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강문복과 강희연은 씩씩거리며 강우연의 사무실을 찾았다.강문복은 안에 들어서자마자 강우연을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강우연! 이게 뭐 하자는 거지? 너 일부러 그랬지? 나 네 큰아버지야! 사람들 앞에서 큰아버지를 망신 줘?”강희연은 들어오자마자 사무실 환경부터 둘러보았다.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고급진 인테리어였다.강희연은 질투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강우연이 입고 있는 옷과 액세서리도 전부 명품 한정판이었다!강희연이 입고 있는 백화점 브랜드 명품에 비하면 가격 차이가 어마어마했다.예전에는 강우연 앞에만 서면 우월감에 차 있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그 사실이 강희연을 불편하게 했다.그녀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강우연! 시집 잘 갔다고 콧대 세우지 마! 나중 일은 모르는 거야! 20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린 알아! 넌 어차피 몸을 팔아 여기까지 올라온 더러운 년이야! 사는 곳이 바뀌면 승천이라도 할 줄 알았니?”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발 앞으로 다가온 강우연이 손을 뻗어 그녀의 귀뺨을 쳤다.짝 하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고개가 돌아갔던 강희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강우연을 노려보았다.“너 지금… 나 쳤어?”강희연은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크게 부릅뜬 그녀의 눈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강우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강희연! 경고하는데 여긴 강중 우연그룹 본사야. 나와 지훈 씨가 세운 회사라고! 오군 강운 그룹이 아니야!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바락바락 소리지르는 거지?”“그리고 방금 네가 한 말은 명백한 비방이야! 난 언제든 널 고소할 수 있어!”그 말을 들은 강희연은 깊은 충격에 빠져 입만 뻐금거렸다.강문복 역시 강우연의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그는 하려던 말을 도로 입안으로 삼켰다.고개를 돌린 강우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강문복을 바라보며 물었다.“저한테
차용증 얘기에 강문복의 얼굴이 음침하게 굳었다.하지만 아래층에서 한지훈에게 걷어차인 복부가 아직도 아팠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조카사위, 가족끼리 차용증은 너무하지 않아? 회사가 정상궤도에 들어서기만 하면 돈 돌려줄 거야.”“하!”한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을 믿지 강문복 당신 말은 전혀 신뢰성이 떨어지는데요?”“너!”강문복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하지만 부탁을 하러 온 입장이니 어쩔 수 없이 강우연에게 우는 소리를 했다.“우연아, 큰아버지도 힘들어. 회사가 나 없으면 안 돌아가. 이번에 운영자금이 부족하게 됐는데 이 사업이 망하면 회사도 파산하게 돼. 그때가 되면 우린 길바닥에 쫓겨날 거고 네 할아버지 무덤도 자리세를 내지 못해 옮겨지게 될 거야.”“할아버지가 생전에 널 얼마나 예뻐하셨니? 우릴 모른 척할 건 아니지?”강우연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오래전의 할아버지가 그녀를 아껴준 것은 사실이나 나중에 그녀에게 상처준 것도 사실이었다.강문복은 흔들리는 강우연을 보자 계속해서 말했다.“우연아, 큰아버지가 부탁 좀 할게.”말을 마친 강문복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그 모습을 본 강우연은 다급히 강문복을 부축하며 말했다.“이러지 마세요! 돈… 빌려드릴게요!”그 말을 들은 강문복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눈물을 쥐어짜며 말했다.“역시 우연이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예전에 큰아버지가 미안한 게 많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어.”그 말을 들은 강우연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지나간 얘기는 이제 하지 말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재무부에 전화를 걸어 개인 명의로 강운 그룹에 천억을 제공하겠다고 했다.곧이어 강문복은 비서의 전화를 받았다.“회장님, 회사 계좌로 천억 입금됐어요. 그쪽에서 돈을 빌려드렸나 봐요?”강문복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알았어. 이틀 정도 있다가 돌아갈 거야.”전화
