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왜 갑자기 말을 안 해? 걱정하지 마. 그게 누구든 너한테 손대기만 하면 남궁 상민처럼 영영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줄 테니까.”예천우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고 그의 말속에는 분노와 살기마저 감돌고 있었다.그 말을 듣고 나자 진나비는 가슴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예천우가 이렇게까지 분노하고 신경 쓰는 모습을 보니 그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가 더없이 분명해진 것 같았다.“아니에요. 천우 오빠, 다행히 아직 저한테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사람은 없어요.”“그럼 무슨 문제인데?”“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 일이에요.”진나비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우리 회사 여가수 하나가 어떤 남자한테 협박을 받고 있어요. 자기 여자가 되지 않으면 회사까지 망가뜨리겠다고 협박하는데 상대가 만만치 않아서 제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서요. 오빠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요.”“그런 일이 있었어? 그 남자가 누구야?”예천우는 약간 의아했고 오늘 하루에만도 이런 일이 벌써 두 번째였다. 아까 류서연이 겪은 일이 떠오른 터였다.“이홍만이라는 사람이에요. 성화 그룹에서 온 사람인데 회사 지분은 많지 않지만 업계에 영향력이 엄청나서...”“잠깐만. 성화 그룹의 이홍만이라... 확실해?”이홍만이라는 말에 예천우는 조금 놀랐다. 가해자가 같은 사람이었고 심지어 피해자까지 동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가 찼다. 아니면 그 녀석이 사방에 마구잡이로 손을 뻗치고 다니는 건가 싶었다.“네. 맞아요. 오빠, 이홍만을 아세요?”혹시라도 예천우와 아는 사이가 아닐까 싶어서 진나비는 갑자기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알긴 뭘 알아. 본 적은 있는데 친분 같은 건 없어. 그 자식한테 협박받은 여가수는 누구야?”“류서연이라고 정말 괜찮은 친구예요. 실력도 있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엄청 높아요.”진나비는 급히 덧붙였다. 예천우가 여가수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하하. 역시 그 친구였구나!”예천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류서연이 진나비 회사 사람이라니 결국
이홍만은 전화를 끊고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했다.‘류서연 그 계집애가 얌전히 내 품으로 오지 않으면 비천 엔터테인먼트도 그 여자도 모두 끝장내주지.’감히 회사 대표라는 사람까지 내세워 자기를 위협하려 들다니... 이홍만은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이제 막 설립된 비천 엔터테인먼트 따위가 감히 자신을 경고할 처지가 아니었고 그건 분명히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었다.문득 그는 진나비를 떠올렸다.‘그래. 생각해 보니 진나비도 꽤 괜찮지. 예전에는 그래도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급이라 쉽게 건드릴 수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얌전히 류서연을 넘기기만 하면 한 번쯤 진나비도 건드려볼 만하겠어.’이홍만은 그녀가 어디까지 양보할지 일단 떠보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진나비가 쉽게 굴복한다면 앞으로 비천 엔터테인먼트는 자기 손안에서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될 터였다.한편, 하지원은 진나비와 두 사람에게 통화 내용을 함께 듣게 하려고 일부러 전화를 스피커로 켰다.류서연은 이홍만의 협박이 담긴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듣고 긴장한 얼굴로 진나비를 바라보았다. 사실 두 사람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동안 비천 엔터테인먼트 뒤에 거물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아직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나가 있어.”진나비는 다른 사람들을 내보냈고 하지원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류서연은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금했지만 진나비가 나가 있으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모두가 나간 후 진나비는 휴대폰에서 예천우의 번호를 찾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한편, 류서연과 헤어진 뒤 예천우는 진가인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다가 밤 10시쯤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그들이 돌아왔을 때 진민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진가인은 속으로는 예천우를 집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예천우가 자기 방 침대에서 자고
