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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오빠의 마중

“서준 씨?”

민혜경은 한 공간에 같이 있는 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모른 채 그저 최하연이 눈에 거슬리기만 했다.

“서준 씨, 얼른 주고 보내! 오늘 우리 부모님이 내가 당신 데리고 오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어, 오랫동안 못 만났잖아, 우리 부모님이 서준 씨 보고 싶대.”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한서준은 정신을 차렸다.

한씨 가문은 민씨 가문에 가책을 느끼고 있어 그는 민씨 저택에 방문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말에도 하연의 얼굴은 서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더 이상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평온했다.

서준은 답답하고 복잡했다.

“저기 있어.”

하연은 그가 턱으로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그곳엔 신분증이 정수기 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채 마치 그녀처럼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

“네.”

하연은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고 신분증을 주워들은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서 대표실을 떠났다.

그 뒤에는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이 그녀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대표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저 흥미롭게 보는 사람도 있고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의 시선에는 가십거리라는 배경이 깔려 있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선 하연이 서준을 꼬셔서 그에게 쫓겨났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녀는 법적으로 서준의 부인이었지만, 내연녀로 치부됐다.

하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참기 위해 애쓰며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뒤에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최 비서님, 밖에 비 와요. 추우시면 제 겉옷 드릴게요.”

우산을 가져다준 사람은 다름아닌 구동후였다.

‘매정한 HT그룹에도 따뜻한 사람이 있긴 하구나.’

겉옷을 벗으려는 동후를 본 하연은 그를 말리며 씁쓸함을 목에 삼켰다.

“아니에요, 고마워요 구 실장님. 이제 만날 일도 없겠네요.”

그녀의 씁쓸한 표정을 본 동후는 입을 움직였지만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하연은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 빗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럴 때는 폭풍우만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앉아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하연은 몇 년 동안 살았던 도시가 눈에 들어와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지친 그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말했다.

“오빠...”

그녀는 상대에게 몇 마디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8시간 후, 전용기가 B시 공항에 착륙했다.

하연은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의 품에 안겼다.

뒤에 있던 경호원이 그녀의 캐리어를 끌고 두 사람을 전용기에 태웠다.

...

늦은 밤,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천천히 한씨 고택으로 들어섰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서준은 고개를 들어 무성한 관목 아래 고층 저택을 바라봤다.

평소 늘 불이 켜져 있던 침실도 어둡기만 했다.

‘진짜 갔구나.’

혜경은 서늘한 서준의 기운을 느꼈고, 식사 자리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서준 씨, 밥 먹을 때 우리 언니랑 서준 씨 사이에 일어난 일로 기분이 상했다는 거 알아. 결혼은 서두르지 않아도 돼, 우리 아빠는 신경 쓰지 마. 우리 아빠는 내가 혼전임신이라 재촉하는 것뿐이야...”

혜경의 말에 서준은 생각을 뒤로 미뤄두고, 그녀가 잡은 자신의 소매 끝을 보며 말했다.

“구겨졌네.”

혜경은 그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뗐다.

그 후 서준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고, 혜경은 쓸쓸히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대표실에서 자기 다리 위에 앉혔으면서 어떻게 하루도 안 지났는데 딴 사람이 된 거야?’

하지만 그녀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서준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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