그녀가 생각해도 참 괜찮은 아이디어였다.“네 말은 우연그룹 대표 큰아버지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우자는 말이야?”강문복은 재빨리 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강우연 이름뿐이 아니고 한지훈 이름도 이용해야죠. 비밀 리에 고객사 임원들을 만날 때 북양왕과 우리가 친척이라는 사실을 흘리면 얌전히 우리한테 돈 내밀지 않겠어요?”강희연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일리가 있네. 하지만 사람들이 속을까?”강희연은 눈을 반짝이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시도해 보지 않고서 어떻게 알아요? 어찌됐건 요즘 회사가 나날이 매출이 줄고 있으니 뭐라도 해야죠. 성공하면 우린 돈방석에 앉는 건데.”“그래! 해보자. 일단 투자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먼저 알아봐. 그들이 우연그룹을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만나야겠어.”강문복이 말했다.“알았어요. 나한테 맡겨요.”강희연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택시를 잡아 근처 호텔로 갔다.그날 오후, 강희연은 예쁘게 단장하고 강중 재벌들이 모이는 장소로 찾아갔다.저녁에 호텔로 돌아온 강희연의 손에는 수첩 하나가 들려 있었다.“아빠, 투자 의향 있는 사람들 명단을 적어봤어요. 다만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강우연이 미팅을 미룬 것 같아요. 일단 이 사람들부터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그래? 어디 보자… 윤아 제약, 보리 제약… 많네.”적어도 열 곳이 넘는 회사에서 투자를 원하고 있었다.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도 그들을 한데 합치면 적지 않은 규모였다.“그러게요. 우연그룹의 영향력이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어요.”“일단 회사 규모에 따라 순위를 매길 테니까 일단 윤아 제약 회장 진윤석부터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강희연은 노트에 있는 진윤석의 이름을 가리켰다.윤아 제약은 약재를 공급하는 회사였는데 인지도도 괜찮은 편이고 자산 규모도 100억 가까이 됐다.다음 날, 강문복은 강희연과 함께 윤아 제약을 찾았다.“어라? 전에 우연그룹 마케팅 부
상당한 금액이었기에 진윤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곤란하세요? 나중에 사업 잘되면 챙겨가는 배당금도 두둑할 텐데 곤란하시면 어쩔 수 없네요. 가자, 희연아.”강문복은 짐짓 불쾌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첫 번째로 찾은 투자자였는데 좀 실망이네요. 다음 투자자가 땡잡은 거죠 뭐.”강희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윤석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여기 오기 전에 미리 짜놓은 각본이었고 지금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잠깐만요! 싫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20억 투자할게요. 다만 우연그룹에 사실확인을 좀 하고 투자하겠습니다.”진윤석은 다급히 강문복 부녀의 앞을 막으며 말했다.“진 회장님, 협력하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뢰죠. 저희를 못 믿으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희도 굳이 윤아 제약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요.”말을 마친 강문복은 뒤돌아섰다.“아… 아닙니다.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바로 사인할게요.”진윤석은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했다.“진 회장님은 역시 큰일을 하실 분이네요. 입금 확인되었으니 서로 잘해봅시다. 곧 오군에서 제품 설명회를 할 예정입니다. 꼭 현장에 오셔서 같이 축배를 드시죠.”강문복은 싱글벙글 웃으며 강희연과 함께 윤아 제약을 나왔다.곧이어 그들은 예정대로 다음 회사를 찾아갔고 똑 같은 각본대로 행동했다. 그들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그렇게 불과 3일 만에 두 사람은 2백억이나 되는 융자를 받았다.그리고 한지훈 부부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렇게 3일 뒤, 사무실 문이 열리고 변호사들이 강우연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강 대표님, 저희한테서 가져가신 돈 어서 갚으시죠.”말을 마친 그들은 강문복 부녀가 회사 대표들과 사인한 계약서를 들이밀었다.“이건 큰아버지랑 사촌언니가 계약한 거고 저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강우연은 계약서를 보며 담담히 그들에게 말했다.“그들은 강 대표님의 이름을 대고 돈을 받아갔습니다. 투자 철회할 거니까 당장 돈 돌려주시죠. 안
