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도 열심히 해볼게!” 서여은과 정예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맞춰 함께 걸어갔다. 홀 안은 이미 양가 친척과 지인들로 가득 찼다. 모두가 환한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축하하고 있었다. 곧, 길일이 다가왔다. 하연과 상혁은 곱게 차려입은 전통 혼례복을 입고, 정식으로 예식을 올렸다. 하늘에 첫 번째 큰절, 부모님께 두 번째 큰절. 최동신은 주빈석에 앉아, 얼굴 가득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부동건도 이 모습을 보며 깊은 감회에 젖어 있었다. ‘예전엔... 나도 저랬었지.’ 부동건은 살짝 고개를 돌려 조진숙을 바라보았다. 한때 자신도 조진숙과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했다. ‘시간이란... 참 무섭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따뜻한 눈빛으로 상혁과 하연을 바라보았다. 모든 의식이 끝난 후, 상혁과 하연은 양가 어른들께 예를 갖춰 인사드렸다. 어른들은 각자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조진숙은 오랫동안 아껴온 비취 팔찌를 꺼내, 하연의 손목에 직접 채워주었다. “오늘부터 너희 둘은 부부다. 서로 의지하고, 함께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하연은 달콤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 말에 조진숙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그래!” ...전통 예식이 마무리된 뒤, 하연은 방으로 돌아가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머리와 메이크업도 서양식 스타일로 새롭게 단장했다. 하연은 임신 중이었기에, 디자이너가 특별히 그녀를 위해 드레스를 수정해줬다. 바닥까지 흘러내린 순백의 드레스 위로, 은은한 광택을 머금은 실크에 촘촘히 수놓인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반짝이고 있었다.‘마치 별빛 속을 걷는 기분이야.’ 하연이 드레스를 입는 순간, 눈부시게 빛났다. 너무도 아름다워, 보는 이들의 숨마저 멎게 할 정도였다. 하
“부상혁, 너는 죽어야 해! 이 모든 건 다 네 잘못이야!” 송혜선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입에서 쏟아지는 증오는 끝이 없었다. “너희 다 죽어야 해! 최하연 뱃속에 있는 그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애까지!” “입 막아.” 상혁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연의 얼굴도 순간 하얗게 질렸다. ‘괜찮아. 아무것도 듣지 마.’ 상혁은 곧장 몸을 돌려 하연을 가렸다. 하연이 지금 이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도록.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우리 집에 가자.” 상혁은 하연을 꼭 끌어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더 이상 송혜선에게 시간을 줄 이유는 없었다. 뒤쪽에서는 경호원이 재빠르게 송혜선의 입에 천을 틀어막았다. 거칠게 몸부림쳤지만, 결국 꼼짝없이 끌려갔다. 그날 밤, 하연은 충격 때문인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괜찮아... 괜찮아...” 상혁은 하연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다. 긴긴 밤이 지나고, 겨우 마음을 추스른 하연은 잠에 들었다. 상혁은 조용히 손을 뻗어 하연의 귀 옆 잔머리를 다정히 쓸어 넘겼다. 그리고 하연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베란다. 상혁은 혼자 서 있었다. 등 뒤로 떨어진 불빛이 남자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가져다 댔다. [대표님, 인계했습니다. 지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하의 보고가 들려왔다. 상혁은 살짝 입꼬리를 비틀며 낮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하고 발... 그리고... 보내야 할 곳으로 보내.” 그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어둠보다 더 무거웠다. ‘부상혁을 건드린 대가... 죽음보다 더 끔찍할 거야.’ [네, 대표님.]상혁과 통화가 끊기자, 곧바로 송혜선을 둘러싼 경호원들이 움직였다. 벽 쪽에 몰린 송혜선은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처참한 비명이 깊은 밤을 가르며 울
최하성은 한 사람의 어깨에 손을 턱 얹으며 말했다. “하연아, 아직도 망설여? 이런 기회 다시 없어!” 마치 하연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하연은 살짝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상혁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진짜 내가 득 본 거네.’ 하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꼬리가 예쁘게 올라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요.” 짧고 확실한 대답이었다. 하연의 태도에 최하성이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바로 하자!” “오늘?” 하연은 깜짝 놀랐다. ‘너무 급한 거 아니야?’ “좋다! 오늘이 딱이지.” 최동신도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성아, 하연이 신분증 얼른 가져와라.” “네, 할아버지!” 최하성은 신이 나서 뛰다시피 나갔다. 마치 자기 결혼인 양 들떠 있었다. 조진숙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바로 정신을 차렸다. “원 비서, 상혁이 신분증도 준비해 주세요.”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두 사람은 양가 가족들의 따뜻한 시선을 받으며 함께 문을 나섰다. ...구청. 서류를 작성하고, 필요한 절차를 하나하나 밟아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두 사람의 손에 각각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가 쥐어졌다. 하연은 혼인관계증명서를 내려다봤다. ‘진짜구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어제까지의 불안과 걱정은 다 지나갔어.’‘이젠... 내 행복을 움켜쥔 거야.’ 그 순간, 상혁이 환한 웃음으로 하연을 껴안았다. “안녕, 우리 와이프!”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이었다. 하연도 활짝 웃었다. 눈이 실룩 실룩, 초승달처럼 예쁘게 휘어졌다. “안녕, 우리 남편!” 행복에 흠뻑 젖어 있던 상혁과 하연은 눈치채지 못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줄기 음습한 시선이 두 사람을 집요하게 쫓고 있다는 걸. 송혜선은 옷 속에 숨겨둔 단칼을 손아귀에 꼭 쥐었다. 구청 계단을 내려
