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무진이 계속 자리를 안 뜨면 어떻게 할머니에게 침을 놓지?’무진 앞에서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자신의 신분이 들통날 수 있으니…….‘내 신분이 노출되어서는 절대 안 돼.’마침 조승호가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밤새 환자를 돌보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고모부.” 무진이 고모부를 불렀다.“할머니를 뵙고 싶어?”조승호가 물었다.무진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들어가봐도 돼. 다만 지금 할머니께선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해. 외부의 어떤 자극도 더이상 견뎌낼 수 없으셔. 규정상 중환자실은 30분간 한 명만 가능하니, 들어가봐.”조승호는 안금여의 주치의로서 안금여를 치료하는 것 외에는 강씨 집안에 관한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집안 일 어디서부터 관심을 가져야하는지도 모르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다.그는 조카 무진과의 접촉도 거의 없었다. 무진을 담당하는 주치의 또한 따로 있어서 그가 개입할 입장도 아니었다.“고모부,감사합니다.” 무진은 감사의 말을 전한 뒤, 휠체어를 조종해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이때 성연이 앞으로 가 무진의 휠체어를 잡았다.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자 무진이 고개를 들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성연을 바라보았다.“왜?”“제가 다녀올게요. 할머니도 분명 저를 보고 싶어하실 거예요.”성연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지금이 절호의 기회야.’중환자실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면 안금여를 치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속으로 ‘아싸!’하고 외쳤다.“그래도 내가 가야지. 할머니를 뵙고 싶어.” 무진이 승낙하지 않았다.지금 이 상황에서 안금여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바로 자신일 테니까.할머니에게는 속으로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비록 집안 권력다툼에 의해 무너졌지만…….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할머니는 그의 혈육이었다. 천성이 좀 차갑긴 하지만 전혀 감정이 없을 만큼 무정하지는 않았다.무진이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성연이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옆에
무진을 설득하느라 성연은 입이 닳는 줄 알았다.무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성연은 바로 중환자실로 향했다.성연이 들어가자 조승호는 중환자실 출입문을 닫았다.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안금여의 몸에는 다양한 의료용 기기와 호스가 꽂혀 있었고,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빈약하고 초췌한 모습에서 지난 날의 활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성연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로 돌아간 듯 심장이 아려왔다.눈을 감은 채 조금씩 떨리는 손을 내밀며 옛날의 가슴 아팠던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서서히 냉정을 되찾은 뒤, 안금여 손목에 손을 얹었다.진맥이 끝내고 대략적인 치료 계획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먼저 혈자리를 정확히 찾은 다음, 가방에서 은침을 꺼내 안금여의 혈 자리에 가볍게 찔러 넣았다.안금여는 연세가 많은데다 몸도 허약해서 무진같은 건장한 성인 남성에게 시침할 때처럼 해서는 안 되었다. 침을 놓는 성연의 동작이 하나하나가 가벼운 듯 조심스러웠다.몇 군데에 침을 놓은 후, 옆에서 조용히 그리고 세밀히 관찰해다.몇 분 후 할머니의 손가락이 아주 미미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했다.할머니가 반응을 보이자 성연이 겨우 후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은침을 챙겨 넣으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할머니, 빨리 나으세요. 부디 그런 나쁜 사람들이 활개치지 못하게 해주세요.’할머니는 곧 정신이 들 것이다.옆에서 잠시 지켜보다 면회 시간이 다 되어가자, 일어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중환자실을 나섰다.그날 밤, 무진과 성연은 안금여가 걱정되어 병원에 계속 머무르기로 했다.고모부 조승호가 두 사람에게 할머니를 지켜보며 지낼 수 있도록 병실 하나를 내어 주었다.공간은 널찍하였다.침대에 기대어 앉은 성연은 무심하게 휴대폰을 넘겨보고 있었고, 무진은 소파 옆의 휠체어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할머니의 병세를 알고 난 뒤부터 무진은 줄곧 무표정이었다.할머니에 관한 얘기 외에는 그 누구와의 대화도 거부했다.마치 외부와 차단된 자신만의
한편, 강상철과 강상규 측은 벌써 축제 분위기였다.그들이 보기에 WS 그룹은 이미 자신들의 차지가 된 거나 다름없었다.안금여가 쓰러지면 본가도 끝난 셈이니.“자, 동생, 앞으로 우리 같이 꼭대기에 앉아 제대로 누려 보자구. 더 이상 그 할망구의 눈치 보지 말고…….” 득의만면한 얼굴의 강상철이 술을 한 잔, 한 잔 연거푸 들이켰다.“형님, 회장 자리는 엄연히 형님께서 앉으셔야죠. 형님의 능력은 이미 모두가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먼저 형님께 축하주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강상규는 잔에 든 술을 단번에 쭉 들이켰다.둘째 형님과 함께 한 지가 이미 여러 해였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둘째 형님은 잊지 않고 그를 챙겼다.그리고 큰 형님처럼 억누르려 들지도 않았다.그래서 그는 큰형님보다 둘째 형님을 더 좋아하고 결국 선택했다.사실 두 사람은 닮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 잘 알았다.“고마워.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데는 네 공이 가장 컸어. 걱정마라. 네 지위는 나와 동등할 거야. 우리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야. 네 것 내 것 따로 없다!”강상철이 웃으며 말했다.그는 이 부침성 좋은 셋째 동생을 많이 아꼈다.자신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동생은 암암리에 뒤에서 움직이니, 이 같은 찰떡 궁합은 없을 것이다.“둘째 형님, 고맙습니다.” 강상규는 다시 잔을 들었다.이 때 강상철 옆에 앉아 있던 부인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그런데, 형님이 입원하시게 된 거, 다들 우리 쪽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본가 쪽에 형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큰 아주버님도 돌아가시고 형님 혼자된 지도 오래됐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셋째 강상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둘째 형수라 감히 뭐라고 말은 못하고 있었다.이때, 강상철이 잔을 테이블 위에 탁, 하고 놓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사뭇 매서웠다.“어디
