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금여는 몸이 많이 좋아지긴 했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여전히 병원에서 지냈다.의료 장비가 잘 구비되어 있는데다 간호사들도 상주 중인 병원에 있는 것이 더 나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성연은 낮에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병원에서 할머니 안금여와 함께 지냈다.성연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안금여의 기분이 많이 밝아졌다.그날 저녁, 막 하교하던 시각.성연은 할머니가 중얼거리던 간식을 가져다 드려야지, 하는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아마 보시면 무척 좋아하실 거란 생각도 하면서.교문 앞에서 송종철을 만나게 될 줄은 모른 채.성연의 얼굴이 바로 딱딱하게 굳었다.송종철, 저 사람이 또 무슨 낯으로 찾아왔는지 모르겠다.성연을 본 송종철이 빠른 보폭으로 다가왔다.“거기 서, 할 말 있어 왔으니까. 얘기 좀 하자.”성연의 얼굴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무슨 좋은 말 할 게 남았다고요.”비단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겠는가, 송종철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이 더러워진 기분이다.성연이 좋은 태도로 나오지 않을 거란 건 오기 전에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다.입가에 조소를 걸며 말했다.“아니면, 여기서 그냥 이야기하던지.”이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성연이다. 애초에 자신의 딸을 인정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담임 교사의 연락처에 남겨진 학부모 전화번호도 모두 강무진의 것이었다.처음부터 자신과의 관계를 깨끗이 지우려 했던 송씨 집안 아니었던가?이제서야 일이 생겼다고 자신을 찾아올 생각을 하다니.얼굴에 반항의 표정을 지은 채 성연이 송종철을 따라 비교적 한적한 구석으로 걸어갔다.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할 말 있으면 얼른 하세요. 시간 없어요.”성연을 쳐다보니 미움의 감정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송종철이다. 후회스러웠다.이놈의 딸이 자신을 이처럼 괴롭힐 줄 알았다면, 아예 모태에서부터 못 나오게 할 걸.차가운 음성으로 입을 뗐다.“네 여동생이 그 일로 제적되었다. 지금 어느 학교도 아연일 받아주지
워낙 힘이 실었던 터라,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난 송종철은 옆에 있는 나무를 붙잡은 덕에 간신히 넘어지는 불상사를 면했다.사람들 보는 앞에서 자신의 딸에게 이런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에 체면을 구긴 것 같았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성연을 가리키며 옆의 남자들에게 명령했다.“너희들, 시작해. 저 애 손 좀 봐라.” 그저 돈을 받고 지시받은 대로 일할 뿐인 경원들에게 무슨 동정심을 기대하겠는가?건장한 경호원들 몇 명이 성연의 맞은편으로 몰려나왔다.구석에 몰린 성연은 대적할 아무런 힘이 없어 보였다.상황을 지켜보던 송종철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성연이 말을 안 들으려 해서 그런 게 아닌가 말이다. 감히 아버지를 밀다니.말 안 듣는 아이는 때려야 고분고분해지는 법이다.앞으로는 감히 자신에게 맞서려 하지 않겠지.구석으로 물러나던 성연의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마음이 얼음장 같이 서늘해졌다.세상 좋은 아버지인 척하던 송종철이 경호원들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지시했다.경호원의 손이 어깨에 닿으려던 순간, 성연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손을 뻗어 경호원의 손을 잡고 뒤로 비틀었다. 순식간이었다. 곧 경호원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손을 감싼 경호원이 뒤로 물러났다.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다른 경호원들이 일제히 성연을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끝내 성연의 옷 한 자락도 건드리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성연이 대단한 실력의 무예인임을 그들도 알아차렸다. 심지어 자신들의 실력보다 뛰어났다.서로 쳐다보기만 한 채 다시 공격해야 할 지 결정을 못하고 있던 찰나.경호원들이 알아차린 사실을 송종철만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성연이 고등학생이라 경호원들이 차마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뒤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소리를 지르며 재촉했다.“너희들 뭐 하는 거야? 돈 받은 대로 안 해? 할 생각이 없는 거야, 뭐야? 그 많은 돈을 주고 데려왔더니만, 그저 여기 장승처럼 서있기만 할 작정이야?”
