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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Author: 류한나
곽승재의 이유는 꽤 정당했다.

고은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사인하면 끝나는 일인데 뭐가 번거로워? 그리고 당신 조건이라면 마누라가 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텐데.”

고은서는 일부러 백유미를 언급하지 않았다. 곽승재가 또 백유미를 빌미로 말한다고 생각할까 봐서였다.

“당신 새 아내는 분명 나보다 할머니에게 잘할 거야. 그럼 할머니 기분 나쁠 일도 없겠지.”

전미자가 그녀를 아꼈지만 그건 모두 손자며느리라는 신분 때문이라는 걸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곽승재는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고은서, 우리 결혼생활에 뭐가 갑자기 그렇게 불만이라서 서둘러 끝내지 못해 안달이야?”

5주년 기념일에 함께 하지 못해서 그녀에게 혼자 선물을 사라고 했고, 곽승재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요즘은 최대한 많이 돌아오려고 노력하고 있고, 옷도 옷방에 옮겨 입고, 잠도 안방에서 자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고은서의 요구사항이었고 그가 지금 다 해내고 있는데 왜 그녀는 여전히 불만일까?

남자가 따져 묻자 고은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 불만을 당신이 모르는 게 가장 큰 불만이야.”

곽승재는 할 말을 잃었다.

더 이상 고은서와 입씨름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싱거운 한 끼 식사였지만 물론 그건 곽승재의 일방적인 생각이었다.

고은서는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고기도 많이 먹고 국물도 많이 마시고 죽도 한 그릇 싹 비웠다.

배불리 먹고 나서 그녀는 동그란 아랫배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주머니, 나 산책하러 가요!”

말을 마친 그녀는 긴 외투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문을 나섰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 사방의 불빛이 밝아졌다.

별장 구역의 녹화가 잘 되어 있어 곳곳에 잔디와 나무가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작은 호수도 있었다.

고은서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소화를 시켰다.

그녀가 호숫가의 한적한 곳을 걷고 있을 때, 검은 캡을 쓴 두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길을 막았다.

“당신들 뭐야?”

고은서가 경계하며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훈련관 밖에서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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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48화

    그러자 남자는 뭐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고은서 앞에 내밀었다.고은서는 물론 함부로 서명할 엄두가 나지 않아 동의하며 종이를 받아 그들이 긴장을 풀게 한 뒤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휴대전화에 손을 대는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뒤로 밀었다.“악!”고은서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고 다리를 허우적대며 상대와 싸우려 했다.“잘 봐. 나야!”익숙한 곽승재의 목소리에 고은서는 그제야 몸부림을 멈췄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과연 곽승재의 얼굴이 보였다.하지만 여기는 좀 외지고 가로등 불빛도 어두워 고은서는 곽승재의 표정이 잘 안 보였다.“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방금 그 사람들은?”고은서가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려 보니 그림자도 없었다.“도망갔어.”곽승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산책한다더니 왜 여기까지 왔어?”방금 날카롭게 세웠던 긴장감이 갑자기 풀리고 나니 고은서는 다리가 나른해져서 아예 옆에 있는 돌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냥 생각 없이 걷다가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저런 사람들을 마주칠 줄 어떻게 알았겠어. 신고해! 얼른 경찰에 신고해.”고은서가 휴대전화를 꺼내자 곽승재가 엄숙하게 말했다.“됐어. 경찰이 와도 이미 아무런 증거도 없어. 내가 사람 시켜서 조사할게.”“증거가 왜 없어?”고은서는 그 종이를 들어 올리려고 보니 손이 텅 비어 있었다.곽승재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채고 차근차근 설명했다.“딱 봐도 베테랑이야. 눈치 채고 종이를 뺏어 도망쳤는데 무슨 증거를 남겼겠어?”고은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하는 데 여념이 없어 곽승재의 접근도 눈치채지 못했다.“일단 가자.”곽승재가 재촉하자 고은서가 고개를 저었다.“잠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좀 더 쉬어야겠어.”곽승재가 무슨 표정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는지 모르지만 뜻밖에도 그녀 앞에 반쯤 쪼그려 앉았다.고은서는 그의 이 동작의 뜻이 좀 믿기지 않았다.“빨리 안 올라와?”곽승재가 인내심을 잃고 재촉하자 고은