강문복은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강우연, 너 바보니?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했어? 사람 모함하지 마! 너 비방죄로 신고할 거야!”“아니!”강우연은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내가 무슨 사기를 쳐? 넌 말을 왜 그렇게 하니? 나 네 큰아버지야! 예의 지켜. 내가 네 이름 좀 팔았다고 네가 나한테 뭘 어쩔 수 있는데?”“어차피 우연그룹 명의로 계약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널 찾아가겠지 날 찾아오겠어?”강문복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미 계약서에 손을 써두었기에 조사가 내려와도 그에게 피해가 올 일은 없었다.“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정말 돈 안 돌려놓을 거예요?”강우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싫어! 강우연 너 강씨 가문 사람으로서 회사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너도 책임을 져야지. 강운 그룹은 내 손에서 다시 전성기에 들어설 거야.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강문복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게 사람이 할 소리예요? 전성기요? 자기 실력으로 회사 키운 거 아니잖아요? 우리 우연그룹 이름 팔아서 사기친 돈으로 회사 확장하려는 거잖아!”강우연이 악에 받쳐서 말했다.“이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실력이 뭐? 내가 이 바닥에서 휩쓸고 다닐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 나 네 큰아버지야!”강문복은 눈을 부릅뜨고 웃어른 신분으로 강우연을 누르려고 했다.“미안한데 당신은 진작에 나랑 관계없는 인물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나를 집안에서 쫓아낸 그 시각부터 난 강씨 가문이랑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 됐다고요. 경고하는데 사기 친 돈 당장 돌려놓으세요! 그러지 않으면 가만 안 둘 거예요!”그렇게 말하는 강우연의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가만 안 두면 뭐? 웃기는 애네? 내가 피해를 볼 일은 없어. 넌 이 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이나 해!”강문복은 대수롭지 않게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탁!강문복은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강문복은 통화가 끊긴 알림을 듣고 욕설을
강우연이 물었다.“뭘 하려는 거예요?”한지훈은 진지한 얼굴로 아내에게 물었다.“강운 그룹 되찾고 싶지 않아?”그 말에 강우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할아버지의 심혈이 담긴 회사이긴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생전에 그녀에게 모질게 한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하지만 강운 그룹을 되찾고 싶은 마음은 줄곧 있었다.“그러고 싶어요.”강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됐어. 이 일은 나한테 맡겨. 당신은 회사에서 좋은 소식이나 기다려.”말을 마친 그는 회사를 나갔다.건물을 나온 그는 바로 온병림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인원들 동원해서 공항 봉쇄하고 그 인간들 내 앞에 데리고 오세요!”“알겠습니다!”온병림은 공손히 답한 뒤, 사병 백 명을 동원해서 공항으로 향했다.그 시각 공항.강문복 부녀는 탑승 준비를 하고 있었다.이때, 총을 든 무장 병사들이 공항에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그들을 포위했다.순간 당황한 강문복이 손을 머리 위로 쳐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왜 이러세요?”앞으로 나선 온병림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강문복에게 말했다.“강문복 씨랑 강희연 씨 맞나요?”두 사람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총을 든 병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맞게 찾았네! 데려가!”온병림의 지시가 떨어지자 병사 몇 명이 다가와서 강문복 부녀의 팔을 잡더니 차로 끌고 갔다.강문복 부녀는 미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소리쳤다.“대체 우릴 왜 체포하는 겁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요? 이거 인권 침해 아닙니까! 군부에 소송 걸 거예요!”하지만 그들의 외침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잠시 후, 강문복 부녀는 강중 주군 본부의 조사실에 끌려갔다.곧이어 한지훈이 도착했다.한지훈을 본 강문복은 벌떡 일어서며 욕설을 퍼부었다.“한지훈! 너였구나! 당장 우릴 풀어줘! 무슨 자격으로 우릴 잡아들여? 북양왕이면 다야? 법도 무시해도 되냐고!”“한지훈! 당장 우릴 풀어줘! 안 그러면 군부에 고발할 거
