내가 시킨 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얘기했는지 다시 말하는 것도 못 하겠느냐?”

낙청연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맹금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은 그 문제에 관해서 말을 맞춘 적이 없었기에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것이다. 맹금우는 무언가 기억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입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저에게 약을 쓰셨습니다. 왕야께서도 왕비 마마께 당한 적이 있으시지요. 왕비 마마께서 약을 쓴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부진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낙청연은 부진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얼른 먼저 입을 열었다.

“왕야, 제가 왕야께 이 약을 썼다면 혼인날 왕야께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가져온 미정향은 그날 다 써버렸습니다. 전 이곳에 올 때 몸만 왔습니다. 제가 또 어디서 약을 구한다는 말입니까?”

낙청연이 그날 썼던 약은 미정향이었고 그 약은 극락산보다 효과가 훨씬 떨어졌다. 맹금우는 정원 바닥에 내쳐지고도 정신을 아예 못 차렸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으니 약효가 몹시 강하다는 건 아주 명백한 사실이었다.

혼인날 밤 극락산을 썼으면 낙청연은 자신이 바라던 대로 부진환과 몸을 섞었을 것이다.

맹금우는 조바심이 났는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왕야, 저 말은 이 약이 무슨 약인지 알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왕비 마마께서는 이 약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분명 왕비 마마께서 꾸미신 일일 것입니다!”

낙청연은 무덤덤한 얼굴로 맹금우를 쳐다보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왕부가 작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니 누구한테 이 약이 있는지 찾아보면 될 것 아니냐? 난 대신 혼인을 치른 몸이니 아무것도 없이 왔다. 마음대로 찾아보거라.”

맹금우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더니 켕기는 게 있는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극락산은 다 사용하지 못한 상태였고 남은 절반은 그녀의 침상 아래에 있으니 만약 제대로 수색한다면 들통날 게 뻔했다.

낙월영도 놀라긴 매한가지였다. 낙청연 같은 멍청한 사람이 갑자기 언변이 늘었으니 말이다.

예전이었다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손가락질받는 게 두려워 곧바로 방 안으로 숨어들었을 텐데, 오늘은 맹금우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낙청연은 생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었고 말을 똑 부러지게 잘했다.

낙월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진환을 힐끗거렸다. 부진환이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는 걸 보니 낙청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로서는 정말 큰 일이었다.

낙청연은 눈썹을 까딱이면서 일부러 부진환의 성질을 긁었다.

“왕야께서는 현명하고 슬기로운 분이시니 무고한 사람을 벌하시지는 않겠지요?”

부진환의 눈빛은 살벌했다. 그는 미간을 구기고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전부 알 수 있었다.

“여봐라, 맹금우를…”

낙월영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계획이 철저히 실패했음을 깨달은 낙월영은 곧장 입을 열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왕야, 맹금우는 이미 큰일을 한 번 겪었습니다. 여자로서 평생 얼굴도 들고 다니기 어려운 치욕적인 일을 겪었는데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진환은 그녀의 말에 잠깐 주저했고 맹금우를 살려두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맹금우를 후원에 가두거라.”

그의 매서운 눈빛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하인들에게로 향했다. 그는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이것들은 전부 죽여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하인들은 기겁하며 말했다.

“왕야, 살려주시옵소서! 왕야, 전부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진환은 그들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손을 휘저으면서 더없이 냉혹한 얼굴로 말했다.

“왕부 내에서 이딴 짓을 저지르다니, 전부 죽여라.”

몇몇 하인들은 아직도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고 소유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장 호위들을 불렀다.

“전부 끌어내거라.”

호위들은 앞으로 나서더니 그들을 전부 기절시키고는 정원 밖으로 끌고 나갔다.

스산한 분위기에 정원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고 정원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맹금우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정원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녀는 감히 용서조차 구하지 못했으나 끌려 나갈 때 증오심을 가득 품은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낙청연은 맹금우의 양미간에서 죽음의 기운을 발견했다. 그녀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자신을 노려본다고 해도 그녀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아예 없었고 얼마 가지 않아 죽을 운명이었다.

오늘 같은 일은 여인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부진환이 그녀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살기 어려울 것이다.

소유는 곧장 모든 사람을 데리고 정원을 떠났다.

낙월영은 큰 충격을 받은 듯이 이마를 짚고 있었는데 몸이 허약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한 걸 부진환이 받아냈다. 그는 그녀를 부축하면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느냐?”

낙월영은 온화하지만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왕야께서도 피곤하실 터이니 먼저 돌아가 쉬세요.”

그 말은 부진환이 자신을 방까지 데려다줬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부진환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소유, 네가 월영이를 방까지 모시거라. 그리고 의원을 불러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을 처방 받거라.”

“왕야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소유는 앞으로 나서면서 낙월영을 데리고 떠났다.

정원은 다시금 정적에 휩싸였고 그곳에는 낙청연과 부진환 두 사람만 남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서 있었는데 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그녀에게 경고했다.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널 여기서 쫓아낼 것이다.”

낙청연은 그의 말에 참지 못하고 냉소를 흘렸다.

“다음 번이라니요? 왕야께서는 제가 이 모든 일들을 꾸몄다고 확신하시는 것 같은데 어찌 맹금우를 가두셨습니까? 저를 가두셔야지요.”

부진환은 도발하는 듯한 그녀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진짜 모를 것 같으냐? 맹금우는 아마도 널 해치려 한 것이겠지. 하지만 결국 그 일을 당한 것은 맹금우다. 그런데도 네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절대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부진환의 말에 낙청연은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왕야의 말씀은 다른 사람이 절 해치려고 해도 그저 참고 있으라, 그 뜻입니까? 왕야께서는 모든 걸 다 꿰뚫어 보시면서 낙월영과 맹금우의 관계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셨나 봅니다. 오늘 밤 일이 정말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왕야께서는 절 역겨워하시지요. 제가 낙월영 대신 혼례를 치렀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왕야께서는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무런 힘도 없는 제가 어떻게 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왕부로 왔는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몸의 원래 주인의 억울한 마음이 남아서일지 몰랐다.

그녀는 낙청연의 억울한 사정에 측은지심이 생겨 저도 모르게 말을 덧붙였다.

낙청연은 그렇게 총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대신 혼인을 치르라고 낙청연을 꼬드긴 것은 낙월영이었다.

그런데 부진환은 모든 잘못을 낙청연에게 돌렸고 지금도 그녀가 뭘 하든 전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부진환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는 날카롭게 낙청연을 쏘아보면서 그녀를 위협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마. 살고 싶다면 그냥 쥐 죽은 듯이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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