구석에서 걸어 나온 성연은 교문 앞으로 돌아왔다.운전기사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종철을 만나는 바람에 오늘 기분이 절대 좋다고 할 수 없는 성연이다. 인사도 없이 차문을 열고 바로 올라탔다.차에 탄 후에야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았다.강무진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성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이 대낮에도 강무진은 검은색 정장 차림이네.갑자기 뒷좌석에 나타나서는 진짜 자신의 멘탈을 시험하는 건지 뭔지, 참.성연이 걸어오던 방향을 한 차례 쳐다본 무진이 물었다.“어떻게 저 방향에서 왔지?”그가 기억하기에 저 위치는 앞문 쪽도, 뒷문 쪽도 아니었다.게다가 평소 하교하는 시간에서 30분이 지나서야 왔다.성연이 나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여기 저기 돌아다녔어요. 애들이 저쪽 풍경이 꽤 괜찮다고 해서 한 번 둘러봤을 뿐이에요.”진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지 성연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차에 올라탄 성연이 무진 옆에 앉은 채 창가에 기대었다.비록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성연의 몸에서는 채 지우지 못한 사나운 기운이 느껴졌다.얼굴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지만, 무진은 성연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렸다.무진의 서늘한 음성이 차 안에 울렸다.“누가 괴롭혔어?”보통 이처럼 선명하게 감정을 밖으로 흘리는 일이 없는 성연이다.무진의 말을 듣고 속으로 은근히 놀랐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진은 즉시 알아차렸다.무진이 이처럼 세심한 걸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예민한 그의 감각을 경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송종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 강무진이 알 필요는 없겠지.담담한 음성으로 짧게 대답했다.“아뇨.”그녀가 자신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음을 바로 알아차렸지만 개의치 않았다.“누구든 너를 건드리면 그보다 더 잔인하게 밟아버려. 문제가 생기면 강씨 집안이 책임을 질 테니.”매일 아무 생각 없는 듯이 구는 성연을 보면 마치 무엇도 그녀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
하루 종일 정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송종철이다.성연에게 호된 맛을 보이려다 외려 당하고 나니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집에 도착한 그의 얼굴은 이미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남편의 안색을 보고 상황을 파악한 임수정이 차를 한 잔 따라서 건네주었다.“왜 그래요? 그 촌 것이 뭐라던가요?”드디어 하소연을 할 대상이 생긴 송종철이 미주알고주알 성연의 행동과 자신의 의구심을 모두 털어놓았다.“성연이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한 애가 아닌지도 몰라.”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하지만 아내 임수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말투도 성연을 업신여기는 기색이 완연했다.“시골 계집애가 분명 질이 안 좋은 게 분명해요. 날라리나 일진일지도 몰라요. 자기 아버지도 때리려 하다니, 한 마디로 천륜을 거스르는 거잖아!”다른 방면으로는 전혀 생각지 않는 임수정이었다.성연이 어떤 전문적인 훈련을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다만 어디서 배운 건지도 모르는 주먹질에 잘못 맞았을 뿐이라 여겼다.임수정의 마음에서 송성연은 이미 ‘쓰레기’라고 정의 내려졌다. 영원히 바뀌지 않을 정의.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아연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지?강씨 집안의 지참금이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끝이다. 자신의 딸 학위도 보장할 수 없고.“난 상관 안 할 테니 아연이 일은 당신이 최대한 방법을 생각해 봐요. 학위가 없으면 아연이 일생이 망하게 돼요!”임수정이 송종철의 팔을 잡아당기며 떼를 썼다.성연을 한 번 찾아가서 성공 못했으면 두 번 찾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성연이 매번 그렇게 운이 좋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아연은 거실에 앉아 있었다.학교에 갈 수 없으니 그저 매일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온몸에 좀이 슬려고 했다. 성질도 짜증스럽게 변했다.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원흉이 바로 송성연, 그 촌닭 아닌가!송종철과 임수정의 대화를 들은 아연이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성연을 조롱했다.“송성연
