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rtilhar

제4화

Autor: 금붕어
신씨 가문의 본가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차가운 얼굴로 상석에 앉아 있던 노희숙은 안타까움과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민윤서를 바라보다가 이내 분노 어린 눈빛으로 신태현을 바라보았다.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노희숙은 대놓고 민윤서의 편을 들며 근엄하게 말했다.

“태현아. 네가 해외로 파견된 3년 동안 윤서는 홀로 집을 지켰어. 매일 쓸쓸하게 혼자 집에 있었는데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지. 그런데 너는 귀국하자마자 이런 소문을 만들고 다니는 거니? 지금 인터넷에 사진이 다 퍼졌고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어. 왜 이렇게 사리분별을 못해?”

말을 마친 노희숙은 다시 민윤서를 바라봤다. 마른 몸에 창백한 안색의 민윤서를 보자 노희숙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윤서야, 많이 힘들었지? 너희 결혼한 지도 벌써 3년이 됐는데 이제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태현이도 파견을 마쳤으니 앞으로는 쭉 여기에 있을 텐데 더 미루지 말고 임신 준비를 하렴. 아이가 생기면 부부 사이도 더 단단해질 거고, 밖에서 떠도는 쓸데없는 소문도 자연스럽게 잠잠해질 거야.”

빨리 손주를 바라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민윤서의 편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노희숙은 민윤서가 신태현의 아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서 헛소문을 없앨 생각이었다.

민윤서는 고개를 숙이며 씁쓸함을 느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태현에게 향했다.

그러나 신태현은 여전히 침착하고 덤덤했다. 노희숙의 질책에도, 집안 어른들의 시선에도 신태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본인과 민윤아의 관계를 해명하지도 않았다.

신태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덤덤히 말했다.

“취재진들이 억측을 한 겁니다. 일부러 오해를 살 만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서 루머를 퍼뜨린 거예요. 실제로는 아무 사이 아니니까 할머니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신태현은 겨우 말 한마디로 자신의 외도와 편애와 도를 넘은 행동들을 가볍게 넘기려고 했다.

신태현은 민윤서의 편을 들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해를 풀 생각도 없었으며, 민윤서의 체면조차 지켜주지 않았다.

그저 억측일 뿐이라는 말 한마디로 민윤서가 모든 서러움을 삼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얌전히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며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아내로 살기를 원했다.

집 안 분위기가 잠시 얼어붙었다.

노희숙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해명조차 하지 않으려는 손자와 창백한 얼굴로 버티는 민윤서를 바라보았다. 노희숙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 더는 신태현을 추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던 민윤서는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아주 작은 희망마저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민윤서는 더 이상 신태현과의 결혼 생활을 이어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신태현은 전혀 조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가 있으니 말이다.

민윤서는 시선을 내려뜨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희숙은 민윤서가 말이 없자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더는 아이를 가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후에는 그저 일상적인 안부만 물었고, 식사 자리에서도 예전처럼 의례적인 대화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민윤서는 마치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우울해서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태현의 남동생 신태주도 돌아왔다.

늦둥이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신태주는 현재 고등학생이고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로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민윤서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신태주는 반가워하기는커녕 미간을 찌푸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민윤서는 익숙했기에 그저 못 본 척하고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밖에는 눈이 많이 쌓였고 산길이 얼어붙어서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본가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민윤서는 산 위가 이렇게 추울 줄 몰랐고, 길이 얼어서 귀가하지 못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얇은 옷차림 탓에 한기가 옷깃을 파고들며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아랫배가 뒤틀리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 민윤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민윤서는 겨우 몸을 일으킨 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방으로 향했다.

얇은 서리가 내려앉은 긴 복도를 지나던 도중에 신태현이 복도 끝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태현은 민윤서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다정함이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것 같았다. 신태현이 누구와 연락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분명히 민윤아일 것이다.

민윤서는 신태현과 민윤아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얼른 방으로 가서 누워 있고만 싶었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머리는 어지럽고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신태현의 곁을 지나칠 때는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렸다.

마침 전화를 끊은 신태현이 빠르게 손을 뻗어 민윤서를 부축하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애매한 말이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걸었다고 타박하는 말 같지만 민윤서에게는 일부러 본인의 품에 안기려고 수작을 부린 거라고 나무라는 것처럼 들렸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신태주가 그 광경을 보고 피식 비웃더니 빠르게 걸어와서 비아냥댔다.