“아! 내 머리! 머리가 터질 것 같아!”강문복의 고통스러운 절규가 조사실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마치 대형 트럭이 머리를 뭉개고 간 느낌이었다.극심한 고통에 온몸이 떨려왔다.“돈 토해낼 거야, 말 거야?”한지훈은 싸늘한 목소리로 다시 질문했다.“돌려줄게! 돌려주면 되잖아! 그만… 그만해! 머리 터지겠어!”강문복이 고통스럽게 소리쳤다.한지훈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한지훈은 비웃음을 지으며 다리를 내리고 강문복에게 말했다.“그리고 빌려간 천억은 강운그룹의 모든 지분을 인수한 자금으로 치지. 오늘부터 강운 그룹은 더 이상 강문복의 회사가 아니야. 우연이가 인수할 거니까!”“뭐라고?”그 말을 들은 강문복은 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분노한 얼굴로 발악했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 강운 그룹을 인수해? 나를 회사에서 쫓아낸단 말이야? 꿈 깨! 그건 절대 못 들어줘!”“그래?”한지훈은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강문복을 빤히 바라보았다. 섬뜩한 눈빛에 강문복은 등골에 소름이 돋으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뭐… 뭐 하자는 거야? 한지훈, 네가 여기서 날 죽여도 그건 절대 양보 못 해! 강운 그룹은 내 회사야!”강문복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강운 그룹이 일단 강우연 밑으로 들어가면 그들 가족은 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재밌네.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보자고.”말을 마친 한지훈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곧이어 그는 강문복의 목덜미를 잡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강문복, 강운 그룹은 이미 파산 직전까지 갔던데? 우리가 빌려준 돈이 없으면 바로 문 닫게 생겼잖아? 그래서 천억으로 회사를 사들인다는데 뭐가 문제지? 당신들도 돈 받고 꺼지는 게 더 나을 텐데? 거부하면 가져간 돈 다시 토해내게 할 거야! 그때가 되면 강운 그룹은 그대로 망하겠지! 당신네 가족은 6백억이라는 채무를 떠안게 될 거고!”“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서 인수 제안을 한 거야. 할 거면 고개를 끄덕이고 거부할 거면 오늘 여기서 죽어!”한지훈의 두
모든 일을 마무리한 한지훈은 회사로 돌아가서 자초지종을 강우연에게 알렸다.한지훈의 얘기를 들은 강우연은 한참 침묵하다가 담담히 말했다.“고마워요, 여보.”한지훈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고맙긴. 앞으로 강운 그룹은 당신 거야. 강문복 일가는 아마 오군을 떠나게 될 거야.”강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강압적이기는 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한편, 도망치듯 오군에 돌아온 강문복 부녀는 짐을 싸서 저택을 떠날 준비를 했다.입구에는 총기를 든 사병들이 지키고 있었다.강문복은 사병들을 보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한지훈! 꼭 이렇게 해야 했어?”“잔말 말고 타!”한 사병이 짜증스럽게 말하며 강문복 일가를 차에 태웠다.“그래서 우릴 어디로 데려가려는 겁니까?”강문복이 물었다.소대장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서북으로 갈 거야! 거기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아!”“서북이요?”“거긴 황야잖아요!”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희연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한번 해본 적 없는 그녀인데 황무지로 뒤덮인 서북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리 없었다.게다가 농사를 하며 살아야 한다니!한편 일을 해결한 한지훈은 며칠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그 기간 동안 그는 한용이 남기고 간 천산어록의 마지막 두 장절을 복습하고 있었다.거기에는 천왕경을 돌파한 강자만이 터득할 수 있는 초식과 심법이 적혀 있었다.한지훈은 일주일을 거쳐 겨우 입문을 터득했다.비록 느리기는 해도 한용이 알았으면 크게 놀랄 성과였다.과거 한용은 거의 열흘을 공부해서 겨우 입문을 터득할 수 있었다.그런데 무려 3일이나 단축한 것이다!그만큼 한지훈은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그와 동시에 그는 강우연과 대결하며 무예를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강우연도 습득이 빠르고 자기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다.한지훈이 경지를 억제하고 그녀와 동등한 대결을 펼쳤을 때, 몇 번이나 그녀에게 질 뻔한 적도 있었다.한지훈도 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