  • 어게인, 비긴   제149화

    고은서는 지금 그와 말다툼할 기분이 아니었다.그가 자신을 엎고 싶어 하든 아니든 어쨌든 힘든 건 그녀가 아니었다.오랫동안 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누리는 복리후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그러자 고은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곽승재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몸을 뒤로 젖혀 그를 노동자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곽승재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잠시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정해 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거리감 있는 자세로 집에 도착했다.고은서가 내려가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데 곽승재가 여전히 그녀를 업고 있다.“나 업고 위층에 올라가려고?”“어차피 여기까지 업고 왔는데 뭐.”말하면서 그는 그녀를 업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인기척을 듣고 나온 이미숙이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활짝 웃더니 급히 부엌으로 숨었다.그녀의 행동을 전부 지켜본 고은서는 할 말을 잃었다.방에 돌아와서야 곽승재는 고은서를 내려놓았다.오랫동안 여자를 업은 그는 팔이 좀 시큰거려서 손을 뻗어 주물렀다.이렇게 명백한 암시 동작, 고은서는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예전의 고은서였으면 마음 아파하며 주물러주며 많이 힘들었냐고 수줍게 물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고은서는 덤덤하게 그를 밀쳐내고 말했다.“비켜줄래? 나 화장실 갈래.”곽승재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고은서, 내가 너 업고 여기까지 왔는데 기본적인 예의도 없어?”큰 공을 세운 건 아니어도 노고를 치렀는데 고은서가 대충 넘어가는 건 좀 아니었다.고은서가 씩 웃더니 말했다.“고생했어. 근데 나 업어달라고 강요한 적 없어. 혼자 걷겠다는데 당신이 고집한 거야. 그러니까 팔이 아픈 건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 내가 주물러 줄 의무는 없어.”마치 이전의 그녀가 곽승재를 위해 차를 날라주고 관심과 안부를 전했던 것처럼 곽승재는 그녀에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었다.그녀 스스로 그렇게 하면 그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여겼을 뿐

  • 어게인, 비긴   제150화

    도아름이 괜찮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고은서는 아까의 일을 그녀에게 말했다.“서인수가 보낸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 언니도 오늘은 외출하지 마세요.”“그 인간이 감히 은서 씨한테 손을 대요? 반드시 사람을 보내 혼내야겠어요!”도아름은 고은서가 협박받았다는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은서가 황급히 말렸다.“언니가 물어도 어차피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 오히려 꼬투리 잡힐지도 몰라요. 난 그저 언니가 서인수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그 인간 감히 나 못 건드려요!”“내 손에 그 인간 약점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한때 부부였고 우리 애 아빠이니 살살 다룬 건데. 만약 정말 은서 씨한테 그런 짓을 했다면 나 그 인간이랑 끝까지 싸울 거예요!”고은서는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도아름과 나이 차이는 있지만 그녀는 사랑한 만큼 미워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니 사귈 만 한 친구였다.“아름 언니, 화내지 마세요. 곽승재가 이 일을 조사하겠다고 했으니 소식 있으면 알려줄게요.”두 사람은 몇 마디 더 한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그날 밤 고은서가 잠들 때까지 곽승재는 침실로 돌아가지 않았다.아마 그녀에게 화가 났을 것이다.줄곧 그를 쫓아다니며, 그의 희로를 자신의 희로로 여겼던 사람이 갑자기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누구나 속으로 불편할 것이다.외할아버지가 말씀한 곽승재의 변화는 대개 그런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그가 불편하든 아니든 그녀만 기쁘면 된다.다음날, 고은서는 일어나도 곽승재를 만나지 못했는데 어젯밤 그 두 남자에 관한 단서를 찾았는지 모르겠다.시간을 보고 고은서는 외삼촌과 외숙모랑 식사하기로 했다.그들을 통해 고은혜가 출국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려는 것도 있고 그들과 이혼에 대해 결단을 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그녀는 결코 힘 있는 곽씨 가문의 사모님이 아니었으니 이혼하는 일은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요청에 외삼촌 내외는 거절하지 않았다.외숙모에

