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규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여전히 한지훈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한지훈, 너 원래 이렇게 뻔뻔한 놈이었냐? 허세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 우리 손우그룹이 얼마나 대단한 의료기업인지 알기나 해? 무려 S시 5개 대학병원과 의료협회 이사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네놈 말 한마디에 무너질 손우그룹이 아니란 말이야. 웃기지도 않네."손호중도 껄껄 웃었다. 정도현이 이따위 덜떨어진 사람을 데려다 쇼하는 게 몹시도 같잖아 보였다.그러나 한지훈 곁에 우뚝 서 있는 정도현은 왠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두 부자를 쳐다보고 있었다.담담하게 웃어 보인 한지훈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때가 되면 알겠지.""좋아. 10분 동안 잘 증명해 봐. 다음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몹시 기대되는군."손민규가 이죽거렸다.한지훈이 바로 망해버린 한정그룹 자제라는 사실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은 손호중도 전혀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약속한 시각이 거의 다가오자 손민규가 참지 못하고 또 도발했다."한지훈, 곧 10분이 다 돼가는데 왜 아무 소식도 없냐?"한지훈은 여전히 덤덤했다.바로 이때, 양복 차림의 남성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뛰어 들어오며 손호중에게 보고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17개 의료기관에서 동시에 우리 손우그룹과의 계약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또한 5개 대학병원 이사직도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누군가 거대한 자금을 들여 손우그룹을... 인수했습니다."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손호중이 경악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뭐,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보라고! 정말 모조리 거래를 중단했다고? 그룹이 인수됐다고? 지금... 우리 그룹이 망했다는 거야?""그렇습니다... 손우그룹은 파산했습니다..."수행비서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손호중은 눈앞이 깜깜해졌다.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멀쩡한 기업이 망한다고? 말도 안 돼!손호중이 몇몇 협력
손우그룹이 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7분이었다.한지훈이 어딜 봐서 별 볼 일 없는 망한 가문의 자제란 말인가. 그는 분명 거물이 틀림없었다.S시의 갑부도 이 정도의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제 아버지가 망연하게 주저앉은 모습을 본 손민규도 덩달아 절망했다. 아버지 곁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울부짖었다."아버지... 이제 우리 어떡해? 우리 진짜 망한 거야? 그럼 스포츠카랑, 별장이랑... 다 빼앗기는 거야?"철썩, 또 손민규의 얼굴로 손바닥이 날아왔다."이게 다 네 놈 때문이다!"당황한 손민규가 엉엉 울며 손호중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아버지!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의료협회 이사라고! 전 회장님께 연락드리자. 아는 인맥을 전부 동원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맞아, 전 회장님이 계셨지!"손호중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을 쳐다보았다."우리 집안이 이렇게 쉽게 망할 리 없어. 의료협회에 연줄이 있거든."손호중이 S시 의료협회 전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우는 소리를 냈다."전 회장님. 접니다, 손호중이요. 회장님, 부디 저 좀 도와주십시오. 손우그룹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글쎄 어떤 애송이가 무슨 수를 썼는지 저희 그룹이 하루아침에 파산했지 뭡니까... 저희 가문을 구해줄 수 있는 건 회장님밖에 없습니다."뚱뚱한 중년 남성이 의료협회 회장 사무실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전화를 받았다.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얼굴이 분노로 씰룩거렸다."뭐라고? 손우그룹을 파산하게 했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런 짓을.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심보로군. 내가 당장 해결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전화를 끊은 전동해가 얼른 병원으로 출발하라고 수행원들에게 명령했다.굽신거리며 한참 하소연하던 손호중은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가 이내 한지훈에게 이를 드러냈다."넌 끝났어. 손우그룹과 척지는 건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젠 널 도
전동해가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다가왔다. 권력가 특유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그를 보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환자들도 서둘러 뒤로 물러서긴 마찬가지였다.그의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전동해를 발견한 손호중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얼른 그를 맞이했다."전 회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제발 우리 손우그룹 좀 살려주십시오!"손호중을 쳐다본 전동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말어. 의료협회의 사람이 외부인에게 당하는 걸 내가 두고 볼 리 없잖나. 설령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건 우리 협회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어디서 외부인이 주제넘게 나서!"전동해는 말을 하면서 정도현과 한지훈 쪽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주의력은 전부 정도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한지훈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으니까.