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Kabanata 1 - Kabanata 10

30 Kabanata

제1화

“윤서 씨, 윤서 씨 자궁내막암이 눈에 띄게 악화했어요. 보존치료만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가능한 한 빨리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시는 게 좋겠어요. 지난 2년 동안 계속 혼자 진료받으러 오셨죠? 상황이 많이 안 좋은데 정말 남편분께 알리지 않으셔도 괜찮겠어요?”진료실의 흰 조명이 민윤서의 초췌한 얼굴 위로 내려앉아 원래도 핏기 없던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다.의사의 말이 민윤서의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민윤서는 무겁게 느껴지는 진단서를 꼭 움켜쥐었고, 차갑게 식은 손끝은 파르르 떨렸다. 민윤서는 마치 온몸의 피가 얼어붙은 것처럼 한동안 굳어 있었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 신태현은 인사 발령으로 인해 M국으로 파견되었다.출국하기 전날 밤, 신태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민윤서를 바라보며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조금만 기다려줄래? 아무래도 이게 내 직업이다 보니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파견을 마치고 귀국하면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자. 그리고 아이도 갖자.”2년 전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의사는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 자궁을 적출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민윤서는 타국에서 지내고 있는 신태현이 걱정할까 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홀로 이를 악물고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견뎌 냈다.그런데 오늘 받은 진단서가 민윤서가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희망마저 산산조각 내 버렸다.민윤서는 어쩌면 앞으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몰랐다.코끝이 찡하면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민윤서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켠 뒤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통화연결음만 들려올 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머리가 어지러웠던 민윤서는 넋이 나간 얼굴로 복도에 서 있다가 뒤늦게 시차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M국은 현재 늦은 밤일 테니 신태현은 아마 자고 있을 것이다.막막함이 밀려오자 민윤서는 진단서를 움켜쥔 채 휘청거리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섰다.병원 입구에 막 다다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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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곧이어 진현수가 앞으로 나오며 정중하게 이만 가보라는 듯이 제스처를 취했다.신태현은 몸을 돌리는 순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민윤서를 힐끗 보더니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평온하게 말했다.“취재진들이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까 밖에서는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도록 해. 네 신분을 잊지 말고 처신 잘하도록 해. 괜한 사람들까지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그건 내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되지?”신태현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러웠으며 감정 기복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신태현이 한 말들은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민윤서를 단단히 옭아맸다.겉으로 보기에는 충고지만 실상은 경고였다.밖에서 함부로 떠들지 말고, 자신과 민윤아의 평온한 일상을 망치지 말고, 민윤아가 비난받거나 난감해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신태현은 다른 사람들의 체면을 고려하며 민윤아도 빈틈없이 챙겼다.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내인 민윤서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가장 존중받고 배려받아야 할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대놓고 말한 건 아니지만 신태현은 자신의 태도로 민윤서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았다.민윤서는 속으로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사랑받는 사람과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얼마나 분명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민윤서는 눈동자에 차오른 서러움과 실망을 애써 감춘 채 말없이 몸을 돌려 병원을 떠났다....차는 엘리안 별장으로 돌아갔다.그곳은 민윤서와 신태현의 신혼집이었는데 3년 동안 민윤서 혼자 넓고 텅 빈 집을 지키며 수많은 밤을 외로움 속에서 보내야 했다.민윤서는 오늘 밤 신태현이 절대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민윤아는 임신한 상태에서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고 불쌍하고 가여운 상황이었다. 민윤아를 끔찍이 여기던 신태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병원을 떠나지 않고 밤새 민윤아를 돌보려고 할 것이다.3년 동안의 헛된 기다림,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사랑한 것, 병마, 그리고 배신. 그 모든 것을 겪었으니 민윤서도 더는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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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신태현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눈빛에 작은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마치 민윤서가 꺼낸 이혼이라는 주제가 아무런 의미 없는 홧김에 내뱉은 얘기인 것처럼 말이다.신태현은 무심하게 대꾸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여유로우면서도 차분하고, 또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쉽게 눈치챌 수 없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신태현에게 민윤서는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분별력이 있으며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해서 단 한 번도 짐이 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래서 지금처럼 이혼을 언급하며 자신을 막아서는 것도 질투심 때문에 투정을 부리는 거라고 여겼다.신태현은 결국 떠났다.