  • 어게인, 비긴   제151화

    “네 할아버지가 말하길, 지난번에 승재에게 주려고 산 선물인데 깜빡하고 집에 두고 여태 주지를 못했어, 내가 널 보러 온다는 걸 알고 특별히 건네준 거야.”곽승재는 외숙모의 손에 들린 상자를 흘끗 쳐다보다가 다시 고은서쪽으로 눈길을 돌렸다.“….”무슨 선물이 있다고, 집에 두고 올 수 있을까?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곽승재에게 고대 벼루를 받은 후, 곽승재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당시 곽승재는 별 생각 없이 동의했다. 그녀는 그 일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할아버지께서 직접 선물을 사고 자신의 명의하에 곽승재에게 선물을 주다니, 이렇게 마음을 쓰실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할아버지가 상황을 만들어놓고, 곽승재도 마침 여기 있었기 때문에 고은서는 분위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외숙모의 손에 든 상자를 받아 곽승재에게 건네며 말했다.“여기.”“뭐지?”곽승재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고은서도 무표정으로 답했다.“직접 열어보면 알잖아.”“좋아, 너희들 일은 나중에 돌아가서 얘기하자, 일단 앉아서 밥부터 먹자!”그들이 서둘러 자리를 내주었다.신선한 재료를 요리사들이 직접 갖다주며 현장에서 조리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그들은 먼저 주문해야 했다.식사는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일정이었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먹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고은서는 자리에 앉았고, 곽승재도 그 옆에 앉았다.외숙모는 찐한 맛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해산물을 엄청나게 주문하고 요리사에게 매콤하고 마늘 향이 나도록 구워달라고 부탁했다.“외숙모, 승재는 매운 음식을 안 먹어요.”고은서의 머릿속은 여전히 할아버지가 사준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왔다.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는 옆에 있던 승재의 입꼬리가 어렴풋이 올라가는 것을 알아차렸다.고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곽승재는 까다로운 식성을 가지고 있었고, 먹지 않는 음식이 많았으며, 그녀는 그런 그를 위해 큰 노력

  • 어게인, 비긴   제152화

    고은혜가 방금 한 말은 원래 고은서를 당황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고은서는 평소 부유한 여성답게 수천만 대의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수백만 개의 가방을 가지고 다니며, 블랙카드를 사용하지만, 개인적으로 보석을 판매하기도 했다.만약 곽승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는 수치심을 느끼고 짜증을 냈을 것이다.그러나 고은혜의 예상과 달리 고은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일말의 당혹감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야. 그걸 알아차리다니, 그리 멍청하지는 않네.”어제 캡처를 할 때 그녀는 일부러 판매 정보의 절반만 잘라냈고, 고은혜는 한두 눈 만에 귀걸이를 팔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고은혜는 원지훈이 그가 자랑했던 것만큼 부자가 아니고 허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이제 막 호감이 들기 시작했지만 금방 식을 것이 분명했다.고은서의 말을 들은 고은혜는 화가 나서 계속 트집을 잡았다.“아니, 돈이 그렇게 모자래요? 보석을 팔 정도로?”고은서가 웃었다.“그건 틀린 말이야. 다 내가 검소하고 가족을 중시하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을 다시 주워서 돈을 받고 파는 거지.”“휴지통에 버리다니!”고은혜는 이 말을 듣자마자 순간 귀가 더러워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서둘러 귀를 닦았다.어제 그녀는 하루 종일 들떠서 귀걸이를 차고 다녔다.오후에 고은서가 중고 웹사이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그녀는 이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고은서가 쓰레기통에서 이 귀걸이를 발견했다고?아니다.“귀걸이가 어떻게 쓰레기통에 있어요?”고은혜는 고은서가 일부러 자신을 엿 먹이려 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던졌어.”고은서가 말했다.“원래는 내 것이 아닌 것은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재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내 눈에는 별거 아닌 것이 너한테는 소중한 존재였구나.”이 말을 들은 고은혜는 더욱 화가 났다.고은서에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결과는 아무런 문제도

