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설현아, 내가 젊었을 적에 말이다. 난 네 아빠와 함께 서로 믿고 도우며 회사를 일으켰어. 오늘의 리양과 도영이 있기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지. 우린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과도 같은 관계야. 도영이 요즘 위기를 겪고 있는데 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용경의 소영제약도 지금 오군 시장에 진군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그들은 이곳에 의학 산업단지를 창설할 생각이야.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우리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어!”“나중에 그런 거물을 상대해야 하는데 아마 그쪽에서 제시한 제안이 나보다 더 좋을 것 같아?”도설현이 말이 없자 송경림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다행히 소영 그룹 오너 일가와 내가 친분이 좀 있어. 그러지 말고 나랑 손을 잡자. 도영에서 연구성과를 공유해 주고 이윤을 50프로 정도만 우리 리양에 양보하고 소영에도 어느 정도 이윤을 챙겨주면 내가 어떻게든 소영 제약을 설득해 볼게. 그때가 되면 넌 신약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윤만 챙기면 되는 거야. 얼마나 편하고 좋은 일이야?”송경림이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50퍼센트나 되는 이윤을 리양에 양보하는 것도 모자라 용경의 소영제약까지 챙기려면 도영그룹이 가져가는 이윤은 극히 미미했다.뻔뻔한 인간들 같으니라고!도설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분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여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했다.“제약 회사 회장이나 된다는 사람이 여자한테 협박질이나 해가면서 장사해요? 이게 당신들 리양의 기업 문화인가?”등 뒤에서 싸늘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양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한지훈이 냉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지훈 씨!”도설현은 한지훈을 본 순간 화색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쩐 일인지, 조금 전 느꼈던 불안하고 초조했던 감정이 그가 나타난 순간 순식간에 사라지고 든든한 느낌마저 들었다.“왜 이제야 왔어요?”그녀가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송경림의 얼굴에 교활한 미소가 피어났다.“그럼 리양은 이윤을 어느 정도 가져가실 겁니까?”한지훈이 물었다.송경림은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며 말했다.“리양이 모든 걸 맡아서 하니 당연히 50퍼센트는 챙겨 가야지.”별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한참이 지난 후, 한지훈은 시시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결론적으로 도영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윤은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네요? 게다가 신약 연구 일지까지 리양에 넘겨야 하고요. 송 회장님,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 그걸 다 소화하다가 배탈 나요.”송경림이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았다.하지만 상대에게서 풍기는 진한 살기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송 회장님, 사람이 욕심을 너무 부리면 탈 나요.”한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제가 제안 하나 하죠. 지금 당장 기자들 불러서 리양제약이 파산했다고 알리세요. 그러지 않으면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송경림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는 음침한 얼굴로 와인잔을 거칠게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미친놈이 뭐라는 거야!”한지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회장님도 협박은 기분 나쁘죠? 저도 그렇습니다. 도영그룹은 당신이 마음대로 주무를 정도로 만만하지 않아요.”“그래, 그렇게 나온다 그거지?”송경림이 음침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무사히 이곳을 나가고 싶으면 지금 당장 연구 일지를 우리한테 넘기는 게 좋을 거야.”이때, 도설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차갑게 말했다.“아저씨, 아빠가 이 일을 알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 봤어요?”“하!”송경림이 비웃음을 터뜨렸다.“네 아빠는 본사 일을 해결하느라 바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고. 알면 뭐 어때? 내 도움 없이 이 사업을 무사히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설현아, 상황 파악 다 했으면 얌전히 계약서에 사인이나 해. 그럼 내가 옛정을 생각해서 오늘 나한테 무례하게 군 건 문제 삼지 않을게.”“뭐라고요?”분노한 도설현의
경호원들이 모든 출입구를 봉쇄하고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한지훈과 도설현을 노려보고 있었다.도설현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한지훈의 등 뒤에 서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한지훈은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만만한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각자 최소 병왕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자들이었다.그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송경림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조 회장, 일만 제대로 해결되면 더 좋은 술을 선물하지.”그 말을 들은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능구렁이 같은 것도 여전하군.”