진나비의 카리스마 넘치는 한마디에 류서연과 김미원 모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나비 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러자 하지원이 옆에서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말 그대로야. 이홍만이 진짜로 무슨 짓이라도 하면 아주 처참하게 끝나게 될 거라는 뜻이지.”하지원은 예전에 용도의 남궁 가문조차 예 도련님 손에 철저히 혼쭐이 난 일화를 떠올렸다. 그런 대가문조차 감히 꼼짝 못 하는데 성화 그룹 따위가 예천우 앞에서 무슨 힘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이 말에 류서연과 김미원은 더더욱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설마 나비 언니 뒤에 누가 계신 거예요?”“당연히 있지!”하지원이 여유롭게 대답했고 지난번에 예천우가 위풍당당한 장면을 직접 보았기에 별 무서울 게 없었다.“게다가 그분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진나비 역시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이 회사를 처음 만든 사람은 우리 둘이 아니라... 우리도 모시는 분이 계셔. 우리 회사 뒤에는 정말 대단한 분이 계시거든.”“정말요?”류서연은 충격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회사가 아직 크지 않아서 그저 진나비와 하지원이 힘을 합쳐 세운 줄만 알고 있었다.“맞아. 그리고 그분의 신분은 상상 이상이야. 예전에는 심지어 장난처럼 나비에게 2조쯤은 그냥 투자해 줄 정도였지. 솔직히 우리 같은 신생 회사에 그 정도 돈이 뭐가 필요하겠어... 아직도 계좌에 엄청난 돈이 남아 있을 정도야.”하지원이 웃으며 덧붙였다. 실제로 진나비가 추구하는 건 단순히 스타 발굴이 아니라 공정하고 자유로운 연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에 무리하게 회사를 키우려 하지 않았고 연예인 수도 많지 않았다.“2조라고요?”김미원과 류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엄청난 액수를 진나비에게 대수롭지 않게 맡겨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진나비는 문득 예천우를 떠올렸고 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가 괜히 그리워졌다.‘누구나 탐낼 만큼 예쁜 외모와 노래
“그건 저 녀석이 너무 오만하고 세상을 몰라서 그래. 됐어. 우리도 얼른 가자. 일단 이홍만부터 어떻게든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김미원이 진지하게 말하자 류서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천우 씨, 먼저 갈게요! 이홍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그래요. 잘 가요.”예천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도움을 거절하는데 억지로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그래도 정말 필요하다면 언제든 나설 생각이었고 무엇보다 이런 착한 여자가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 망가지는 건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그리고 저 무조건 이홍만을 거절할 거예요. 절대 타협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홍만이 저를 찾아냈던 것처럼 언젠가 천우 씨한테도 보복할 수 있으니까 꼭 조심해요. 알겠죠?”류서연은 떠나기 전 다시 한번 당부하자 예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러면 제 번호라도 받아 두지 그래요?”류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예천우가 말해 준 번호를 휴대폰에 눌러 바로 전화를 걸었다.“이게 제 번호에요. 만약 이홍만이 천우 씨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꼭 연락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힘껏 도울게.”“그럴 일 없어요. 걔가 감히 나한테 손도 못 댈 거예요. 오히려 서연 씨야말로 혹시라도 진짜 감당 안 되는 상황이 오면 바로 연락해요. 이홍만 따위는 전 눈곱만큼도 신경 안 써요.”예천우가 당당하게 말했다.“정말 무식한 자식이야!”김미원은 예천우의 말을 듣고 속이 터지는 듯했다.‘이 녀석은 자기가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건방지게 굴고 있어...’“네. 알겠어요.”류서연은 더 이상 김미원이 예천우에게 뭐라고 하는 걸 원치 않았기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내심으로는 예천우의 자신감이 그저 허세라고 생각할 뿐 그 말에 전혀 신뢰를 두지 않았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바라보며 예천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뭐 어차피 이홍만이 하루 정도는
