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민윤서는 자궁암 진단서를 받은 날, 남편이 언니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은 모습을 목격했다. 민윤서가 앞으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신태현은 민윤서의 언니와 함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었다.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민윤서는 헌신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그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민윤서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숨긴 채 평온한 얼굴로 이혼 합의서를 건넸다. 민윤서는 더는 그들에게 존엄을 짓밟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신태현이 이혼 합의서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우리 집안을 위해 대를 잇기 전까지는 이혼을 요구할 자격이 없어.” 민윤서는 냉정하게 물었다. “만약 아이를 낳는 대가가 죽음이라면?” 신태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럼 내 앞에서 한 번 죽어 보든가.” 민윤서는 마침내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윤서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민윤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시에 그녀는 업계의 전설로 떠올랐다. 늘 냉담하고 무심했던 신태현은 그제야 전 세계를 뒤지며 미친 듯이 민윤서를 찾기 시작했고, 끝내 민윤서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윤서야, 내 목숨까지도 너한테 줄게. 제발 나를 떠나지만 말아 줘. 응?” 민윤서는 피식 웃으며 과거 신태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그럼 내 앞에서 한 번 죽어 보든가.”
View More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카드였다.하지만 외할머니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지금, 민윤서는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민윤서는 원무과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이 카드로 먼저 결제해 주세요.”직원은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여러 차례 결제를 시도하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민윤서를 바라봤다.“죄송합니다. 이 카드는 사용 정지된 카드입니다.”“사용 정지됐다고요?”민윤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었다.불과 지난주만 해도 신씨 가문 어르신 생신 선물을 준비하면서 이 카드로 결제했었다.며칠 사이에 카드가 갑자기 정지될 리는 없었다.답은 하나뿐이었다.신태현이 직접 추가카드 사용을 막은 것이었다.민윤서는 허탈한 마음에 한숨만 내쉬었다.신태현은 이혼만큼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으면서도 아무런 언질도 없이 추가 신용카드부터 끊어 버렸다.‘벌인 걸까. 경고인 걸까. 결국 나더러 다시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건가?’민윤서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손발이 차갑게 식어 갔고 손끝은 덜덜 떨려왔다.돌려받은 블랙카드를 바라보는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창백하게 질린 민윤서의 얼굴을 지켜보던 주민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윤서야, 너무 걱정하지 마. 오빠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주민석은 민윤서에게 이런 블랙카드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신태현의 카드일 거로 생각했다.그리고 지금 카드가 정지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윤서와 신태현의 결혼 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주민석은 곧장 원무과 직원을 향해 말했다.“죄송합니다, 치료비는 오늘 안으로 반드시 마련하겠습니다.”두 사람은 다시 응급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마침 의료진들이 설명을 마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민윤서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공허한 눈으로 주민석의 지친 옆모습과 초췌한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칼로 도려내는 듯 아려 왔다.그동안 주민석
이제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쳤던 터라, 민윤서는 눈을 내리깔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신태현, 우리 이혼하자.”신태현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민윤서, 잘 들어. 난 결혼에 기대어 출세할 필요 없어. 지금 넌 너무 감정적이야. 그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아무 의미 없어.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걸로 할게.”민윤서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신태현은 민윤서를 내려다봤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대신 내가 한 말만큼은 똑똑히 기억해 둬.”말을 마친 신태현은 더 이상 민윤서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2층 서재로 향했다.늘 그렇듯 냉정하고 단호했다. 신태현이 한 번 내린 결정은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국제 무대에서 숱한 협상과 이해관계를 조율해 온 신태현에게 이혼쯤은 고민거리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민윤서는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온몸의 힘이 한순간에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마치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는데도 아무것도 맞추지 못한 듯한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신태현은 끝까지 화를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그런데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 잔인했다.겉으로는 담담하고 차분했지만, 한마디 한마디에는 가시가 숨어 있어 가장 아픈 곳만 정확히 찔렀다.민윤서는 텅 빈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싸늘하게 식어 가는 몸을 감싸안았다.수년을 살아온 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다.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가 결국 이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민윤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잠시 뒤 안미숙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 한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작은 사모님, 도련님께서 꼭 드시라고 하셨습니다.”민윤서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이제야 신태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했다.신태현의 말을 거스르는 순간,
민윤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신태현의 눈에는 민윤서의 노력도, 연구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도, 청림바이오에서 온 힘을 다해 버텨 온 순간들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신태현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민윤서가 아니었다.얌전히 정해진 자리에 머물며 말 잘 듣고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는 아내, 그것으로 충분했다.“무슨 권리로 내 자유까지 간섭하는데?”이제는 일까지 그만두라고 했다.민윤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태현은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 번 결정하면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신태현은 더 이상 민윤서를 바라보지 않았다. 시선을 내려 다시 서류를 훑을 뿐, 민윤서의 감정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초부터 민윤서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신태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민윤서, 결혼은 장난이 아니야.”민윤서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당신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네.”‘먼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이 누군데. 애초에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민윤아였잖아. 내가 물러나 둘을 이어 주겠다는데도, 왜 끝까지 이혼은 하지 않으려는 거야?’민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차분히 말했다.“결국 당신은 체면을 지키고 싶은 거잖아. 이혼해서 나한테 자유를 줘. 공식적으로는 이혼한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되잖아. 그러면 당신 커리어에도 아무런 지장 없을 거야.”민윤서가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오직 자유 하나뿐이었다.신태현은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손끝에서 만년필을 한 바퀴 굴리더니 서류에 결재 사인을 남겼다.“신태현,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그래도 신태현은 반응하지 않았다.민윤서는 성큼 다가가 신태현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아 그대로 옆으로 내던졌다.순간적으로는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하지만 서류마다 빼곡하게 적힌 내용이 모두 중요한 기밀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차마 손을
민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사회적 지위 때문에, 최상위 권력층에 있는 신태현에게 결혼은 결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체면이었고 이해관계였으며 세상의 평가를 좌우하는 요소였다.신태현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결혼이었다.이미 부부로서의 관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아내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겉으로만 흠잡을 데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그만이었다.그리고 민윤서는 그런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 결혼 생활을 떠받치는 가장 순종적인 장식품에 불과했다.민윤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식어 갔다.더는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다. 가족의 안전도, 외할머니의 병원비도, 온 가족의 생계도 모두 신태현의 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민윤서는 자신이 상처받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자신의 선택 때문에 가족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것만은 감당할 수 없었다.민윤서는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이를 악물고 북받치는 감정을 억눌러 통화를 끊은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예상대로 건물 앞 가로등 아래에는 낯익은 검은 세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운전석 창문을 통해 진현수가 보였다.민윤서를 발견한 진현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 주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사모님, 국장님께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민윤서는 그 자리에 선 채 차 문만 바라봤다.마치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동굴을 마주한 것처럼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민윤서의 차갑게 굳은 얼굴을 본 진현수는 속으로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신씨 가문 같은 명문가에 시집가 최고만 누리며 살면서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사모님 자리에서 편하게 호의호식하면 될 일을, 괜히 집까지 뛰쳐나와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정말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화를 자초하는군.’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진현수는 끝까지 공손한 태도를 유지한 채 민윤서의 선택을 묵묵히 기다렸다.민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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