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냄새가 안 나는데?”그 말에 순간 조시언이 갑자기 안리영 쪽으로 바짝 붙는 바람에 안리영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심장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지금은? 지금도 술 냄새 안 나?”귀를 자극하는 조시언의 목소리와 너무 가까이 붙은 탓에 안리영은 지금 그의 입술만 보이는 상황이었다.‘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한번 입 맞춰보면 엄청 부드럽겠지?’순간 안리영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런 빌어먹을 생각들로만 가득 차게 되었다.그리고 어느새 조시언의 기분 좋은 술 냄새가 약간씩 풍겨왔고 혹시나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 그와 입술이 부딪힐 것 같아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단번에 밀치고 도망쳤을 텐데 눈앞의 그는 안리영이 어렸을 때부터의 성장 과정을 모두 봐왔던 사람이라 분명 지금 그녀를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물이 끓어요.”안리영이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물이 끓어서 집안도 어느새 후끈후끈해졌다.그러자 조시언은 자연스레 몸을 돌리더니 다시 끓는 물에 조미료를 넣었다.안리영은 빠르게 식탁 쪽으로 가면서 몰래 손을 가슴에 대보았는데 심장이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안리영, 요즘 욕구 불만이야, 아니면 지원이한테 나쁜 물이 든 거야? 어떻게 네 삼촌한테 이런 불순한 마음을 먹을 수 있냐고!’절대 있으면 안 되는 일이다.이러다가 제대로 사고 치는 날이면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이때, 조시언이 어느새 다 끓인 국수를 그릇에 담아 가져왔는데 비주얼이 아까와는 참 대비되는 것 같았다.“김치도 꺼내줄게.”조시언이 냉장고에서 깍두기를 꺼내 오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다른 분한테 부탁했던 건데 네 입맛에 맞는지 한번 먹어봐.”오랜만에 먹어보는 깍두기였고 조시언이 이 정도로 자신을 생각해 줄 줄은 몰랐다.“삼촌, 땡큐.”안리영은 인사 후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저 국수만 묵묵히 먹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조시언은 한껏 복잡한 눈빛으로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방금 기회인
안리영은 늦게까지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밖에 조시언의 차가 보이지 않길래 그가 집에 없는 줄 알았다.하여 저녁밥도 굶었던 참이라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서 나랑 통화하면서 먹고 있었다.바로 이때, 조시언이 갑자기 잠옷 차림과 머리에 물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분명 그가 집에 있었다는 걸 설명했다.“삼... 삼촌이 왜 집에 있어?”안리영은 서둘러 나와의 통화를 끝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끝내는 허둥지둥거리다가 라면 그릇을 엎어버렸는데 순간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어디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었다.방금까지 배고파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라면도 더 이상 못 먹게 되었다.분명 통화 내용을 다 들었을 텐데 테이블을 치우려는 안리영의 손을 조시언이 덥석 잡으며 말했다.“내가 할게, 어디 데이지는 않았어?”“그것보다 삼촌 때문에 더 놀랐어.”안리영은 서둘러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러자 조시언은 내가 엎지른 라면을 치워주며 말했다.“내 뒷담화는 잘하면서 뭐가 놀라?”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니 안리영도 더 이상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뒷담화는 무슨, 지원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 그 나이에 여자 친구도 없으니까 나도 이제는 삼촌이 어디 문제가 있나 의심이 들 정도라고.”순간,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던 조시언이 행동을 멈추고 안리영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여전히 다정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사람을 얼게 만드는 서늘한 느낌도 들어 안리영의 심장은 또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그 눈빛은 사람을 꿰뚫는 마법이라도 있는 듯했는데 아마 그와 눈이 마주친 여자들은 이걸 당해내기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조시언의 뜬금없는 한마디에 안리영이 흠칫 놀랐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어쩐지 삼촌이 조용하다 했네, 그러면 외국에서 만났던 거야? 아닌데,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여자 친구가 없다고 했잖아.”조시언은 말끔하게 정리를 마치고 쓰레기까지 처리해 준 뒤 테이블도 깨끗이 닦았다.그리고 냉장
“내가 아주 깜짝 놀랄만한 개업식을 준비해 줄 테니까 허락해 주라.”그는 나의 팔을 흔들며 한껏 애교를 부렸다.여태껏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어 살짝 어리둥절했지만 너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런데 내 정원을 너무 더럽히지는 말아줘. 그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초대하지도 말고.”이 작은 정원은 온전히 내가 소유한 땅이고 손님이 오면 차나 끓여주고 우리끼리 석양이나 보면서 편하게 쉬는 곳이 되고 싶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사모님.”진정우는 너무 기쁜 마음에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러나 금방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갑자기 내 입술을 베어 물었다...오랜만에 하는 입맞춤이라 그런지 그는 나의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았는데 어느샌가 나도 그의 신체 변화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나도 임신한 지 이제 석 달이 지났기에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안심할 수 없기에 기회가 되면 안리영에게 제대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정우는 겨우 이성의 끈을 붙잡고 결국에는 하던 걸 멈췄다. 내가 눈을 살짝 뜨고 바라보니 그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가쁜 호흡을 몰아쉬다가 내 귀에 속삭였다.“역시 신은 공평한 것 같다.”나는 흐트러진 호흡으로 그에게 되물었다.“무슨 뜻이야?”“여자들한테는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을 때의 고통을 주는 동시에 남자들도 열 달 동안 금욕이라는 고통을 주잖아.”그의 말에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그러다가 문득 그의 잠옷 안으로 손을 넣어보았는데 온몸이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그래도 남자들은 언제든지 해소할 수 있지만 여자들은 중간에 아이를 낳을 수도 없잖아, 남자가 더 낫지.”그러자 진정우는 한껏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난 그러지 않아.”“정 참기 힘들면...”내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깊은 눈동자에는 억눌린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또 한줄기의 음산한 기운도 돌았다.한껏 탐욕스럽