눈썹을 치켜올리며 정도현을 뚫어져라 쳐다본 그가 싸늘하게 말했다."정도현 자네가 손우그룹에 손댔나? 아무리 이 도시의 막강한 권력가라곤 하나 우리 의료협회를 함부로 건드릴 자격은 없을 텐데. 손우그룹은 우리 의료협회에 속해 있어. 건드리기 전에 적어도 내 허락은 맡아야 하는 거 아닌가?"전동해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음산하게 지껄였다.S시의 사람들은 정도현을 두려워했으나 그는 아니었다.일단 전동해와 정도현 사이엔 직접적인 이해 충돌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전동해는 의료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었기에 정도현도 쉽게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흙빛이 된 정도현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 한지훈을 흘끔거렸다. 순간 한지훈이 그를 시험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결심을 내린 정도현이 한발 다가가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충고 하나 하자면 전 회장도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게 좋을 겁니다. 회장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말이지요."정도현이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해가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비웃음을 흘렸다."기어코 의료협회와 척지겠다는 거군. 본인이 주먹질로 그 자리까
모든 이의 시선이 그 남성에게 쏠렸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검은 양복 차림의 소지성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살벌한 그의 분위기는 전동해를 훨씬 압도했는데 최상위 포식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경외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시... 시장님? 여긴 어떻게?"전동해가 얼른 그에게 다가가 살갑게 인사했다.그러나 소지성은 전동해를 무시로 일관하는 동시에 손호중 부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윽고 빠른 걸음으로 한지훈 곁으로 다가간 그가 슬쩍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한 선생님, 좀 늦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했다.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S시의 시장마저도 저 한지훈에게 고개를 숙이다니!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전동해의 낯빛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슬슬 엄습해 오는 불안함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손호중과 손민규도 창백하게 질린 채로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다. 그들은 차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지성과 한지훈을 번갈아 쳐다봤다.그들은 이젠 한지훈이 두렵기까지 했다.한지훈의 정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 시장조차도 그에게 고개를 조아리다니. 이건 그야말로 빅뉴스였다.소문 속 망한 가문의 빈털터리 그 '한지훈'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보였다.한지훈도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소 시장님, 전 회장은 여러 차례 권리로 사욕을 도모하고 자신의 직권을 남용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소지성이 엄숙한 목소리로 전동해에게 말했다."현 시간부로 당신은 의료협회 회장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또한 감찰부 조사에도 적극 협조해 주길 바랍니다."소지성은 전동해에게 사형을 선고한 거나 다름없었다.그동안 몰래 해온 짓들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몇십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해야 했다.소지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몇 명의 감찰부 인사
전동해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상대방의 압박을 계속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는 경기도 인천 도 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도 씨 가문은 신분이 높고 권력이 막강할 뿐만 아니라 용국에서의 인맥 또한 최소 시장급 인물들이었다.그런데 한낱 S 시 시장이 감히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그럼 상대방이 감당해야 할 결과는 풍비박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더군다나 도 씨 가문은 무슨 일이 생겨도 그들이 선택한 사람을 옹호하기로 유명했다. 전동해는 도 씨 가문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전임 시장이 콕 집어서 S 시 의료 협회에 꽂은 사람이기에 소지성이 지금 이렇게 함부로 그의 직위를 파면하는 건 도 씨 가문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전임 시장과 원한을 맺은 거나 다름없었다.S 시의 전임 시장 기이준은 현재 H 시에 서기관으로 파견 갔기에 그곳에서는 거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신분이었다!그런데 보잘것없는 S 시의 시장 따위가 감히 기 서기관의 뜻을 거역하다니! 그러다가 시장 자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도 씨 가문의 배후에는 용국의 명의 손강수가 있으며 손 명의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용국에서 내로라하는 레전드급 인물들도 전부 손강수의 환자였으며 용각 4대 원로들도 주기적으로 손강수와 만남을 가졌다.손강수는 용국에서 그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으로 모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전에 용국에서 발생했던 두 차례 역병에서도 손강수가 앞장서서 해결했던 것이며 덕분에 용국 수십만 명 국민의 생명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부터 용국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전동해의 말을 듣고 있던 소지성은 순식간에 눈살을 확 찌푸린 채 언성을 높였다.“전동해 씨! 경기도 인천이 아니라 S 시입니다! 전동해 당신의 의료 협회는 더더욱 아니고요! 저 소지성이 당신의 직위를 파면하는 결정에는 그 누구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경기도 인천 도 씨 가문의 파급력이 아무리
