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나를 죽도록 원망했다. 내가 울면서 물었다. “난 오빠의 친여동생이 아닌가요?” 이내 남자는 싸늘하게 비웃었다. “나한테 여동생은 없어.” 그날 밤, 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다. 하지만 오빠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View More임리아는 반년간의 학교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뛰어내리기 전, 그때 그 연약해 보였던 소녀가 참으로 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 소녀는 18년 동안 오빠의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고, 자신에게 6년간,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교 폭력을 당했다. 하지만 자살하지 않았고, 결국 차에 치여 죽었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이 소식을 들은 임기택은 비웃듯 한숨을 내쉬었다. “꼴 좋네.” 그리고는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아쉬운 결말이야.”모두가 알고 있는 LS 그룹의 젊고 유능한 대표, 임기택. 그의 집에는 커다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 사진은 그의 여동생이라고 알려져 있다. 임기택은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자신의 휴대폰까지 찾아봤지만 임윤설의 사진 한 장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여동생의 휴대폰을 찾아냈고 거기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여동생은 흰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공주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그 티아라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는데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났다. 여동생은 눈웃음을 지으며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케이크 위엔 ‘여동생, 생일을 축하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건 임기택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공주처럼 보였다.LS 그룹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업계 사람들은 모두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임기택은 이제 여동생의 옷을 끌어안고 사는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묻곤 했다. “혹시 제 여동생을 보셨나요? 가출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올해 겨우 열여덟 살이에요.”아무도 그의 이후 삶에 대해 알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얼굴에 광기 어린 감정을 드러낸 임기택을 바라보며 약간 의아해했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내 쪽으로 다가왔다.“윤설아, 내 동생, 오빠가 드디어 다시 널 볼 수 있게 됐어.”나는 혐오스럽다는 듯 몸을 돌렸다.“임기택.” “내가 말했잖아.” “더 이상 너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고. 난 더 이상 네 여동생이 아니야.”그의 눈에서 흥분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팔도 점차 내려갔다.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윤설아, 내가 죽으면 네가 조금이라도 기뻐할까?”그의 목소리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아니.”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네가...”그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엔 거의 병적으로 보일 만큼의 경건함이 스쳐 갔다.“오래오래 살아서...” “외롭게 늙어가길 바래.”그의 미소가 멈췄다. “윤설아, 방금 뭐라고 했어?”“네가 죽지 못했으면 좋겠어.” “널 보고 싶지 않으니까.” “임기택, 이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영원토록, 나는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임시후와 임하늘을 찾아갔다. 그들은 내 무덤 앞에 서 있었다. 나를 추모하며.바람이 불어오자 나는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 달려갔다. 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였다.
마치 내 마음을 들은 듯, 오빠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내가 살던 텅 빈 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전혀 없는 듯 깨끗했다. 하긴, 임리아가 가진 것들을 나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윤설아, 너 아직 여기 있는 거지? 왠지 네가 아직도 여기 있는 것 같아.”오빠는 넋을 잃은 듯 방 안에 앉아 있었다. 이때 강 아주머니가 한쪽에서 나와 한숨을 쉬며 말했다.“기택아, 너도 몸 좀 챙겨야지. 윤설이도 네 걱정 많이 했어.”“네가 술에 취했을 때, 그 해장국이랑 죽은 전부 윤설이가 준비한 거야. 네 책상에 있던 눈 보호하는 물건들도, 네 셔츠랑 옷들도 다 윤설이가 다려준 거고.”임기택은 갑자기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방 한쪽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며 그를 바라보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임윤설은 중학교에 막 들어갔을 시기였고, 자신은 회사 일로 술자리를 피할 수 없었다.그때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했던가? 억지로 기억을 짜내려고 했다.“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잖아.” “네가 미워해, 임윤설.”그는 여동생의 맑고 큰 눈에 서서히 차오르는 눈물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고, 그 뒤에 약간의 죄책감이 밀려왔다. 임윤설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방으로 돌아갔고, 그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책상 위에 놓인 해장국을 보았다. 순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그때 리아가 뛰어와 그의 목에 안겼다. “오빠, 돌아왔어? 많이 힘들지?”“응, 오빠 힘들었어. 해장국 준비해 줘서 고마워.”임기택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거대한 고통이 몰려와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다시 한번 여동생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그 순간, 문득 그는 죽음을 떠올렸고 다량의 수면제를 삼켰다.그리고 마침내, 허공에 떠 있는 임윤설을 보았다.