송경림이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에게 다가가서 귓속말로 몇 마디 하자 남자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물었다.“네가 한지훈이야?”한지훈이 대답 대신 인상만 찌푸리고 있자 조회장이라는 남자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저놈 팔 한쪽만 부러뜨려.”그 순간, 한 경호원이 허리춤에서 번쩍이는 칼을 꺼내들더니 한지훈의 왼팔을 노리고 달려들었다.“악!”겁에 질린 도설현은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다.송경림은 음침한 얼굴을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참고 있었지만 한지훈을 죽도록 패주고 싶은 마음은 전부터 있었다.그는 가만히 있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잠시 후, 한쪽 팔이 잘린 채로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상상했다.송경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달려오는 상대를 노려보고는 다리를 들어 상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쾅!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에게 달려들었던 남자가 끈 떨어진 연처럼 공중을 날아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반격이었다.강력한 한방에 제대로 당한 상대는 갈비뼈가 부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 아마 지금 상태만 보면 반평생 휠체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송경림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저놈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조회장의 칼이라고 불리는 경호원 중 하나를 한방에 제압하다니!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조원용은 이미
강한 불안감에 판단력이 흐려진 건지, 조원용의 안색은 초조했다. 오랜 세월 지하 세계를 구르며 터득한 그의 경험은 먼저 선빵을 날리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질 거라고 말해주고 있었다.일곱 명의 경호원들이 동시에 한지훈을 향해 달려들었다.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오른 주먹을 휘둘러 그들 중 한 명의 머리를 가격했다.콰직!아찔한 소리와 함께 그자는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지고 이명이 들리더니 고개가 돌아간 채로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한지훈은 순식간에 상대의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빼앗았다.그리고 날카롭고 신속하게 무기를 휘둘렀다.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경호원들의 비명이 이어졌다.그들은 저마다 팔에 자상을 입고 피를 뚝뚝 흘리며 고통스럽게 신음했다.그들 중 한 명이 주먹을 쥐고 반대쪽 방향에서 공격을 시도했다.한지훈도 봐주지 않고 날렵하게 몸을 날려 상대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무릎으로 상대의 얼굴을 찍어버렸다.아찔한 타격음과 함께 상대는 두 눈을 뒤집으며 그대로 기절했다.한지훈은 쓰러진 놈의 뒷덜미를 잡고 테이블에 가볍게 던졌다. 테이블에 놓였던 고급 양주와 와인이 바닥에 떨어지며 아수라장이 되었다.순식간에 그는 조원용의 수하들 절반을 제압했다.조원영은 가슴이 떨려왔지만 두려움을 내비치면 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싸늘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너 대체 누구야?”“날 몰라?”한지훈이 싸늘하게 되물었다.그는 한발 한발 조원영에게 다가가며 앞을 가로막는 그의 경호원들을 한 명씩 해치웠다. 그리고 조원용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힘껏 밀쳤다.조원용은 겉으로는 평온한 척하고 있었지만 미친 듯이 흔들리는 눈빛이 그의 심정을 대편하고 있었다.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한지훈에게 말했다.“대체 이가 다 무슨 짓이야!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내가 누군 줄 알아?”한지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 상황에도 허세는. 그래서 당신이 누군데?”“난 동해 청용파 수장 조원용이야! 내 한마디면 동해시
여유만만하게 문을 잠그는 모습에 조원용은 가슴이 철렁하고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대체 뭘 하려는 거지?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그의 행동에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 치밀었다.조원용은 인근 도시 조폭 세계의 수장인 자신마저 이 방에서는 그냥 장기판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현재 동해시의 지하세계 일인자로 군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을 물리쳤던가. 그런데 무능하기로 소문난 저 데릴사위 신분의 손에 놀아날 줄은 몰랐다.이곳에 오기 전, 그는 한지훈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진행한 바, 그가 중소기업 데릴사위에 현재는 백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수한 뒷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그랬던 그가 자신의 칼이라고 자부하는 여덟 경호원을 순식간에 해치울 줄이야!조원용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한지훈은 사실 모 무술 세가의 후계자가 아닐까?수련을 위해 잠시 위장 신분으로 이 도시에 온 게 아닐까?그게 아니라면 그가 순식간에 병왕급 경호원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게 말이 안 됐다. 게다가 몸에서 뿜어대는 비범한 살기도 일반인의 것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었다.“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군. 내가 사과하지.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말로 해결해.”결국 조원용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한지훈에게 사과했다.하지만 상대는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다리를 들어 조원용의 무릎을 걷어차서 바닥에 꿇렸다. 우드득 하는 아찔한 소리와 함께 조원용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동해시 지하 세력의 황제라고 군림하는 인물이었고 오군의 정도현과 동급인 존재였다.동해시와 오군의 정부 인사들마저 그들을 보면 예의를 갖추는데 지금은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한지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이 정도면 분이 풀렸어? 이번 일은 내가 사과한다니까? 오군에 와서 이 일에 끼어드는 게 아니었어. 판단 실수야. 친구 한 명 생긴다 생각하고 너그럽게 이번 일을 넘어가 주면 앞으로 자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내 언제든 최선을 다하겠네.”조
