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그날 밤.언니는 법당 방석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나는 언니의 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내가 죽은 뒤 언니가 나를 본 건 처음이었다.나는 깨끗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이마에는 핏자국도 없었고 얼굴에도 서리가 없었다.나는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아주 밝은 빛 속에 서 있었다.언니는 나를 발견하자 움직임을 멈췄다.그리고 곧 내게 달려와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수정아!!”언니는 내가 정말 맞는지 확인하듯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수정아, 언니가 널 못 지켰어. 문을 열 기회가 그렇게 많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수정아, 많이 추웠어?”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언니, 나 이제 안 추워. 오래전에 다 괜찮아졌어. 그러니까 울지 마.”언니는 나를 안은 채 울기만 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언니가 잘못했어. 계속 이상하다고 느꼈는데도 부모님께 강하게 말하지 못했어. 내가 더 용기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문을 열거나 부숴야 했는데.”나는 언니 손을 잡았다.“언니, 언니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 진짜야.”“18년 동안 단 하루도 언니 동생으로 태어난 걸 후회한 적 없어.”“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내 언니 해 줄래?”언니는 나를 아주 세게 끌어안았다.꿈속에서 내 몸은 따뜻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 언니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언니는 법당 밖으로 나왔다.햇빛이 언니의 뺨 위에 내려앉았다.언니는 풍경이 아름다운 산자락에 나를 묻어 줬다.남쪽이 바라다보이는 따뜻한 자리였다.봄이 오면 비탈 가득 들꽃이 피었다.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날려 내 묘비 위에 내려앉았다.언니는 묘비에 새겨진 내 이름을 손끝으로 쓸었다.“수정아.”“언니는 잘살게.”“다음 생에도 네 언니 할게.”“그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래?”바람이 꽃밭 사이를 지나갔다.꽃잎 하나가 언니의 손등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내가 언니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내 영혼은 점점 가벼워졌다.허공 한가운데 문 하나가 보였
심조윤은 그날부터 완전히 무너졌다.심조윤의 수능 성적표도 나왔다.표준점수 합계 418점.마음만 먹으면 어느 최상위권 대학이든 노려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하지만 심조윤은 성적표를 찢어 버렸다.매일 우리 집으로 와 굳게 닫힌 냉동창고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수정아, 문 열어.”“너 안에 있는 거 알아.”“그만 삐치고 나오면 안 돼? 우리 같은 대학에 가기로 했잖아.”“...”심조윤의 엄마는 울면서 내가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심조윤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굴었다.다음 날에도 다시 나를 찾아 우리집에 왔다.이번에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수정아, 지금 바로 삼촌이랑 이모한테 전화할게. 문 열어 달라고 할게.”“겁내지 마.”“전화할게. 지금 바로 할게.”심조윤은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오래 기다렸다.아무도 전화받지 않았다.심조윤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문 앞에서 오후 내내 앉아 있었다.나중에는 심조윤의 부모님이 직접 와서 데려갔다.심조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그 후 1년 동안 학업을 완전히 중단했다.매일 방에 틀어박혀 예전에 나와 주고받은 메시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얼마 뒤 심조윤의 부모님은 심조윤을 데리고 다른 도시로 이사했다.그 뒤로는 누구도 심조윤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언니는 끝까지 내 곁에 남아서 나를 지켰다.누구도 장례식장 안치실에 있는 내 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이미 굳어 버린 내 손을 붙잡은 채 끝도 없이 말을 건넸다.“수정아, 계속 생각했어. 내가 왜 조금 더 너에게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내가 더 강하고, 더 뛰어났으면 그 역술인 말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지 않았을까? 아빠 엄마도 그렇게까지 겁먹지 않았을 텐데.”“내가 시험도 더 잘 보고 더 뛰어난 사람이었으면... 그랬으면 네가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언니는 내 관의 가장자리를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힘이 들어갔다.“미안해, 수정아.”“언니가 결국 너