송혜선은 조봉규를 거칠게 밀쳐냈다. 조봉규는 중심을 잃고 바닥에 거칠게 쓰러졌다. “안 돼... 혜선아...” 쿵!무거운 소리와 함께 조봉규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 천천히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결국 그는 의식을 잃었다. 송혜선은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조봉규의 얼굴을 스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손끝은 이내 떼어졌다. ‘이젠, 끝이야.’ 송혜선은 망설임 하나 없이 돌아서며, 서늘한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동안, 상혁은 대부분의 일정을 취소하고 하연의 곁에 머물렀다. 둘만의 달콤한 시간은 보는 이들까지 부러움에 빠지게 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양가 부모님들은 대만족이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양가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자연스레 상혁과 하연의 결혼 이야기가 오갔다. “약혼은 했지만, 전통대로라면 결혼식도 치러야지.” 최동신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진숙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연은 이미 조진숙에게 친딸과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대충 넘길 순 없었다. “걱정 마세요. 결혼식 준비는 제가 맡아서 잘 준비할게요. 두 아이는 그날 예쁘게 하고 참석만 하면 됩니다.” “하하, 고맙소, 고맙소.” 최동신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요즘 들어 최동신의 건강도 한층 좋아진 데다가 경사까지 겹치니 덩달아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만 행복하면, 우리야 바랄 게 없지.” 옆에 있던 최하민이 자연스럽게 거들었다. “결혼식은 서둘러야겠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안 했으니 그게 먼저 아닐까요?” 조진숙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소리쳤다. “맞다, 그걸 깜빡했네.”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혼인신고는 아이들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지. 중요한 일이니까.” 하연과 상혁은 나란히 계단을 내려오다, 자연스럽게 들려온 혼인신고 이야기. 둘 다 순간 멈칫했다. 본능처럼 서로를 바라봤다. ‘
상혁은 말없이 부동건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지나간 모든 일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한 파래임 한 파래임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마음을 다잡은 상혁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부남준 사건은 예정대로 재판이 열렸다. 부씨 가문은 변호사를 통해 대응했지만, 형사 사건인 만큼 얽히고설킨 진실을 밝히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DL 그룹, 최상층 대표실.상혁은 혼자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거대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결국 이 순간이 오는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원신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재판 끝났습니다.” 상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걸 느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판결 나왔어?” “예상대로입니다. 다시는 못 일어날 겁니다.” 원신민의 말은 고요했던 상혁의 마음에 작은 돌을 던진 것처럼 퍼져나갔다. 두 사람의 목숨과 확실한 증거. 이미 알고 있던 결말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다가오니 상혁도 묘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부 회장님도 알고 계시나?” “예,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기절하셨지만, 다행히 지금은 안정을 되찾으셨고요.” 원신민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송 여사는 재판하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판결 듣자마자 바로 떠났어요.”부동건에게 쫓겨난 후, 송혜선은 과거의 화려함을 모두 잃었다. 부동건은 그녀에게 줬던 모든 부동산을 회수했고, 카드 계좌까지 정지시켰다. 이제 송혜선에게는 남은 보석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 상혁은 가늘게 눈을 좁혔다. ‘재판에 온 건 놀랍지 않지만... 반응이 이 정도로 끝났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바로 상혁은 차갑게 말했다. “송혜선 감시 붙여. 또 무슨 일 일으키기 전에.” 원신민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어둡고 습
비틀거리던 부동건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정신 차려... 이 순간만은 피하지 말자.’ 그는 느릿한 걸음으로 상혁 쪽으로 다가갔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리. 마침내 눈앞에 다다라 멈춰 섰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이 정확히 맞닿았다. 부동건은 말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막상 눈을 마주하니,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부동건은 깊은숨을 들이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상혁아. 그동안, 너랑 너희 어머니한테 내가 너무 못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그날, 그 선택이 결국 우리 가족을 무너뜨린 거야.’ 사실, 부동건은 이혼하던 날부터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로의 모든 시간은, 그저 체면과 자존심을 위한 연기였을 뿐이다. 지금 이 꼴이 된 건... 결국 하늘이 내린 벌이었다. ‘자업자득이야. 이 모든 건 내가 자초한 거니까.’ 상혁은 조용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엔 적당한 거리감과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게 이제 와서 중요하진 않아요. 저도, 어머니도... 이미 오래전에 마음 정리했어요.” 그 말에 부동건은 눈을 감았다. 눈가에 뜨거운 기운이 차오르는 걸 애써 참았다. “그래. 마음 내려놨다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잠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던 부동건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한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상혁에게 건넸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고, 더는 회사를 끌고 나갈 힘이 없다. DL그룹은 내가 처음부터 세운 회사다.”“내 모든 시간과 인생이 들어간 곳이지. 하지만 이제는 놓아야 할 때가 왔다.” 상혁은 망설이듯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 상혁의 손에 부동건은 서류를 억지로 쥐여주며 아들의 손등을 두드렸다. “앞으로는... 네가 이끌어가야 한다.” 그 손길엔 조용한 무게와 책임, 그리고 사죄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입꼬리를 살짝 움직이던 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