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세상 밑바닥에서 진창을 뒹구는 남장 여인 요원 현신과 이 세상 꼭대기에 군림하는 부와 권력을 다 가진 두 남자 사이가 지독한 집착과 소유욕이 폭발하는 아슬아슬 짜릿한 정통 삼각 로맨스 ==================== Image by whif.io(위프 플랫폼 제공/캐릭터 상품화 계약 완료)
View More마지막 임무가 곧 끝이 난다.
지긋지긋한 가면을 쓴 생활도, 사선을 넘나들며 시간에 쫓기는 삶도.
더 이상 피를 흘릴 일도, 손에 피를 묻힐 일도 없게 된다.
폐가 터질 듯 숨차게 도망갈 일도 없겠지.
그 희망을 품고 문을 연다.
그동안 머물렀던 곳과 다른 세상의 향기가 밀려왔다.
성공해서 새로운 삶을 살든, 실패해서 영원한 거짓말쟁이로 남아 죽음을 맞이하든 어쨌든 오늘이면 끝이 난다.
내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마지막 미션.
곧 시작이다.
***1년 전, 2월의 마지막 날.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을 검은 인영이 유영하듯 움직였다.
가녀린 체구에 작은 키, 성인 남성이라 보기 어려운 실루엣이었지만 움직임만큼은 산을 길들인 맹수처럼 날렵했다.
‘곧 해결인데, 왜 이리 찝찝한지.’
안 그래도 숨이 찬데 가슴까지 단단히 동여매어서 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현신은 갑갑했다.
이럴 때는 제일 거추장스러운 게 바로 여성스러운 신체가 아닐 수 없다.
늘 남장을 해야 하는데, 압박 붕대를 뚫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가슴 때문에 이래저래 옷 입기가 영 불편한 게 아니다.
현신은 사람을 쓰러트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반대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단련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성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다양한 매력을 어필해 잠입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 했던 간호사 변장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역시 이렇게 몸으로 부딪치며 해결하는 게 속 편하다 느꼈다.
수십 미터 뒤에서 자신을 쫓는 여러 무리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산세는 험악했다. 물론 저들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현신이 그동안 이곳을 파악하고 다녔던 준비는 헛되지 않았다.
밤에 달리려고 하니 발이 미끄러지기 일쑤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훈련한 몸은 이럴 때 진가를 발휘하는 법.
‘드디어!’
그녀는 달리면서 바이크의 스마트키를 꾹꾹 눌러보았다. 삐삐- 저 멀리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도로변에 검은 천과 나뭇가지로 오토바이를 덮어둔 것은 며칠 동안 자연스럽게 숨겨져 있었다.
안도감과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고 미친 듯이 손끝이 저리고 목구멍까지 따가움을 느꼈지만, 능숙하게 시동을 걸었다.
저릿저릿 온몸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느끼며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숨을 쉬니 미칠 것 같았지만, 희망차게 바이크의 속력을 높였다.
비탈길 위로 올라가는 경쾌한 굉음이 밤의 정적을 갈라놓았다.
추격자들의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곧장 흙길에서 최단 거리 아스팔트 위로 바이크를 올려놓자 그녀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바이크의 속도는 올라갔고, 깊은 밤이라 소음은 더 거대하게 들렸다. 속도와 소리만큼이나 현신의 몸에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시간은 넉넉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지정된 좌표의 대형 빌딩에 이르러 현신은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나서야 그제야 편하게 숨을 내쉬었다.지금 엘리베이터 CCTV를 누군가 본다면 전투복에 머리도 짧은 데다가 검은 마스크까지 쓴 수상한 소년으로 볼 것 같았다.
‘풉.’
대한민국의 정의를 위해 어둠의 그림자 속에 사는 한비단(한국비밀단체) 소속의 요원 현신이 거울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녀는 스무 살이 지난 성인 여성이지만, 사정상 신분을 드러내고 지낼 수가 없어 짧은 머리에 복장은 항상 남학생처럼 하고 다녔다.
거울 속의 자신은 산속을 헤매느라 고생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지만, 곧 미션이 완료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가벼워져 그런지 표정은 밝았다.
[미션명: 의료 비리 증거가 담긴 USB를 의뢰인에게 전달하라. 미션완수금: 2천만 원.]
현신은 미션을 떠올리며 곧 의뢰인을 만나게 되는 잠시 뒤를 기대해 보았다.
바로 주머니에 있는 USB에 담긴 자료만 넘겨주면 그녀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나게 된다.