“또 불쌍한 척이네요. 동정받고 싶어서 그래요? 할머니는 속아도 나는 안 속아요. 왜 또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거예요? 우리 형이 당신을 진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민윤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아랫배의 통증과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

누구나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그건 신태현의 무관심과 방관 때문이었다.

남편인 신태현이 민윤서를 그렇게 대하니 시댁 사람들도 똑같이 대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민윤서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민윤서는 신태현을 힘껏 밀어내며 말했다.

“내가 왜 민씨 가문 사람들의 동정을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해? 착각도 유분수지.”

신태주는 민윤서가 반박할 줄은 몰랐다. 예전에 민윤서는 늘 그들 앞에서 고분고분하고 얌전했기 때문이다.

신태주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우리 형이 당신을 안 좋아하고 윤아 누나를 좋아하는 거예요.”

신태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신태주를 힐끗 바라봤다.

“네 형수야.”

민윤서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참 미묘한 말이었다. 역시 외교관이라서 그런지 화술이 뛰어났다.

외교관인 신태현은 능력이 뛰어났다.

겉으로는 민윤서가 형수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것 같지만 은근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투에서 신태현이 좋아하는 것은 민윤아이며, 민유아야말로 진짜 형수라는 것이 느껴졌다.

민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방으로 걸어갔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진통제를 먹은 뒤 침대 위에 누워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통증은 가시지 않았고 마치 바늘 수천 개로 아랫배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계속 느껴졌다.

이때 도우미가 약을 한 그릇 들고 들어왔다.

“사모님, 어르신께서 아까 안색이 안 좋으신 걸 보고 사모님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면서 주방에 얘기해 약을 달이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신씨 가문에서 아마 진심으로 민윤서를 걱정하는 것은 노희숙뿐일 것이다.

민윤서는 목이 메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두세요. 그리고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도우미가 나간 뒤, 약기운과 함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고 민윤서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민윤서는 오늘 밤 신태현이 서재에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신태현은 귀국할 때마다 잠시 머물다 금방 다시 해외로 돌아갔고, 이제 두 사람은 이혼을 앞둔 상태였기에 당연히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밤 11시쯤에 갑자기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깬 민윤서는 신태현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물소리가 멎었다.

곧이어 신태현이 침대에 눕자 침대가 살짝 꺼졌다.

민윤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앞으로 따로 자자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이려는 순간, 신태현의 손이 뒤통수를 감싸며 따뜻한 입술이 닿았다.

신태현의 키스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절은 허락할 수 없다는 듯한 소유욕이 느껴졌다. 그렇게 키스를 나누는 동안 민윤서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예전이었다면 오랜만에 돌아온 남편과의 스킨십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민윤서에게 남은 것은 역겨움과 거부감뿐이었다.

“태현 씨!”

민윤서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크게 소리치면서 저항했다.

“이거 놔!”

그러나 신태현은 민윤서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신태현이 내뿜는 강한 기운이 민윤서를 완전히 감쌌다.

민윤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딴 건 민윤아한테 해!”

그 말에 신태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나 민윤서의 허리를 감싼 손은 풀리지 않았다. 신태현은 키스만 멈췄을 뿐, 두 사람의 코끝은 거의 맞닿아 있었고 신태현의 두 눈동자는 매우 검었다.

신태현은 키스 때문에 붉어진 민윤서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다가 거의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윤아가 아니잖아...”