임수정의 말을 듣던 송종철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요즘 들리는 소문에 강씨 집안 WS그룹의 회장님이 아파서 그룹의 주인이 바뀐다는 말이 있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에 가서 회장님을 면회하면서 상황을 알아봐야 되겠어.”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찌라시 같은 정보였다.사실 뜬소문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사실이 어떻는지는 외부에 알려진 게 전혀 없으니까.그러나 송종철은 믿지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는가? WS그룹 쪽에서 정말 회장을 바꿀지도 모르지.하지만 모두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들이다.당장의 급선무는 눈앞에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이니.성연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강씨 집안에서 뭔가 소득을 얻기를 바랄 수밖에는.“아빠, 저쪽 집안에 가시면 제 얘기하는 거 잊지 마세요. 학교에 가고 싶어요. 집에 있기 싫어요.”아연의 목소리에는 짙은 원망이 배어 있었다.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예전의 학우들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물어보려고 했었지만, 모두들 마치 홍수나 맹수가 뒤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피했다.아무도 자신의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았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해킹까지 했다.뭐 때문에? 저들이 무슨 자격으로?예전엔 하루 종일 자기 뒤꽁무니나 쫓으며 아양 떨기 바쁘던 것들이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하나같이 벙어리 시늉만 하니.밀려오는 좌절감에 화가 나면서도 당혹스러웠다.정말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자신은 방법이 없으니 아빠가 대신 어떻게 해 주기만을 기댈 수밖에 없다.“네가 말할 자격이나 있느냐?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해 가지고, 응?”아연이 저 아이 때문에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인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송성연, 걔가 두 분을 화나게 했잖아요? 나는 교훈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그런데 걔가 날 도로 물어뜯을 줄 누가 알았냐구요?”아연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임수정이 목소리를 키웠다.“당신
옷 매무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살핀 다음, 송종철이 병실 문을 노크했다.안에서 대답이 들리자 문을 밀고 들어갔다.병실로 들어서는 송종철을 본 안금여는 상당히 놀랐다.그러나 곧바로 표정을 정리하며 인사했다.“사돈, 어떻게 예까지 오셨습니까? 운경아, 사돈 앉으시도록 의자 좀 갖다 드리렴.”운경이 바로 옆에 있던 의자를 송종철 쪽으로 밀며 권했다.송종철이 과일바구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며 말했다.“회장님께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계속 병문을 오려 했으나 집안에 이런 저런 일들이 많다 보니, 이제야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래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늙으니 고장나는 데도 많네요.”안금여도 송종철을 따라 예의상의 인사를 건넸다.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이지만, 한 명은 위에 앉았고 또 한 명은 아래쪽에 앉은 것이 꼭 지위 상의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는 듯했다. 회장을 힐끗 쳐다본 송종철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회사의 상황을 생각하며 눈을 딱 감고 입을 열었다.“회장님, 지난번에 저에게 말씀하셨던 그 일 말입니다. 사실 무진 군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도 하며 잘 말해 볼 참이었는데, 무진 군 성격이 좀 까다로워서 장인인 제 초대에도 응하질 않네요.”말을 하면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안금여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무진의 성격에 송종철에게 과실을 내줄 리 없다는 것을 안금여는 일찌감치 예상했었다.하지만 몰랐다는 듯 놀라는 모습을 연출했다.“아니, 설마 우리 손자가 아직 주지 않은 겁니까?”이어 또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제가 나중에 혼을 내주겠습니다. 정말 아직도 저리 철이 안 들어서야, 원.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지요. 응당 드려야 할 돈인데, 제가 지금 건강이 좋지 않아 며칠 손자 얼굴을 못 봤네요. 나중에 몸이 좋아지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지금 성연을 무척이나 아끼는 안금여
