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느 날 남편이 문득 내게 물었다. 와이어 없는 브라가 더 편하냐고 뜬금없이 물었다. 이 남자가 드디어 센스가 생겼나 보다. 하지만 다음날, 비서가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내가 금방 받은 택배를 낚아채며 주소를 잘못 적었다고 핑계를 둘러댔다. 그리고 그날 밤, 유시아가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하나 올렸다. [남자친구가 사준 선물, 예쁘나요?] 아련한 분위기의 호텔 거울 속 셀카였는데 리본으로 장식된 정교한 속옷 선물 상자가 그녀의 손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이 남자는 뒤늦게 센스가 생긴 게 아니라 단지 날 위해 성숙해지려는 의지가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피드에 하트를 누르고 캡처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세트로 사면 20% 할인받을 수 있어. 살림살이 진짜 엉망이네.] ...
View More인명피해까지 입게 되자 둘러싸인 기자들도 재빨리 촬영해서 SNS에 기사를 올렸다.그날 실검 순위는 난리도 아니었다. 유시아의 여신 이미지는 하루 사이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나락했고 이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할 따름이었다.백선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대스타가 투표 조작에 댓글 알바, 찌라시 배포까지 한 방에 터졌으니 청순했던 여신 이미지는 일락 천장이 되어버렸다.일부 네티즌들은 이 기세에 힘입어 유시아가 전에 신인들을 괴롭힌 증거들까지 찾아내게 되었는데 무너진 담에 뭇 사람들이 달려든다고 한때 유시아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연예인들도 하나둘씩 나와서 그녀의 악행을 까발렸다.나와 이주리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할 뿐이었다.문득 이주리가 내게 은가영 면회를 하러 가겠냐고 물었다. 고의상해죄로 며칠간 감방에 갇혔으니 제대로 먹고 자기 힘들 거라면서 말이다.나는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봤다.“은가영이 나랑 뭔 상관이지? 난 이젠 한유진 아니야. 엄연한 유진이라고.”이 사건은 일주일 동안 SNS를 뜨겁게 달구었고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안 보였다.이때 뜻밖에도 은지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유진아, 제발 시아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내가 왜?”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래도 우리 한때 부부였잖아. 내 면을 봐서라도...”이에 내가 차갑게 되물었다.“너도 체면이란 게 있었니? 얼어 죽을! 너만 아니었으면 난 진작 더 잘 됐을 거야. 그해 유시아가 SNS에 나에 관한 루머를 퍼뜨리고 가영이가 댓글 알바 시켜서 나 악플 테러 당한 거 다 잊었어? 왜 유시아한테는 나 한 번만 봐주라는 말 안 했어?”“넌 또 내게 호르몬 약을 타고 투표 조작으로 여우주연상 기회까지 앗아갔어. 이 모든 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단 한 번도 날 놓아줄 생각은 안 했던 거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12년 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헌신만 해왔어. 그래야만 네가 안심하고 회사 돌볼 테니까. 근데 정작 내게
그는 내가 사무치게 그립고 그동안 내가 없는 나날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매일 밤 집에 돌아오면 텅 빈 방 안 곳곳에 우리의 추억들로 가득 차서 온통 내 생각뿐이라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했다.한편 나는 담담하게 듣고 있다가 그에게 물었다.“네가 약 탄 거지?”실은 지난번에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내가 호르몬 약을 먹어서 살이 안 빠지는 거라고 했었다. 나중에 그 집에서 나오니 나도 금세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이토록 비겁한 짓을 벌이다니. 이주리의 말대로 은지호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여배우’라는 나의 타이틀을 앗아갔고 이젠 또 내 몸매까지 망치려고 든다. 이게 대체 사랑이긴 한 걸까?그 시각 은지호는 한참 머뭇거리다가 나지막이 말했다.“사랑하지 당연히. 근데 또 그만큼 네가 미워. 화려한 네 모습이 좋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빛나는 게 싫어. 그러다가 정작 아무런 쓸모가 없는 널 보고 있자니 또 화가 나네...”이에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래서 네 사랑은 이기적이면서도 비겁하다는 거야.”그 뒤로 은지호는 아주 긴 시간 동안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다만 그의 딸 가영이가 또 있었지. 내가 이걸 깜빡 잊고 살았다.그날 나와 이주리는 여느 이브닝 파티에 참석했다.그런데 회사 로비를 나서자마자 가영이가 글쎄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밖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댔다.“이 사람 우리 엄마예요. 우리 엄마라고요!”나는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은가영에게 들켰다. 아이는 대뜸 내게 달려와 옷소매를 잡고 엄마라고 외치기 시작했다.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나는 은가영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누구시죠? 왜 이러세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엄마 맞잖아! 나 엄마 사진 있어!”아이는 나의 젊을 때 사진을 꺼내 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계속 거짓말하려고? 칫,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용서할게. 엄마 팬클럽 있지? 내가 거기 운영자 하면 안 돼? 내가 직접 엄마네 회사랑 스케줄