  • 어게인, 비긴   제153화

    단은숙은 이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그런 거야?”그리고 그녀는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덧붙였다.“우리 은혜 비록 공부는 잘 못하지만, 디자인 쪽에는 재능이 뛰어나. 이쪽에 노력하는건 전혀 아깝지 않아.”“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고은서가 덧붙여 말했다.“외숙모, 은혜가 디자인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파리에 있는 유명한 디자인 학교에 보내 2년 동안 공부를 시킬 생각 없으신가요?”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씩씩대던 은혜는 고은서의 말을 들자, 순간 당황했다.그녀는 고은서가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단점을 파헤칠 거로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해외 유학을 제안하였다.고은서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해졌을까?“여자애가 무슨 유학을 하러 간다고 해, 만약 혼자 외국에 가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단은숙은 아무 생각 없이 거절부터 했다.“은혜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스스로 돌볼 수 있어요. 게다가 지금은 비행기가 너무 편리해서 언제든 돌아오실 수 있고, 외숙모랑 삼촌도 언제든지 가실 수 있어요.”고은서는 외숙모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만 골라 했다.“해외에 가서 기술을 배우고 돌아오면, 유학을 했던 사람이라며 다들 높이 평가할 거예요.”“은혜는 이제 고 씨 집안의 딸이니 감히 누구도 얘를 함부로 얕볼 수 없어!”단은숙은 여전히 거절했다.“엄마, 저도 그쪽에 있는 디자인 학교가 마음에 들어요. 2년만 다니면 되는데, 절 다니게 해 주세요!”고은혜는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단은숙을 설득하기는 물론 쉽지 않았다. 그녀는 고은혜에게 그곳에서 살게 되면 생기는 불편한 점, 걱정되는 점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그쪽에 제가 아는 친구가 몇 명 있으니 필요하면 제가 대신 소개해 드릴게요.”그 순간 곽승재가 입을 열었다.고은혜의 눈은 즉시 밝아졌다. 그녀는 해외에 가고 싶었지만, 어머니께서 강하게 반대했다.그녀는 고은서가 자신을 도와 말을 해줄 뿐만 아니라 이젠 곽승재까지 자신을 도와줄 이야 예상하지 못했다!고은혜는 애원하며 어

  • 어게인, 비긴   제154화

    고은혜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내가 뭘 해야 할 것 같아? 할아버지께서 설마 나를 함부로 대할까?”“게다가 내가 정말 하려고 하는 게 있다면, 네가 국내에 있든 없든 별 차이가 있을까? 네가 비즈니스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아니면 M-Q에 관해 이야기할 수를 가?”“너!”고은혜는 기가 차서 잠시 얼굴이 붉어졌다.“원지훈한테서 들었는데, 당신이 그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면서요, 혹시 그에게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원지훈이 물론 아무렇지 않게 언급한 사실이지만, 그녀는 고은서와 원지훈의 채팅 기록을 엿보았다.주차장에서의 그날을 떠올리며 원지훈은 그녀와 함께 놀자고 권했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은서는 결국 동의하며 블랙카드를 꺼내 계산하겠다고 나섰다.원지훈이 체육관에 갔을 때 고은서도 그곳에 있었다.고은혜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니?”고은서는 비웃었다.“뇌는 생각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남이 뭐라고 해서 그대로 믿는 건 아니야.”“원지훈과 곽승재가 비길 가치라도 있을까? 내가 사적으로 연락을 할 가치가 있냐고?”이렇게 말하며 고은서는 그녀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건네며 물었다.“잘 봐, 내가 무슨 얘기를 했지?”고은혜는 화면을 흘끗 보았다. 매번 원지훈이 먼저 연락을 보내는 것을 그녀는 확인할 수 있었다.채팅 내용은 평범하고 정중해 보였지만, 조금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일부러 그녀를 흥분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은서가 고은혜보다 더 부유하고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다.고은혜는 고은서의 말투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원지훈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이 그를 쫓아다녔고, 전에 피로연에서 그는 당신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고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나갔어! 그리고 당신은 그 과정에서 그를 짜증 나게 할 남자를 함부로 찾은 거고, 안 그래?”고은서는 기가 차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