엄마는 내 핸드폰에 저장된 글을 하나씩 아래로 내려가며 읽었다.첫 번째 메모.[오늘 시험 성적이 나왔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다. 언니보다 내가 더 잘 봤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게 무섭다.][엄마가 성적을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냉동창고에 가둘까 봐 너무 겁난다.]두 번째 메모.[역시 또 갇혔다. 엄마가 내 뺨을 몇 번이나 때리면서 왜 언니를 해치려고 하냐고 계속 물었다. 너무 속상하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냉동창고는 너무 춥고 배도 고프다. 그래도 언니가 곰 인형 안에 초콜릿을 넣어 둬서 다행이다. 단 걸 먹으면 마음이 이렇게 쓰리지는 않겠지?]세 번째 메모.[개학 첫날. 선생님이 반장을 맡아보라고 하셨다. 싫다고 했다. 무서워서 못 하겠다. 지난번에 학습부장을 맡았을 때 엄마는 그 사실을 알고 사흘 동안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나는 언니보다 잘하면 안 된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렇게 내가 아빠 엄마 말을 잘 듣고 있는데 왜 아빠 엄마는 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조금만 사랑해 줄 수 없는 걸까?]네 번째 메모.[언니는 전교 3등을 했고 나는 전교 1등을 했다. 선생님들은 둘 다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나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학교 앞에 앉아서 해가 질 때까지 집으로 가지 않고 버텼다.][집에 돌아가자 아빠는 거실에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밤새 한 번도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무릎이 너무 부어서 걷지도 못했다.][언니가 부축해서 학교에 데려다줬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하지만 언니, 이건 언니 잘못이 아니야. 다음부터는 내가 더 조심할게.]다섯 번째 메모.[선생님이 상담하자고 부르셨다. 경시대회 성적과 학교 성취도가 아주 좋아서 강세대나 명리대 특별전형에 추천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나는 싫다고 했다.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포기해서 언니가 무사할 수 있다면 괜찮다.][언니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 줬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아빠 엄마도 나를 사랑해 주면 좋
집에서 벌어진 일은 금세 이웃들에게 알려졌다.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했다.30분쯤 뒤 경찰이 도착했고 집 주변에는 통제선이 쳐졌다.내 시신은 들것에 실렸다.검시관이 내 시신의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했다.검시 결과가 적힌 서류가 부모님 앞에 놓였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시 읽었다.[사망자 하수정. 사인은 저체온증으로 추정되며, 전신에서 심한 동상이 확인됨. 추정 사망 시점은 약 5일 전.]“5일 전... 수능 날이잖아.”아빠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아빠는 그 문장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다 수능 날 아침을 떠올렸다.어깨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그날 아침에 수정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었어. 이마에서 피가 날 때까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면서 수험표를 돌려 달라고 했어.”“내가... 내가 발로 차서 저 안으로 밀어 넣었어. 들어가서 정신 차릴 때까지 반성하라고...”옆에 있던 엄마에게서 절망에 찬 울음이 터졌다.“수정이 문을 두드렸어! 춥다고 했어! 나는 또 거짓말로 연기하는 줄 알았어! 분명히 들었는데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엄마는 갑자기 자기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 뜯었다.“계속 문을 두드렸어! 그렇게 오래 두드린 게 화내는 게 아니었다고! 살려 달라고 한 거였어!”경찰이 엄마를 붙잡았다.엄마는 몸부림치며 울다가 웃기를 반복했다.“내 딸이 저 안에서 5일이나 얼어 있었어! 살아 있는 채로 얼어 죽었어! 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엄마의 목소리는 완전히 쉬어 버렸다. 목이 꽉 졸린 짐승이 내는 소리 같았다.아빠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의자가 뒤로 넘어졌다.“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 그 사람이 이런 말은 안 했잖아?”아빠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감정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그 역술인이 수정이만 눌러 두고 앞서 나가지 못하게 하면 수연이는 무사하다고 했어. 우리는 수연이를 지켰는데 왜 수정이는 못 지킨 거야?”“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잖아!”조사실에 있던 경찰이 미간
