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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천도준은 어이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침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갑자기 여우가 되었다고?

오남미에게서 들은 바로는 임설아는 아주 보수적이고 착한 여자라 오남준과 남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손밖에 잡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천도준은 시력도 정상이고 머리도 정상이다.

그런데 이 모습이 보수적이라고?

중년 남자의 안색이 삽시에 굳어지더니 천도준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고객님. 자중하세요. 여긴 은행입니다. 부장의 신분으로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나가주세요. 아니면 경비를 불러 강제로 끌어낼 것입니다.”

두 경비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 은행에서 임설아가 부장의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감히 부장의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다니?

부장의 말에 임설아는 더 요염하게 몸을 비틀며 아양을 떨었다.

“부장님, 저런 사람과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바로 끌어내라고 하세요.”

천도준은 화가 났지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자형화 은행 카드는 어르신이 준 것이고 그는 돈을 인출하러 왔을 뿐이니 이런 무례함을 당할 이유가 없다.

아까만 해도 임설아가 그저 얄밉기만 했는데 지금 꽈배기처럼 몸을 배배 꼬는 그녀를 보니 화가 솟구쳤다.

“당장 끌어내!”

천도준이 꼼짝도 하지 않으니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경비원에게 명령했다.

은행 부장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천도준이 임설아를 힐끔거렸다고 했을 때 바로 끌어냈을 것이다.

두 경비원은 천도준에게 다가갔고 구경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천도준은 뭐든 참는 성격이 아니고 닌자 거북이도 아니다.

부정당한 대우에 그는 뚜껑이 열렸다.

쿵!

그는 자형화 카드를 올려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정정당당하게 이 은행에 현금을 인출하러 온 겁니다. 그런데 고객을 이렇게 모욕하고 모함하다니, 이런 대우를 당하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경비원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부장이라는 남자는 당장이라도 천도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본능적으로 그가 올려놓은 자형화 카드를 힐끔 보았다.

순간.

쿵!

남자는 벼락을 맞은 듯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었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콩알만한 땀방울이 그의 이마에 맺히기 시작했다.

“부장님, 가짜에요!”

임설아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쳐들고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 맺힌 남자를 보더니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남자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음흉했던 얼굴은 어느새 아첨의 미소로 돌변했다.

꼿꼿이 세운 허리는 어느새 바닥을 기어다닐 듯 구부러져서는 천도준을 향해 비루하게 말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자형화 카드를 소지한 귀한 손님인지 몰랐습니다. 어서 제 사무실로 가시죠. 제가 직접 업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쿵!

멍해 있던 임설아는 몸을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이게 은행 카드라고요?”

“네까짓 게 뭘 알아!”

남자는 땀투성이가 되어 임설아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다시 웃는 얼굴로 천도준을 향해 말했다.

“고객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드디어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 건가?’

천도준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하찮은 눈빛으로 임설아를 힐끗 보고 남자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금 급한 건 돈을 찾는 일이고 은행 부장이 꼬리를 내렸으니 굳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

오늘은 임설아라는 여자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어르신이 준 자형화 은행카드는 오직 부장만이 알아봤으니 아마 아주 희귀한 카드일 거라고 예상됐으며 대체 얼마 들어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사무실에 들어간 후, 쥐 죽은 듯 조용했던 은행 로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멍하니 서 있는 임설아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냘픈 몸도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오늘 그녀는 큰 실수를 했다.

부장도 그녀를 도울 수 없는 초대형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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