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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사라진 자의 흔적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4 09:13:00

붙잡힌 자들이 끌려간 뒤에야 무겸은 예령에게서 팔을 풀었다.

예령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무겸이 그녀의 팔을 받쳤다가 예령이 자세를 바로잡자 곧바로 손을 거두었다.

“마차를 가져오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말을 믿지 않겠소.”

무겸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마차에 오른 예령은 맞은편에 놓인 화로가 자신의 쪽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겸은 창밖을 살피며 호위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지시했다.

예령은 목에 다시 피가 밴 줄도 모르고 있었다.

무겸이 깨끗한 천을 내밀었다.

“상처가 벌어졌소.”

“감사합니다.”

예령이 천을 받아 목에 대는 동안 무겸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령은 그가 자신을 구한 책임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 여겼다.

그 순간 마차 밖에서 호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후부에서 급한 전갈이 왔습니다.”

무겸이 창문을 열자 봉인된 서신이 들어왔다.

진북후가 보낸 짧은 명령이었다.

조씨가 별채의 감시를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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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43화. 같은 병

    “제 이름을 올리십시오.”마당에서 올라온 말이었다.양석이 고개를 돌렸다.“소정아.”“관문에서 저희 수레가 몇 번 돌아섰는지, 그날 어느 집 수레가 넘어갔는지 제가 직접 보고 적었습니다. 그 장부에는 아버지 이름이 아니라 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것이냐?”“압니다.”양소정이 아버지를 보았다.“아버지는 아들이 있으니 못 하시는 겁니다. 저는 지키라고 맡겨 두신 장부가 있으니 하는 겁니다.”양석이 입을 열지 못했다.예령은 그 부녀를 보면서 제 아버지를 떠올렸다. 혼례 사흘 전 밤에 전권 문서를 내밀던 손, 그리고 그 뒤에 상단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저를 두고 셈을 하던 자리를.“소정 아가씨.”“예.”“이 일은 봄에 끝나지 않습니다. 이름이 한 번 올라가면 평생 그 일로 불려 다닐 수도 있습니다.”“알고 있습니다.”“그래도 하시겠습니까?”양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이었다.무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상단주는 나와 안쪽 방에서 이야기하시오.”양석이 딸을 한 번 보고 무겸을 따라갔다. 마루에 예령과 양소정만 남았다.“앉으시지요.”양소정이 앉았다. 앉는 자세가 반듯했고, 손은 무릎 위에 놓였다.연화가 차를 들여왔다. 잔을 내려놓으면서 양소정 쪽을 한 번, 예령 쪽을 한 번 보았다.“마님. 저 밖에서 기다릴까요?”“여기 있어라. 찻물이 식으면 갈아 와야지.”연화가 얼른 문 옆으로 가서 섰다. 호기심이 얼굴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부인.”“예.”“아까 손에 들고 계시던 장부를 한 번 보여 주시겠습니까?”예령의 손이 멈췄다. 장부를 남에게 펴 보이는 상인은 없고, 더구나 상대는 겨울 내내 제 물건을 받지 않던 집의 딸이었다.“제 장부를 보시려는 까닭이 무엇입니까?”“저희 창고에 쌀이 얼마나 남았는지 제가 압니다. 부인 수레가 열한 번 돌아섰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군영 창고는 비지 않았지요.”양소정이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그 셈이 어떻게 맞는지 겨울 내내 생각했습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42화. 창고를 빌리다

    “자사 어른 말씀대로 하면 저희는 겨울을 넘깁니다. 관문도 열리고, 봄에 염창 일로 불려 갈 일도 없겠지요.”“그런데 왜 오셨습니까?”양소정이 처음으로 예령을 똑바로 보았다.“셈이 맞지 않아서요.”“어디가 맞지 않습니까?”“저희가 내주는 것은 말 한마디입니다. 그 대신 받는 것은 이번 겨울 하나지요.”“예.”“그런데 자사 어른이 그 한마디로 얻는 것은 북방 군영입니다. 봄에 장군을 이 땅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제 사람을 앉힐 수 있겠지요.”예령은 숨을 한 번 쉬었다.“주는 쪽이 크고 받는 쪽이 작은 거래입니다. 그런 거래를 한 번 해 드리면 다음에는 더 큰 것을 달라 하실 겁니다.”예령이 저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다음에는 무엇을 달라 하겠습니까?”“먼저 창고를 내놓으라 하실 겁니다.”양소정이 마당의 눈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지난봄에 둘째 오라비가 관문에서 걸린 일을 황기문 어른이 덮어 주셨습니다. 그 뒤로 저희는 그 어른이 어느 집 물건을 받으라 하면 받고, 어느 집과 끊으라 하면 끊었습니다. 이번에 말 한마디를 더 보태면 그다음에는 상회를 내놓으라 하실 겁니다.”양석은 딸을 한 번 보고 고개를 숙였다. 말릴 생각이었다면 집에서 말렸을 것이다.예령은 마루 끝에 서서 한참 셈을 했다.값을 물었으니 은자를 한 뭉치 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주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음 겨울에 자사가 또 부르면 양석은 또 이 마당에 와서 같은 것을 물을 것이었다.“상단주.”“예, 부인.”“상단주께서 자사 말씀을 따르려는 까닭은 그 말을 해야 겨울을 넘기기 때문이지요?”양석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그렇습니다. 문을 닫은 뒤로 들어오는 것이 없습니다.”“그러면 그 말 없이 겨울을 넘기시면 됩니다.”“어떻게요?”“백운상회 창고를 겨울 동안 빌리겠습니다.”양석의 고개가 들렸다.“……창고요?”“강가에서 가장 가까운 창고가 그 집 것입니다. 지금 저희는 얼음을 건넌 곡식을 강마을 헛간에 쌓아 두고 있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41화. 눈을 맞고 온 사람