방문이 열리며 쌀쌀한 밤바람이 안으로 들어와 방 안에 남아 있던 신태현의 온기와 민윤서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련까지 전부 날려 보냈다.신태현은 민윤서가 정중히 꺼낸 이혼 얘기가 정말로 홧김에 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인 것처럼 굴었다.민윤서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더니 처연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어처구니없었다.어쩌면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신태현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을 향한 마음이 조금쯤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바보처럼 기대를 품었다.심지어 이혼 얘기를 꺼낼 때조차 신태현이 잠깐이라도 걸음을 멈춰 이유를 물어봐 주기를, 조금이라도 자신을 붙잡아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그러나 현실은 잔인했다.민윤서는 신태현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하찮은 존재였다.그날 밤 신태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민윤서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마음속에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지금 병원에 누워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민윤아야말로, 신태현이 기꺼이 곁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었다....다음 날 아침, 창밖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있었고 날이 흐려 분위기도 조금 어두웠다.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 가는 빗줄기가 쉬지 않고 쏟아지면서 세상을 잿빛으로 물들였다.바로 그때 민윤서의 휴대폰이 울렸다.연구소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윤서야, 지금 국가 핵심 연구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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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신씨 가문의 본가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차가운 얼굴로 상석에 앉아 있던 노희숙은 안타까움과 연민이 담긴 눈빛으로 민윤서를 바라보다가 이내 분노 어린 눈빛으로 신태현을 바라보았다.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노희숙은 대놓고 민윤서의 편을 들며 근엄하게 말했다.“태현아. 네가 해외로 파견된 3년 동안 윤서는 홀로 집을 지켰어. 매일 쓸쓸하게 혼자 집에 있었는데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지. 그런데 너는 귀국하자마자 이런 소문을 만들고 다니는 거니? 지금 인터넷에 사진이 다 퍼졌고 온갖 소문이 떠돌고 있어. 왜 이렇게 사리분별을 못해?”말을 마친 노희숙은 다시 민윤서를 바라봤다. 마른 몸에 창백한 안색의 민윤서를 보자 노희숙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윤서야, 많이 힘들었지? 너희 결혼한 지도 벌써 3년이 됐는데 이제는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 태현이도 파견을 마쳤으니 앞으로는 쭉 여기에 있을 텐데 더 미루지 말고 임신 준비를 하렴. 아이가 생기면 부부 사이도 더 단단해질 거고, 밖에서 떠도는 쓸데없는 소문도 자연스럽게 잠잠해질 거야.”빨리 손주를 바라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민윤서의 편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 노희숙은 민윤서가 신태현의 아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서 헛소문을 없앨 생각이었다.민윤서는 고개를 숙이며 씁쓸함을 느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신태현에게 향했다.그러나 신태현은 여전히 침착하고 덤덤했다. 노희숙의 질책에도, 집안 어른들의 시선에도 신태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본인과 민윤아의 관계를 해명하지도 않았다.신태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덤덤히 말했다.“취재진들이 억측을 한 겁니다. 일부러 오해를 살 만한 각도로 사진을 찍어서 루머를 퍼뜨린 거예요. 실제로는 아무 사이 아니니까 할머니도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신태현은 겨우 말 한마디로 자신의 외도와 편애와 도를 넘은 행동들을 가볍게 넘기려고 했다.신태현은 민윤서의 편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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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민윤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문득 예전에 신태현과 엮이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민윤서는 당시 함정에 빠져 약기운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마침 술에 취해 있던 신태현은 민윤서가 민윤아와 얼굴도, 몸매도 닮은 걸 보고 민윤서를 민윤아로 착각했다.그동안 민윤서는 민윤아의 대체품이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민윤서는 자조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눈빛이 싸늘해졌다.신태현은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잠시 민윤서를 바라보다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할머니는 우리가 아이를 갖기를 바라셔.”신태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듯이 말했다.‘아이?’민윤서는 곧바로 눈시울이 빨개졌다. 순간 서러움과 분노가 폭발했다.그들에게는 한때 아이가 있었다.그러나 신태현은 아이를 바라지 않았고 이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그런데 왜 이제 와서 또 아이를 갖겠다고 하는 걸까?민윤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신 아이를 가질 일은 절대 없을 거야.”신태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지면서 주변 온도마저 내려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신태현은 민윤서를 놓아주며 물었다.“나 아니면 누구 아이를 가질 건데?”민윤서는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렸다.민윤서는 누구의 아이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민윤서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신태현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태현 씨, 우리 이혼...”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갑작스럽게 벨 소리가 울리며 민윤서의 말허리를 끊었다.화면에 뜬 이름을 보니 민윤아였다.신태현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곧바로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민윤서는 신태현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비아냥댔다.“왜? 받기 불편해서 그래? 내가 대신 받아줄까?”