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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작가: 류한나
고은서의 질문에 전미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나도 잘 몰라. 연정이와 현수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분명 현수와 관련이 있을 거야.”

이 말에 고은서도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그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기에 뭐라 덧붙이기도 어려웠다.

“은서야, 승재는 두 사람으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았어. 그래서 랑과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었지.”

전미자는 앨범을 내려놓고 고은서의 손을 잡았다.

“너와 승재가 결혼하길 원했던 건 사실 개인적인 욕심이었어. 너는 밝고 자신감 넘치고 또 진심으로 승재를 좋아했잖니. 난 네가 승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승재가 떨떠름하게 승낙했을 때도 난 너희가 행복할 거라고 믿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니.”

전미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고은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전미자로부터 여러 번 들었었다.

전미자가 아무리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여전히 그녀가 곽승재와 함께하길 바라고 있다는 걸 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전미자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전미자가 휴식을 취하겠다고 하자 고은서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유일 투자은행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은서는 유성준의 연락을 받았다.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했어. 경찰도 고소를 받아들였어. 공식 기자회견은 모레 오후에 열릴 거야. 홍보팀에서 친분이 있는 몇몇 언론사와 약속을 잡았고 아주머니도 아저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로 했어.”

빈틈없는 그의 일 처리에 고은서는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게임 회사 쪽의 진행 상황을 점검한 후 그녀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 고은서는 며칠 동안 야근하던 박지연뿐만 아니라 한껏 멋을 낸 육현석도 발견했다.

“은서야, 왔어?”

박지연이 먼저 말을 건넸다.

“육현석이 자꾸 밥 먹자고 꼬드겼는데 난 피곤해서 집에 간다고 했더니 따라왔어.”

육현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지연이가 아주머니 요리가 끝내준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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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현석은 자신의 속셈을 들켰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은서야, 난 그냥 네가 승재 형이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네 전화는 꼭 받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 말하는 거야. 한번 시험해 볼래?”고은서는 시험해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하지만 흥미를 느낀 박지연이 곽승재의 번호를 눌렀다.육현석이 말릴 틈도 없이 전화기 너머에서 곽승재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연 씨, 은서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은서는 아무 일도 없어! 형, 내 전화는 왜 안 받았어!”육현석이 화가 난 듯 따져 묻자 곽승재 쪽에서 갑자기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거리가 멀었던 탓에 여자의 신분은 확인하기 어려웠다.“누가 우는 거야? 형 지금 어디야?”육현석이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할게.”차분하게 답한 곽승재는 단호히 전화를 끊어버렸다.육현석이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이미 전원이 꺼져 있었다.“쯧, 망했네?”박지연이 혀를 차며 말했다.“곽승재가 은서를 특별히 여긴다는 걸 증명하려다가 결국은 여자랑 같이 있는 걸 들켜 버렸네?”육현석은 급히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은서야, 오해하면 안 돼!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고은서는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육현석은 그녀를 유심히 살피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은서야, 넌 지금 화난 거야? 아닌 거야?”고은서는 그를 향해 눈을 흘기며 대답 대신 되물었다.“내가 화내길 바라는 거야? 아니길 바라는 거야?”뜻밖의 질문에 육현석은 말문이 막혔다.화가 났다면 지금 상황이 조금 두려웠고 화가 나지 않았다면 완전히 신경도 안 쓴다는 뜻 같아 왠지 씁쓸했다.“됐어. 음식 준비도 끝났으니까 가서 나르는 거나 좀 도와줘.”박지연은 육현석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주의를 돌렸다.육현석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박지연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곽승재가 정말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고 있는 거라면 기분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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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913화