    군무 방 등잔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예령은 날이 트기 전에 장부를 안고 그 방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안에서 무겸의 목소리가 났다.“들어오시오.”무겸은 앉은 자리에서 밤을 보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탁자에 종이가 여러 장 널려 있고, 그중 반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안 주무셨습니까?”“세 번 썼는데 세 번 다 지웠소.”“어째서요?”“군영 장부에는 창고로 들어온 것만 적히오. 관문에서 돌아선 수레는 군영 문을 넘지 못했으니, 그런 수레가 있었다는 말이 군영 장부에는 한 줄도 없소. 막힌 날을 적을 수가 없었지.”예령은 그 말에 바로 장부를 펴서 그 앞에 놓았다.“막힌 날은 여기 있습니다.”무겸이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날짜마다 수레 수와 말 수가 적혀 있고, 관문에서 돌려보낸 날에는 그 옆에 작은 표가 붙어 있었다.“이 표는 무엇이오?”“관문에서 막힌 날입니다. 열한 번입니다.”“열한 번.”“그중 아홉 번은 같은 날에 태성상단 수레가 관문을 넘었습니다. 그것도 적어 두었습니다.”무겸이 붓을 들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썼다.예령은 그 옆에 앉아 날짜를 불러 주었다. 창호지가 희어지는 동안 두 사람의 숨소리와 붓 소리만 났다.“부인.”“예.”“이 장부를 그대가 적기 시작한 것이 언제요?”“북으로 오는 수레에서부터입니다.”“그때는 이 글에 쓰일 줄 몰랐을 것이오.”“쓰이려고 적은 것은 아닙니다. 수레가 몇 대 떠나고 몇 대 돌아왔는지를 적어 두어야 다음 달 셈이 섭니다.”무겸이 붓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종이로 눈을 돌렸다.“조정에서 이 장부를 보면 내 글보다 먼저 믿을 것이오.”예령은 그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장부의 다음 장을 넘겼다.해가 떠서 종이가 환해졌을 때 무겸이 붓을 놓았다.“이것이 네 번째요.”“이번에는 틀리지 않았습니까?”“날짜는 맞소. 다만 이 글을 조정에서 읽을 사람이 물을 것이 하나 더 있소.”“무엇입니까?”“이 일을 누가 보았느냐고 물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40화. 먼저 올라가는 글

    해가 넘어갈 무렵 마차가 군영 문을 지났다.무겸은 마루에 서 있었다. 예령이 마차에서 내리자 그가 먼저 물었다.“어찌 되었소?”“거두었습니다. 스무 사람은 제가 구해 보내고 품삯도 제가 내기로 했습니다.”“잘하셨소.”“그런데 장군.”예령이 겉옷의 눈을 털다가 손을 멈췄다.“너무 쉬웠습니다.”무겸의 눈이 조금 달라졌다.“어떻게 쉬웠소?”“제가 성 가까운 세 마을 이야기를 꺼내자 바로 접었습니다. 흥정이라 할 것도 없었습니다. 열 해를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반 시진도 안 되어 패를 거두었습니다.”무겸이 마루 끝으로 한 걸음 나왔다.“관아 문에서 패를 보이셨소?”“예. 문 앞에서 한 번 보였습니다.”“아전이 무엇을 했소?”예령은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허리를 숙이던 아전, 그리고 그 뒤에 앉아 있던 또 한 사람.“……옆에 앉은 자가 종이에 적었습니다.”무겸이 눈을 감았다. 한참 만에 다시 떴을 때 목소리가 낮았다.“내 잘못이오.”“무슨 말씀이십니까?”“그대가 오늘 거둔 것은 스무 사람이고, 저쪽이 거둔 것은 아전이 적어 둔 기록 한 줄이오. 정북군의 패를 지닌 사람이 관아에 들어와 부역을 두고 흥정했다는 기록이오.”예령의 손끝이 차가워졌다.“그것이…….”“관의 일에 군이 끼어들었다는 글이 되오. 어제 내가 그대에게 말한 것과 같은 수요. 다만 이번에는 저쪽이 쓰는 것이오.”연화가 등잔을 들고 나오다가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대로 물러갔다.“장군께서 장계를 올리겠다 하셨으니, 자사는 그보다 먼저 올릴 글이 필요했던 겁니다.”“그렇소.”“그래서 스무 사람을 내준 것이고요.”“쌀 쉰 말로 글 한 줄을 산 셈이오. 그 값이면 싸게 샀지.”예령은 마루 기둥에 손을 짚었다. 패를 품에 넣고 관아 문을 들어설 때, 그 무게가 무겸이 저를 지켜 주는 무게라고만 생각했다.“제가 들고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아니오.”무겸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패를 준 것은 나요. 그대가 관아 마루에 반나절 세워져 있지 않게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9화. 두 번째 차

