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다비가 또다시 자살 소동을 벌였고 건물 옥상에 서서 라이브 방송을 켜고 내 이름을 거론했다.라방에 접속하자 카메라를 향해 울먹이는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그날 김세아의 남편을 데리고 약을 사러 갔는데 정작 본인은 욕구 불만에 방문을 열고 지나가는 손님을 유혹했죠. 그러다 갑자기 미인계를 쓰는 게 후회되는지 경찰에 신고해서 전 근무 중에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관련 업계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김세아 남편의 전 여친인 건 사실이지만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고 단지 매니저와 고객의 관계일 뿐이죠.”“하지만 김세아, 넌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야. 이혼할 때 재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비까지 전도하면서 감히 나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이대로는 못 살겠어. 어쩌면 전 여친은 죽어야 하는 운명인가 봐. 그렇다면 소원을 이뤄줄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갔는데 행복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그녀의 휴대폰에 타월만 몸을 감싼 나를 향해 다가오는 취객 두 명이 찍힌 사진이 떴다.구도를 보면 사진을 촬영한 카메라는 방 안에 설치된 게 분명했다.댓글 창에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풀 영상은 없나요? 궁금해요.][언뜻 보기에도 잘 노는 여자 같은데?][성격이 아주 화끈한 게 내 스타일이네요.]나는 손이 덜덜 떨렸고 휴대폰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화면이 산산조각이 나서 댓글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악의로 가득 찬 내용은 마치 음성 지원이라도 되는 듯 내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다.이때, 벨 소리가 울렸고 장민혁이 연락이 왔다.“세아야, 집이랑 모든 재산을 너한테 줄 테니까 제발 다비의 말 좀 들어줘.”“내가 왜?”나중에 청소 아주머니가 말하길 진다비는 그날 밤에 CCTV 영상을 전부 삭제하려고 했고 다행히 어떤 직원이 따로 복사해 두었다고 했다.그 직원은 진다비가 손님의 남편과 자리를 뜨는 바람에 혼자 남은 손님이 하마터면 성폭행당할 뻔한 사실을 사장님께 보고했다.호텔이
나는 휴대폰에 방금 뜬 조회수 폭발 영상을 발견했다.카메라를 등진 남자가 반지를 바다에 던지자 여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지가 빠진 곳으로 뛰어들었다.거센 파도 때문에 여자의 모습이 금세 사라졌다.동영상을 올린 블로거는 걱정하는 내용으로 도배된 게시판에 댓글을 달았다.[남자가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해준 덕분에 여자는 무사해요. 두 사람은 바다 한가운데서 서로를 꼭 껴안았고 반지도 되찾았지만 사생활 침해가 걸린 문제라 후기까지 업로드하기는 힘들어요.]이때, 머릿속에 창백한 얼굴로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밀크티를 건네주던 장민혁의 모습이 떠올랐다.당시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약을 건네주었다.이제 와서 보니 밀크티를 사려고 땡볕에서 기다리다가 더위를 먹은 게 아니라 진다비를 구해주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 감기에 걸렸던 것이었다.용서를 구하는 와중에도 두 여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니.나는 장민혁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이번에는 결혼식 행진곡이 울리자마자 기쁨에 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네 연락을 받게 되었네! 무슨 일이 있어? 지금 당장 갈게.”내가 물었다.“장민혁, 아직도 날 사랑해?”“당연하지! 난 너밖에 없어.”휴대폰 너머로 책상에 퍽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세아야, 난...”“서로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리기 전에 날 생각해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이혼해. 진다비가 반지를 찾으려고 바다에 뛰어드는 영상을 봤어.”장민혁은 문득 침묵에 잠겼다.“친척과 친구들에게 이혼 사유를 공개하는 지경까지 가기는 싫거든?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사람들이 동정하지 않도록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지켜줬으면 좋겠어.”한참이 지나서야 장민혁의 대답이 들려왔다.“알았어.”드디어 이혼 합의서를 받을 줄 알았는데 장민혁의 부모님이 또다시 나서서 반대했다.두 사람은 나를 보며 말했다.“세아야, 넌 척한 아이야. 우리가 미안해. 하지만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이기적으로 변하기 마련이고 아들의 미래를 고려할 수밖에
그나마 장민혁에 대한 기대치가 이미 바닥을 쳐서 다행이었다.오죽하면 이제는 웃으면서 농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민혁이가 상처받을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어떻게 보면 이번에는 소원을 이뤘다고 볼 수 있죠.”장민혁의 부모님은 뻘쭘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이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우리 엄마 아빠의 안색은 더더욱 어두웠다.“자식을 방치해두는 집안과 더는 볼 일이 없네요. 바로 이혼 수속부터 진행하시죠. 신혼집 사라고 보태준 돈은 다시 돌려주고, 위자료는 청구하지 않을 테니까 관계만 깔끔하게 끊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딸이 계속 찬밥 신세 당하는 꼴은 못 봐주겠으니까.”부모님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나는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장민혁의 엄마 아빠가 난감한 목소리로 말했다.“결혼하자마자 이혼했다고 하면 듣기에도 거북하잖아. 세아야, 어쩌면 오해일 지도 모르니 민혁에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맞아요. 불과 어제 결혼했죠.”그동안 서로의 마음에 확신이 들어 결혼을 다짐했다고 생각했지만 장민혁은 무려 신혼 첫날부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는 약을 다시 발라주었다.이내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말했다.“넌 어렸을 때부터 심하게 앓아봤자 고작 감기나 폐렴이었는데 이렇게 크게 다쳤으니 얼마나 아팠을까?”청소 아주머니와 호텔에서 도와줬던 여자도 문자를 보내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귀띔했다.장민혁의 부모님도 연고를 사다 줬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왜냐하면 장민혁과 깔끔하게 관계를 끊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그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용서를 빌러 왔다.나를 붙잡고 오해를 풀고 싶지만 마음처럼 안 되는 듯 발만 동동 굴렀다.“세아야, 그 사진은 오해였어. 그때 널 따라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비가 연락이 와서...”“그만!”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진다비가 자살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 같은데 나도 남의 목숨을 책임지고 싶지 않거든?