편안하게 술이나 한잔하면서 이 밤 어디 편안한 여관이나 모텔에서 두 발 뻗고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부자들은 높은 곳을 좋아하는지 엘리베이터 너머로 서울의 조용한 야경이 운치 있게 2월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참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그녀는 곧장 의뢰인과 약속된 사무실로 향했다.
복도에 카펫까지 깔렸다니.
돈이 많은 의뢰인이 머무는 사무실답게 건물은 고급스러움이 여기저기 묻어나 있었다.
똑똑-.
그녀가 살며시 문을 두드리자 1초, 2초 정적이 흘렀다.그런데, 그 순간.
“타임 오버.”
사무실 안에서 서늘하고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일순 현신의 몸이 굳어졌다.
설마, 의뢰인이 바뀌었나?
천천히 문을 열자, 어두운 사무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창밖 달빛과 도심의 네온사인만이 오로지 이곳에 닿을 뿐, 어떤 조명도 없는 이곳은 꽤 넓은 사무실이다.
허리를 편 그녀는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의뢰인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면서 눈앞의 사내를 관찰했다.
그곳에는 있어야 할 60대 정도의 남자는 없고,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자신을 맞이했다.
그가 일어나자, 검은 그림자가 거대하게 드리워졌다. 정글의 피라미드 정점에 선 포식자가 먹잇감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듯 숨 막히는 긴장감을 주었다.
슈트 차림의 젊은 남자는 어둠 속에서도 한 걸음씩 다가설수록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겼다.
큰 통유리 창에서는 밤의 빛들이 그 남자를 축복하듯 은은하게 비춰주었다.
짙은 눈썹이며 높은 콧대, 반듯한 미남형이라는 것은 희미한 실루엣만으로도 현신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이 꼬인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덫에 걸린 건지.
현신의 입술 사이로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 숨결마저 얼어붙을 듯한 남자의 살기에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 했던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저 주저앉고 싶었다.
“쯧, 굼떠 가지고는.”
남자의 말에 현신은 바로 시계를 보았다. 의뢰인과 약속한 시각보다 절대 늦지 않았는데.
“누구십니까?”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진심으로 현신은 궁금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굿노벨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작가 [silver구슬]입니다.그동안 부족한 글이었음에도 에 큰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외전 는 굿노벨 심사가 끝나는 대로 9월 1일부터 매일 한국 시간 오전 1시 5분에 헤르만의 이야기로 차근차근 선보일 예정입니다.지난 4월 12일 굿노벨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글로 찾아뵈었습니다. 사실 다른 작품을 작업하고 공모전에도 도전하면서 진행했던 터라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조금 의욕이 과했나 싶기도 했네요.한국에서 출간되어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냈던 완성 원고가 있었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예약 등록을 하는 작업은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 하지만 또 그 힘겨움 만큼이나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제 취향껏 쓴 글이라, 수년 만에 다시 진행한 퇴고 작업마저 가슴 뭉클하고 즐거웠습니다.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분께서 읽어주셨고, 덕분에 글로벌 4개 국어 서비스까지 도전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었습니다.그동안 읽어주신 님/ 댓글 주신 님/ 보석주신 님/ 이 글의 편집을 도와주신 Yino Song 님/게다가 대단한 드라마와 영화를 자문하시는 종로 경찰서 및 광역 수사대에서 근무하신 이회림 형사님/의학 자문을 해주신 송X전문의 의사 선생님 등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라ON(요원 양성 기관) - 한비단(한국 비밀 첩보 단체) - 빅토리아(세계 요원 양성 기구)로 이어지는 이 세계관을 처음 떠올린 건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연습장에 끄적끄적 메모하며 혼자 구상했던 설정이었는데, 몸이 아파 갑작스레 시간이 생겼을 때 집필을 시작하면서 지금의 'silver구슬'이라는 부캐릭터가 탄생했습니다.매일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린 덕분일까요. 회복에 집중하여 무사히 건강의 이무를 되찾았고, 지금은 직장 생활도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정기검진을 받으며 꾸준히 건강을 살피고 있지만, 덤으로 얻은 삶이라 생각