    예령이 관사로 들어가 겉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무겸이 마당에 서 있었다.“장호를 데려가고 해 지기 전에 돌아오시오.”“예.”무겸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손에 놓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나무패였다. 한쪽 면에 정북군의 인이 찍혀 있었다.“관아 문에서 이것을 보이시오.”“이것이 무엇입니까?”“내가 보낸 사람이라는 표요.”예령이 그 패를 쥐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오늘은 정북장군의 부인으로 들어가지 마시오.”“그러면 무엇으로 들어갑니까?”“내 이름으로 들어가시오.”예령은 그 말을 가슴에 한 번 눌러 두고 고개를 숙였다.강마을 쪽은 눈이 깊어 바퀴가 빠졌으나, 성으로 드는 길은 사람이 늘 다녀 마차가 지날 만했다. 관아까지는 한 시진이 걸렸다.예령은 마차 안에서 진서헌이 준 문서를 다시 펴 보았다. 지난번에 이 길을 지날 때에는 들고 있는 것이 장부뿐이었다.문 앞에서 예령이 패를 내보이자 아전의 허리가 내려갔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름부터 묻고 한참을 세워 두던 자였다.하정근의 방은 그때와 같았다. 화로가 둘이었고, 그는 털옷 없이 앉아 있었다.“부인께서 또 오셨습니다. 보름은 아직 이틀이 남았습니다만.”“오늘은 문서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그러면요?”“어젯밤에 강마을에 아전이 다녀갔습니다.”하정근이 차를 따르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성을 고쳐야 해서요. 겨울이라 사람이 귀합니다.”“강마을은 세 해 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인정을 봐준 것이지요. 올해는 사정이 다릅니다.”예령이 품에서 문서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지난 세 해 동안 자사께서 다스리는 고을에서 부역으로 불려 간 마을과 사람 수입니다.”하정근이 그것을 펴 보았다. 눈길이 줄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웃음은 그대로였다.“잘 적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무엇을 하시렵니까?”“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을 고치는 일이 급해졌다면, 어째서 그 성에서 가장 가까운 세 마을은 올해도 부르지 않으셨습니까?”하정근의 손이 문서 위에서 멈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38화. 올리겠다는 말

    “진 상단주님.”“예.”“자사를 만나야겠습니다.”진서헌이 눈썹을 올렸다.“부인께서 직접요?”“제 곡식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혼자 가시면 차만 한 잔 더 드시고 나오실 겁니다.”“그러면 어찌해야 합니까?”“가실 때 들고 갈 것을 만들어 가셔야지요.”진서헌이 품에서 접힌 문서 한 장을 꺼냈다.“어젯밤에 제 아랫사람들을 풀어 적어 온 것입니다. 지난 세 해 동안 자사가 다스리는 북방 고을에서 부역으로 불려 간 마을과 사람 수입니다. 강마을은 세 해 동안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습니다.”예령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마을 이름이 스물 넘게 적혀 있고, 그 옆에 해마다 불려 간 사람 수가 붙어 있었다.“세 해 동안 한 번도 부르지 않던 마을을 하필 지금 불렀습니다.”“그렇습니다.”“그러면 관아가 부역 때문에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말로 하면 그렇지요. 다만 그것만으로 자사가 패를 거두지는 않을 겁니다. 이 문서를 들고 가면 자사는 이렇게 답할 겁니다. 세 해 동안 부르지 않은 것은 인정을 봐준 것이고, 올해는 성 고치는 일이 급해졌다고요.”예령은 문서를 접었다. 그 말이 맞았다. 셈은 맞는데 셈만으로는 이기지 못하는 자리였다.그때 무겸이 말했다.“그 곡식은 군량이오.”예령이 고개를 들었다.“진가상회에서 들이는 쌀은 정북군 창고로 들어가오. 값은 부인이 치르지만, 들어가는 곳은 군영이오.”“……예.”“군량이 제 날짜에 들어오지 않으면 그것은 민정이 아니라 군무요.”예령은 그 말을 듣고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그 수를 쓰실 수 있었다면 관문이 막혔을 때 쓰셨어야 하지 않습니까?”“관문을 막은 것은 자사가 아니오.”“예?”“수레를 돌려보낸 것은 관문 아전이고, 그 아전에게 값을 치른 것은 황기문이오. 상인이 상인을 막은 일에 군이 끼어들면 그것이야말로 월권이지. 자사는 그 뒤에 앉아 이름을 내놓지 않았소.”무겸이 예령의 손에 들린 문서를 턱으로 가리켰다.“그런데 오늘 아침 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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