나는 택시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고 진다비와 대화를 주고받는 장민혁의 모습이 눈에 들었다.이내 그녀를 뿌리치더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왔다.차가 출발하자 장민혁은 계속해서 뒤쫓아왔다.하지만 점점 작아지더니 어둠 속에 묻혀 더는 보이지 않았다.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줬는데도 그는 여전히 진다비를 선택했다.이제 정말 포기할 때가 온 것 같았다.나는 혼자 병원에 들어섰다.아까만 해도 피부에 물집이 없었는데 하룻밤이 지나고 보니 군데군데 까진 부위가 있었다.간호사는 상처를 닦고 약을 발라주면서 잔소리했다.“화상은 초기에 치료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이내 목에 생긴 키스 마크를 가리키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줄까요?”“지금 막 경찰서에서 오는 길이었어요.”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장민혁이 도착했다.그리고 나를 끌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선생님, 제 와이프 많이 다쳤어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니까 꼭 치료해주세요.”간호사가 눈을 흘겼다.“다행히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물집까지는 없네요. 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한 탓에 약효가 덜할 수도 있어요. 지금은 단지 더 악화하는 걸 방지할 뿐이죠.”나는 장민혁의 손을 뿌리쳤다.이제 와서 걱정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애초에 찬물로 식혀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가벼운 상처에 불과한데 말이다.하지만 골든타임을 놓치면 원래대로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내가 이혼하자고 얘기했지?”그리고 말을 마치고 나서 앞만 보고 걸어갔다.장민혁은 내 뒤만 졸졸 따라왔다.“세아야,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걸 알아. 제발 부탁인데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줄 테니까 이혼만큼은 언급하지 마.”“그래?”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만약 결혼반지를 고르고 신혼여행지를 정할 때 일말의 사심도 없었다고 맹세한다면 용서해줄게.”장민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기에 거짓말할 수는 없었다.아무리 자신을 버린 전 여친 앞에서 자랑하는 척 으스대도 마음속 깊은
어쩌면 진다비의 사진을 발견하고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이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물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나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심지어 진다비를 찾으러 간다고 해도 허락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끝까지 함구하고 둘만의 기대와 약속을 담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문해서 나한테 선물하고 매일같이 끼고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러다 진다비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목격하고 나서야 여태껏 냉정함으로 무장했던 마음의 벽이 속절없이 무너졌다.반면, 나는 무슨 죄란 말인가? 진다비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족히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당시만 해도 양가 부모님을 만나 혼사를 꺼내기 전이었다.본인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서로 껄끄러운 사이가 되지 않게 할 기회는 많았지만 끝까지 모른 척했다.오늘날 이 지경까지 오게 된 이유는 전부 장민혁 탓이었다.그를 가장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할 기대에 가득 찬 순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했다.진다비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자랑하듯 장민혁의 팔짱을 꼈다.장민혁은 그녀를 뿌리치더니 나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어깨를 데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 안아주는 대신 손을 꼭 붙잡았다.“세아야, 이혼이 웬 말이지? 난 단지 진다비에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야. 물론 비겁하다는 것은 인정해. 갑자기 이별한 아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에 복수하고 싶었어. 오늘 밤 진다비가 은어로 자살하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거야. 그 틈을 타서 술 취한 남자가 네 방에 들어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네가 해코지당할 뻔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장민혁은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그의 몸에 풍기는 진다비의 향수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헛구역질이 났다.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떨어지기 싫을 정도로 애틋하던 사람이 지금은 손끝만
나는 제 자리에 서서 두 귀를 의심했다.장민혁이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데인 부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아파서 눈물이 흐르는 정도였다.하지만 그는 다른 여자를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세아야, 지금은 삐질 때가 아니야.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의 커리어를 망치면 안 되잖아. 응?”“하지만 진다비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여기로 신혼여행지를 정한 거 아니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어깨를 움켜쥔 장민혁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나는 몸도 마음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진술서를 작성하는 와중에 신혼여행을 왜 여기로 왔냐는 질문을 받았다.여느 평범한 숲속 호텔인지라 자연경관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시설도 좋은 편이 아니며 호텔 자체도 특별한 점이 없었다.물론 장소는 장민혁이 정했다. 인터넷을 거의 안 하는 사람이 어느 날 네티즌이 공유한 게시물을 보여주며 숲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워낙 일에 치여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신혼여행 기간만큼은 푹 쉬면서 좋아하는 풍경을 마음껏 즐기길 바랐다.하지만 게시물의 첫 번째 사진에 진다비의 모습이 떡하니 담겨 있었다.그는 풍경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사람이 그리웠을 뿐이다.결국 나의 배려는 애초에 우스갯거리에 불과했다.장민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세아야, 나중에 설명해줄게. 진다비가 떠날 때 졸업장도 못 받았는데 직장을 찾아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데 결코 쉽지 않았어.”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다른 여자의 힘들었던 시절은 동정해주면서 오늘 밤 뜨거운 물에 어깨를 덴 나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내가 아프다고 했던 말은 기억해?”장민혁은 나를 놓아주더니 초조한 얼굴로 옷깃을 끌어 내리려고 했지만 거부당하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미안.”나는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 머릿속으로 조금 전 진다비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자기랑 연고 사러 갔다고 설명해달라는 말이 떠오르자 내가 다친 걸 모를 리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다시 말하면 그에게 난 진다비보다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