임기택은 내가 살아있을 때 겪었던 모든 일을 뒤늦게서야 알아냈다. 그제서야 임리아가 그동안 뒤에서 얼마나 많은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는 정말 몰랐다. 나는 그가 모든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나는 그가 수업 중인 임리아를 교실 밖으로 불러내고, 여학생 화장실로 끌고 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그녀에게 똑같이 되갚았다. 그 과정에서 몇몇 사람을 불러 그녀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진을 찍게 했고, 그 사진들을 학교 내의 다양한 익명 게시판에 뿌렸다. 그녀가 예전에 나를 헐뜯고, 사람들을 모아 학교에서 괴롭혔던 모든 일들도 함께. 죄악의 대가는 제법 무서웠다. 임리아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그녀가 겪는 고통은 내가 당했던 것의 수천 배, 수만 배였다.임리아는 화장실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 임기택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여동생을 미워했던 임기택이 왜 동생의 죽음에 기뻐하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그녀가 생전에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그녀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걸까? 마치 여동생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강간범은 결국 알 수 없는 죽음으로 발견되었다. 그의 시신은 산에 버려져 짐승들에게 뜯어 먹혀 거의 남은 것이 없었다. 그는 범죄 전과가 많았고 얼마 전에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나를 치어 죽인 운전자는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어 형벌을 선고받았다. 마치 나를 해친 사람들이 모두 응당한 대가를 받은 듯했다.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기택.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 사람.
임시후는 임하늘과 함께 내 유골을 돌려받으러 임기택을 찾아갔다. 두 사람 모두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나는 사람의 감정이 시간을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오빠와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오빠는 한 번도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나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낀 대부분의 사랑은 임하늘과 임시후로부터 온 것이었다.나는 새로운 삶을 향해 달려가던 그날 밤에 죽었다.“윤설이 유골을 돌려줘.”임하늘의 얼굴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윤설이는 네 곁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았을 거야. 윤설이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네 곁을 떠난 거잖아. 안 그래?”임하늘은 내 앞에서 오빠를 욕할 때처럼 노골적이지 않았고 최대한 품위를 지키려 노력했다. 내가 거칠게 말하는 임하늘과 친구라는 이유로 남들에게 무시당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임기택, 너도 윤설이를 미워했잖아. 아니야?”임하늘은 임기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내 유골을 안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임하늘은 그를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아니라면, 왜 네 의붓여동생 임리아와 함께 친여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어?”“이건 리아랑 아무 상관 없어. 리아까지 끌어들이지 마.”임기택은 무의식적으로 말하며 그녀를 변호했고, 이를 본 임하늘은 냉소를 지었다.“임리아가 학교에서 윤설이를 괴롭히는 걸 오빠인 너라도 막았더라면 윤설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죽지 않았을 거야. 설마 네 여동생이 겪은 일들이 너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니?”임기택이 대답하지 않자, 임하늘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때 임시후도 앞으로 나서서 유골을 빼앗으려 했다.“더 말해야 돼?”“임기택, 평생 기억해. 네 여동생은 네 손으로 죽인 거야.”‘네 여동생은’‘네 손으로’‘죽인 거야’그 말에 임기택은 온몸을 떨었고 유골 단지마저 땅에 떨어뜨렸다. 단지가 바닥에 닿으며 맑은소리가 울렸다
경찰은 그 이후의 장면을 건너뛰고 도로변 CCTV에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차에 치여 쓰러진 나를 발견했다.이내 동정 어린 표정으로 임기택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무 말도 안 했다.임기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멍한 얼굴로 넋을 잃고 말았다.마치 아주 오래전, 열 살밖에 안 됐던 어린 시절처럼.갓 태어난 여동생과 방금 돌아가신 엄마를 마주했을 때보다 결코 충격이 덜하지 않았다.임기택은 금세 내 시신을 찾았다.나는 잠자코 누워 있었다.핏기가 사라진 몸은 이미 차갑고 딱딱하게 굳었다.병원 관계자가 안쓰러운 말투로 말했다.“이제 겨우 18살이라던데 참 딱하네.”이내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글쎄 한참이 지나서야 가족이 찾으러 다녔다니까?”그리고 임기택을 위아래로 훑었는데 아마도 그가 못마땅한 듯싶었다.하긴, 내 삶은 대부분 임기택 때문에 망했고 일부는 임리아의 탓도 있었다.어쩌면 두 남매가 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임기택이 내 시신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윤설아, 오빠가 데리러 왔어. 많이 춥지?”그는 추위에 떨면서도 나를 놓지 않았고, 양손으로 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연신 문질렀다.그러고 나서 다시 내 손을 잡았다.“윤설아, 몸이 왜 이렇게 차? 혹시 오빠가 늦게 데리러 와서 삐진 거야?”저 멀리 관계자가 정신이 반쯤 나간 그의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었다.“이제 와서 후회하기 전에 진작에 잘해주지.”비록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오빠의 귀에 똑똑히 들렸고, 씁쓸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대뜸 시신을 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이제야 모든 게 실감이 났다.이 세상에서 유일한 가족이자 핏줄로 이어진 여동생이 정말 죽었다.나는 공중에서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하지만 속으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동안 나는 오빠가 조금이나마 살갑게 대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다.이제 죽은 이상 임기택도 나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는 빚진 게 없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