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955화

Author: 류한나
“먼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더 지내보려고요.”

여시은은 손에 쥐고 있던 푸딩을 내려놓으면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기어코 정략결혼을 거절하면 그때 가서 다시 없던 일로 해도 될 것 같아요.”

곽현수는 이내 그녀를 향해 보장했다.

“꼭 동의할 거야. 시은이 너처럼 이쁘고 착한 여자를 어느 남자가 거절하겠어.”

자신의 딸도 반대하지 않는데 여재훈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재훈은 강성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곽현수는 이 틈을 타 여시은에게 디저트 하나를 건네주면서 물었다.

“시은아, 아까 사무실에서는 승재 왜 싸운 거니?”

여시은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억울함이 다시 밀려오는 것 같았다.

“어제 은서 씨랑 곽 대표님, 그리고 마재경 씨랑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제가 실수로 탕을 은서 씨랑 마재경 씨한테 쏟았거든요. 그런데 방금전에 곽 대표님께서 제가 일부러 그런 거라면서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몰아붙이는 거 있죠?”

곽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중점을 끄집어냈다.

“승재가 아직도 고은서랑 같이 다닌단 말이야?”

“은서 씨는 제가 데리고 간 거예요. 그리고 곽 대표님이랑은 우연하게 부딪친 거고요. 정말 손이 미끄러워서 실수로 그런 건데 곽 대표님이 계속 저를 의심하세요.”

“그 일 때문에 너한테 화를 냈다는 거야? 그럼 전에 계획이 아무런 쓸모도 없단 얘기잖아. 아직도 고은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가?”

“그런데 감정이라는 건 한두 번의 실망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여시은이 디저트를 한 입 넣으면서 말했다.

“마재경 씨랑 가까이 다니시는 것도 아마 은서 씨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일 거예요. 그런데 은서 씨가 절대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아마 계속 이러다가 곽 대표님에 대한 마음을 확실하게 다 접을 거예요. 조금만 더 관찰해 보도록 하죠, 아버님. 그리고 너무 곽 대표님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자칫하다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잖아요.”

곽현수는 무언갈 떠올렸는지 성가시다는 듯 눈살을 찌푸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어게인, 비긴   제956화

    장순이는 고은서에게 의자를 가져다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차를 우려준 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요즘 일은 어때? 건강도 제대로 잘 챙겨야 해.”걱정 어린 말을 한 전미자는 고은서 손등에 있는 화상 자국을 발견하고 물었다.“상처는 어쩌다 난 거야?”고은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벼운 사고였다고 말하며 화제를 돌려 전미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도련님.”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웃고 있을 때 도우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들어보니 키 크고 준수한 곽승재가 들어오고 있었다.그는 할머니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다급하고 초조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그는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이며 전미자 앞에 섰다.“할머니, 지 박사님한테 들었어요. 요 며칠 체기가 있어서 기운이 없으시다면서요?”곽승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전미자는 손자를 보며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늘 있던 증상이야. 지 박사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결국 말했구나.”지성민은 전미자의 주치의로 그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곽승재에게 가장 먼저 보고하는 사람이었다.“내일 병원 가서 정밀 검사 받아봐요.”곽승재를 안심시키기 위해 전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은서도 있는데 왜 인사 안 해?”전미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곽승재는 그제야 고은서를 바라보았다.그러다 그녀 손등의 상처를 발견하곤 눈빛이 흔들렸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도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셨다.전미자는 눈앞에 있는 손자와 전 손주며느리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결국 피곤함이 밀려오는지 방에 들어가 잠시 쉬겠다고 했다.고은서는 전미자를 침실까지 부축해 눕힌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문가에는 곽승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할머니는 누워계셔.”고은서는 그렇게 말하며 방문을 살며시 닫았다.그녀는 주방으로 가서 장순이에게 먼저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곽승재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곽승재, 뭐 하는 거야!”고은서는 낮은 목소리