Continue a ler este livro gratuitamente
Escaneie o código para baixar o App

Último capítulo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30화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카드였다.하지만 외할머니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지금, 민윤서는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민윤서는 원무과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이 카드로 먼저 결제해 주세요.”직원은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여러 차례 결제를 시도하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민윤서를 바라봤다.“죄송합니다. 이 카드는 사용 정지된 카드입니다.”“사용 정지됐다고요?”민윤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었다.불과 지난주만 해도 신씨 가문 어르신 생신 선물을 준비하면서 이 카드로 결제했었다.며칠 사이에 카드가 갑자기 정지될 리는 없었다.답은 하나뿐이었다.신태현이 직접 추가카드 사용을 막은 것이었다.민윤서는 허탈한 마음에 한숨만 내쉬었다.신태현은 이혼만큼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무런 언질도 없이 추가 신용카드부터 끊어 버렸다.‘벌인 걸까. 경고인 걸까. 결국 나더러 다시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건가?’민윤서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손발이 차갑게 식어 갔고 손끝은 덜덜 떨려왔다.돌려받은 블랙카드를 바라보는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창백하게 질린 민윤서의 얼굴을 지켜보던 주민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윤서야,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주민석은 민윤서에게 이런 블랙카드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신태현의 카드일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지금 카드가 정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윤서와 신태현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주민석은 곧장 원무과 직원을 향해 말했다.“죄송합니다, 치료비는 오늘 안으로 반드시 마련하겠습니다.”두 사람은 다시 응급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마침 의료진들이 설명을 마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민윤서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공허한 눈으로 주민석의 지친 옆모습과 초췌한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칼로 도려내는 듯 아려 왔다.그동안 주민석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29화

    이제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쳤던 터라, 민윤서는 눈을 내리깔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태현, 우리 이혼하자.”신태현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민윤서, 잘 들어. 난 결혼에 기대어 출세할 필요 없어. 지금 넌 너무 감정적이야. 그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아무 의미 없어.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민윤서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신태현은 민윤서를 내려다봤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대신 내가 한 말만큼은 똑똑히 기억해 둬.”말을 마친 신태현은 더 이상 민윤서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2층 서재로 향했다.늘 그렇듯 냉정하고 단호했다. 신태현이 한 번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국제 무대에서 숱한 협상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온 신태현에게 이혼쯤은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민윤서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온몸의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마치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는데도 아무것도 맞추지 못한 듯한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신태현은 끝까지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그런데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 잔인했다.겉으로는 담담하고 차분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는 가시가 숨어 있어 가장 아픈 곳만 정확히 찔렀다.민윤서는 텅 빈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싸늘하게 식어 가는 몸을 감싸안았다.수년을 살아온 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결국 이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민윤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잠시 뒤 안미숙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한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작은 사모님, 도련님께서 꼭 드시라고 하셨습니다.”민윤서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이제야 신태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했다.신태현의 말을 거스르는 순간,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28화

    민윤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신태현의 눈에는 민윤서의 노력도, 연구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도, 청림바이오에서 온 힘을 다해 버텨 온 순간들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신태현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민윤서가 아니었다.얌전히 정해진 자리에 머물며 말 잘 듣고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는 아내, 그것으로 충분했다.“무슨 권리로 내 자유까지 간섭하는데?”이제는 일까지 그만두라고 했다.민윤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태현은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 결정하면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신태현은 더 이상 민윤서를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을 내려 다시 서류를 훑을 뿐, 민윤서의 감정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민윤서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신태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민윤서,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민윤서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당신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네.”‘먼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누군데. 애초에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민윤아였잖아. 내가 물러나 둘을 이어 주겠다는데도, 왜 끝까지 이혼은 하지 않으려는 거야?’민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분히 말했다.“결국 당신은 체면을 지키고 싶은 거잖아. 이혼해서 나한테 자유를 줘. 공식적으로는 이혼한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되잖아. 그러면 당신 커리어에도 아무런 지장 없을 거야.”민윤서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유 하나뿐이었다.신태현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손끝에서 만년필을 한 바퀴 굴리더니 서류에 결재 사인을 남겼다.“신태현,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그래도 신태현은 반응하지 않았다.민윤서는 성큼 다가가 신태현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그대로 옆으로 내던졌다.순간적으로는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서류마다 빼곡하게 적힌 내용이 모두 중요한 기밀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차마 손을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27화