새벽. 현신이 잠든 얼굴을 가만히 살피고 나서야 계영은 조용히 거실로 나올 수 있었다.현신이 최주현을 만나기 전, 마지막 미션을 위해 고뇌하며 아침을 맞이했던 그날이 계영의 머릿속에 또렷이 스쳤다. 그녀가 홀로 피 말리는 결정을 내렸던 바로 그 자리로 걸어가, 계영 역시 똑같이 바닥에 앉았다.‘네가 바라보았을 풍경이 바로 이거였구나.’창밖의 서울 시내는 청회색이 감도는 묘한 정적과 밝음을 품고 있었다.인생을 걸고,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며 고심하던 현신이 바로 이 자리에서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겠지 생각하자 마음이 묵직해졌다.계영은 작게 심호흡을 하고 엘에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켄즈 대표. 참 빨리도 전화하는군.“용건만 말해. 다음 행선지는 어디야?” -이해가 빠르니 좋군. 영국 런던.유럽을 좀 더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엘에프의 거대한 계획이 엿보였다.“현신을 보내주고 싶지 않아.”- 글쎄. 약속을 잘 지키는 에스라서.계영은 다시 생각이 깊어졌다. 잠시 두 눈을 서울 상공으로 향했다.“······현신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나는 당연히 현신 옆에 설 거고.”- 뭐, 혹처럼 붙겠다는 건가?“그래, 그리고 난 그녀를 옥스퍼드로 데려가고 싶어. 어때, 교차점이 되었지?”계영은 돌발적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국내든 국외든 현신은 대학생이 되고 싶어 하는 꿈이 있었다.엘에프와의 과업도 뒤에서 도와주고,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루트도 제공해 주고 싶었다.그때 엘에프는 계영의 마음을 잘 읽어 내기라도 하듯 천천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거 알고 있나? 나의 사랑스러운 에스는 똑똑해서 예전에 그곳 대학에 합격했던 이력도 있어. 나 역시 그래서 런던으로 좌표를 잡았지.계영은 너무 놀라 순간 가슴이 뛰었다. 이미 엘에프는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던 건가. “재미있군. 그럼 나도 그녀 옆에서 평생교육원(Department for Continuing Education) 과정이나 다녀야겠어.”- 켄즈 대표. 어지간히도 질척거리는
드디어 3월 중순.현신과 계영은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입술을 맞대며 배시시 미소를 주고받았다.“또 몇 달은 지난 것 같아요. 계영 님의 집은 올 때마다 늘 새롭네요.” “이제야 나도 맘 편히 발 뻗고 자겠다.”그 나지막한 고백에 현신은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자신 때문에 그동안 이 남자의 심장이 얼마나 철렁거렸을지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아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다.“죄송해요, 계영 님.”현신이 조심스레 사과하자, 계영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입맞춤으로 가볍게 훔쳐내며 다정한 시선을 맞추었다.“현신. 그래도 이번엔 달랐어. 네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계영은 가슴 정장 안쪽 주머니에서 샛노란 황금 손수건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다정한 손길로 주머니에 다시 쓱 넣으며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고마움과 면목 없음이 얽혀 현신은 천천히 손을 올려 제 목덜미를 더듬었다.“저도 이제 습관처럼······ 이 목걸이가 제 몸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계영 님의 마음이 저를 몇 번이고 살려줬어요.”이번 사건은 물론, 지난 JJ창립기념일 파티 때도 목걸이만큼은 계영이 준 것을 꼭 걸고 싶어 일부러 목이 올라오는 하이넥 드레스를 고르고 골라 입었었다. 결국 그 집요하고도 깊은 애정이 담긴 목걸이 덕분에 현신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현신은 계영의 큰 손을 끌어당겨 목걸이가 닿아 있는 제 쇄골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항상 걸어줘서 고마워.” “우리는 이렇게 늘 마음이 이어져 있었네요.”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깊은 숨결 속에 담긴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그리고 참아왔던 계영의 열망이 폭발하듯 현신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침실로 걸어갈 여유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성마른 손길로 서로의 옷을 허물어뜨리며 거실 소파 위로 엉켜 내렸다.거친 신음과 뜨거운 숨소리가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 지옥 같은 고난을 버텨낸 뒤 찾아온 관계는 한층 더 격정적이었고, 공간 전체를 활활 태울 듯 뜨