“오늘 함소은 씨는 왜 갑자기 찾아온 거래?”밤늦게 진정우는 내 머리를 말려주다가 대뜸 물었다.아마 함소은이 다녀간 뒤로 내 기분이 다운되었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용씨 가문의 세력이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생각해?”내 말에 진정우가 하던 일을 멈추고 답했다.“겉으로는 그래 보이는데 아무래도 용진표 씨 주변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보니 그걸 한 번에 제거하기는 힘들 거야.”진정우는 드라이기를 끈 뒤 다시 나에게 물었다.“함소은 씨가 뭐라도 발견했대?”“그건 아니고 그냥 자기 은행 계좌를 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사라졌거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돈을 모두 자기 딸한테 넘겨달라고 부탁했어.”“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분명 무언가를 발견했거나, 용씨 가문에서 무슨 짓이라고 할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 같은데?”“자세하게 말해주지는 않았어.”나는 진정우의 어깨에 살짝 기대었다.“어쩌면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무서워서 그럴지도 모르지.”강유형의 사망 소식은 비록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도 한때는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라 그런지 점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함소은도 언제 알게 되었는지 문득 나에게 그 사람과 헤어진 게 후회되지는 않는지 물었다.“미리 자기 자신을 위해 계획을 세워두는 것도 나쁠 게 없잖아. 마치 우리가 모두 장기 기증에 사인한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분명 나를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인데 나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왜 웃어?”“정우 씨가 예전에 가짜로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장기기증 때문이었잖아. 엄청 슬퍼한 후에야 발견한 나도 참 멍청했지.”문득 그때의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그러자 진정우는 한껏 어두운 얼굴로 가볍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미안해.”이 얘기만 나오면 진정우는 나에게 사과했다.“앞으로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사과할 건 아니지?”나는 이제 그가 그만 미안해했으면 좋겠다.그리고 나도 과거의 일들에
나도 부모님이 금방 돌아가셨을 때 살점이 떨어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으니까 말이다.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을 그때 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자기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고집이 너무 세요.”함소은도 사실 인내심이 그리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면 주말에 저한테 한번 보내주세요.”나는 용은서를 매우 좋아했다.“저야 좋죠. 위탁비 제대로 낼게요.”“꽤 비싼데 괜찮겠어요?”그 뒤로 나는 함소은을 데리고 정원 곳곳을 더 둘러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내가 끓인 차를 같이 마셨다.“지원 씨.”문득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지금의 지원 씨가 너무 편해 보여요.”차를 마시다 보면 자기 인생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그게 내가 이 정원을 가꾸게 된 원인이고 함소은도 이미 눈치챈 듯 보였다.“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더라고요.”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그리고 다 끓인 차를 그녀 앞에 가져다주며 물었다.“소은 씨는 지금 당장 먹고살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그러자 함소은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원 씨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네요.”그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지금까지 저랑 친했던 사람들은 그저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쓸 수 있는지에만 관심있고 진정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힘들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더라고요.”사람의 감정이란 게 한순간에 올라오기 마련인데 나의 관심 어린 한 마디가 그녀의 감정 버튼을 눌러버린 것 같았다.그녀가 용진표 옆에서 얼마나 많은 서러움을 참고 살았는지 사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하여 실컷 슬퍼하도록 나는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가 얼마 후, 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나에게 말했다.“다 지나간 일이고 이제부터라도 제 인생을 살 거예요.”“그런데 아까 남자들의 돈을 번다는 건 뭐였어요?”“하하, 저를 나쁘게 생각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쏠리게 되었는데 웬 모피 코트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다들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고는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누구야?”심지어 한 사람은 진정우의 팔을 툭 치면서 눈치 줬다.“밖에서 딴 여자 사귀었던 건 아니지?”그러나 진정우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하게 답했다.“그럴 일 없어.”나는 그 여자에게 다가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당신이 누군데 알려줘야 하나요?”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옮겨졌고 눈앞의 여자는 코웃음을 치더니 팔짱을 끼고 답했다.“아직 진짜 진씨 가문의 사모님도 아니면서 벌써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예요?”그녀의 말 한마디로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진정우에게로 향했는데 이건 지금 진정우가 나에게는 제대로 된 명분도 주지 않고 결혼식도 올려주지 않은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려는 목적이다.“어느 가문의 사모님은 아니지만 저는 원래 이랬거든요?”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그 선글라스 좀 벗어줄래요?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누구한테 맞아서 부은 줄 알겠어요.”“하, 사장님이면서 이렇게 손님을 막 대해도 되는 거예요? 어디 무서워서 차 마시러 오겠어요?”“손님이 없으면 저 혼자라도 차 마시면서 경치 감상하면 되니까 쓸데없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나는 정원에서 보이는 풍경을 둘러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깟 돈 안 벌면 그만이니까.”“나랑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네요. 여러분은 이런 여자랑 어떻게 참고 친구로 지낼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말을 마치자마자 함소은은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의 정교해진 얼굴을 드러냈다.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다가 역시나 나와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듯싶었다.어쨌든 함소은도 용씨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어때요? 예전보다 더 예뻐지지 않았어요?”함소은은 한껏 예쁜 포즈를 취하면 나에게 물었다.“소은 씨는 항상 예뻤어요.”예의상 칭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