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이 가해질 때마다 지면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쾅! 쾅!거대한 분노에 휩싸인 한지훈의 공격은 이 가주를 점점 더 땅속 깊이 파묻히게 했다. 그녀는 무릎까지 전부 지면 아래로 꺼진 상태였고 엄청난 공격에 의해 입에서는 피를 내뿜고 있었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당 가주와 동 가주가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꼐 신속히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이런 건방진 꼬맹이가! 죽어!”당 가주는 분노의 포효와 함께 두 주먹에 엄청난 살기와 전력을 담아 허공에서 착지 중인 한지훈을 향해 달려들었다.한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날려 뒤로 십 보정도 후퇴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달려오는 당 가주를 노려보았다.쾅!그리고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둘의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처럼 들려왔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과 분노를 담은 한지훈의 주먹이 당 가주의 주먹과 부딪혔다.얼마나 세면 한지훈과 당 가주 둘 다 몇 걸음 후퇴한 뒤에야 중심을 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탁!당 가주는 바닥에 착지한 뒤에 음침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았다.‘저 자식, 왜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강해지는 거지?’이건 당 가주가 원치 않던 상황이다.전까진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그 확신 조차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한지훈도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당 가주를 노려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한편, 힘겹게 지면으로 올라온 이 가주의 두 다리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심지어는 양팔도 충격을 받아 하마터면 산산이 부서질 뻔했다.그녀가 착용한 백색 가면에도 이미 금이 간 상태였다. 그녀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멀리 있는 한지훈에게 살기의 눈빛을 보냈다. 동 가주 역시 한 걸음 한 걸음 이 가주의 옆으로 다가갔다.팔 한쪽이 부러진 원천걸을 제외하고 세 명의 반보천왕이 한지훈에게 분노의 살기를 내뿜었다. 원천걸은 원씨 가문 저택에서 한지훈과 대치하다가 가면을 쓴 천왕에 의해 팔이 부러진 뒤로 수술은 받았
한지훈은 그대로 허공에 날아가 피를 내뿜으며 땅바닥으로 추락해 버리고 말았다.잠시후 그는 손에 쥔 오릉군 가시로 땅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한지훈은 입가에 피가 묻은 채로 씩 웃었다. 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당 가주의 상태도 별로 좋지 못했다. 건장한 몸은 그대로 공기 중에 드러났는데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그는 분노의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호통쳤다.“북양왕! 그냥 패배를 인정해! 결과는 이미 정해졌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면 한번 고민은 해보지!”“하!”한지훈은 냉소를 짓고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네 가주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용국의 북양왕이 감히 무릎을 꿇을 수 있나? 내가 죽더라도 황천길로 두 명은 데리고 갈 거야!”“주제를 모르는 고집쟁이 꼬마 녀석이라고!”동 가주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그를 비웃었다.“하하!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소원을 이루게 해줘야지!”당 가주의 주변에 음산한 기운이 용솟음쳤다.4인은 진한 살기를 담고 다시금 한지훈을 향해 달려들었다.하지만 이번에 한지훈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피못에 쓰러진 용린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주변의 살기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그러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네 명의 가주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한지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곧이어 기운은 재빨리 반보천왕 절정에 이르렀다.당 가주는 당황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큰일이야! 돌파를 하려나 본데…!”동 가주 역시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어떻게 이런 일이… 이미 돌파의 계기를 단절해 버렸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진행되는 거야?”“이대로 가다가 저 녀석이 천왕경을 돌파하는 날에는 우리가 힘을 합쳐도 저놈의 상대가 되지 않아!”4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침묵에 빠졌다.당장이라도 다가가서 한지훈을 막아야 하는데 그들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원천걸은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박힌 단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푸흡..!동시에 그의 입에서 대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경악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진짜로… 천왕경을 돌파한 건가?”쾅!한지훈은 그대로 다리를 뻗어 원천걸을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원천걸은 끈 떨어진 연처럼 공중을 날다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가 추락한 자리는 마치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고 원천걸은 먹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그 광경을 목격한 다른 가주들의 얼굴도 경악으로 물들었다.그들은 바짝 긴장해서 한지훈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한지훈의 주변 공기도 이미 바뀌어 있었다.그에게서 비정상적인 압박감이 느껴진 것이었다.