    고은서는 순간 죄책감에 휩싸였다.육현석도 전에 곽승재가 회사 내부에서 곽현수와 기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고 했는데 또 고국성 일로 꼬투리까지 잡힌 이상 많이 힘들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제인 제약 사건은 판주 투자 은행과도 연관된 일이었기에 곽현수가 일부러 그런 것이라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고국성 일은 확실히 공사가 선명하지 못하다고 꼬투리가 잡힐 만 했다.방금전 곽현수가 한 말도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가 곽승재를 쫓아내려거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승재가 너 때문에 이성을 잃은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그게 무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곽현수가 말을 이어갔다.“입으로는 승재랑 더는 같이 있을 리가 절대 없다고 하지만 한두 번은 그렇다 쳐도 승재가 열 번 심지어 스무 번이 되도록 너를 향해 구애한다고 해도 네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 시간만 나면 네 할아버지랑 바둑하고 얘기 나누러 고씨 가문 본가로 찾아가는데 아버지인 나도 그런 혜택을 누린 적이 없어. 게다가 네 가족들도 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승재를 계속 사위로 대하면서 걔한테서 얻을 만큼 얻어 가졌잖아.”곽현수가 하찮다는 듯 비아냥거렸다.“네가 말로만 하는 보장은 단지 너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하는 거겠지.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거야. 그런데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고은서는 순간 난감해졌다.‘할아버지한테는 곽승재가 스스로 찾아간 게 맞겠지만 삼촌이랑 숙모 쪽은 분명히 아닐 거야. 곽승재가 나랑 재혼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속이고 MQ 일로 여러 번 찾아간 게 분명해.’고은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보장이 없는 거짓말로 들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확실히 곽승재의 도움으로 혜택을 누릴 만큼 누린 이상 곽현수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곽현수가 삼촌 일로 나를 만나자 한 것도 또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마 다 원하는 바가 있어서겠지.’고은서는 더는 변명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

  • 어게인, 비긴   제9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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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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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곽승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친구에게 부탁해 적절한 시기에 감시 카메라를 끊어놓도록 준비해두었다.하지만 여시은이 먼저 참지 못하고 로비의 카메라를 꺼버린 것이다.고은서가 감히 감시 카메라의 확인을 제안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준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여시은 역시 감시 카메라를 조작할 것이라는 점까지 예측했다.“만약 여시은이 참고 끝까지 널 찾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어?”곽승재가 물었다.고은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개업식이 끝난 후 대형 스크린에 공개할 계획이었어.”곽승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네가 앞서 백스테이지 주위를 둘러본 것도 동영상을 공개할 준비를 했던 거야?”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시은이 일부러 나를 물에 빠뜨리고 향수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쿠아까지 학대했어. 내가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리고 시은이가 인내심을 가졌다고 해도 난 개업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을 거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지. 시은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테라스에서 쿠아의 죽음을 언급하며 나를 자극했고 다시 같은 수법을 쓸 참이었던 거지. 나는 그저 시은이가 파려던 함정을 그대로 돌려준 것뿐이야.”곽승재는 고은서가 준비를 해왔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런 고육지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펼칠 줄은 몰랐다.게다가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실감 났다.고은서가 바닥에 넘어져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순간 곽승재는 정말로 여시은의 소행일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고은서는 곽승재의 생각을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가여운 척 한 거 아니야. 백유미와 여시은이라는 고수들 덕분에 나도 한 수 배웠을 뿐이지.”백유미의 과거 행동을 떠올린 곽승재는 가슴을 죄는 듯한 자책감이 밀려왔다.곽승재는 진지하게 사과했다.“은서야, 미안해.”무심코 흘린 말에 곽승재가 사과하는 모습을 본 고은서는 잠시 당황했다.“사과할 필요는 없어. 당신도 백유미 씨에게 속았을 뿐이잖아. 어쨌든 ‘목숨의 은인'