  • 어게인, 비긴   제155화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고은서의 눈썹과 위로 올라간 입꼬리를 본 곽승재의 첫 반응은 의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지난번에 그를 놀렸던 그녀의 차가운 미소와 비웃음, 승리의 웃음을 제외하면 곽승재는 오랫동안 그녀의 환한 미소를 보지 못했다.물론 지어낸 웃음이지만, 곽승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너무나 흔한 일이 이제는 드문 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의 마음이 막연해지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카드를 가지진 않았어도, 어차피 네 것이니까 근심하지 마.”곽승재는 반나절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을 본 고은서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고은서, 너 유치하다.”곽승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방금 다 말했어, 너한테 준 물건은 이미 네 것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먼저 자리를 떠난다고 너한테 알려주러 왔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주민기가 이미 처리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그렇게 말한 후 곽승재는 긴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고은서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곽승재는 오늘 조금 이상했다.두 번이나 그녀를 위해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고의적인 도발에 화도 내지 않았다.어쨌든 고은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어젯밤 일이 해결되었다는 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마침, 아름 언니가 전화를 걸어와 그녀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했다.“그래!”도아름이 말했다.“서인수의 와이너리가 오늘 공식적으로 개업했고,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리본 커팅식을 가졌어. 근데 리본 커팅식이 시작되기 직전에 경찰에 연행되었어.”“지금 커뮤니티에 소문이 퍼져 모두가 그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망했다며, 후에는 더 잘 안될 거라고 비웃고 있어.”“은서, 곽 총무의 업무 효율이 정말 죽이는데,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오늘 처리했으니 아직도 널 아끼긴 하나 봐.”도아름은 지난날 칵테일파티에서 고은서가 술에 취한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연민을 느꼈다.물론 고은서의 술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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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112화

    의사가 여재훈의 상처를 처치하는 사이, 고은서의 휴대폰이 울렸다.번호를 보니 곽승재였다.고은서는 여재훈에게 말하고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은서야, 너 사고를 당했다며? 너와 여 대표님이 모두 다쳤다고?”곽승재가 다급히 물었다.임신 오해 사건 이후, 두 사람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한 뒤로 그녀를 몰래 보호하던 인원을 철수한 상태였다.하지만 운전기사는 여전히 주민기가 배치한 인원이어서 고은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었다.고은서는 어디서 들었는지 캐묻지 않았다.“괜찮아. 마재경이 갑자기 유일 투자은행 주차장에서 나를 습격했어. 여재훈 씨가 막아주다가 팔을 다치셨고.”“나는 지금 출장 중이라 경찰서 쪽에 다른 사람을 보냈어.”곽승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해성으로 돌아갈게.”고은서는 급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여긴 별일 없으니까 일에 집중해. 여재훈 씨의 상처 처치가 끝나면 경찰서로 가서 마재경을 만날 거야.”“이쪽 일은 거의 마무리됐어. 내가 돌아가면 같이 경찰서에 가자.”곽승재는 설명을 이어갔다.“지난번 마재경이 다쳤을 때 병원을 방문해 더 이상 협조가 필요 없다고 통보하고 충분한 보상금도 지급했어.”“다시는 네 앞에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후에 조종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곽승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고, 고은서도 어느 정도 수긍했다.따져보면, 마재경은 돈 때문에 곽승재와 손잡은 것이고 그녀와 깊은 원한이 없었다.협력 관계가 끝났으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정상이지, 이렇게 위험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복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지만 마재경이 진심으로 곽승재를 좋아하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천천히 사랑을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곽승재가 갑자기 관계를 끊자고 하니 그 분노를 고은서에게 쏟아냈을 수도 있다.고은서가 이 가능성을 말하려는 순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안에 있는 환자분의 부탁이라며 그녀의 상처

  • 어게인, 비긴   제1111화

    ‘분명 넘어뜨렸는데.’고은서는 마재경이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고, 가위를 들고 달려들 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고은서는 다급한 마음에 전기충격기를 꺼내 마재경의 몸에 들이댔다.“조심해요.”고은서와 마재경이 전기충격기와 가위를 손에 들고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황급히 달려왔다. 여재훈이었다.그는 고은서를 확 끌어당기고 마재경을 밀쳐냈다.쨍그랑! 전기충격기가 땅에 떨어지며 마재경의 몸에 닿았고, 감전된 마재경은 비명을 질렀다.잠시 비틀거리던 마재경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다시 가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고은서가 마재경을 걷어차려고 다리를 뻗는 순간, 여재훈이 자기 팔로 가위를 막아 그녀를 보호했다.그의 넓은 어깨는 웅대한 산처럼 든든해 보였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품에 안겼을 때처럼 피난처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짝! 가위가 여재훈의 팔을 찌르며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재훈은 잽싸게 마재경을 발로 걷어찼다.“여재훈 씨, 괜찮으세요?”정신을 차린 고은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재훈은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괜찮아요.”이때 경비원 몇 명이 달려와 마재경을 제압했다.고은서는 여재훈의 팔을 살펴보았다. 재킷과 셔츠가 찢기고 기다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고은서는 가슴이 아려와 다급히 말했다.“다치셨네요. 빨리 병원 가서 싸매야 해요.”“고은서 씨도 다쳤으니 같이 가요.”여재훈이 고은서의 쇄골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여재훈의 말을 듣고 나니 쇄골 근처 어깨죽지 부위에서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는 듯했다. 오늘 카라 없는 캐주얼 셔츠를 입은 까닭에 마재경이 가위를 휘두를 때 살짝 긁힌 듯하다.“저는 연고만 바르면 될 것 같아요. 어서 병원 가요.”고은서는 경비원에게 마재경을 경찰서에 넘기라고 말했다.그러고는 기사를 불러오고 여재훈과 함께 뒷좌석에 탔다.여재훈의 팔뚝에 번진 핏자국을 보며 고은서는