곧이어 다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헐 대박! 완전 예뻐.”“로맨스 여주인공 각이잖아.”“대체 누구지?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쁜 배우가 있었어?”“됐다, 나 갈아탈래. 오늘부터 여우 캐릭터 이분 입덕할 거야!”의논이 점점 커지자 유시아를 촬영하러 온 팬카페 운영자들도 대충 찍고는 전부 내게 카메라를 돌렸다.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결국 경호원들이 질서 유지에 나섰다.문득 나는 인파들 속에서 은가영을 발견했다. 아이는 뚱뚱한 몸으로 [유시아 작품 대박]이라는 팻말을 든 채 사람들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곧이어 나를 발견한 은가영은 두 눈을 반짝이더니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가까이 다가오려 했다.“혹시 이름이 뭐예요? 신인인가요? 팬클럽은 있어요?”나는 이런 가영이가 너무 한심하고 우스웠다. 눈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본인 엄마란 걸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하긴, 종일 나를 비방하는 사진만 봐왔으니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했다.은가영은 내게 사인받으려고 사람들을 힘껏 밀치다가 몇몇 여자애들에게 욕을 먹고 말았다.결국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고 은가영은 한바탕 두들겨 맞은 후 바닥을 나뒹굴었다. 경호원들이 달려와서야 겨우 그녀를 구했다.이때 인기척을 느낀 유시아가 재빨리 달려왔다.본인 팬들이 전부 내게 둘러싸여 사인을 받으려고 하는 광경에 그녀는 얼굴과 목까지 다 벌겋게 달아올랐다.“신인 따위가 왜 이렇게 시건방져? 다들 촬영하는 거 안 보여? 어디서 잘난 척인데? 촬영에 방해 주면 네가 책임질 거야?”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연예인 병이 걸렸다는 죄명을 뒤집어씌웠다.만약 진짜 유시아의 꼼수대로 흘러간다면 금방 데뷔한 신인인 나는 이 자리에서 매장당할 게 뻔하다.그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죄송해요. 선배 말대로 저는 겨우 밥벌이나 하는 신인이에요. 제가 거슬린다면 지금 바로 갈게요. 화내지 마세요, 선배.”나는 매우 비천하면서도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이에 옆에 있던 소녀들이 버럭 화냈다.“고사 지내는
두 달 뒤.나는 드디어 전성기 몸매로 돌아왔고 심지어 그때보다 더 완벽해졌다. 얼굴은 아무런 변화가 없고 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요염해진 모습으로 거듭났다.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전에 봐둔 그 대본이 드디어 나에게 차려졌다.마침 유시아도 같은 날 고사를 지냈다.나는 이번에 마스크를 벗고 당당하게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헐, 이게 누구야?”“너무 예뻐. 설마 이번 작품의 출연자라고?! 이렇게 예쁜 배우가 여주가 아니란 게 말이 돼?”“네가 뭘 알아? 요즘은 돈만 밀어주면 못생긴 것들도 죄다 주인공 한다고 난리잖아. 진짜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좋은 작품 만나기 어렵다니까.”“야, 잠깐만. 왜 꼭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지? 왜 이렇게 낯익은 거야?”“낯익긴 개뿔. 예쁘면 다 친한 척이네 이거.”이때 내가 당당한 걸음으로 감독에게 다가갔다.“감독님, 안녕하세요. 유진이에요.”안에는 감독뿐만 아니라 유시아와 은지호 두 사람도 있었다.다들 고사 준비에 한창이었는데 나를 본 순간 어쩔 바를 몰랐다.유시아는 아예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이미 나를 알아본 게 뻔했다. 내 자리를 꿰차려는 의도였기에 당연히 조강지처인 나에 관해 철저한 연구를 마쳤겠지.한편 은지호는 흠칫 놀라다가 눈가에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고 이를 본 유시아가 재빨리 가로챘다.“오빠, 이제 뭐가 더 필요한지 봐봐.”은지호는 나를 집어삼킬 듯이 뚫어지라 쳐다봤다.다만 나는 눈길조차 안 주고 계속 감독에게 말했다.“지금 가서 옷 갈아입을까요?”“그래, 가봐. 마지막 씬만 남았어.”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서서 자리를 떠날 때 뒤에서 갑자기 성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은지호는 대뜸 나의 팔을 붙잡고 울부짖었다.“한유진, 너일 줄 알았어. 전성기 때로 돌아왔네. 아니, 그때보다 훨씬 예뻐졌어! 요즘 어디서 지내? 왜 집에 안 오는 거야? 전화는 또 왜 안 받는 건데?”“오빠!”이때 유시아가 쫓아오며 나를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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