강상철과 강상규 저쪽에서는 모두 안금여가 하루 빨리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음날 병원에서 안금여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한나절 동안 관찰한 후 안금여의 병세가 안정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비보’와 함께.성연과 무진 모두 안금여를 지키고 있었다.꼼짝 않고 병원에서. 안금여가 호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핏기가 돌기 시작한 안금여의 얼굴은 불그스름했다.컨디션도 좋아 보였다.안금여는 감개무량했다.“이 할미가 다시는 너희들을 못 볼 줄 알았다.”성연은 다가가서 안금여의 병상 앞에 앉았다.“할머니,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다고 했어요. 보세요, 할머니 지금 다 나았잖아요? 앞으로 할머니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지실 거에요.”“아이고, 말도 참 예쁘게 하지…… 할미는 너와 무진이의 증손자도 안아봐야 하는데…… 당연히 벌써 요단강을 건널 수 없지…….”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안금여는 자신의 몸이 예전처럼 무기력하지 않음을 느꼈다.몸이 많이 가벼워졌다.진심으로 하늘이 그녀를 불쌍히 여겨 봐주지 않았나 생각했다.할머니의 안색이 좋아진 걸 본 무진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과정이 어떻든 간에 안금여가 호전되면 된 것이다.“할머니, 지금 좀 어떠세요?” 성연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있는 한 할머니는 몇 년 더 사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다만 증손자를 보는 일은 없던 일로 해두고…….그녀와 무진은 단지 표면적인 혼약일 뿐이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떠날 것이다.WS그룹의 100억 원을 받고 무진의 다리를 치료하고 안금여를 구했다.그녀도 최선을 다한 셈이다. 100억 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많이 좋아졌어. 가슴이 답답하지도, 아프지도 않아. 평소와 똑같아. 신기하네.”안금여가 놀라며 말했다.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그녀는 저승문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회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안금여는 자신의 몸 상태에
강운경도 바빠서 정신이 없었다. 주총에서의 일에다 안금여까지 쓰러지는 바람에 뒤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밤새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름 수확이 있었다. 운경이 나서서 주주들을 설득하자 회장 재선임 일정이 뒤로 미루어졌다. 또 구체적 사안은 안금여가 호전되면 다시 상의하기로 했다.이 또한 몇 년 동안 안금여가 회장직에 있는 동안 세운 공헌이 막대하다는 걸 의미했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말은 사실무근이었다.물론 최근 몇 년 동안 안금여가 WS그룹을 이끌면서 다른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안금여의 기운이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말이다.밤 늦게까지 서류를 처리해야 하는 날이기라도 하면 차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이처럼 피로 누적이 장기화되다 보니 몸이 축나고 건강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그러나 WS그룹은 안금여의 안정적인 경영으로 매출과 이익이 늘어, 주주들은 상당한 배당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주주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 이성을 마비시켰고, 탐욕에 눈먼 주주들은 강상철과 강상규를 그룹의 회장으로 추대하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안금여는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잘 이끌어 왔었다.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회사에 대단한 기여를 한 것도 없지만 특별히 손해를 끼친 것도 없었다.안금여의 운영방식도 예전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예전 그룹의 전략적 미스로 인해 그룹전체가 위기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주식 가격이 하한가를 연속으로 맞는 등, 모두가 WS그룹의 위기를 예상했지만, 그 고비를 안금여가 버티며 넘겼기에 오늘날의 WS그룹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거였다.주주들도 지난날의 친분을 생각해서 회장 재선출 안을 연기하는 데에 찬성했다.그들도 쓰러져 누워 있는 안금여를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강상철과 강상규의 생각은 달랐다.새 회장 선출일정이 미뤄진 것을 안 강상철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사무실 바닥에 던져진 서류가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었다.강상규는 강상철의