그는 담담히 고개를 젓고 냉소를 지으며 송경림을 가리켰다.“차라리 저 녀석 귀뺨을 때려. 내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그럼 생각해 보지.”순간 송경림이 당황하며 눈을 부릅떴다.이게 무슨 개소리인가?조원용에게 귀뺨을 때리라고 시킨다니!내가 뭘 잘못했다고?난 가만히 있었는데…..송경림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그는 울상을 지으며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한지훈, 이 빌어먹을 자식아!”그는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훈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한지훈은 가볍게 손을 들어 송경림의 귀뺨을 날렸다. 후자는 그대로 공중을 날아 벽에 처박혔다.“이렇게 하면 돼. 어떻게 할 거야?”한지훈은 싸늘한 눈빛으로 조원용을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넌 내 손에 죽을 거야.”조급해진 조원용은 송경림과의 오랜 우정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송경림에게 달려가서 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퍽!경쾌한 타격음이 별실 내부에 울렸다.분노한 송경림은 얼굴을 감싸며 미친 사람처럼 고함을 질렀다.“조원용, 때리란다고 진짜 때려? 너 미쳤어?”짝!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또 다시 강력한 타격음이 들려왔다.“조원용, 너….”분노한 송경림이 조원용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밑바닥 양아치부터 현재의 조폭 수장까지 올라온 조원용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조원용은 그대로 송경림을 깔아뭉개고 날렵하게 손을 날렸다.짝! 짝!한지훈은 그제야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도설현을 돌아보았다.“봤죠? 저들끼리 싸우네요?”도설현은 그런 그를 힐끗 흘겨보고는 도도하게 별실을 나갔다.한지훈은 지금도 바닥에 엉겨붙어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중년 남자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그렇게 별실 안에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조원용과 송경림만 남게 되었다.둘 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피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조원용은 맞아서 너덜너덜해진 송경림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싸늘하게 말했다.“갔어. 그만 일어나도 돼.”송경림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청용파 소속 호위당 당주 차성호!그는 조원용의 오른팔로 동해시에서 한가락 하는 인물이었다.수법이 잔인하고 청용파에서도 실력이 가장 좋은 인물 중 한 명이었다.과거 차성호가 조원용을 찾아갔을 때, 칼 한자루로 수십 명을 쓰러뜨린 위엄을 자랑하며 하루아침에 청용파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게다가 그는 거친 겉모습에 비해 모략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차성호를 이미 조원용의 대를 이을 청용파 후계자로 인정하고 있었다.호텔 입구에 선 차성호는 음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큰 형님께서는 오늘 호텔을 빠져 나가려는 놈은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다들 명심해. 이 호텔이 오늘 우리의 전장이야. 들어가서 안에 살아 있는 놈들을 모두 제압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려!”순식간에 오십 명 정도의 거친 사내들이 칼을 들고 호텔로 들이닥쳤다.순식간에 호텔 레스토랑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험악한 인상에 칼을 들고 들이닥친 조폭들 때문에 호텔 직원과 식사하던 손님들은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쳤다.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조폭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순식간에 호텔 직원을 포함한 모든 인원을 제압했다.줄곧 별실에 숨어 있던 조원용은 차성호의 연락을 받고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는 짐짓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잘했어, 차성호! 지금 당장 내려가지. 오늘 그 녀석의 머리통을 박살 내 줄 거야!말을 마친 그는 송경림을 내버려 둔 채, 홀로 별실을 나가 로비로 내려갔다.그 시각, 별실에 숨어 있던 송경림은 냉소를 지으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차성호는 너덜너덜한 상태로 걸어 나오는 조원용을 보고 순간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큰 형님이 저 정도로 맞았다고? 대체 누가?’아무리 동해시가 아닌 오군이라고 해도 청용파 수장인 그를 누가 감히 건드린단 말인가!정도현이 이 자리에 와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 맞이했을 것이다.게다가 조원용의 신변에는 날카로운 칼이라고 불리는 여덟 경호원이 있었다.‘그 자식들은 어디 있지?’차성호는 이곳에