“회장님, 성연이가 참 고집스럽게도 말을 잘 안 듣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나 큰 사단을 만드는 바람에 제 작은 딸을 받아주려는 학교가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해, 회장님께서 좀 도움을 주시면 없겠습니까?”기대 어린 눈빛으로 안금여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성연이는 학교에서 학업에도 그리 충실하지가 않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수업도 잘 안 듣는다고 하더군요. 이번 일은 분명 아연이 성적이 좋은 걸 질투해서 일으킨 겁니다. 아마도 우리 아연일 꼬드겨 시켰겠죠. 우리 불쌍한 아연이가 제 언니를 돕다가 결국 탈이 나 버렸습니다. 매일 학교에 가고 싶다고 웁니다. 공부하는 걸 제일 좋아하던 우리 아연인데, 이렇게 시간을 끌다 교과 과정을 못 따라가게 되면 상심해 죽을 지도 모르겠습니다.”성연을 헐뜯으면서 동시에 아연을 띄워, 둘 사이의 우열을 드러내려는 수작이었다.이리 말하면 어느 쪽을 택해야 할 지 누구라도 알 것이다.또 아연이에 대해 좀 더 좋은 이미지를 안금여에게 심어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그래야 안금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겠는가?그리고 동시에 안금여가 성연을 썩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두어 마디 더 비방을 해도 상관없겠지.어쩌면 안금여의 마음에 맞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그러면 이 늙은이가 자신의 말에 흔쾌히 동의해 줄까?자신들이 성연을 좋아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을 거고 생각하는 송종철.그의 말을 듣는 즉시 화가 난 안금여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이 일은 당신 딸의 자업자득이 아닙니까? 왜 내 손녀며느리에게 덮어씌우려는 거지요? 당신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 아닙니까? 동생이 사사건건 언니와 맞서려 들더니 이제는 감히 내 앞에 와서 내 손자며느리를 비방하다니요? 이건 일부러 나를 욕보이려는 게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안금여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은 이 모든 일의 경위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한 번만 그랬으면 괜찮았을 터.한 번쯤은 성연이가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까.하
안금여에게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자 애가 탄 송종철이 염치 불구하고 재차 물었다.“저기, 그럼…… 학위 회복만이라도?”강씨 집안이 발만 한 번 굴러도 북성 전체가 몇 차례나 흔들릴 것이다.한 마디 언질이면 누구든 강씨 집안의 체면을 봐서라도 들어줄 것이다.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지만 않았어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안금여의 얼굴을 쳐다볼 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딸 운경이 건네어 준 차를 한 모금 마신 안금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뭐, 안 되는 건 아니지. 어찌 되었든 어린 나이에 공부하지 않으면 인생 망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구구절절 듣기 민망한 그의 말들 중에 성연에 대한 좋은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그렇게 쉽게 도와주지는 않을 생각인 안금여다.강씨 집안에는 확실히 소소한 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봐가면서 해야 하지 않겠나. 송씨 집안은 도와주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치들이다.도와줘 봤자 손해 보는 장사인 셈이다.송씨 일가가 합심으로 성연의 피를 빨아먹으려 한다는 것쯤은 진작에 눈치챘다. 이 변변찮은 집안은 애초에 글러먹었다.또 무슨 낯짝으로 자꾸 시골 사람을 업신여기는지, 저들이야말로 시골 사람들보다 못난 것들이 아닌가 말이다.낯부끄럽게도 어찌 그런 말들을 하는지.성연이 오랫동안 시골에서 지냈던 것 역시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가 아닌가.직접 키운 아이는 보배이고, 자신이 키우지 않았다고 잡초가 되다니.그의 이런 태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네, 회장님, 말씀하십시오.”마침내 안금여의 입이 열리자 송종철의 눈이 확 밝아졌다.지금 한 가지를 요구해도 열 가지도 넘게 해줄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아연이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 가기만 한다면, 그 재능과 성적으로 다시 학교에서 그들 집안을 위해 영예를 떨칠 수도 있을 터.그러면 더 이상 체면을 잃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어쨌든 아연이는 자신을 걱정시킨 적이 없는 아이였다.오직 이 두 번의 일만 예외일