  • 어게인, 비긴   제1098화

    “시은아!”영상 속 장면에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재훈은 걱정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그리고 뒤이어 멀리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어서 따라가서 시은이를 보호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해서는 안 돼!”부하들이 여시은의 뒤를 쫓아 나간 뒤 여재훈은 스크린을 힐끗 바라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제가 딸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시은에게 직접 확인한 뒤 여은서 씨께 해명해 드리겠습니다.”고은서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는 그곳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여 대표님, 제가 은서 씨를 모셔다드리겠습니다.”곽승재가 말했다.송민준 역시 함께 가겠다고 전했다.여재훈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개업식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킨 이상 누구라도 축하할 마음이 없을 터였다.고은서 일행이 떠나자 여재훈은 참석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며 홍보팀에 현장 수습을 지시했다.호텔 앞 광장에서 곽승재와 송민준의 운전기사들이 각각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송민준은 고은서를 배웅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곽승재가 고은서를 부축하면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번거로울 텐데 제가 은서 씨를 모시고 가겠습니다.”송민준은 자기가 고은서의 파트너로 왔기 때문에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득했다.곽승재는 송민준의 이런 친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고은서를 안아 들어 자신의 차에 태우고 싶었지만 고은서가 화를 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입을 오므리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선택권을 고은서에게 넘겼다.고은서는 당연히 송민준과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오빠, 오늘은 고마웠어. 오늘 승재 오빠의 차를 타고 갈게. 어차피 길도 같으니까. 내일 다시 연락할게.”고은서의 반응에 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알겠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곽승재는 고은서를 차에 태운 뒤 트렁크에서 깨끗한 외투를 꺼냈다.차 안에 앉자 곽승재는 고은서의 어깨

  • 어게인, 비긴   제1097화

    여시은은 고은서의 말에 더욱 어리둥절해졌다.‘갑자기 왜 또 농장 일을 다시 꺼내는 거지?’여시은은 속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생각할수록 점점 더 억울하고 분했다.“은서야, 왜 나를 이렇게 모함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를 물에 빠뜨렸다고 그래? 네가 나를 밀었잖아! 내가 우리 아빠를 생각해서 참고 넘어갔는데 이제 와서 또 나에게 뒤집어씌우다니!”여시은은 여재훈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아빠, 저는 항상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것 같아요... 은서가 이런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 속상해요...”여시은의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에 여재훈은 점차 진지해졌고 고은서를 보며 물었다.“고은서 씨, 시은이가 은서 씨를 물에 빠뜨렸다는 증거라도 있어요?”“물론 있죠.”고은서는 이미 곽승재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상태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송민준이 보낸 영상을 찾았다.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은서가 진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이때 곽승재가 제안했다.“여 대표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영상을 공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직접 보면 진실이 명백해질 테니 나중에 왜곡되는 일도 없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미리 준비한 듯한 태도를 보이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은서가 이렇게 계획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증거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여시은이 고은서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여시은은 붉어진 눈으로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에요! 이미 개업식 시간이 다 됐는데 계속 이러쿵저러쿵하며 일을 벌이다니! 고의로 우리 개업식을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아빠, 오늘 이분들은 분명히 좋은 의도로 온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쫓아내는 게 낫겠어요!”“여시은 씨, 말씀이 참 지나치군요. 우리는 단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송민준이 여재훈보다 먼저 입을 열

  • 어게인, 비긴   제1096화

    구경하는 사람들도 송민준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의 여자 파트너가 곽승재의 품에 안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송민준은 사람들의 의문스러운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여시은 씨,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은서와 여시은 씨의 사이에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은서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겠습니까?”“아빠, 정말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저 사람들은 같은 편이라서 일부러 저를 괴롭히려는 거예요!”여시은은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여재훈은 눈물 글썽이는 딸을 바라보더니 온몸이 흐트러진 고은서를 향해 물었다.“고은서 씨, 사실대로 말해보세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고은서는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렸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당연히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여 대표님, 제가 뭘 말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시은이와 저는 각자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울 겁니다.”고은서는 로비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여기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요. 직원들을 시켜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진실도 드러나겠죠.”이 말을 듣자 여시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고은서가 여시은보다 먼저 바닥에 넘어졌는데 감시 카메라의 확인까지 제안하다니!‘설마 은서가 이 시간대에 감시 카메라를 꺼뒀다는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시은아, 너의 생각은 어때?”고은서는 고개를 들어 여시은에게 물었다.여시은은 분노를 꾹 참고는 여전히 억울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좋아! 하지만 개업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데 감시 카메라는 확인하는 동안 내가 먼저 개업식을 진행하고 나중에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게 어때?”“안 돼.”고은서의 작은 얼굴에는 단호한 표정이 담겨있었다.“이 사건은 반드시 바로 조사되어야 한다고 봐.”고은서는 다시 여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여 대표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제가 시은이 만큼 귀하지는 않지만 이런