신태현은 민윤서를 힐끗 보더니 말없이 휴대폰을 챙겨 침대에서 내려간 뒤 창가로 걸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전화 너머에서 민윤아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애처롭게 말했다.“태현 오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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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승재가 말을 끝맺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민윤아에게로 집중되었다. 모두가 확실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민윤서가 신태현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태현이 민씨 가문 딸과 결혼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고 그 상대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민윤아는 고개를 들어 신태현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가볍게 짓씹었다.신태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더니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서승재 씨는 추측을 잘하시는군요.”애매한 말이었다. 대답 같기도 하고 대답 같지 않기도 했다.그리고 그것은 부정으로도 들릴 수 있었고, 긍정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었다.하지만 민윤아에게는 그것이 긍정으로 들렸다.민윤아는 본능적으로 민윤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우월감이 뚜렷하게 보였다.‘봐, 신태현은 내 거야. 예전에도 내 거였고 지금도 내 거야.’민윤서와 결혼했다고 해도 신태현은 결국 민윤아의 편에 설 것이다.민윤서는 신태현의 애매한 대답을 듣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생각해 보면 어차피 곧 이혼할 사이이니 굳이 민윤서의 체면을 지켜줄 이유가 없었다.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민윤아가 자신의 아내라고 인정하는 것은 신태현에게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게다가 민윤아는 이미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다.민윤서는 굳이 자신이 난처할 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일에까지 신경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많지도 않았다.그래서 서승재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선배, 우리는 이만 가요.”서승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윤서를 바라봤다.민윤서는 안색이 매우 나빴다.더는 지체할 수 없었던 서승재는 곧바로 민윤서를 부축해 자리를 벗어난 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신태현 씨는 언제 돌아온 거야? 민윤아랑 같이 왔던데... 너...”민윤서는 따뜻한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시선을 살짝 내려뜨리고 무심한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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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신태현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민윤서에게 닿았다. 검은 눈동자는 늘 그랬듯이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그 순간, 현장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민윤아에게 향했다.민윤아는 민윤서의 언니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민윤아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민윤서에게로 달려갔다.그러나 민윤아가 도착하기도 전에 서승재가 한발 먼저 도착해 민윤서를 번쩍 안아 들었다.민윤서의 귓가에 주변 소음이 웅웅 울렸다. 온몸에 힘이 빠졌고 아랫배의 통증은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했다.민윤서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귓가에서는 서승재의 초조한 목소리만 들렸다.서승재의 품에 안겨 현장을 빠져나갈 때, 우연히 신태현과 시선이 마주쳤다.멀리서 본 신태현의 눈빛은 한없이 고요했고 또 차가웠다.민윤서는 조용히 눈을 감아 시선을 차단했다.민윤서의 남편은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누구에게나 온화할 수 있었으나 오직 민윤서에게만은 무관심하고 냉담했다.민윤서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말이다.민윤아가 따라가려고 하자 서승재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민윤아 씨, 오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만 돌아가 보세요.”서승재는 민윤서가 민윤아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굳이 민윤아가 따라오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민윤서 기분만 잡칠 테니 말이다.이때 신태현이 다가와 민윤아에게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민윤아는 입술을 깨물면서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윤서가 많이 아픈 것 같아. 어떻게 된 일이지? 예전에는 괜찮았는데...”서승재는 시선을 들어 신태현을 바라봤다.“신태현 씨는 같이 안 가실 겁니까?”민윤서에게서 곧 이혼할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 이혼한 건 아니었다.그런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심할 수 있단 말인가?신태현은 서승재를 바라봤다.민윤아는 손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배를 감쌌다.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민윤아도 두려웠고 당황스러웠으며 곁에 누군가 있어 줘야 했다.민윤아는 고개를 들어 신태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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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보이지 않는 손이 공기를 꽉 쥔 것처럼, 먼지마저 허공에 가만히 떠 있는 것처럼 잠깐 분위기가 얼어붙어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민윤서는 고개를 들어 아무런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표정을 했다.“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각자 원하는 대로 살자. 이혼해. 이혼합의서는 내가 다 작성해 뒀어.”신태현은 시선을 내려 민윤서를 바라보았다. 마치 중요하지 않은 물건을 바라보는 듯한 무감각한 시선이었다.몇 초간 침묵이 이어졌다. 놀라움도, 추궁도 없었고 그저 고인 물처럼 잔잔한 정적뿐이었다.신태현의 시선이 무심코 현관 쪽을 스쳐 지나갔다.검은색의 캐리어는 귀국하던 날 그대로 아직도 그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신태현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민윤서는 항상 환하게 웃으며 신태현을 맞이해 주었고, 넥타이를 풀어주고 캐리어 속 옷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다려놓았다.반대로 신태현이 해외로 떠날 때면 밤새 짐을 정리해서 신태현이 좋아하는 차와 늘 먹던 위장약을 빠짐없이 챙겨주었다. 