‘그런 예민주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알았겠어?’‘결국 5년 동안이나 무진 씨 애인 노릇에 만족해 있었다니!’‘심지어는 오늘 같은 이런 악랄한 짓까지 저지를 정도가 되었으니. 스승님이 아시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송성연, 너 지금 미쳤어! 완전히 미쳤어!”예민주가 언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했을까? 연거푸 따귀를 맞은 데다가, 지금은 또 성연의 냉소와 신랄한 조롱을 들어야 했다.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예민주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원래의 정돈된 헤어 스타일과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온몸에 지금 낭패한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회의실. 두 시간의 긴 회의가 마침내 끝났다. 무진이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당황한 표정의 손건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무진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평소라면 손건호가 절대 이렇게 침착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텐데...’“보스, 예민주 씨가 맞았습니다!”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손건호가 급히 보고했다.“뭐라고?” 무진이 되물었다.“보스, 빨리 사무실로 가 보십시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습니다.”방금 회의가 끝나갈 때, 손건호는 자료를 찾으러 먼저 회의실에서 나왔다.뜻밖에도 부리나케 달려온 비서실의 비서가 이 일을 알려주었다.무진의 눈동자가 어두워지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무도 막지 않았어?”무진이 왜 아무도 막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손건호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막고 싶어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대표실은 원래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뛰어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대비도 하지 못했어요.’‘안에서 예민주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안에서 문을 잠궜기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그러나 결국 손건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표실 앞으로 다가간 무진의 귀에 울음 소리와 함께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리게 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아이의 몸에 난 상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그리고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성연은 범인이 바로 예민주라고 생각했다.‘방금 전에도 애들 앞에서 그렇게 헛소리를 지껄였어. 눈앞에 두 아이만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지.’‘그런 여자가 뭘 못하겠어?’‘이 순하기만 한 두 녀석은 엉뚱한 짓을 한 적이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어.’‘충분히 사랑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교만했던 적은 없었어.’‘밖에서는 더 영리하고 깜찍해서 누구나 좋아해. 척 봐도 좋아할 수밖에 없어.’‘그런데 여기에 와서 온몸에 멍이 들다니!’성연의 가슴에서 다시 분노가 폭발했다.딸아이를 가볍게 내려 놓은 성연은, 여전히 따뜻한 눈빛으로 사무를 보면서 말했다.“동생을 잘 보고 있어. 너희가 당한 억울한 일을 엄마는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거야!”“엄마, 저 아줌마는 나쁜 사람이야! 엄마가 반드시 혼내줘!”여전히 품에 안긴 채, 사진은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두 눈에 가득한 억울함을 지금 열심히 엄마에게 표현하려고 했다.“걱정 마. 엄마가 저 여자를 혼내줄게!”바로 일어선 성연이 성큼성큼 예민주 쪽으로 걸어갔다.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예민주는 성연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서한기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예민주가 어떻게 훈련으로 단련된 남자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놔! 너희들 뭐 하려는 거야?”예민주의 눈빛에는 걱정과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불안한 마음에 가슴은 두근거리면서 발걸음마저 비틀거렸다.짝! 짝!“이건 네게 주는 교훈이자 경고야. 내 아이는 절대 네가 건드릴 수 없어!”“네가 뭔데? 무진 씨 옆에 이미 5년이나 있었지만, 아직도 내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이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 경고야! 아이들은 바로 내 마지노선이야. 네가 또 손을 대면 절대 지금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성연은 목소리는 마치 서릿발 같았다. 온몸에서 뿜어내는 싸늘한 기운에 무더운 날씨조차 얼음 세상으로 변하는 듯했