말을 하던 소지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큰 포부를 안고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의 앞길을 막는 걸림돌들이 너무 많았다.고개를 끄덕이던 한지훈은 전동해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상대방과 전화 연결에 성공한 전동해는 허리를 깊숙이 굽힌 채, 깍듯하고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도 가주님! 전동해입니다. 부탁을 드릴 일이 생겨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발 저를 좀 구해주세요! 소지성 저 사람이 어린놈 하나를 위해서 제 의료 협회 회장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법에 따라 저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있습니다! 도 가주님! 제발 저 좀 구해주세요…”전화기 너머 멀리 용국 중부 인천의 제1 명문 가문 저택에 있던 도승관은 인천 시장의 회진이 끝나자마자 전동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안색이 살짝 어두워진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소지성이 네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했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잠깐 기다려. 내가 지금 당장 기이준 서기관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일을 직접 처리하라고 하지!”도승관은 전화를 끊자마자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내 기이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기 너머 H 시 서기관 사무실에 있던 기이준은 갑자기 걸려 온 도승관의 전화에 환하게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하하, 도 명의께서 어쩐 일로 저에게 전화를 하셨나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높은 위치에 오랫동안 자리한 기이준은 눈치가 빨랐다. 그래서 상대방이 입을 열지 않아도 전화한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도승관은 경기도에서 소문난 명의로 용국 손강수 명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이었다. 기이준도 예전에 도승관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픈 곳이 말도 안 되게 깔끔하게 완치됐다.“기이준 씨,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소지성 그 사람이 전동해의 S 시 의료 협회 회장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설치고 있어요! 혹시 이 일, 알고 있나요?”도승관의 말에 화들짝 놀란 기이준이 재빨리 대답했다.
갑자기 젊은 목소리가 들리자 기이준은 눈살을 확 찌푸리더니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그쪽은 누구예요? 소지성 씨는 어디 있어요? 당장 전화 바꾸세요!”“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제부터 저랑 얘기하시죠. 제 요구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전동해 저 사람의 직위를 파면하는 거죠. 이게 제 뜻입니다. 기 서기관님이 동의하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직위까지 같이 파면해야 할 것 같습니다!”한지훈의 싸늘한 말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다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한지훈 저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미친 건가? 감히 기이준 서기관의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하다니!H 시 최고 권력자 곁에 있는 서기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기이준은 차기 최고 권력자의 유력한 후보였다. 때문에 그의 직위를 파면하려면 반드시 H 시 대회와 주요 요원들의 투표가 있어야 했다.전동해와 손호중 그리고 손민규는 한없이 건방진 한지훈의 헛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가 이내 비꼬는 듯이 쳐다보았다.“네놈이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감히 기이준 서기관님의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하하하!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네!”전동해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비꼬았고 손호중과 손민규도 말을 보탰다.“한지훈! 너 진짜 미쳤구나! 네가 정도현과 소지성을 알고 있다고 해서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아? 저분은 기이준 서기관님이야! H 시에서 엄청 유명한 분이라고! 저분 한마디에 S 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어! S 시 시장도 저분 의견을 존중하고 고려해야 하는데 네가 감히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기이준 서기관님의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소리!”사람들의 비아냥거림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한지훈은 핸드폰에 대고 다시 입을 열었다.“기이준 서기관님, 결정은 하셨나요?”“감히 건방지게! 당신 누구예요?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소지성 씨 바꾸라고요!”전화기 너머 기이준은
