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5년간의 연애에서 심하온은 강선우에게 진심을 다했지만 신혼 첫날 밤, 그가 이미 딴 여자와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하온의 손에 쥔 혼인신고서는 단지 완벽하게 짜인 사기극에 불과했다. 그녀의 마음은 잿더미가 되었다. 고의적인 교통사고, 무너져버린 무용수의 삶, 게다가 대리모 역할까지... 심하온은 돌연 집으로 돌아가 정략결혼을 택했다. 두 남녀가 다시 만났을 때, 강선우는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강운 재계의 황태자 정윤재가 조심스럽게 심하온을 품에 안고 정성껏 보호해주는 모습을. 강선우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하온아, 다 내 잘못이야.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 이때 정윤재가 차가운 얼굴로 그녀 앞에 막아섰다. “꺼져! 내 아내 눈 더럽히지 말고.”
view more추설현은 휴지를 몇 장 뽑아 눈물을 닦았다. 보아하니 감정을 추스르는 듯했다.이에 심하온은 조급해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추설현은 겨우 진정되었다.“제 남편 곽윤일은 삼 년 전부터 도박에 빠졌어요. 일 년도 안 돼서 가진 돈을 다 날리고, 빚더미에 앉게 됐죠. 그때 저는 매일같이 한숨만 쉬었어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빚쟁이들이 끊임없이 집에 찾아왔고, 심지어 루나를 뺏어가려고까지 했어요...”“중점만 말해요.”정윤재가 차갑게 말을 끊었다.그는 추설현 가족의 ‘딱한 사정’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이에 그녀가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윤일 씨가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나더니 통장 하나를 건네줬어요.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았는데, 이게 선금이고 일이 끝나면 더 큰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되면 우리 가족 빚도 다 갚고 여길 떠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그때 그 통장에는 2억이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그녀는 경악하며 곽윤일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남편이 끝까지 함구했다. 다만 이제 잘못을 뉘우치고 그녀와 루나에게 잘하겠다며, 반드시 좋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고만 말했다.추설현은 그 돈의 액수를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정도라면, 곽윤일이 하려는 일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원래 반대하고 싶었으나 가족이 당장 먹고살 돈도 없었고, 매일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처지였다. 그들은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고, 설령 도망친다 해도 결국엔 붙잡힐 터였다.한순간의 망설임 끝에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막지 않았다.며칠 뒤, 곽윤일이 또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는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말했다.“내가 사람을 쳤어. 경찰이 곧 잡으러 올 거야. 걱정 마.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사고처럼 보일 뿐이고, 몇 년 감옥 살면 나올 수 있어. 내일 당신 통장으로 돈이 들어갈 거야. 나눠서 들어갈 텐데, 합쳐서 4억 정도 돼.
추설현은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그랬다. 루나에게 아빠에 대한 진실을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도박꾼에,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고의로 차를 몰아 사람을 쳤다는 사실을 절대 말할 수 없었다.다시 눈을 뜬 그녀는 마침내 루나를 임아라에게 맡겼다.“부탁이에요... 제발 우리 루나 잘 좀 부탁드려요.”“걱정 말아요.”임아라가 단호하게 말했다.“목숨 걸고 맹세할게요. 루나 절대 다치는 일 없어요.”그녀가 이렇게 확신하는 것은 심하온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심하온이 루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했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고마워요, 아라 씨.”임아라는 루나를 안고 방을 나섰다.루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임아라는 그런 루나를 안고 달래며 맛있는 거 사 먹으러 가자고 했다.“그럼 엄마는요? 엄마는 왜 우리랑 같이 안 가요?”루나가 훌쩍거리며 물었다.“엄마는 저 이모랑 잠깐 할 얘기가 있대. 금방 우리한테 올 거야. 착하지, 루나.”그들이 떠난 후, 정윤재가 방으로 들어와 심하온 곁에 앉았다.추설현이라는 여자가 갑자기 발광하여 심하온을 해칠지도 모르니 그는 당연히 옆에서 지켜줘야만 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테니까.또한 심하온이 그해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내면서 감정이 불안정해질까 봐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추설현은 정윤재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심하온 앞으로 다가가 앉아서 두 손을 벌벌 떨며 그녀를 바라봤다.