“오빠, 아빠가 정말, 정말로 우리를 안 받아들일까? 우리가 방금 아빠를 찾았는데.”작은 얼굴에 슬픔을 가득 담은 채, 사진은 간절한 시선으로 오빠를 바라보았다.예민주는 지금 자신의 말을 자화자찬하며 한껏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팔짱을 낀 채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승자의 기운이 가득했다.잠시 후 자신에게 벌어질 참상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겠지만...대표 집무실 바깥.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표실을 향해 다가갔다.쾅-단숨에 집무실 문 앞에 선 성연은 아무런 노크도 없이 바로 방문을 열었다.“너 이 새끼, 정말...”아이 앞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예민주의 말이 성연의 귀에 몹시 거슬렸다.“예민주, 뭐 하는 거야!”자신의 아이들이 눈물 자국이 가득한 채 구석에서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자, 엄마의 본능이 단숨에 뿜어져 나왔다.“내 애들에게 무슨 짓을 했어!”단숨에 앞으로 나아간 성연은 두 손으로 예민주의 멱살을 움켜쥐었다.한 손으로 멱살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바로 예민주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뭔데 내 아이를 혼을 내?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성연의 차가운 눈빛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온몸의 분노가 곧 폭발할 듯이!잇달아 따귀를 때렸지만 때리는 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갔다.“엄마!” 성연이 다시 손을 들고 예민주의 뺨을 때리려고 할 때, 문득 익숙한 여린 목소리가 들렸다.순간 성연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잠시 멈칫하던 성연은 계속 두드려 맞느라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예민주를 밀쳐낸 뒤 딸아이를 품에 안았다.“아가,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성연은 두 손으로 사진을 꼭 껴안은 채 자책했다. 지금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방금 전 예민주를 때릴 때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도 모두 사라졌다.슬퍼하는 성연을 보면서, 사무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러나 엄마가 온 뒤에는 그래도 많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성연이
사진은 눈앞의 이 여자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래 예민주의 말은 걸러서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역시 어린아이였다.“오빠, 우리 아빠가 정말 우리를 이렇게 싫어해?”눈물이 그렁그렁한 여동생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당신은 어른이면서 어떻게 이렇게 어린아이와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당신이 뭔데, 여기서 우리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리는 겁니까?”지금 예민주 때문에 완전히 분통이 터진 사무는, 온몸에 철갑을 두른 듯한 기세로 똑바로 예민주를 노려보았다.사무의 눈빛에 대해서 예민주는 처음부터 아주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매번 저 자식의 눈을 볼 때마다, 정말 무진 오빠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았어. 무진 오빠하고 그야말로 판박이야.’사무가 거기에 서 있을 때는 그야말로 무진의 축소판이었다. 무진의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에도 성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몇 번 사무 저 새끼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정말 아이러니했어.’‘처음 만났을 때 빨리 도망칠 걸. 정말 후회가 되네.’‘5년 전에 분명히 전혀 상관이 없는 사이가 됐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는 거야?’‘송성연은 왜 이 두 아이를 낳았지? 무진 씨에게 이미 버림받았는데, 해외에서 편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그 여자의 능력이라면 낯선 나라에서도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어.’‘왜 운성시에 미련이 남은 거야?’“나를 보지 말고 고개를 돌려!” 결국 예민주는 참을 수가 없었다.사무는 아직 그런 내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 상태였다.“내 여동생에게 사과하세요!”“이 새끼,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예민주는 태연한 표정으로 사무를 조롱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생아 주제에, 아직도 여기서 나한테 이렇게 날뛰다니!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것 아니야?”“이 못된 아줌마!”사진은 지금 지쳤지만 이 여자와 오빠가 이렇게 싸우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따라서 외쳤다.