  • 어게인, 비긴   제957화

    곽승재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고은서의 표정을 보고 입술을 깨물다 담담하게 말했다.“어제 병원에서 받은 약, 내 차에 있어.”고은서는 마재경을 피하려 약을 찾으러 가지 않았지만 주인혁이 저녁 먹기 전 약국에서 더 많이 사다 주었다.“약은 충분하니까 필요 없어.”고은서가 단호하게 말했다.그 이유를 짐작한 곽승재는 질투와 억눌린 분노가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비교해 보고 손을 놓은 사람이 너한테 제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신한 거야?”곽승재의 말에 고은서는 비웃듯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귀찮다는 듯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그 순간 곽승재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곽승재는 그녀를 끌어당겨 몇 걸음 옮기더니 벽으로 밀어붙였다.“고은서,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어.”곽승재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감쌌고 팔은 그녀를 가두듯 둘러쌌다.강한 수컷의 기운이 그녀를 짓누르듯 퍼졌다.고은서는 그 기운이 불쾌했다.하지만 전미자의 방과 가까운 곳에 있던 탓에 그와 언쟁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도우미들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약 가져다줘서 고마워. 차에 두는 게 불편하다면 같이 가서 가져올게.”“가져와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곽승재가 냉소적으로 묻자 고은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아니. 집에 있는 비상약 상자에 넣을 거야.”“예비용으로 두게? 더 좋은 게 생기면 그때 버리겠네?”‘미친놈.’고은서는 속으로 짜증이 치밀었지만 애써 인내심을 유지했다.“화상일 뿐이야. 상처가 나으면 약도 필요 없겠지.”“약이 무슨 잘못이야? 의사가 증상에 맞춰 처방해 준 건데 왜 안 가져가고 굳이 다른 사람이 사준 걸 쓰는 거야?”고은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계속 다쳐서 그 약을 쓰라는 거야?”“다치는 건 싫으면서 왜 다른 사람들의 호의는 받아들이는 거야?”곽승재의 검은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전에는 민시후, 이제는 조

  • 어게인, 비긴   제958화

    질식할 것만 같은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아마도 도우미가 온 모양이었다.그제야 곽승재는 마지못해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다리가 풀린 고은서는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곽승재의 가슴팍에 기대어 헐떡이며 숨을 쉬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었다.곽승재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동자에는 어딘가 따뜻한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도우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너...”짝!곽승재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고은서는 힘을 모아 그의 뺨을 후려쳤다.곽승재뿐만 아니라 멀리서 상황을 목격한 도우미도 얼어붙었다.그러나 도우미는 눈치가 빨랐다.어두워지는 곽승재의 얼굴을 본 그녀는 곧장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만 남기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곽승재, 넌 정말 최악이야!”고은서는 그의 가슴을 밀쳐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그의 눈동자에는 다시금 분노가 일었다.곽승재는 손쉽게 고은서의 손을 잡아 치우며 말했다.“어차피 최악인 거 끝까지 그렇게 남아주지.”말을 마친 곽승재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그러나 그 순간 고은서는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렸고 곽승재의 동작이 멈췄다.그녀의 손을 본 순간 마침 화상 자국을 강하게 누르고 있는 자기 손을 발견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거두었고 차오르던 분노도 반쯤 사그라들었다.“많이 아파? 약 가져오라고 할게.”“네 걱정 따위 필요 없어!”고은서는 손을 홱 빼며 곽승재를 밀어냈다.“너 때문에 또 다쳤잖아! 곽승재, 이제 새로운 여자도 생겼으면서 화풀이할 거면 그 여자한테 가. 제발 나한테 손대지 마. 더럽고 병이라도 옮을까 봐 겁나니까.”그녀의 말이 끝나자 고은서는 곽승재의 손가락이 살짝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그의 눈빛에는 실망과 자조 그리고 어딘가 씁쓸한 감정이 스쳤다.그러나 곧 차가운 냉소가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그래, 재경이는 나한테 다정하고 상냥해. 굳이 여기 와서 무안당할 필요는 없지.”그렇게 말한 후 곽승재는 더 이