    민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사회적 지위 때문에, 최상위 권력층에 있는 신태현에게 결혼은 결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체면이었고 이해관계였으며 세상의 평가를 좌우하는 요소였다.신태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결혼이었다.이미 부부로서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아내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겉으로만 흠잡을 데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그만이었다.그리고 민윤서는 그런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 결혼 생활을 떠받치는 가장 순종적인 장식품에 불과했다.민윤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식어 갔다.더는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가족의 안전도, 외할머니의 병원비도, 온 가족의 생계도 모두 신태현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민윤서는 자신이 상처받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 때문에 가족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만은 감당할 수 없었다.민윤서는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이를 악물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눌러 통화를 끊은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예상대로 건물 앞 가로등 아래에는 낯익은 검은 세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운전석 창문을 통해 진현수가 보였다.민윤서를 발견한 진현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 주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사모님, 국장님께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민윤서는 그 자리에 선 채 차 문만 바라봤다.마치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동굴을 마주한 것처럼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민윤서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본 진현수는 속으로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신씨 가문 같은 명문가에 시집가 최고만 누리며 살면서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사모님 자리에서 편하게 호의호식하면 될 일을, 괜히 집까지 뛰쳐나와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정말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화를 자초하는군.’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진현수는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한 채 민윤서의 선택을 묵묵히 기다렸다.민윤서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26화

    민윤서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서승재가 평생을 바쳐 일군 청림바이오를 무너뜨릴 수도 없었다.그리고 이 프로젝트 하나만 바라보며 오랜 세월 함께 달려온 동료들의 노력을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서승재는 애써 담담한 척하는 민윤서를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윤서야... 미안하다. 괜히 너만 힘든 일을 떠안게 했네.”민윤서는 옅게 미소 지었다.“일은 일이잖아요. 사적인 감정까지 끌고 오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결국 비즈니스는 이익으로 움직이는 거고요.”서승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서승재가 다시 말했다.“민윤아랑 직접 부딪히기 싫으면 앞으로는 내가 상대할게.”민윤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민윤아가 청림바이오에 들어오는 일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오늘 거절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내일이면 또 다른 방법으로 민윤아를 들여보내려 할 테니까.신태현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생각해 보면 신태현이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애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하지만 그 대상은 단 한 번도 민윤서였던 적이 없었다. 늘 해외에 머물던 신태현은 민윤서가 집에서 고열로 의식을 잃었을 때조차 연락이 닿지 않았다.대화를 마친 민윤서는 다시 업무에 몰두했다.자료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약물 성분 데이터를 반복해서 분석했다.끝없이 일에 파묻혀 있어야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씁쓸함과 모멸감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사무실에도 대부분의 사람이 이미 퇴근한 뒤였다.민윤서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책상을 정리한 뒤 조용히 회사를 나섰다.‘이혼하면 돼. 모든 게 정리되면... 다 끝날 테니까.’민윤서는 오래된 빌라 앞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려다 걸음을 멈췄다.문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낡은 건물이라 방음이 좋지 않았다. 애써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지만,

  •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제25화

    민윤아는 지금 신태현이 공개적으로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그런 민윤아가 굳이 청림바이오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은 누구나 봐도 민윤서를 겨냥한 행동이었다.도발이었고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받아들이면 민윤서는 회사 안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될 터였다.하지만 거절하면 국가 핵심 연구 과제는 다른 기업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그렇게 되면 청림바이오가 수년 동안 공들여 준비해 온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될 수 있었고 회사 전체가 큰 타격을 입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서승재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가까이에 서 있는 민윤서를 바라봤다.민윤서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길게 드리운 속눈썹이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어떤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조금 전 이태섭 박사가 꺼낸 제안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것처럼 담담한 모습이었다.서승재는 그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프로젝트가 무산되더라도 민윤서에게 이런 모욕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하지만 민윤서의 잔잔한 눈빛과 마주한 순간, 목까지 올라왔던 말은 끝내 삼켜 버렸다.민윤서는 서승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회사는 혼자만의 것만은 아니었다.두 사람이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는 사이, 민윤서가 먼저 이태섭 박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박사님, 저희는 늘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회사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민윤아 씨께서 청림바이오에 합류하시겠다면 저희도 기꺼이 함께하겠습니다.”서승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 말하려 했다.그러나 민윤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그 모습을 본 서승재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이태섭 박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시선을 민윤서에게 옮기더니 천천히 물었다.“서 대표 비서인가?”서승재는 곧바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민윤서를 소개했다.“박사님, 이쪽은 민윤서 수석연구원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핵심 약물 분석을

Mais capítulos
Explore e leia bons romances gratuitamente
Acesso gratuito a um vasto número de bons romances no app GoodNovel. Baixe os livros que você gosta e leia em qualquer lugar e a qualquer hora.
Leia livros gratuitamente no app
ESCANEIE O CÓDIGO PARA LER NO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