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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유니폼

대표실은 살얼음장과 같았다.

늘 한서준을 조심스럽게 대하던 최하연이 강압적이고 차가운 태도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말에 서준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정말이야, 서준 씨?”

혜경이 다가온 순간, 서준은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이겠어?”

그는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여자 말대로 HT그룹에 일 잘 하는 사람은 차고 넘쳤어. 저런 일개 비서의 신분증은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아.”

“퇴사하기 전에 인수인계는 똑바로 해야지. 입사할 때 지급한 유니폼을 입고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는 건 HT그룹 규칙에 어긋나니까.”

그제야 하연은 자신의 신분증을 이용해 HT그룹으로 불러들인 서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이곳에 남거나 아무것도 없이 떠나거나.

서준은 이런 방법을 사용해 그녀를 항복하도록 하려고 했으며 하연이 항복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 순간, 하연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자존심까지 모조리 짓밟혔다.

“아, 그런 거야? 그런 거면 최 비서가 잘못했네.”

“순간 최 비서랑 서준 씨 사이에 뭔가 있는 줄 알았잖아.”

혜경이 서준의 품을 더 파고드는 것을 본 하연은 미친듯이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검은색 유니폼 자켓을 벗고 셔츠를 하나씩 풀었다.

“벗을게요.”

간결하고 확실한 네 글자.

‘서준 씨 말이 맞아. 끝낼 거면 확실하게 끝내야지.’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대표실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혜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미 고개를 숙인 서준의 욕정으로 얼룩진 서늘한 눈빛이 얼어붙었다.

그는 최근 하연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이 느낌은 그녀가 자신의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서준은 완전히 통제력을 잃었다.

아니면 3년이라는 결혼 생활동안 그녀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

대표실의 소문이 빠르게 퍼지자 많은 직원들이 문 앞에서 기웃거렸다.

아무도 항상 온화하고 친절했던 하연에게 그런 거친 면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셔츠를 벗은 하연은 하얀 나시만 입고 있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드러났다.

그녀의 몸매가 드러나자 밖에 있던 동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벗을 줄은 몰랐어요, 근데 최 비서님 몸매 진짜 예쁘네요.”

“아니, 우리 유니폼이 이렇게 펑퍼짐한데 누가 최 비서님 몸매가 저렇게 좋을지 알았겠어요?”

구동후의 뼈 때리는 말로 그들의 수다가 멈췄다.

“아주 한가하지? 일 안 해? 전부 월급에서 깎일 줄 알아!”

모여 있던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 즉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제야 동후는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대표님이 이미 퇴사한 일개 비서 때문에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건 처음 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표실 안에서 나시 하나만 입고 있던 하연은 갑작스러운 찬 공기에 움찔했다.

그녀는 추위를 견딘 후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대표님, 이제 제 신분증 좀 주실래요?”

하연은 그가 또 다른 이유를 대며 거절할까 봐 걱정하며 말했다.

“말씀하신 인수인계는 제가 자리를 잡은 후 구 실장님께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대표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난 달 월급은 안 주셔도 됩니다.”

이는 서준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겠다는 뜻이었다.

서준의 검은 눈동자는 서늘해졌고, 확고한 하연의 모습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휘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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