그것은 천지를 압도하는 기운이었고 세 사람의 영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강력했다. 한지훈이 이대로 천왕경을 돌파해 버릴 줄이야!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왕경을 우러러보고 수련에 뛰어들었던가!세 가주들도 반평생을 수련에 쏟았고 수많은 자원을 끌어다가 소비했지만 반보천왕에 그쳐야만 했던 경지였다.그런데 고작 20대에 불과한 한지훈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지금의 경지까지 돌파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세 가주들에게 천왕경은 가고 싶지만 꿈속에서도 갈 수 없는 금기된 영역이었다.4대 가문 내에서 속세를 떠나 수련에 미쳐 사는 스승님들도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업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세 가주는 동시에 물러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오늘의 싸움은 그들의 완벽한 패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여기 더 남아 있다가는 그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일 것이다.한지훈이 아직 안정화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철수해야 했다.세 가주는 동시에 시선을 교환하고 미친 듯이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원천걸을 챙길 여력도 없었다.천왕경을 돌파한 강자를 만나면 도망치는 게 정답이었다.한지훈은 도망치는 이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담히
당 가주가 쓸려나간 자리에는 깊은 홈이 패여 있었다.그의 팔은 충격으로 인해 뻘겋게 부어올라 이미 감각이 모두 마비된 상태였다.힘겹게 몸을 일으킨 당 가주는 음침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북양왕! 거기까지 해! 오늘 우리가 자네한테 실수한 건 인정하지!”한지훈은 냉소를 짓고 당 가주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거기까지 하라고? 내가 오늘 천왕경을 돌파하지 못했으면 난 당신들 손에 죽었을 텐데도? 난 당신들을 살려 보낼 마음이 없어!”그 말을 들은 당 가주의 얼굴은 그만 사색이 되어 버렸다.“지금 우리 4대 가문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겠다는 건가? 잊지 마. 용국 경내에 4대 가문의 세력은 넓게 분포되어 있어.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국왕이라고 해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는 우리라고!”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비웃음을 터뜨렸다.“국왕께서 못하신다면 내가 하지! 내가 바로 4대 가문을 향해 칼을 빼든 첫 번째 사람이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다시 주먹을 움켜쥐고 당 가주를 향해 달려들었다.당 가주의 얼굴이 급변했고, 그 순간 수십 개의 은침이 한지훈을 향해 날아갔다.한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허공에 손을 뻗어 오릉군 가시로 은침을 막아냈다.멀리 있던 동 가주가 다급히 소리쳤다.“당 가주, 가자!”그 외침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손을 뻗어 한지훈의 앞에 연막탄을 마구 던져댔다.펑!수십 개의 연막탄은 바닥에 떨어지며 즉시 폭파해 한지훈의 시야를 가리는데 성공했다.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신속히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안개 중에는 대량의 마취제 성분이 들어 있었다. 잘못 흡입하면 일시적으로 행동력을 잃게 하는 약이었다.안개가 사라진 뒤, 한지훈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세 가주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한지훈은 긴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를 감싸고 있던 무시무시한 기운이 사라지고 그의 입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다.압도적이던 그의 기운은 순식간에 천왕경에서 다시 반보천왕으로 돌아왔
한편, 강중에서는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대낮인데도 불구가고 먹구름이 하늘을 장악해서 음침하고 어두웠다.강우연은 불안한 표정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별장 내부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용운과 용형, 용월까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는 별장 안팎으로 수백 명의 신룡전 전사들 까지도. “어떡하죠? 지훈 씨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걸까요?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강우연이 다급한 어조로 물었고, 용운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답했다.“사모님,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주군께서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주군 옆에 용린도 있으니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에게서 연락이 왔겠죠.”“하지만….”강우연은 아까부터 강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께서 돌아오셨습니다!”“주군께서 오셨대요!”강우연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쏜살같이 뛰쳐나갔고 용운 일행도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정원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한지훈이 용린을 업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주변에는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신룡전 호위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그를 따르고 있었다.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별장 주변이 순식간에 밝아졌다.신룡전 인원 모두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한지훈의 등에 업혀 있는 용린에게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양팔은 이미 절단된 상태였고 핏물과 빗물이 섞여 온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한지훈은 처량한 눈빛으로 강우연을 바라보았다.용운 일행은 비를 맞으며 달려 나와 한지훈의 등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용린을 부축해서 내렸다.그들의 눈에 진한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그리고 그 순간, 신룡전 호위 전체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손을 가슴에 얹은 채 소리쳤다.“싸운다! 복수한다! 불태운다!”“싸운다! 복수한다! 불태운다!”“싸운다! 복수한다! 불태운다!”그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울렸다. 비록 간략한 말이었지