“네, 형님.”차성호가 비장한 표정으로 응답했다.”호위당 멤버들, 다 들었지? 호텔을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한지훈이라는 놈을 찾아내! 발견하는 즉시 사지를 분질러서 큰 형님 앞으로 끌고 오는 거야!”조원용은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청용파 수장인 그가 손바닥 만치 작은 오군에서 수모를 당할 수는 없었다.여기서 물러서면 앞으로 세력을 넓히는데 크게 방해가 될 것이다.정도현의 비웃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그런데 이때,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회장, 내가 그렇게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별실을 나와 도설현을 집까지 데려다주려던 한지훈이 로비에서 들리는 아우성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와봤더니 조직 폭력배들이 호텔 직원과 손님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그 광경을 목격한 한지훈은 깊은 분노를 느꼈다.자신을 찾는다고 무고한 시민을 괴롭히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소리를 들은 조원용과 차성호가 고개를 돌리자 살기로 번뜩이는 눈빛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한지훈의 옆에는 천사 같은 외모의 도설현까지 서 있어서 더 이목을 끌었다.이 남자란 말인가?차성호는 인상을 확 구기며 속으로 경악했다.상대는 수십 명의 조폭들을 보고도 전혀 두렵거나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도설현은 긴장된 눈빛으로 한지훈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다가오는 한지훈을 발견한 조원용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냉소를 지었다.“의리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군! 도망치지 않은 건 칭찬할만해. 하지만 살아서 여길 나가는 건 힘들 거야.”한지훈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이런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나를 잡겠다고?”“이 오만방자한 녀석! 지금 네 앞에 있는 게 누군지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발끈한 차성호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고함쳤다.“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우리 형님한테 납작 엎드려서 사과드려! 그러지 않으면 너 때문에 이 호텔에 있는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거야!”차성호가 느끼기에 눈앞의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
천산 장 씨 집안과 항산 사이에는 서로 맺은 약속이 있었다. 오늘 이 자소화도 사실은 천릉자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소화 자체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지만, 꽃이 피기 전의 자소화를 찾는 건 매우 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다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기 전에, 산속의 맹수들에 의해 먹히고는 만다. 사실 천신계 강자에게 있어, 자소화의 장점은 셀 수 없이도 많았다.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순조롭게 2성 현급 천신계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유혹 앞에서, 장령풍은 장 씨 집안과 항산의 약속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이 자소화를 손에 넣을 생각뿐이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 천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령풍, 작은 것을 얻으려고 큰 것을 잃으려 하지는 마. 당시 한지훈의 그 사건도 장 씨 집안이 자초한 일이었어. 네가 자소화를 손에 넣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사실 전에 5대 명산, 항산 그리고 천산 장 씨 집안이 줄곧 천릉자를 치켜세운 이유는 그 배후에는 아주 큰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불세출의 천재란 타이틀을 근본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사실 천릉자는 이미 30년 전에 항산 문하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항산은 줄곧 그를 중점 육성 대상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그렇게 4년 만에 단번에 천신 경계를 돌파하게 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가짜였지만, 그 최종 목적은 천릉자를 이용하여 한지훈을 호되게 밟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유 씨 어르신의 발언과 언론을 통해 한지훈은 영원히 용국의 치욕이라는 이미지로 매장하려는 속셈이었다.그러려면 이 과정에서 천릉자의 후광을 더욱 밝게 비추어야 했다. 그의 후광으로 한지훈의 공적을 덮어 그를 폄하하고 말살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이었다. “장 씨 집안의 계략이 뭐가 대수야? 난 지금 오직 이 자소화만 갖고 싶을 뿐이야!”장령풍은 여전히 굳은 표정
만약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이 내용이 보도된다면 전 세계를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될 것이다.필경 현재 용국은 물론, 심지어 전 세계가 모두 한지훈이 단지 일성 준 천신계의 실력으로 10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참살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한지훈과 용국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그 배후에 호천 창세가 손을 쓴 거라면 용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지훈은 또 어떻게 될까? 과연 누가 용국을 두려워하겠는가? 아마 그 누구도 한지훈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 않을 것이다.“됐어, 한지훈 그 반역자에 대해서는 이쯤하자. 저 두 사람의 시합이나 지켜보자고!”유 씨 어르신은 의도적으로 반역자라는 세 글자를 강조하며, 한지훈의 못된 이미지를 제대로 박았다. 한편 그 시각, 한지훈도 어느새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은 여전히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장령풍의 상황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새하얀 도포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장령풍은, 어느새 피범벅이 되었고 분노 가득한 두 눈동자는 천릉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천릉자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여유롭게 한 손을 짊어진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듣기로는 너희 장 씨 집안 삼절진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역시나 명실상부라 느껴지긴 하는구나. 