“하온 씨가 바로 그해 사고의 피해자였군요. 이번 생에...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추설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희가 잘못했어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그러니까 그해 교통사고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거죠?”심하온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사실 심하온은 조금 전에도 감정 조절에 실패할 뻔했다.2년 전의 교통사고, 그로 인해 망가져 버린 다리는 그녀에게 영원한 아픔으로 남았다.하지만 금세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그 사고의 원흉은 강다
심씨 가문의 경호원과 정윤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어느덧 답장이 속속들이 도착했다.문자 내용을 대충 훑어본 그녀는 고개를 들어 추설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다만 식사 전에 추설현 씨한테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추설현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네, 편하신대로 물어보세요.”“남편분 성함이 곽윤일 씨 맞으시죠?”곽윤일! 바로 2년 전, 그 끔찍한 교통사고를 낸 기사의 이름이었다.남편의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추설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그녀는 사색이 된 채 눈가에 공포가 어렸다.“당, 당신 누구야? 어떻게...?”심하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저 묵묵히 추설현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추설현이 다급하게 딸을 안아 들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어머, 왜 그래요 언니?”임아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추설현은 어느새 문 앞까지 달려갔다. 극심한 공포에 질려 한 손으로 딸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방문을 열어젖혔다.하지만 문을 연 순간, 제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문 앞에는 이미 경호원들이 떡하니 서서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추설현은 딸을 꽉 끌어안은 채, 심하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 금세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당신, 도대체 누구야?”“그러게요? 제가 누굴까요?”심하온도 서서히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추설현 씨, 이 다리가 바로 그해 당신 남편 때문에 망가진 다리에요.”게다가 하마터면 그 사고로 죽을 뻔했다.의사 말로는 심하온이 목숨을 건진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고 했다.하지만 양쪽 다리가 완전히 망가질 뻔했고, 엄청난 노력 끝에 왼쪽 다리를 겨우 살릴 수 있었다. 오른쪽 다리 역시 어마어마한 고통과 재활을 거쳐서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춤을 추는 것은 이제 영원히 불가능해졌다.그토록 열정을 불태웠던 무용인데!그녀의 말을 들은 추설현은 비명을 지르더니 굵은 눈물
“별일은 아니고요. 그냥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이혼할 생각이에요.”임아라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그날 밤의 일은 여전히 그녀 마음속 깊은 상처로 남아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임아라의 말을 들은 추설현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이혼까지 갈 정도라면 분명 심각한 일이 있었을 테고, 임아라가 말하지 않는데 더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아라 이모, 진짜 국내로 돌아가는 거예요?”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부럽다! 나도 가고 싶은데... 여긴 너무 싫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빠 보고 싶어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설현이 대뜸 딸의 입을 막으며 나무랐다.“루나야, 말 함부로 하지 말랬지!”루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이에 임아라가 황급히 분위기를 수습했다.“언니, 애가 아직 어리니까 아빠 보고 싶을 수도 있죠...”추설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옆에 앉은 심하온은 이 모든 광경을 묵묵히 지켜봤다.그녀는 추설현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이쯤 되면 추설현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적어도 그해의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딸과 함께 해외로 도피하듯 숨어 살 이유도, 딸이 아빠를 언급할 때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으니까.어쩐지 임아라가 말하길 그녀의 한식당이 장사가 시원찮음에도 돈이 부족해 보이지 않더라니.그해 강다인이 기사를 매수하면서 거금을 들였을 테고, 강선우가 뒷수습하는 데에도 돈이 꽤 들어갔을 것이다.어쩌면 지금 추설현이 쓰고 있는 돈은, 그때 심하온이 겪었던 끔찍한 상처와 맞바꾼 것일지도 모른다.“외국에서 재외 교포를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것도 이렇게 외딴곳에서 말이에요.”임아라가 아쉬운 듯 말했다.“마을 사람들도 다 좋은 분들인데 어쨌거나 우리랑은 다르잖아요.”“그런데 언니는 왜 루나 데리고 국내로 돌아가지 않아요?”임아라가 그녀를 타일렀다.“언제까지 계속 여기