  • 어게인, 비긴   제959화

    송민준은 오늘 게임 내부 테스트가 있는 날이라 송민아가 특히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녀를 응원하러 왔다.송민아의 제안을 들은 송민준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은서 씨 생각은 어떠세요?”이전까지 송민준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던 터라 고은서는 솔직히 그와 단둘이 식사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송민아가 먼저 말을 꺼냈고 송민준도 직접 물어온 상황에서 곧장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게다가 송민준은 그녀를 여러 번 도와준 적이 있었다.이전의 페인트 사건은 물론이고 이번 게임 내부 테스트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민준 씨, 저는 좋죠. 안 그래도 한 끼 대접하고 싶었어요. 미리 준비한 자리는 아니지만 괜찮으시다면 가볍게 식사라도 하시죠.”어쨌든 송민준을 초대하는 자리였기에 고은서는 그의 취향을 고려해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요리뿐만 아니라 전통 차로도 유명한 식당을 골랐다.고은서와 송민준이 건물을 나와 운전기사를 기다리려던 순간 정장을 입고 노트북 가방을 든 한 남성이 급히 다가왔다.“고 대표님이십니까?”송민준이 고은서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누구시죠?”“악의는 없습니다. 고 대표님께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제 기획서를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그는 서류봉투를 내밀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고 대표님, 잠시만 시간 내주실 수 있습니까?”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의 신원을 알 수 없었기에 고은서는 서류를 바로 받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프로젝트에 관하여 논의하시려면 저희 회사 이메일로 먼저 제안서를 보내주세요. 조건이 맞다면 담당자가 연락드릴 겁니다.”그러자 남성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world 게임이 유일 투자은행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메일로 여러 번 기획서를 보냈지만 번번이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왔지만 경비팀에서 단순 영업사원으로 오해해 건물 출입을 막았습니다.”투자 회사에는 매일 수많은 투자 제안서가 쏟아진다.특히

  • 어게인, 비긴   제960화

    송민준은 살짝 미소 지으며 물었다.“은서 씨는 원래 정이 많으신가요?”고은서는 담담하게 답했다.“저도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냥... 제가 저분이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희망마저 사라지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하지만 본인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나요?”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고은서는 단번에 알아차렸다.‘다른 사람이 무너지든 말든 왜 본인의 시간을 낭비하냐는 뜻이겠지.’고은서는 가볍게 웃었다.“때로는 한 순간에 큰 전환점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저분은 모든 용기를 내어 저를 찾아왔어요. 저는 단 몇 분을 투자해 그에게 기회를 줬을 뿐이죠. 지금 당장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계속 도전할 힘은 얻었을 겁니다.”그러고 나서 고은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아니면 그냥 제가 성인군자 놀이하는 걸로 생각해도 좋아요.”송민준은 고은서를 한 번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는 않고 조용히 다른 화제를 꺼냈다.약 30분 후 차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이곳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회원제 운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비회원은 출입이 불가능했는데 고은서는 고객들과 자주 만나야 했던 탓에 자연스럽게 회원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직원이 두 사람을 2층 별실로 안내했다.완전히 밀폐된 방은 아니었지만 구슬발이나 병풍이 자리마다 설치되어 있어 적당한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었다.비록 식사 자리는 고은서가 마련했지만 메뉴를 정하고 주문하는 것은 송민준이 맡았다.그는 예의 바르게 고은서의 취향을 물었고 직접 차를 우려 따라주며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식사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송민준은 대화를 이끌면서도 고은서가 이야기할 때는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말의 어색함도 없이 매끄럽게 자리를 이어 나갔다.그는 마치 귀족처럼 세련되고 교양 있었는데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과하게 나서지 않았다.하지만 고은서는 그를 민시후처

  • 어게인, 비긴   제961화

    “재경아.”주인혁의 매니저가 반갑게 불렀다.그 이름을 들은 고은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설마 그 인플루언서 마재경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고은서가 생각에 잠긴 사이 그 사람은 이미 다가오고 있었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아는 마재경이었다.그녀는 무척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듯 얼굴이 한층 밝아 보였다.며칠 전 손을 데었을 때의 창백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아는 사이였던 주인혁의 매니저와 마재경은 친근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다.“밥 먹으러 왔어? 우연이네. 마침 재경이랑 얘기할 게 있었는데 저쪽에 앉을까? 은서 씨랑 친구분 방해하지 말자.”매니저가 주인혁에게 물었다.주인혁의 매니저인 이지호는 최근 교체된 인물로 더 나은 인맥과 경력을 갖춘 사람이었다.그는 주인혁을 담당하기 전부터 많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주인혁이 앞에 있는 고은서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촬영장에서도 주인혁은 고은서와 관련된 일에 신경을 썼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뒤풀이도 가지 않고 곧장 해성으로 달려갔다.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연예인이 스캔들에 휘말리면 팬들을 대거 잃을 수도 있기에 매니저는 절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인혁을 빨리 데려가고 싶었다.그 말을 듣고 주인혁이 잠시 망설이자 마재경이 먼저 고은서에게 인사를 건넸다.“은서 씨, 우리 정말 인연인가 봐요. 여기서도 다 마주치네요.”그녀는 일부러 가방을 눈에 띄게 들어 보였다.그제야 고은서는 마재경이 유명 브랜드의 최신 컬렉션 원피스를 입고 있고 손에는 구하기도 어려운 한정판 명품 가방을 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그녀의 태도로부터 그 물건들을 누가 선물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뻔했다.마재경의 유치한 행동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고은서가 주인혁에게 말했다.“인혁 씨, 먼저 일 보세요. 나중에 시간 되면 같이 식사해요.”“와, 은서 씨는 정말 매력이 넘치나 보네요.”주인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마재경이 과장스럽게 말했다.“이렇게 멋지고 성공한 남성이 옆에 있