냉동창고 문이 완전히 열렸다.내 몸은 허리를 반쯤 굽힌 채 딱딱하게 굳어 서 있었다.얼굴 반쪽은 피로 뒤덮여 있었고 핏자국까지 얼어붙었다. 나머지 반쪽에는 잘게 부서진 얼음 결정이 빼곡했다.오른손만 문을 두드리던 모양 그대로 들려 있었다.엄마는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몇 번이나 일어나려 했지만 실패했고, 끝내 기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무릎으로 새어 나온 얼음물 위를 짚으며 조금씩 내 시신 곁까지 기어 왔다.엄마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으려 했다. 손끝에 닿은 건 돌처럼 얼어 단단해진 살이었다.“수정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엄마는 알아듣기 힘들 만큼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엄마는 분명 냉동을 안 켰는데... 수정아, 우리 수정이...”그때, 엄마의 시선이 천천히 벽에 붙은 온도 조절판으로 옮겨 갔다.-30℃.붉은 숫자가 피처럼 선명했다.엄마는 목 안에 솜뭉치라도 틀어막힌 듯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그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아빠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내게 달려들었다.나를 안아 올리려 했다.나를 살리려 했다.아빠는 내 몸을 힘껏 끌어안고 위로 들어 올렸다.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오래 얼어붙은 고깃덩어리처럼 피부가 바닥과 붙어 있었다. 아빠가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아주 작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아빠의 손이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아빠는 무너진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봤다.“냉동 안 켰다며?”“당신 집에 와서 수정이 봤다며?”“홈캠도 확인했다며?”아빠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다.“그런데 수정이 왜 이렇게 된 거야?!”엄마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입술만 달달 떨었다. 고개를 미친 듯이 저을 뿐이었다.그제야 엄마는 전부 떠올렸다.보온병을 가지러 집에 왔던 날, 열린 문틈에서 스며 나오던 차가운 공기.손잡이를 돌렸을 때 문틈으로 보였던 교복 자락.홈캠 화면 속 구석에서 웅크린 채 전혀 움직이지 않던 나.언니가 ‘문이 진
“열쇠가 어디 있는지 진작 알려 줬잖아! 그래도 안 나오고 버티는 건 우리랑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거야.”엄마는 언니를 손잡이 앞에서 잡아끌었다.언니는 울다가 목소리가 갈라졌다.“엄마, 수정이 아직 안에 있잖아! 우리 돌아오면 수정이 데리고 기도하러 가기로 했잖아...”엄마는 언니가 버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끌고 갔다.“저 안이 그렇게 좋으면 실컷 있으라고 해. 언제까지 고집부릴 수 있는지 보자. 가!”쾅!문이 닫혔다.철컥-다시 아무 소리도 남지 않았다.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내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엄마...’‘진실은 바로 앞에 있었어.’‘문 하나만 열면 됐는데...’‘정말 조금만 더 열면 됐는데.’‘그러면 나를 볼 수 있었을 텐데...’...부모님은 언니를 데리고 사흘 동안 바람을 쐬러 갔다.산에 있는 절에도 들렀다.언니가 무사히 18살을 넘길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부모님은 절을 올리고 향을 피웠다.언니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소원도 빌었다.언니도 정성껏 절을 했다.하지만 언니가 빌고 있던 건 내 평안을 지켜 달라는 소원이었다.두 손을 모은 언니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그 사주 때문에 수정이는 18년 내내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좋은 대학에 못 가도 괜찮아요. 앞으로는 수정이만 편하게 살게 해 주세요.”법당에서 절을 올린 뒤, 언니는 스님에게서 받은 액막이 부적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었다.그때 언니가 들고 있던 부적 주머니의 붉은 매듭 끈이 갑자기 툭 끊어졌다.언니는 가슴이 철렁해져 다급히 부모님을 재촉했다.“아빠, 엄마. 나 계속 마음이 불안해. 느낌이 너무 안 좋아. 수정이한테 진짜 무슨 일 생긴 것 같아!”엄마는 같은 말을 계속 듣자 짜증을 냈다.“수정이한테 무슨 일이 생겨? 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죄책감 느끼게 하려고 저러는 거야. 네가 계속 걱정해 주니까 더 심해지는 거고!”엄마의 말이 끝나자 핸드폰이 울렸다.아랫집 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