예민주는 곧바로 기분이 나빠졌다.원래 길을 잃은 두 아이가 펑펑 울게 만든 다음에, 무진에게 아이들이 그다지 순하지 않다는 걸 보여줄 생각이었다.그러나 예상 외로 아이들은 영리한 데다가 일찌감치 철도 들었다. 졸지도 떠들지도 않은 데다가 얌전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진은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점심 휴식 시간이 제한적이었다.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예민주도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두 아이가 이렇게 영리한 핑계를 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들 부자 세 사람만 지낼 기회를 절대 줄 수가 없었기에.결국 세 사람이 대표 집무실에 함께 있게 되었다.“어떻게 된 거야? 이건 그렇게 둘러댈 일이 아니야.”“너 계속 큰소리로 말하지 마! 이렇게 시끄러운 것도 몰라?”이제 세 사람은 이미 오후 내내 함께 있게 되었다. 특히 지금 무진은 회의를 하러 갔기에, 대표실에는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다. 예민주는 이미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나른한 자태로 소파에 기댄 예민주의 얼굴에는 온통 경멸하는 표정만 가득했다.집에서도 이렇게 엄하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었기에, 사진은 정말 억울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시 예민주에게 말려들곤 했다.사진이 낮은 소리로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런데 아줌마, 우리는 그냥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예민주는 이제 숨기지 않고 냉담한 목소리로 바로 호통을 쳤다. “조용히 해! 아무도 너희들 응석을 받아주지 않아!”예민주의 말투는 아주 야박해서 두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전혀 꺼리지 않았다.역시나 예민주의 말이 막 떨어지자, 사진은 이미 엉엉 울기 시작했다.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초롱초롱한 사진의 두 눈은 지금 완전히 눈물에 젖은 가련한 모습이었다.사무는 평소 집에서는 여동생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사실은 몹시 마음이 아팠다.한 손으로 여동생을 가볍게 안고 달래면서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좀 있다가 아
“예민주가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차갑게 내뱉었다. 예민주의 모습을 떠올리자, 한바탕 구역질이 났다.클래식한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힐끗 보고서, 다음 순간 성연은 이미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빨리 안 따라오고 뭐 해!” 문 앞에 도착한 성연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한기를 보면서 소리쳤다.10여 분 후, WS그룹 1층.두 손으로 운전대를 꼭 잡은 채, 성연은 아주 멋진 드리프트 솜씨로 차를 건물 입구에 세웠다.주차 도우미 직원과는 불과 1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만 남았기에, 직원은 이미 쓰러질 지경이었다.“무즌 주차를 이렇게 해요?” 이렇게 거친 주차 방식을 보자, 직원은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무의식적으로 차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운전석의 차문이 열리고 성연이 차에서 내렸다.자신에게 다가온 직원의 눈길을 마주하고서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한바탕 퍼부으려던 직원은 성연의 깊은 눈빛을 마주하자 결국 말문이 막혔다.“차는 주차장으로 옮기지 말고 여기에 그래도 놔 둬요!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차가 다른 곳에 있다면, 당신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을 겁니다!”“하지만 아가씨, 이건 규정에 맞지 않습니다.”성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나를 믿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말이 끝나자, 성연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안으로 걸어갔다. 마치 뒤에 천군만마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걸음걸이였다.성연의 곁에는 아무도 다가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1층의 안내 데스크.“대표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데스크의 여직원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에, 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약속을 하셨습니까?”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가볍게 웃었다.“대표님은 어디 계세요?”“죄송합니다만, 대표
‘그 여자는 분명히 그 다른 쪽이라고 했어. 즉, 그 여자가 알려준 건 잘못된 방향이었어.’‘만약 그 여자가 방향을 몰랐다면, 위치를 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자신있게 위치를 말했어.’‘그건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이렇게 생각하자, 예민주에 대한 사무의 인상은 더욱 좋지 않았다.다음 순간, 턱을 살짝 든 사무가 두 여자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제 여동생이 아직 저쪽에 있어요. 잠깐만요, 제가 가서 여동생을 데리고 올게요.”여동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좀 놀랐지만, 소년이 돌아서는 걸 보자 그제서야 비로소 대답했다.“아, 여동생! 그래, 그래.”화장실에 간 후, 사무와 사진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못된 여자가 혹시 함정이라도 파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하지만 아버지가 아직 거기에 있다는 걸 떠올리자,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첫 교훈도 얻게 되었다. 이 놀이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한편 다른 한쪽. 