말을 마친 한지훈은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깊은 불안감에 휩싸였다.용운이 나서서 분노한 목소리로 명령했다.“당장 신룡전 모든 인원을 소집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그 어떤 무인도 강중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 강중 주군 본부에 연락해서 당장 모든 병사를 동원하여 강중을 수호하도록 해!” “그리고 북양에 연락해서 북양왕이 현재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전하고 30만 북양대군은 1급 경비 체제로 돌입하고 즉시 강중으로 지원을 오라고 전해! 용각의 장로들께도 주군이 중상을 입었다 전하고!”명령은 신속히 전달되었다.잠시 후.강중 주군 본부의 온병림은 연락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다.“뭐라고요? 북양왕이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라에 빠졌다고요? 그럼 지금 당장 병사를 동원하겠습니다!”순식간에 강중의 5만 사병은 지시를 받고 강중으로 통하는 여섯 개 성문으로 출발했다.그와 동시에 신룡전의 무사들을 포함한 전국의 강자들이 명령을 받고 강중으로 향하고 있었다.수많은 신룡전 무사들이 비밀 리에 강중에 잠입하여 불의의 침공을 대비했다.현 시점의 강중은 성문을 닫고 경계 태세에 돌입했기에 모든 출입은 엄격한 절차와 통제를 받았다.한편, 북양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용일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뭐라고요? 사령관님께서 혼수상태에 빠졌단 말입니까?”쾅!용일은 무섭게 포효하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망할 원씨 가문! 4대가문 나부랭이들! 북양 30만 대구는 당장 1급 경계 체제로 돌입한다!”지시를 들은 북양군은 순식간에 무장을 하고 전투 체제로 전환했다.그 시각, 용각.신룡전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용각의 장로들도 충격에 빠졌다.“뭐라고? 지훈이가 중상을 입었다고?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신한국은 다급한 목소리로 용운에게 물었다.“어르신, 주군께서는 이번에 원씨 가문 원천걸의 초대를 받고 복용골에 가셨거든요. 조금 전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원천걸은 4대가문 가주들과 짜고 주군을 암살하려
놀라움을 잠재운 뒤, 강만용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실 안을 왔다 갔다 했다.그리고 고민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비서에게 말했다.“즉시 용각의 명령을 전한다. 5만 금위군을 동원하여 4대가문 아지트를 면밀히 주시하도록! 다만 그들과 충돌을 일으켜서는 안 돼! 그들의 이상한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가 나한테 보고해!”“네, 장로님!”비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신속히 명령을 전달하러 나갔다.신한국은 굳은 표정으로 강만용에게 말했다.“이제 우린 뭐 하지? 4대가문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원천걸은 죽었어. 놈들이 화가 나서 무슨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지훈이 그 녀석, 대체 무슨 수로 원천걸을 쓰러뜨린 거야?”“누가 아니래? 원천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보천왕을 돌파한 무인인데 지훈이 녀석이 네 명이나 되는 반보천왕을 상대하면서 원천걸까지 죽이고 살아서 돌아왔다니! 나도 믿겨지지가 않다고!”팽진국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했다.“어쨌거나 우린 그들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해. 특히나 원씨 가문! 반보천왕이 죽었으니 어떻게든 지훈이한테 보복하려고 들거야! 원가의 대 선배인 원효천마저 출관했다는 건 그저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라고!”강만용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원효천은 원씨 가문의 5대 시조 중 한 명으로, 이미 10년 전에 반보천왕까지 돌파한 인물이었다.그는 오래 전부터 폐관수련에 들어갔기에 어쩌면 이미 천왕경을 돌파했을 가능성이 컸다.그리고 원효천은 원씨 가문 5대 시조 중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이름난 인물이었다.“맞아. 우린 원효천을 경계해야만 해. 과거 그놈은 혼자 힘으로 세 명이나 되는 외국 사령관의 목을 친 강자야! 그리고 4대 국왕의 찬양을 받았지. 잔인하고 교활한 놈이야!”신한국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국왕께 먼저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겠어.”말을 마친 강만용은 다른 장로들과 함께 재빨리 천자각으로 향했다.천자각.소식을 접한 국왕은 뜻밖에도 딱히 놀라거나 경악
“그럼 저희는 뭘 해야 합니까? 4대가문은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원효천마저 출관했습니다. 지금 상황에 저희로써 나중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어요.”그러자 잠깐 침묵하고 있었던 국왕이 입을 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원효천은 4대 국왕 시기에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라지?”“네, 맞습니다. 왕년에는 4대 국왕의 찬양을 받기도 했었죠.”강만용이 말했다.국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깐 고민한 후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하지. 내 직접 명령을 내려 3개월 이내에 원씨 가문의 아무도 한지훈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겠네. 하지만 3개월이 한계야. 3개월 뒤에는 한지훈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네.”“3개월이요? 너무 짧은 것 아닙니까?”