“예천우 씨였군요!”류서연은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하자 반가움이 얼굴에 번져 나왔다.“그래요. 접니다. 서연 씨는 이렇게 급하게 어디 가는 길인가요?”예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저, 그게...”류서연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옆에 서 있는 진가인을 보았다. 너무 예쁜 여자라서 저절로 물었다.“혹시 이분은?”“제 동생입니다. 진가인이라고 해요.”예천우는 담담하게 대답했고 진가인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미묘하게 시무룩해졌다.“아, 동생이셨군요. 안녕하세요!”류서연은 밝게 인사하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기쁨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정작 본인도 그 이유를 잘 몰랐지만 진가인도 예의를 지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인사를 마치자마자 류서연이 곧장 물었다.“혹시 식사는 하셨어요? 아직 안 드셨으면 제가 한턱 낼게요. 전에 도와주셨던 걸 꼭 보답하고 싶어서요.”“괜찮아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예천우가 부드럽게 대답했다.그때 김미원이 다급히 뒤따라오며 서연을 불렀다.“서연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선글라스랑 마스크 써!”류서연 정도의 유명세면 어디서든 금방 들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 번이라도 얼굴이 알려지면 귀찮은 일들이 따라오기 마련이었다.류서연은 순순히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챙겨 썼다.김미원은 이때 비로소 예천우와 진가인을 흘끗 보았다.두 사람 다 범상치 않은 외모였지만 공공연히 아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인사만 가볍게 하고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류서연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뒤 다시 물었다.“그럼 지금 어디 가세요? 필요하면 제가 차 태워드릴게요.”“아니에요. 저희도 차 가지고 왔어요.”예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히려 서연 씨야말로 아까는 왜 그렇게 급하게 뛰어나오던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아... 정말 말도 마세요.”류서연은 한숨 섞인 얼굴로 털어놓기 시작했다.“아까 비행기에서 그 남자 있잖아요. 그 사람이 또 찾아와서 절 협박하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홍만은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류서연 씨, 생각은 정리됐나요? 제 여자 친구가 되겠다고만 하면 제가 가진 모든 인맥과 자원을 쏟아부어 서연 씨를 톱스타로 만들어 줄게요. 서연 씨가 원한다면 음악계뿐 아니라 영화계까지 이번 황 감독 작품의 여주인공 자리도 무조건 따낼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이홍만이 가진 힘과 류서연이 가진 재능만 합쳐지면 못 해낼 일이 없었다.이홍만이 보기에는 류서연이 딱 한 가지 부족한 건 제대로 키워줄 대형 기획사가 없는 점이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세상 물정도 모르고 3년 계약 끝나자마자 듣도 보도 못한 작은 회사에 들어간다니... 이 좋은 재능과 기회를 혼자 다 버릴 셈인가?’이홍만은 속으로 혀를 찼다.‘심지어 전 소속사도 멍청하다 못해 3년짜리 단기 계약을 받아주다니.’사실 류서연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아까 이홍만이 화장실 다녀올 때 김미원에게 분명히 말했다.“난 이런 일로 절대 흔들리지 않을 거니까 언니도 더는 강요하지 마.”그만큼 그녀의 뜻은 단호하고 분명했다.만약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피천 엔터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그녀가 그 작은 신생 기획사에 들어간 건 오로지 더 자유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류서연이 침묵하자 이홍만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이제껏 그가 눈여겨본 여자들은 반드시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었기에 자신감도 넘쳤다.“가만이 있어보니... 별로 제 제안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이홍만이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류서연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제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저한테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습니다. 아까 비행기에서도 보셨잖아요.”“남자친구라고요? 지금껏 서연 씨가 누구랑 사귄다는 소문 한 번도 못 들었는데요? 그 남자 이름이 뭔데요?”이홍만은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물었다.특히 비행기에서 봤던 그 남자는 내릴 때 혼자 따로 가버리는 걸 직접 봤기 때문에 더 의심스러웠다.“제 남자 친구는 연예계 쪽 사람이 아니라 말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