할머니 안금여의 의식 회복은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하지만 회복 과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어쩌면 정말 하늘의 보살핌일수도.이러니 저러니 해도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더욱이 의학에서 요행을 찾기란 힘들다는 사실도.안금여의 병세는 사위 조승호가 줄곧 함께하며 관리해 왔었다.그러니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조승호였다. 당시 안금여의 몸은 이미 완전히 기력이 다한 상태였다. 겨우 숨만 쉬고 있을 뿐. 심작박동과 호흡이 아주 미약한 상태였다.의식이 돌아온 이후의 회복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회광반조 현상도 없었고.도대체 어떤 연유로 좋아졌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조승호는 장모 안금여가 잠 든 사이에 전신 검사를 다시 시도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검사를 진행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그리고 혈관에서 은침 자국을 발견했다. 모두 서너 군데였다.의식불명 상태의 안금여를 깨운 것은 바로 이 은침이리라.검사를 진행했던 조승호가 무진을 따로 불렀다.무슨 문제가 생겼나, 걱정하며 무진이 물었다.“고모부, 무슨 일입니까? 할머니 건강 문제입니까?”운경으로부터 무진에 대한 얘기는 자주 들어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그러나 강운경의 조카인 이상 자신의 가족이기도 했다.“무진아, 할머님의 몸이 갑자기 좋아졌어. 그런데 다시 한번 검사해보니 혈관에 은침 자국이 있더구나. 혹시 네가 사람을 보내 치료하게 했니?”이 조카는 딱 봐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만약 무진이 데려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그런데 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아니오.”고모부의 의술을 믿는 무진이다. 병원장직을 맡을 정도로 그의 능력은 뛰어났고 또 자신과 한 가족이었다.그래서 할머니 안금여를 그에게 맡기고 다들 안심했었다.조승호가 안금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만약 고모부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정말
당시 의사와 간호사를 제외하고 병실에 들어간 사람은 성연 혼자뿐이었다.성연의 의술이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을 무진은 잘 알고 있었다. 성연 자신은 한사코 숨기려 들지만.창고에서 자신을 구한 이도 그녀 아닌가. 다리 부상, 불면증으로 인한 조광증까지 성연의 치료 덕에 많이 호전되었다.모든 정황이 성연을 가리키고 있었다.설마 할머니를 구한 게 진짜 성연이란 말인가?이제까지 무진에게 있어 성연의 존재는 단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작은 유희 정도였다.그러나 지금은 정체불명의 감정에 또 다른 뭔가가 더해졌다.무진의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성연은 아침 일찍 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갔다. 이미 안정을 되찾은 상태였던 할머니가 학업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다며 돌아가게 한 것이다.이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 성연 또한 순순히 돌아갔다.그래서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당장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마음속의 묘한 감정을 누른 무진이 병원에 가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좀 늦은 시각. 집에 돌아온 무진은 포장해 온 딤섬을 성연에게 건네어 주었다.자신이 왜 이렇게 하는지도 모른 채.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저 성연이 보고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손건호를 시켜 사오게 했다.정신이 돌아오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뭐, 이미 사왔으니 버릴 수는 없으니까.만약 정말 성연이 할머니를 구했다면, 고마움을 표하기에 이 딤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엠파이어 하우스로 돌아오니, 성연은 소파 위에 책상다리를 한 채 게임 삼매경이었다.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이 매 관문을 통과하지만 마지막 관문 앞에서 항상 멈추었다.인기척을 들은 성연이 고개를 들어 건성으로 인사했다.“어, 왔어요?”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포장해 온 딤섬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저녁도 배불리 먹은 참이었다.하지만 공기 중으로 고소한 냄새가 퍼지 순간.꼬르륵 소리로 배가 진동을 했지만 손대지 않은 채 긴가민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나 먹으라고 주는 거예요
고급 클럽 안.강씨 집안 둘째 강상철이 암암리에 차린 이 클럽은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말이 새어 나갈 염려가 없었다.회장 안금여가 회복되었으며 이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강상철과 동생 강상규는 긴급 회동을 가졌다.강상철은 화가 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형수님 명이 진짜 길군. 분명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오다니 말이야. 우리를 얼마나 더 힘들게 하려는 건지.”강상규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형님, 만약 큰형수가 다시 일어나면 우리에게 좋을 게 없어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큰형수님이 기력을 되찾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게 해야 해요. 그래야 또 그 측근들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 다시는 형수 뜻대로 되지 못하게 말입니다.”“말은 쉽지. 대체 무슨 수로?”강상철이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그걸 누가 모르냐는 말이다. 실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병원이든, 회사든 항시 곁에 수행하는 사람이 있는 안금여다. 손을 대기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말이다.강상규의 안색도 형 강상철을 따라 침통해졌다.당장은 확실히 별 뾰쪽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자 얼굴 가득 짜증을 묻힌 강상철은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똑똑똑- 이때 누가 문을 노크했다.강상철과 강상규의 대화가 뚝 끊겼다.“들어와.” 강상철이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트레이를 밀고 들어온 종업원이 강상철에게 차를 따르며 공손하게 말했다.“차 드시지요.”한 모금 입에 대던 강상철은 뜨거운 찻물에 혀가 데인 듯 혀끝에 통증을 느끼고는 곧바로 입안의 차를 뱉어냈다.가뜩이나 화가 나 있는 상황에 뜨거운 찻물에 입까지 데였다. 하나부터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 강상철이 노성을 질렀다.“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찻물을 적당히 식히지도 않고 줘? 고의야, 뭐야?”벌게진 눈으로 노기를 터트리는 얼굴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놀란 종업원이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