  • 어게인, 비긴   제1095화

    고은서는 얼굴과 몸이 온통 와인으로 범벅이 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와인은 그녀의 얼굴 결을 따라 드레스 위로 떨어졌고 머리카락에도 많이 튀었다. 그리고 젖은 앞머리 몇 가닥이 이마에 붙어 고은서를 더욱 가여워 보이게 했다.고은서는 놀란 듯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괜찮아요?”그 순간 곽승재와 송민준이 동시에 고은서를 향해 급히 다가왔다.곽승재가 송민준보다 한발 앞서 도착해 고은서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물었다.고은서는 몸을 살짝 떨면서 두려움을 겨우 참으며 고개를 저었다.“네, 괜찮아요.”누군가 물티슈를 건네자 곽승재는 서둘러 고은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여시은은 텅 빈 와인 잔을 들고 테라스에서 고은서와 멀지 않은 곳에 떡하니 서 있었다.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평소 감정을 잘 숨기던 여시은도 고은서의 이런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사이 로비의 음악은 멈췄고 상황을 보려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은서야, 괜찮아? 어떻게 넘어진 거야?”여시은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고은서의 앞에 다가가며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하지만 고은서는 여시은을 보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몸까지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곽승재는 고은서를 안정시키듯 감싸며 여시은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여시은 씨, 대체 무슨 일이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송민준이 곽승재보다 먼저 여시은에게 질문하고는 자신의 재킷을 벗어 고은서에게 걸쳐주려 했다.그러나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곽승재가 재킷을 받아 고은서에게 걸쳐주었다.“시은아!”소식을 접한 여재훈이 급히 달려왔다.“아빠!”여재훈을 본 여시은은 든든한 빽이라도 생긴 듯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으윽...”여재훈이 여시은을 달래기도 전에 고은서가 타이밍 좋게 아픔을 참는 소리를 냈다.“왜요? 아파요?”고은서에게 재킷을 걸쳐주던 곽승재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고은서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다른 한 손으로 팔꿈치를 문지르는 동작을 했다.곽승재가 고은서의 팔을 살펴

  • 어게인, 비긴   제1094화

    이런 수법은 백유미도 쓴 적이 있었다.안타깝게도 여시은은 백유미처럼 곽승재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수작은 곽승재에게 통하지 않았다.아마 고은서의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인지 여시은의 시선이 마침 고은서에게로 향했다.고은서는 입가의 비웃음을 다 감추지도 못한 채 여시은과 눈을 마주쳤다.여시은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고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에 들고 있던 주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여시은에게 잔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기분 좋게 앞쪽 테라스로 걸어갔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이런 식으로 도발을 당한 적이 없었기에 참지 못하고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역시나 고은서가 테라스에 도착지 얼마 되지 않아 뒤에서 여시은의 목소리를 들려왔다.“은서야, 왜 혼자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송 대표님은?”여시은은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있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달콤했다.고은서는 잔을 내려놓으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여시은 씨, 매일 이렇게 연기하느라 피곤하지 않으세요? 아니면 제가 여시은 씨처럼 건망증이 심한 줄 아세요?”여시은은 고은서가 이런 태도를 보일 줄 몰랐는지 환했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은서야, 지난번에 아버지께서 우리 둘 사람을 불러 화해시켜줬잖아. 왜 아직도 화를 내고 있어?”여시은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슬픈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은서야,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쿠아가 사고를 당해서 이미 하늘나라로 갔어.”고은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쿠아가 죽었다고?’여시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쿠아가 연못에 빠져 사고를 당했어. 연못에 금붕어들이 많이 있었는데 쿠아가가 놀면서 잡으려다가 빠진 모양이야. 내가 발견했을 때는 쿠아가 이미 물 위에 떠 있는 상태였어. 내가 직접 건져 올렸지만 쿠아의 몸이 이미 굳어버린 거 있지. 눈도 뜨인 채로 털은 전부 젖어서 몸에 붙어 있었어. 정말 안됐지...”고은서는 알고 있었다. 여시은이 일부러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그리고 쿠아가 물고기를 잡다가