  • 어게인, 비긴   제962화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곽승재를 마주하자 고은서는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여긴 왜 또 온 거야?’지난번엔 작은 병원에서 마주치고 이번엔 식당에서 다시 만나다니 너무도 기막힌 우연이었다.고은서는 짜증이 밀려왔지만 반대로 마재경은 마치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그녀는 곧장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고 곽승재를 향해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곽 대표님...”하지만 곽승재는 마재경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대신 주인혁과 송민준을 한번 훑어보았다.주인혁도 온라인에서 떠도는 곽승재와 마재경의 소문을 본 적이 있었기에 그에게 그다지 호감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민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곽 대표님, 우연이네요.”그러자 곽승재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송 대표님과 고 대표님은 최근 협업하나 보죠? 요즘 두 분이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네요.”송민준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곽 대표님 덕담 감사합니다. 고 대표님의 회사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함께할 기회가 생긴다면 제게는 영광이죠.”비록 송민준이 속한 회사는 해성에 있는 한 지사에 불과했지만 그 영향력은 고은서의 회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럼에도 이렇게까지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녀에 대한 배려였다.곽승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형식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대신 그는 여전히 억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마재경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기서 먹을 거야? 아니면 장소 옮길까.”마재경은 고은서와 주인혁을 의식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싫어요. 아무도 저를 반기지 않잖아요.”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 말투와 분위기에는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그제야 곽승재는 옆에서 계속 눈치를 보고 있던 이지호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소속 연예인이 재경이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매니저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 어게인, 비긴   제963화

    고은서는 처음부터 곽승재와 말다툼을 벌일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주인혁을 빌미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태도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곽승재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고 마재경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은서 씨, 지금 저를 개에 비유하신 건가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단지 은서 씨 인기가 부럽다고 했을 뿐인데 주인혁이 일부러 나서면서 은서 씨한테 잘 보이려고 한 건 사실이잖아요. 사과해야 할 일입니다.”“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서서 도와주지 않나요? 다른 사람이 하는 말 듣기 싫으면 본인의 언행부터 조심하세요. 괜한 도발이나 억울한 척하는 행동은 하지 말고요.”고은서가 싸늘한 말투로 일갈했다.“저는 그런 적...”얼굴이 붉어진 마재경은 더 이상 반박을 이어 나가지 못했고 그녀는 곽승재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곽 대표님, 다 제 잘못이에요. 은서 씨 인기가 부럽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잘못인 줄 알았으면 사과하세요.”고은서는 비꼬듯 말하고 곧장 곽승재를 바라보았다.“곽 대표님이 잘못한 사람이 사과해야 한다고 하셨죠. 이제 와서 편파적으로 행동하진 않으시겠죠?”마재경은 치를 떨었다.‘분명 곽승재의 힘을 빌려 주인혁에게 사과를 받아내려 했는데 왜 내가 사과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지? 다 고은서가 능수능란하게 말싸움을 주도한 탓이야.’마재경은 눈물을 글썽이며 곽승재가 나서서 도와주기를 기대했지만 곽승재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졌고 이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난 듯했다.그녀는 곽승재가 누구 때문에 심기가 뒤틀렸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어느 쪽이든 도박을 걸기는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고은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고은서는 처음부터 마재경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다만 곽승재가 주인혁에게 억울한 사과를 강요하려 했기에 기어코 마재경에게 사과를 받아낸 것이다.이미 상대가 물러섰으니 더 따질 필요도 없었다.“멀리 안 나갑니다.”고은서의 축객령에 곽승재의 얼굴은 폭풍전야처럼 어두워졌다.그는

Latest chapter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 어게인, 비긴   제1103화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 어게인, 비긴   제1102화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 어게인, 비긴   제1101화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