하지만 다만 아쉬운 건, 넌 아직 제대로 불꽃이 튀지 않아 천절진의 위력은 크게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앞으로 만약 10년만 더 지나게 된다면, 나중에 나의 천망 검진은 너를 더 이상 격파하기도 어렵게 될 거야. 하지만 어찌 됐든 그건 10년 후의 일이니, 오늘은 일단 이 자소화를 나한테 양보해!”이내 천릉자가 허리 굽혀 자소화를 따려는 순간, 숲속에서는 갑자기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오옥!”불곰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맹호 한 마리가 갑자기 숲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천릉자와 장령풍 모두 멍해졌다. 전에 5대 명산 고수들이 이미 산꼭대기를
유 씨 어르신의 말에, 임설은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기가 돌아온 후, 모든 사람들의 몸에는 큰 변화가 생겼고 저항력도 강해졌을 뿐만 신체능력도 향상되었다.그러나 마찬가지로 맹수들도 더욱 강해졌다. 만약 임설이 맹호를 상대한다면, 그건 바로 먹잇감이 되는 것이었다.당시 한지훈의 일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을 상대하다니, 게다가 모두 한지훈보다 한두 단계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라니. 비유하자면 당시의 한지훈은 마치 현재의 임설과도 같았고, 그 십여 명의 역외 강자들은 바로 맹호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대결 결과는, 전혀 추측할 필요가 없이 다들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당시 그 대결이 만약 오로지 한지훈의 소행이었다면, 이건 합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유 씨 어르신은 뒷짐을 진 채 오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필경 유 씨 어르신은 화산 고수중 한 명이었기에, 그의 말은 신빙성이 아주 높았다. 게다가 진정한 무도 중인 만이 한지훈이 당시 직면한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유 씨 어르신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종이 점점 강해지게 되면서, 현재 더욱 많은 일반인들이 모든 경계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잘 알게 되었다. 천신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전신계라 하더라도 작은 경계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즉 천릉자는 비록 일성 준 천신의 최고 실력에 도달하긴 했지만, 그가 2성 천신계를 돌파하지 못한 이상, 2성 천신계 상대에게 있어 그는 마치 땅강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이 전혀 같은 수평선에 놓여있지 않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겠는가? “어르신, 그 말씀은 전에 한지훈이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뜻인가요?”임설이 다시 물었다. “그래.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네. 너희들 아직도
임설은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임설이니?”바로 이때, 임설의 뒤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씨 어르신?”고개를 돌린 임설은, 뒤에 선 노인을 보고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급히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가 유 씨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바로, 세속에서 활동 중인 화산 강자이자 현재 무도 재판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게다가 화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유 씨 어르신은 세속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매체인으로서 임설 역시 유 씨 어르신이 낯설지는 않았다. 게다가 전에 그녀는, 유 씨 어르신의 인맥을 통해 5대 명산의 3기 다큐 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왜 여기 계신 거예요?”임설은 겉으로는 궁금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심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장령풍과 천릉자 두 사람이었기에, 같은 5대 명산인 화산에서 사람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단지 길을 가던 중 한번 와서 본 것일 뿐이야.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이젠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이들이야말로 용국의 미래 희망이지!”유 씨 어르신은 눈을 지그시 뜨고는 산 꼭대기 쪽을 유유히 바라보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임설은 급히 보조 카메라 감독을 불러 휴대폰으로 촬영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유 씨 어르신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르신, 어르신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오늘 이 자소화, 과연 어느 집안이 가져갈 거라고 예상하시나요?”필경 유 씨 어르신의 신분 지위는 꽤나 높았기에, 아마 일부 내막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5대 명산끼리의 호흡은 결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령풍과 천릉자가 맞붙기도 전에, 아마 암암리에 모든 준비를 마쳤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아이고, 그 질문은 좀 난처하네. 원칙부터 말하자면, 장 씨 집안 역사는 엄청 유구하지. 우리 용국의 많은 비진도 모두 장 씨 집안으로부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