H 시 최고 권력자 동문혁은 기밀문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울린 사무실 전화기에 경보 등까지 반짝거리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는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뒤, 깍듯하고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동문혁입니다. 무슨 일이신가요?”전화기 너머로 싸늘하고 차가운 남자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상부 지시를 받고 통보 드립니다. H 시 동문혁 씨의 부하인 기이준 서기관은 권력을 남용하고 국가 재산으로 개인 사욕을 챙긴 죄로 지금 당장 서기관 직위를 파면하고 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예정입니다. 조만간 감찰 부서에서 직접 이 일을 처리하러 갈 겁니다!”“네… 네! 분부대로 처리하겠습니다.”순간, 동문혁은 경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자 그는 그제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지금 당장 기이준의 서기관 직위를 파면하도록 해! 그리고 감찰 부서 사람들이 조사할 수 있도록 당장 내 앞에 데리고 와!”전화를 끊은 동문혁은 온몸에 힘이 풀려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기이준은 동문혁이 직접 키운 부하이기에 기이준이 조사를 받게 되면 그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기이준 저놈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고 어떤 대단한 사람을 건드렸기에 갑자기 이런 통보를 받게 된 걸까?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수상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동문혁은 직접 알아보기로 마음먹고 다급하게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기이준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있었다.상대방이 감히 겁도 없이 5분 안에 그의 서기관 직위를 파면하겠다고 하다니. 정신 나간 헛소리가 틀림없었다!기이준은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자신만만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심장이 계속 쿵쾅거렸다!설마 상대방에게 정말 그 정도 실력이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목소리만으로
“미안하지만, 정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의도적으로 체면을 구기려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진천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한지훈이 귀담아들을 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오대명산의 각 원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들을 필요가 없었다.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해도, 한지훈 앞에 오면 누구 하나 예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국가 원수들조차도 한지훈은 이름을 외울지 말지 고민할 정도였다.전 세계에 백여 개국이 있는데, 한지훈이 언제 그들 이름을 다 외우겠는가?한지훈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며,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그저 덧없는 한때일 뿐이었다.“당신이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 줄 아는 거요?!”옆에 있던 소 씨 노인은 즉시 분노에 차서 책상을 치며 차갑게 소리쳤다.진천국은 산성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한지훈이 그런 인물을 모른다고 하다니?이건 노골적으로 진천국의 체면을 짓밟는 행위였다!하지만 소 씨 노인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진천국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젊은이, 나도 젊었을 땐 거만하긴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세상을 우습게 보면 안 돼.”진천국은 상위자의 태도로 차갑게 훈계했다.“용건이 뭡니까?”한지훈은 진천국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지훈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자, 진천국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한지훈이 거만하긴 했지만, 그만큼 기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럼 나도 본론부터 말하지. 처음엔 당신이 그냥 작은 가게 주인인 줄만 알았는데, 아까 당신의 태도에서 뭔가 좀 특별함을 느꼈소.”“하지만 나씨 가문에서 어떤 이득을 줬든 간에, 당신 따위가 우리 진씨 가문의 일을 망칠 순 없소. 내 딸도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그러니 우리 서로 체면 구기지 않으려면,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지.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멀리 떠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온갖 옥기들이 진열된 이 옥기 상점은, 얼핏 보기엔 평범한 옥들뿐이었고 그 흔한 최상급 옥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이렇게 별 볼 일 없는 가게를 지키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겠는가?한눈에 보기에도 이 가게의 주인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일 터였다!어차피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조금이라도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 대종문에 의탁했고, 일부는 오대 명산의 외부 제자가 되기도 했다.장사를 한다 해도 영기 회복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다.그런데 지금까지도 이런 이름 없는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건, 딱 하나를 의미했다. 이 가게 주인은 아무런 배경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이 뒷마당에서 현관으로 나왔다.한지훈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진천국의 미간은 더 깊이 찌푸려졌다.한지훈의 옷차림만 보고도, 진천국은 그에 대한 인상이 한두 단계 더 추락했다.“휴, 저 사람은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소! 요즘엔 병왕계에 오른 사람도 널렸는데, 저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지요!”진천국은 한숨을 쉬며 소 씨 노인에게 말했고, 소 씨 노인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영기 회복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용국은 유독 달랐다. 용국은 기운을 품은 나라였기에, 용국 대지 전체가 거대한 변화를 겪은 것이다!심지어 일반 백성이라도 체력이 조금만 받쳐주면, 저절로 병왕계로 돌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즉, 용국의 거리에서 젊은이 하나를 아무나 붙잡는다 해도, 무종에 입문했든 아니든 최소한 병왕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한지훈은 어쩐지, 완전한 일반인인 것 아닌가?그때, 한 젊은 여자 직원이 조심스레 진천국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진천국이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이 두 사람이 결코 선량한 손님이 아니라고 느꼈다.이 사람들이 한지훈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녀는 분