심하온은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그리고 그 마을이 정말 작았거든. 거주민도 많지 않고. 거기 사람들은 한식이 입에 안 맞는 것 같았어. 그 언니네 식당 장사도 아주 썰렁했는데 전혀 개의치 않고 딸이랑 계속 거기 살았대. 왜 딸을 데리고 큰 도시로 이사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미 조용하게 사는 데 적응했다는 거야. 아니 막말로 조용히 살아서 돈이 생겨? 대체 무슨 수로 돈을 버는지 전혀 빠듯해 보이지도 않았어.”임아라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자, 심하온은 어느새 그 여자가 궁금해졌다.“그분 이름이 뭐야?”“이름은....”임아라가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왔나 보다. 잠깐만.”임아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심하온도 덩달아 일어나 인사할 채비를 했다.문이 열리자, 밖에는 두 모녀가 서 있었다.“왔어요, 언니?”임아라가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어린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맑고 고운 목소리로 ‘아라 이모!’라고 불렀다.“아이, 착해라.”“진짜 귀국하게요?”여자가 아쉬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다음 달에 우리 집으로 식사 초대도 하고 싶었는데, 아라 씨한테 선보이지 못한 요리가 몇 개 더 있거든요.”“집이 너무 그리워서 어쩔 수가 없네요.”임아라가 쓴웃음을 지었다.“여기는 아무래도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그녀는 곧장 길을 내주었다.“어서 들어와요. 안에 친구가 한 명 더 와 있는데 소개해줄게요. 여긴 내 친구 심하온, 그리고 여긴 추설현 씨, 설현 언니야. 이 아이는 언니네 딸 루나고.”“반가워요.”추설현이 환하게 웃으며 심하온에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심하온은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추설현의 얼굴을 본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임아라가 ‘추설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말했을 때, 심하온은 더 큰 충격에 빠졌다.추설현, 바로 그녀였다.2년 전, 심하
심하온이 안에 들어서자, 방구석에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임아라는 멋쩍게 웃었다.“요 며칠 기분도 별로이고 생각이 좀 많아서 술을 마셔야 잠들 수 있거든.”“아라 너 괜찮은 거 맞지?”심하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이제 괜찮아졌어.”임아라가 홀가분한 투로 말했는데 진심인지,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사실 나 요 며칠 마음 정리 다 했어. 고작 남자 한 명으로 뭐가 대수겠니? 아니다 싶으면 갈아치우거나 이혼하면 되지. 오히려 잘 됐어. 이혼하면 더 이상 이 타국 땅에 머물 필요가 없잖아. 귀국해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얼마나 좋아.”그녀는 창가로 걸어가 반쯤 열려 있던 커튼을 완전히 젖혔다.“겨우 3년뿐인데 뭘!”하지만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눈시울이 빨개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하온을 바라보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하온아, 난 겨우 3년을 함께하다가 그 남자의 참모습을 알게 된 것도 이렇게 힘든데 넌... 강선우랑 5년이나 만나고 바람피운 걸 알았을 때, 대체 어떻게 버틴 거니?”임아라는 본인 일도 속상하지만 심하온이 너무 안쓰러웠다.이에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진실을 다 알게 되니 그딴 녀석 때문에 슬퍼하는 자체가 전혀 가치 없는 일이란 걸 깨달았거든.”말이야 홀가분하게 내뱉어도 사실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은 오직 본인만이 기억하고 있다.하지만 다행히도 심하온은 빠르게 정신을 차렸고, 임아라 역시 하루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다.“그래, 네 말이 맞아.”임아라가 축축해진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왜 우리가 힘들어해야 해? 결국 우리 몸만 상하잖아.”심호흡한 그녀는 더 이상 에릭에 관한 일을 언급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이따가 아는 언니가 보러 오기로 했는데, 아참, 그 언니도 재외 교포야. 두 달 전에 알게 된 사이거든.”두 달 전, 그녀는 에릭과 크게 다툰 후 기분이 잡쳐서 혼자 드라이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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