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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비서이자 아내

비행기 일등석 기내 안.

한서준은 버리라고 말한 두 개의 반지를 꺼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좀 더 두꺼운 반지를 골라 꼈다. 한 번도 껴본 적 없는 반지가 잰 것처럼 사이즈가 딱 맞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서준은 업무상의 이유로 결혼반지를 3년 동안 끼지 않았다.

평범한 커플이라면 화를 내며 싸울 일이었지만, 싫은 소리 하나 없이 현명하고 이해심 많았던 최하연은 늘 그에게 관대했다.

하지만 3년 후 서준과 이혼을 하고 다른 누구보다 더 매정하게 그를 떠나 결혼 반지조차 원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서준은 소리 없이 반지를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은 모습과 무자비하고 단호한 모습.’

‘도대체 뭐가 진짜 네 모습이야?’

비행기는 곳 D국에 도착했다.

서준은 곧장 NW그룹 꼭대기 층에 있는 대표실로 향했다.

나운석은 사슴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컴퓨터와 프로젝트 서류를 번갈아 확인한 다음 서류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서준아, 보니까 HT그룹의 참가 자격은 충분한 것 같네.”

서준은 짙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역시 DS그룹이 막고 있었네.’

운석이 물었다.

“DS그룹 최하민 대표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기록을 보니까 그 사람이 HT그룹 참가를 거부했다고 하더라고.”

서준의 눈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난 한 번도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이번 박람회도 내 비서가 맡았고. 이전 보고서에는 별 탈 없이 서명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어.”

“그럼 비서는 어디 있어? 비서한테 처리하라고 해.”

운석은 시크하게 웃으며 쥐고 있던 펜을 돌렸다.

서준은 그대로 고개를 떨군 채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뒀어.”

그 말에 운석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 비서 짓이네. 뒤에서 일을 다 망쳐놓고 회사를 떠난 게 분명해.”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를 썼을 거 아니야, 뭐해, 고소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켜서 고소한다라...’

서준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어두워졌다.

이때 구동후는 대표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 대표님, 그 비서는 한서준 대표의 아내 분이십니다.”

운석은 큰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고 사슴 같은 눈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너 같은 슈퍼맨이랑 결혼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누가 네 비서이자 아내가 될 수 있었을까.”

...

서준은 운석과 말다툼을 벌이고 싶지 않았고, 운석은 항상 남의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말했기에 이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 운석이 말이 맞아.’

‘하연이는 참 완벽한 사람이었어.’

그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서준은 하연을 완벽한 비서라고만 생각한 나머지 아내라는 신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운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롱 섞인 말을 건넸다.

“결혼식은 언제 올렸어? 네가 소개도 안 시켜줘서 모르고 있었잖아.”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지만 사업의 발전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서준은 하연과 비밀리에 결혼했고 주목할만한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다.

안태현과 H시에 있는 몇몇 친구들 만이 이를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서준이 평범한 집안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손해보는 결혼을 했다고 여겼고 서준의 결혼 소식을 쉬쉬하며 독신으로 취급했다.

“얼마 전에 이혼하셨습니다.”

동후는 재빨리 말을 꺼냈고, 그가 눈치를 차렸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서준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그는 고개를 숙이며 한심한 자신을 속으로 저주했다.

운석이 건네려던 농담도 동후의 말에 다시 들어갔다.

“에이, 뭐 그런 거 가지고. 결혼 그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야. 이혼도 잘 선택했어.”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

서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형제와도 같았던 운석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진짜 결혼하기 싫어!”

“우리 아빠가 나한테 DS그룹의 못생긴 최씨 집안 막내 딸이랑 결혼하라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여자가 해외에 있어서 핑계라도 댈 수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귀국했대. 압박이 장난 아니야!”

“날짜까지 잡으면서 빨리 그 집안으로 장가 가래.”

“이 일 때문에 탈모가 생길 지경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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