  • 어게인, 비긴   제1110화

    여재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은서 씨를 회사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 식사는 여재훈이 초대한 자리였으니 끝까지 책임지고 고은서를 안전하게 회사까지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분위기가 조금 무거웠다.고은서는 여재훈이 자기 딸이 고양이를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줬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일 투자은행의 주차장에 도착했다.“은서 씨, 곽승재 씨랑 현재 무슨 사이이신가요?”여재훈이 물었다.고은서는 사실대로 답했다.“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예요.”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승재 씨는 은서 씨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요.”연회 때 곽승재가 고은서를 적극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모두가 똑똑히 봤다.이에 대해 고은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그건 곽승재 씨의 일방적인 감정이에요. 저는 그 사람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어요.”“시은이가 승재 씨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말한 적 있어요. 그와 결혼하고 싶다고.”여재훈은 말을 이었다.“아마 시은이의 질투심도 여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은서 씨를 해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쿠아는 시은이가 가장 아끼던 반려동물이에요. 시은이가 이유 없이 해칠 리는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그 말의 속뜻을 곧바로 이해했다.여재훈의 말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향한 질투 때문에 공격적으로 나왔을 수는 있어도, 쿠아는 여시은이 키우는 반려동물이기에 쿠아를 해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 같았다.고은서는 그저 씁쓸하게 웃었다.가족이라는 필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여재훈도 여시은의 본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고은서는 더 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여재훈한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고은서는 어디선가 여자 하나가 스쳐 지나가는 듯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고, 공기 중에서 약간의 피비린내도 느꼈다.그녀는 주

  • 어게인, 비긴   제1109화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시은이가 또 무슨 일을 했다는 거죠?”마침 노 사장님이 식전 반찬을 가져다주며 주문한 대표 요리도 곧 준비된다고 알렸다.고은서는 계속해서 말했다.“재훈 씨, 저희 먼저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할까요?”고은서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만약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두 사람 모두 식사할 마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제안에 동의했다.이 개인 요리 식당의 음식은 색다른 풍미가 있었고, 고은서는 배부르게 먹었다.반면, 여재훈은 거의 먹지 않았다. 마치 그는 고은서를 동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한 것처럼 보였다.식사 중에는 가끔 일상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약 삼십 분 후, 고은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배가 너무 부르다고 말했다.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여재훈은 배부른 고은서를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여재훈은 그녀가 배부르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여재훈은 고은서의 찻잔에 물을 따라주며 물었다.“우리 시은이가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거죠?”고은서는 찻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여시은이 고양이를 학대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저번에 제가 쿠아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했었잖아요?”고은서가 말했다.“전 정말 시은이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에요. 여시은이 제 눈앞에서 쿠아의 입술을 다치게 했어요. 그리고 평소에도 쿠아를 자주 괴롭혔어요.”고은서의 말을 들은 여재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시은이는 쿠아를 그렇게 아꼈어요. 집에서도 항상 품에 안고 다녔고, 쿠아가 뭐라도 먹고 싶어 하면 직접 손으로 먹여줬다니까요. 시은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했겠어요?”여재훈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은서 씨, 혹시 오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닐까요?”평소 여시은은 얌전한 딸의 이미지를 잘 연기해 왔기에 여재훈은 그녀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재훈 씨가 믿기 힘든 거 알아요. 아버지 입장에서야 딸이 그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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