현신을 먼저 보낸 뒤, 주효진은 엘에프와 티타임을 이어 나갔다.헤르만도 오늘 밤은 주효진에게 맡기고 넘버들을 데리고 일을 처리하러 나갔기에 둘만의 시간은 아주 달콤하기만 했다.“어머, 당신 너무한 거 아니에요? 신은 참 불공평해.” “그대, 그 예쁜 입으로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효진은 홍차와 마카롱, 타르트, 과일, 당고, 샌드위치까지 지지대가 휘어질 정도로 간식을 세팅해 두었다.“아픈 사람이 이렇게 섹시해도 돼요? 얼굴만 보면 당장이라도 나를 안아 들고 호텔로 직행할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는데. 자, 어서 먹고 벌떡 일어나요.” “거듭 말하지만, 이 디저트를 다 먹으면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 “잘 먹어야 낫죠!”엘에프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어머, 당신 화났어요? 아하, 술이 없어서 그렇구나?” “이제 나를 좀 아는군.”효진은 딸기를 콕 찍어 엘에프에게 건네며 활짝 웃었다.“당신, 꽤 위험한 남자였더군요. 정말 놀랐어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난 그게 더 놀라운데.” “그쪽 위험한 거 말고요. 우리 JJ그룹 주가가 내부 요인으로 휘청거렸는데, 당신이 바로 사업 파트너로 지정해 준 덕에 주식이 폭등 중이에요.”엘에프는 무심하게 딸기를 받아먹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나랑 헤르만도 돈 벌려고 투자한 거야.” “우리 집 재산을 늘려 주고 섹시하게 유약한 척을 해도 소용없어요. 당신이랑 나는 서로 즐기는 사이일 뿐이에요. 알죠?” “그대는 그래서 매력적이야.” “난 전 대륙을 누비는 프리마돈나가 될 때까지 절대 가정을 꾸리지 않을 거거든요.”엘에프가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앞으로 난 그대 공연에서 '브라바'를 더 오래 외칠 수 있게 되었군.” “올해도, 내년에도, 후년에도 내 공연 보러 와줘요. 아, 못 참겠네. 나랑 키스해요.”효진이 슬며시 병상 침대 위로 올라왔다.“이런, 취향이 또 바뀌겠어.” “당신에게 가을과 겨울이 생겼다니 기뻐요. 내년 봄도, 그다음 봄도 우리
죄를 지었냐고.현신은 너무 많은 죄를 지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또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아니요.”“풋, 귀엽게!”“살면서 죄 안 짓는 사람 없다. 거짓말도 죄지.”현신이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말하자, 한규련과 김강무의 입가에 그 모습이 귀엽다며 옅은 미소가 번졌다.대기업 본사의 로비는 굵직한 해외 파트너사들과의 미팅 준비로 소란스러웠으나, 소파에 모여 앉은 이 세 남자는 마치 다른 시간대 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여유로웠다.지나가는 직원들이 사장과 그 거물급 친구들의 등장에 놀라 시선을
3월의 끝자락, 창밖의 공기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으나 사무실 안은 화이트칼라들이 뿜어내는 기묘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서류 더미가 스치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음 사이로 현신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제안서 복사 끝났습니다, 최 대리님!”“어이, 알바생! 여기 오타 좀 확인해 봐.”“예, 갑니다!”현신은 기계적으로 발을 놀렸다.지금 그녀가 걸친 헐렁한 셔츠와 알바생이라는 가명은 정체를 감추기 위한 완벽한 껍데기였다.현신은 구석진 제 책상에 앉아 엘리트들이 내놓은 오만한 종이 뭉치들을 넘겨보았다. 무미건조한 숫자와
이무휼은 현신만 생각하면 미안하고 너무 무모해 스스로에게 화만 났다.“그 자식, 이제 갈 곳도 마땅치 않을 텐데······.”자신은 서시온을 돌봐야 했기에 가장 위험한 활동은 현신 혼자 보냈기 때문에 자괴감만 들었다.“우리 집이 너무 좁아서 안 오는 걸까? 아니면 혹시 뒤라도 밟힌 건가?”“임무 끝나면 원래 철저하게 몸 숨기는 녀석이니까······.”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음에도 현신에 대한 걱정 때문에 선뜻 수저를 들지 못했다. “내가 다쳐서··· 현신이가 힘든 임무는 혼자 다 도맡아 하는 것 같아.”서시온의 자
현신의 가느다란 손끝이 수치심과 분노로 부르르 떨려왔고, 그녀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막으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오토바이를 몰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가계영이 남긴 압도적인 잔상 때문인지 발끝이 바닥에 접착제라도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 사람들이 진짜. 살다 살다 이토록 황당하고 억울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제 땅에 발을 들이고도 도리어 침입자 취급을 당하는 현실에 현신은 기가 찼다. 마동현 실장이 무심하게 펜을 돌리며 턱을 괴고 그녀를 응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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