강만용이 미간을 찌푸리자 국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이게 내 최선이야. 4대 가문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가 않아. 만약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어. 그래서 가끔은 나도 무기력함을 느낀다네.”그 말을 들은 장로들은 모두 침묵에 빠졌다. 그 시각, 원씨 가문 별장.거대한 거실 안에 수십 명이나 되는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자리했다.그들은 가문에서 새로 선발된 지도자급 인물들이었다.원천걸이 있어야 할 가주의 자리에는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그가 바로 원씨 가문 5대 시조 중 한 명인 원효천이었다.수십 명의 핵심 인물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공손히 원효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수련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르신!”원천걸은 음침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앉으라 손짓하고는 말했다.“이건 수십 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린 내부에서 단합하여 외적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오늘 회의 요점은 딱 두 가지야. 첫째, 새로운 가주를 선발하는 것. 둘째, 북양왕과 북양을 토벌할 대책을 세우는 것!”말이 끝나기 바쁘게 거실에 있던 인원들은 흥분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어르신, 그 망할 북양왕이 감히 우리 가주의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절대 놈을 살려둘 수 없어요
“미안하지만, 정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의도적으로 체면을 구기려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진천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한지훈이 귀담아들을 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오대명산의 각 원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들을 필요가 없었다.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해도, 한지훈 앞에 오면 누구 하나 예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국가 원수들조차도 한지훈은 이름을 외울지 말지 고민할 정도였다.전 세계에 백여 개국이 있는데, 한지훈이 언제 그들 이름을 다 외우겠는가?한지훈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며,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그저 덧없는 한때일 뿐이었다.“당신이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 줄 아는 거요?!”옆에 있던 소 씨 노인은 즉시 분노에 차서 책상을 치며 차갑게 소리쳤다.진천국은 산성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한지훈이 그런 인물을 모른다고 하다니?이건 노골적으로 진천국의 체면을 짓밟는 행위였다!하지만 소 씨 노인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진천국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젊은이, 나도 젊었을 땐 거만하긴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세상을 우습게 보면 안 돼.”진천국은 상위자의 태도로 차갑게 훈계했다.“용건이 뭡니까?”한지훈은 진천국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지훈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자, 진천국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한지훈이 거만하긴 했지만, 그만큼 기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럼 나도 본론부터 말하지. 처음엔 당신이 그냥 작은 가게 주인인 줄만 알았는데, 아까 당신의 태도에서 뭔가 좀 특별함을 느꼈소.”“하지만 나씨 가문에서 어떤 이득을 줬든 간에, 당신 따위가 우리 진씨 가문의 일을 망칠 순 없소. 내 딸도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그러니 우리 서로 체면 구기지 않으려면,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지.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멀리 떠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온갖 옥기들이 진열된 이 옥기 상점은, 얼핏 보기엔 평범한 옥들뿐이었고 그 흔한 최상급 옥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이렇게 별 볼 일 없는 가게를 지키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겠는가?한눈에 보기에도 이 가게의 주인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일 터였다!어차피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조금이라도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 대종문에 의탁했고, 일부는 오대 명산의 외부 제자가 되기도 했다.장사를 한다 해도 영기 회복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다.그런데 지금까지도 이런 이름 없는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건, 딱 하나를 의미했다. 이 가게 주인은 아무런 배경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이 뒷마당에서 현관으로 나왔다.한지훈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진천국의 미간은 더 깊이 찌푸려졌다.한지훈의 옷차림만 보고도, 진천국은 그에 대한 인상이 한두 단계 더 추락했다.“휴, 저 사람은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소! 요즘엔 병왕계에 오른 사람도 널렸는데, 저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지요!”진천국은 한숨을 쉬며 소 씨 노인에게 말했고, 소 씨 노인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영기 회복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용국은 유독 달랐다. 용국은 기운을 품은 나라였기에, 용국 대지 전체가 거대한 변화를 겪은 것이다!심지어 일반 백성이라도 체력이 조금만 받쳐주면, 저절로 병왕계로 돌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즉, 용국의 거리에서 젊은이 하나를 아무나 붙잡는다 해도, 무종에 입문했든 아니든 최소한 병왕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한지훈은 어쩐지, 완전한 일반인인 것 아닌가?그때, 한 젊은 여자 직원이 조심스레 진천국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진천국이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이 두 사람이 결코 선량한 손님이 아니라고 느꼈다.이 사람들이 한지훈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녀는 분