시재 백화점에 갔다가 별장으로 돌아온 성연은 양 손에 큰 봉투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이것들은 모두 성연이 업무를 마친 뒤에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고른 장난감이다. ‘요 며칠 동안 정말 너무 바빴어. 집에 돌아오면 이미 늦은 밤이거나, 좀 일찍 집에 돌아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지.’성연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집을 열자 거실은 조용했다. 위층에서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우리 사진이, 사무? 엄마가 돌아왔어!”눈살을 살짝 찌푸리면서 성연이 말했지만, 아이들의 열정적인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사진아? 사무야? 너희들 집에 있니?”“사무야?”아래층에서 계속 몇 번이나 소리쳐도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큰 집에 성연 자신의 목소리만 울릴 뿐.“보스, 아이들은 지금 집에 없습니다.”이때 서한기가 부랴부랴 달려왔다.“집에 없다니?” 성연이 눈썹을 바짝 세웠다. 순간 마음속에
“그 여자는 이전에 엄마하고 알고 지냈던 것 같아. 다만 아직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그럼 이따가 우리 어떡하지?” 사진이 약간 지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오전 내내 이곳을 왔다갔다했으니 아이에게는 에너지 소모가 컸다.그리고 방금 위층으로 올라갈 때, 아이들은 여전히 아주 자신있게 서한기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후회막심’이다.‘지금 아직 한기 아저씨가 있다면. 바로 집에 가서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일단은 우리 계획대로 그 여자한테 엄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우리가 아빠를 찾으러 온 건 그 여자하고 상관이 없어.”원래 신중한 사무지만, 지금 사무의 말은 오빠라는 사무의 입장과 아주 딱 맞게 진지했다.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전에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 건 핑계였지만, 막상 바깥에 나오자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한참을 가도 식당 창문이나 작은 방은 곳곳에 있는데, 예민주가 말한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가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억울한 듯이 분홍색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사진은 움직이기도 귀찮았다.여동생의 이런 모습을 보자, 사무는 그 자리에 선 채 눈을 반짝이며 한 바퀴 둘러보았다.“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알았지?”말을 마친 사무는 왔던 길을 다시 달려갔다.“오늘 가지는 좀 맛이 없어.”“그래도 괜찮은데. 먹기 싫으면 나한테 줘.”사무는 식사 중이던 두 아가씨의 앞으로 갔다.“누나, 실례합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어요?”목소리는 여리지만 태도는 아주 공손했다.밥을 먹고 있던 두 아가씨는 그 말을 듣자 먹던 동작을 멈췄다. 사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눈빛을 반짝였다.‘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온 거야?’ ‘뚜렷한 이목구비에 심플한 검은색 스웨터만 입었는데도 잘 어울리는 걸.’‘얼굴의 통통한 젖살이 큐티 작살인데!’‘그야말로 너무나 귀여운 아이야!’사무는
두 아이를 보면서 예민주는 더욱 초조했다.마음속에 잘 기억해 놓은 뒤, 예민주의 노기는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이미 이전의 온화한 모습을 회복했다.“사진아, 너희들은 이전에 외국에서 잘 살았다면서? 그런데 왜 갑자기 귀국한 거야?”마치 큰 언니가 아이들을 배려하는 듯 예민주는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지금 두 아이는 이미 이 여자의 목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엄마의 집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엄마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돌아왔어요.”목소리는 아직 어린 티가 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해맑은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사진의 대답은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아까까지만 해도 술술 잘 말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빈틈이 없어진 거야?’예민주는 기분이 좀 꿀꿀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번에 돌아와서 낯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니? 너희들이 오늘 이곳에 와서 아빠를 찾는 것 같은데, 누가 너희들에게 뭔가 말한 거 아니야?”예민주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계속 집요하게 물었다. 무진이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진에게 등을 진 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사진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예민주를 쳐다보았다.“아줌마, 우리하고 함께 여기서 논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계속 그런 거만 물어봐요?”“맞다. 아줌마, 우리 엄마 알지요? 우리 엄마한테 지금 데리러 오라고 하면 안 돼요?” “오늘 우리를 괴롭힌 사람들을 엄마가 꼭 혼내 주게요!”“맞아요, 맞아요! 누가 우리를 괴롭힌 걸 알면, 엄마가 반드시 호되게 혼을 내줄 거예요.”두 아이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호흡이 기가 막히게 잘 맞았다. 예민주는 표정이 붉어졌다는 것도, 심지어 심장박동도 빨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이 두 녀석의 말을 들으니, 송성연이 이 두 녀석을 아주 진지하게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