진천국은 바로 이러한 고려 끝에, 갑작스럽게 이 일에 진지하게 대응하게 된 것이었다.“음, 진 씨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진씨 가문이 부흥한다면 손해를 보는 건 나씨 가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그 옥기점 사장은 나계홍 손에 놀아나는 한낱 졸개에 불과할 겁니다!”“만약 진 씨 형님께서 부적절하다고 느끼시면, 저는 형님과 함께 그놈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소 씨 노인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보기엔, 그 작은 옥기점 사장은 분명 나씨 가문 쪽에서 무언가를 받아먹고, 나씨 가문 사람들과 짜고 이 한바탕 연극을 벌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단지, 진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혼인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다!“좋습니다. 장씨 가문 쪽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왔고, 장 도련님이 선이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더군요. 지금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바람만 불어주면 됩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절대로 어떤 변수도 생기게 해선 안 돼요!”진천국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계홍이란 자는, 워낙 생각이 치밀해서 아무나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위장이라 해도, 나계홍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예를 갖추는 성격은 아니잖습니까.”“그러니 저희가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를 또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 씨 노인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진천국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줄곧 그 사람을 몰래 감시하게 해왔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적어도 그가 오대명산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설령 자잘한 종문들과 조금 교류가 있다 해도, 우리 진씨 가문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더군다나, 장씨 가문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종문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령풍은 단순히 장씨 가문의 재능 있는 젊은이일 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장령풍은 반보 인왕계 강자의 자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도령이 사망한 뒤, 장씨 가문이 장령풍을 온 힘을 다해 양성하고
진선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들어선 이가 소 씨 노인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어질 상황을 짐작하며 아버지와 소 씨 노인이 또다시 자신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을 예감했다.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아빠, 옥기점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요. 전 먼저 갈게요!”진선은 말을 마치고는 바로 뒤돌아 나가 버렸고, 진천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지난 반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진선과 장령풍의 혼인을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선은 장씨 가문의 이 절세 천재에게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진천국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해도, 진선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사실 진씨 가문 역시 무도 세가였다.수십 년 전, 용국의 무종이 조정의 억압을 받으면서 진씨 가문은 무도를 버리고 상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러나 영기가 부활하고, 역외의 강자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세상은 다시 수백 년 전 무종이 독주하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기세였다.이에 진천국은 다시 무종 문파에 의지해보려는 생각을 품었다.하지만 오대 명산이나 장씨 가문 외의 다른 무종 문파들은 그에 비해 전혀 쓸모가 없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조상 대에 이미 장씨 가문과 인연이 있었기에, 장씨 가문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진선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진씨 가문은 장씨 가문의 위세를 빌어 재기할 수 있다.그때가 되면 진씨 가문은 틀림없이 비상하여, 더는 이 산성 같은 촌구석에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소 씨 어르신, 사실 지난 1년 동안 선이는 한 옥기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옥기점의 주인에게 약간의 감정이 있는 듯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진천국은 평소 소 씨 노인과 허물없이 대화하곤 했기에, 이 일 역시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사실 이 일이 장씨 가문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는 체면이 깎여 몹시 불쾌했다.무엇보다 그 옥기점의 사장은 이미 아내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