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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오렌지
이내 냉소를 지으며 몰래 집을 나섰다. 어차피 시어머니가 무슨 짓을 하든 오늘부터 수수방관할 것이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늙은이로 인해 모두가 봉변당하는 꼴을 지켜볼 테니까!

결국 잠에서 깬 안호성은 불같이 화를 내며 시어머니와 다투었고, 울며불며 난리 치는 노파 때문에 나한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나는 이해심이 넓은 척 위로했다.

“어머님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널 챙겨주는 게 쉬운 줄 알아? 결국 다 자기 아들을 위해서 그러는 건데 오늘내일하는 사람한테 야박하게 왜 그래?”

안호성은 어리둥절했다. 그동안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때마다 내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자기 엄마 편을 들어줄 거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뿐더러 본인이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멘트였는지라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어떤 기분인지 본인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역시 직접 당해봐야만 고통을 느끼는 법이다. 하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 생에는 완벽하게 작성한 계약서 덕분에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대표님은 출산 휴가 중에도 열심히 일해서 회사를 위해 거액의 계약을 성사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당일에 본부장으로 승진시켜주었다.

덕분에 연봉도 2배 올랐고, 성과급도 두둑이 받았다.

승진 축하 겸 회사에서 저녁 회식 자리를 마련했고, 나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쇼파에 앉아 있는 안호성과 시어머니를 발견했는데 한 명은 낯빛이 어두웠고, 한 명은 눈물을 훔쳤다.

안호성이 버럭 외쳤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아이를 친정에 데려갔다고 말이라도 하던가,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정녕 집이 안중에도 없는 거야?”

시어머니도 불만을 늘어놓았다.

“여자는 그래도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해. 밤늦게 술 마시러 돌아다니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밖에 더 있겠어?”

그제야 계약서에 손을 댄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단지 아들보다 잘나가는 며느리가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라니!

사실 본인이 입단속만 잘해도 품위가 없다는 둥, 집안을 소홀히 한다는 둥, 노인을 학대한다는 둥 며느리에 대한 유언비어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전생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이유도 전부 시어머니 탓이었다.

나는 싸늘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집에서 나 말고 돈을 버는 사람이 또 있어요? 직장을 관두는 건 상관없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은 되고? 승진하자마자 김빠지게 왜 그래요? 같이 살기 싫으면 이혼하던가!”

내가 초강수를 던질 줄 몰랐는지 안호성과 시어머니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딸을 친정으로 데려가고 시어머니의 반응이 어땠을지 불 보듯 뻔했다.

아마도 그녀가 싫어서 쫓아내려고 일부러 손녀를 친정에 보냈다고 아들한테 우는소리 했을 것이다.

원래 가식적인데다가 한 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는 사람이지 않은가?

평소 시어머니 일만 아니라면 안호성은 잘 챙겨주는 편이라 나는 감쪽같이 속아 그의 진면목을 몰라보았다.

집안을 먹여 살릴 능력도 없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승진한 와이프와 이혼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내 잽싸게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우린 그런 뜻이 아니라 단지 말도 없이 애를 데려가서 걱정되었을 뿐이야.”

시어머니는 눈물을 닦기 시작하더니 필살기를 꺼내 들려고 했다.

나는 안호성을 뒤돌아보고 한층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며칠 돌봐주면 어머님도 편히 쉴 수 있잖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 효도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고생만 시키면 되겠어? 자식 키우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 어쩌면 양심이 눈곱만큼도 없니?”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시어머니는 발동을 걸기도 전에 맥을 못 췄다.

이내 주방으로 뛰어가더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은 반찬을 꺼냈다.

“저녁은 먹었니? 일부러 네 몫을 따로 남겨뒀어.”

기껏 편을 들어줬더니 쉰 밥이나 차려지는 신세라...

나는 가식적인 미소를 장착했다.

“네, 배불러요. 어머님이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절대 사양하지 말고.”

결국은 먹다 남겼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묵은김치와 어제 지은 밥을 꺼내놓았다.

게다가 전기세를 절약한다고 몰래 냉장고 코드를 뽑아서 무더위에 밥은 쉬어버렸고, 썩은 냉동 고기로 미트볼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물론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고, 내 눈에 띄면 즉시 제지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쉰밥을 챙겨주며 말했다.

“나연아, 출근하느라 힘들지? 많이 먹어.”

나는 안호성한테 건네며 미트볼도 덜어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 먹을 것 같아. 너라도 많이 먹어. 어머님의 성의를 저버리면 안 되잖아.”

오늘 거래처 미팅이 있는 안호성은 시간도 촉박한지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고소한 냄새 덕분에 쉰내가 희석되었는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연락받았는데 시어머니가 급성 위장염 때문에 구토와 설사를 동반해서 입원했다고 했다.

나는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부랴부랴 달려갔고, 마침 둘째 산전 검사받으러 온 시누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모녀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시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가엾게 울었다.

안이새가 뜬금없이 비꼬았다.

“대체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나이 드신 분한테 상한 음식을 먹이다니, 이렇게 잔인한 사람은 처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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