진천국은 바로 이러한 고려 끝에, 갑작스럽게 이 일에 진지하게 대응하게 된 것이었다.“음, 진 씨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진씨 가문이 부흥한다면 손해를 보는 건 나씨 가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그 옥기점 사장은 나계홍 손에 놀아나는 한낱 졸개에 불과할 겁니다!”“만약 진 씨 형님께서 부적절하다고 느끼시면, 저는 형님과 함께 그놈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소 씨 노인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보기엔, 그 작은 옥기점 사장은 분명 나씨 가문 쪽에서 무언가를 받아먹고, 나씨 가문 사람들과 짜고 이 한바탕 연극을 벌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단지, 진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혼인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다!“좋습니다. 장씨 가문 쪽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왔고, 장 도련님이 선이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더군요. 지금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바람만 불어주면 됩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절대로 어떤 변수도 생기게 해선 안 돼요!”진천국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계홍이란 자는, 워낙 생각이 치밀해서 아무나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위장이라 해도, 나계홍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예를 갖추는 성격은 아니잖습니까.”“그러니 저희가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를 또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 씨 노인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진천국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줄곧 그 사람을 몰래 감시하게 해왔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적어도 그가 오대명산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설령 자잘한 종문들과 조금 교류가 있다 해도, 우리 진씨 가문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더군다나, 장씨 가문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종문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령풍은 단순히 장씨 가문의 재능 있는 젊은이일 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장령풍은 반보 인왕계 강자의 자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도령이 사망한 뒤, 장씨 가문이 장령풍을 온 힘을 다해 양성하고
진선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들어선 이가 소 씨 노인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어질 상황을 짐작하며 아버지와 소 씨 노인이 또다시 자신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을 예감했다.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아빠, 옥기점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요. 전 먼저 갈게요!”진선은 말을 마치고는 바로 뒤돌아 나가 버렸고, 진천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지난 반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진선과 장령풍의 혼인을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선은 장씨 가문의 이 절세 천재에게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진천국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해도, 진선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사실 진씨 가문 역시 무도 세가였다.수십 년 전, 용국의 무종이 조정의 억압을 받으면서 진씨 가문은 무도를 버리고 상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러나 영기가 부활하고, 역외의 강자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세상은 다시 수백 년 전 무종이 독주하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기세였다.이에 진천국은 다시 무종 문파에 의지해보려는 생각을 품었다.하지만 오대 명산이나 장씨 가문 외의 다른 무종 문파들은 그에 비해 전혀 쓸모가 없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조상 대에 이미 장씨 가문과 인연이 있었기에, 장씨 가문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진선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진씨 가문은 장씨 가문의 위세를 빌어 재기할 수 있다.그때가 되면 진씨 가문은 틀림없이 비상하여, 더는 이 산성 같은 촌구석에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소 씨 어르신, 사실 지난 1년 동안 선이는 한 옥기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옥기점의 주인에게 약간의 감정이 있는 듯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진천국은 평소 소 씨 노인과 허물없이 대화하곤 했기에, 이 일 역시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사실 이 일이 장씨 가문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는 체면이 깎여 몹시 불쾌했다.무엇보다 그 옥기점의 사장은 이미 아내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