신태현이 머나먼 타국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이다.그러나 이번에 민윤서는 신태현의 캐리어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신태현은 별말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신태현의 발소리가 민윤서의 마음을 두드렸다. 반면에 신태현은 민윤서가 뭐라고 하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신태현이 떠난 뒤 민윤서는 긴장이 풀려 몸에서 힘을 뺐다. 그 순간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민윤서는 소파 팔걸이를 붙잡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민윤서를 집어삼킬 듯했다.지금의 신태현은 국제적인 협상 자리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외교부 부국장이었고, 이처럼 누군가 면전에서 이혼을 통보하는 일은 겪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오늘 민윤서가 한 말로 신태현은 체면을 크게 구겼다.그러나 신태현은 한 마디도 따져 묻지 않았다.민윤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라리 우는 것이 나을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신태현에게 있어 그들의 결혼 생활은 화를 낼 가치조차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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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민윤서는 이 상황이 우습기만 했다.신태현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최대한 체면을 지키려고 했다.민윤아가 곧바로 나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됐어, 태주야. 나는 괜찮아. 네 형 말이 맞아. 형수님한테 깍듯해야지.”신태주는 표정이 매우 나빴지만 신태현 때문에 더는 뭐라고 할 수가 없어 목소리를 낮추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남겼다.“남의 남자를 빼앗아서 결혼했으니 당신의 결혼 생활은 절대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민윤서는 더 이상 그들과 실랑이를 하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고개를 든 민윤아는 남몰래 옆에 있는 신태현을 힐끗대며 표정을 살폈다.민윤아는 입술을 깨물다가 다정한 척하며 말했다.“오빠, 윤서 기분 안 좋아 보이던데 오늘 밤에... 윤서를 좀 달래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은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돼. 어제도 늦은 시간에 와서 힘들었을 텐데. 나는 안 챙겨줘도 돼.”민윤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을 느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어제 신태현은 캐리어를 챙겨서 민윤아를 찾아갔다.어쩌면 어제 돌아온 것도 민윤서의 몸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옷을 챙겨 가려고 온 걸지도 몰랐다.신태현은 동정심 때문에, 교양 때문에 민윤서를 걱정하고 민윤서를 병원까지 데려가려고 한 걸지도 몰랐다.그런데 민윤서는 바보처럼 신태현이 자신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걱정되어 집에 돌아온 거라고 착각했다.신태주는 우습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뭘 달래줘요? 그동안 우리 형이랑 결혼해서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고 우리 형 돈을 쓰고 살았는걸요. 그리고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고 이룬 것도 없잖아요. 그러면서 아주 도도한 척,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죠. 그동안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렸을 텐데 예전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신태주는 단호하게 떠나는 민윤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민윤서가 듣지 못할까 봐서 걱정이라도 하듯이 목청을 높여 말했다.“제가 보기에는 그냥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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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됐어, 오빠.”민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윤서가 기분이 안 좋은가 봐. 나는 괜찮아.”민윤서는 역겨움을 느꼈다.바로 그때 단상 위에서 결과 발표를 책임진 사람이 천천히 걸어왔다.민윤아는 고개를 돌려 민윤서를 바라보며 늘 그랬듯이 자신이 너그럽게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말했다.“그래도 혹시 어려움이 있다면 나한테 얘기해 줘. 이 연구과제가 하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민윤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민윤아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자신이 반드시 연구과제를 따낼 거라고 확신하는 걸까?신태현의 지위라면 자신이 연구과제를 따내도록 몰래 뒤에서 손을 써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민윤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신태현이 젊은 나이에 지금처럼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압도적인 능력 덕분이었다.그리고 민윤아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자신의 미래까지 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잠시 후 현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인 채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단상 위에서 마침내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그 순간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최종적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곳은 청림바이오뿐입니다.”오랫동안 마음을 졸이던 민윤서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반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민윤서를 데리고 함께 연구과제를 진행하겠다고 말하던 민윤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창백해졌다.방금까지 아량을 베푸는 척 여유를 부리더니 이제야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민윤아는 옆에 늘어뜨린 손을 꽉 움켜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껏 주먹을 쥐었다.분명히 서승재가 손을 썼을 것이라고, 민윤서는 그저 운이 좋게 든든한 뒷배를 얻었을 뿐이라고 민윤아는 굳게 믿었다.“청림바이오의 민윤서 씨, 앞으로 나와 소감을 말씀해 주시겠어요?”민윤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민윤아는 애써 품위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축하해, 윤서야.”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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