  • 어게인, 비긴   제1093화

    곽승재는 현재 판주 투자은행에 있지만 감히 그를 얕보는 사람은 없었다.그는 곽씨 가문의 장손이자 곽씨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판주 투자은행에 간 것도 일종의 시련으로 여겨질 뿐이다.앞으로의 곽씨 그룹은 여전히 곽승재가 이어받게 된다는 것도 모두가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 속에 둘러싸인 곽승재는 평소처럼 검은색의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체구에 빼어난 외모는 마치 이곳이 그의 무대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여시은과 여재훈 역시 그에게 다가가 친근하고 허물없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주변에서는 곧장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곽씨 가문과 여씨 가문이 혹시 좋은 일이라도 생기는 거 아니에요? 저렇게 친밀하게 대화하는 걸 보면 마치 한 가족 같잖아요.”“아직도 모르셨어요? 여씨 가문이 이번 투자은행의 개업을 순조롭게 하게 된 것도 곽 대표님이 뛰어다니며 큰 도움을 줬다잖아요!”“얼마 전까지 곽 대표님이 연예인과 스캔들 난 거 아니었어? 요즘은 소식이 뚝 끊겼던데... 아마도 정략결혼 얘기가 오가면서 그런 여자들은 정리한 모양이네.”“솔직히 곽 대표님과 여시은 씨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죠. 진짜 결혼하면 주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 가늠이 안 가네요!”“그러게 말이야. 얼른 주식 좀 사둬야겠다...”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은서는 담담한 미소만 지었다.여시은이 곽승재와 결혼할 마음이 굉장히 확고한 모양이었다. 곽승재에게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여론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으니까.하지만 고은서는 그런 것에 한 치도 관심이 없었다. 오늘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KK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확인한 고은서는 홀로 로비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찾아온 몇몇 동업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곽승재 역시 고은서를 발견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두 사람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만 했다.하지만 그 모습을 여시은이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살짝 어두운 그림자가

  • 어게인, 비긴   제1092화

    여시은은 몇몇 귀부인들에게 고은서를 소개했다.고은서도 예의 바르게 그녀들에게 인사를 나눴다.“시은아, 이분이 바로 네가 말했던 요즘 사업을 크게 성공시키고 관청에서 상까지 받은 그 친구야?”화려한 옷을 입은 한 귀부인이 물었다.“네, 언니. 은서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라 제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아요. 우리 회사도 은서 회사처럼 잘 운영될 수만 있다면 너무 만족할 것 같아요!”여시은은 과장된 어조로 대답했다.“고은서 씨가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은 참 예쁘네.”이혜화로 불리는 사람이 이렇게 평가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니까. 자기 장점을 잘 파악하고 이용하다니! 우리 세대는 따라갈 수 없는 것 같아.”다른 한 귀부인이 감탄했다.고은서는 눈앞의 여자들의 말하고 있는 의도를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성과가 얼굴 덕분이라는 얘기였다.고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언니들이 이루신 지위와 성과에 비하면 제가 이 얼굴로 얻은 작은 성과는 비교도 안 되죠. 앞으로는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언니들에게 많이 배워야겠어요.”고은서의 자기 비하와 아첨이 섞인 말을 들은 이혜화 일행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때 여시은이 달콤하게 웃으며 말했다.“언니들, 은서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말재주도 좋고! 제가 이렇게 훌륭한 분을 언니들에게 소개해 드리길 잘했죠?”고은서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제 생각에 더 대단한 분은 시은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는 노력과 투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지만 시은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성공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투자은행에서 오래 일하면서 크고 작은 만찬회도 많이 참석했지만 언니분들과 같은 귀한 분들을 만날 기회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시은의 개업식에서 이렇게 많은 언니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다니 시은의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는걸요.”고은서는 살짝 한숨을 쉬며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서 시은이가 저를 부러워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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