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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참가 자격

고택에서 한참을 기다린 가정부는 돌아온 한서준의 외투를 받아들었고, 서준의 뒤에 있는 민혜경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혜경 아가씨, 방은 준비해 뒀습니다. 이쪽 복도를 따라 올라가시면 됩니다.”

서준을 따라 계단으로 향하던 혜경은 멈춰 서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서준 씨, 우리 같이 자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고택으로 들어오는 걸 동의한 서준은 결혼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격이었다.

함께 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말에 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혜경은 더 이상 어떠한 말도 감히 하지 못했다.

남아있던 하연의 흔적이 사라질까 봐 그는 가정부에게 다른 방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었다.

“난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까 먼저 자러 가.”

서준은 무관심한 어투로 혜경을 바라보며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예상대로 혜경은 여전히 달갑지 않은 추궁을 해 왔고, 서준의 지시를 받은 배현숙이 그녀를 막았다.

“혜경 아가씨, 절 따라오세요.”

고택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차갑기 짝이 없는 서준의 얼굴을 가렸다.

혜경은 마음속의 불만을 억눌렀다.

‘귀국한 후로 서준 씨의 행동이 너무 달라졌어.’

가깝고도 먼 그의 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서재로 돌아온 서준은 샤워를 하고 목욕가운을 입은 뒤 손에 든 문서를 훑어봤지만 정신은 딴 데로 가 있었다.

예전 같으면 하연이 서재에 따뜻한 수프를 가져다주고 침실로 가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

때로는 서재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때로는 침실로 돌아와 그녀는 소파에서, 서준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지만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프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수프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그녀의 흔적에 서준은 괜히 짜증이 났다.

이때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구 실장’이라는 글자를 보고 서준은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대표님, 방금 D국 국제 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는데 HT그룹이 기부금액이 적다는 이유로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합니다.]

서준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 원래 이 모든 것은 하연이 담당했지만 그녀가 떠난 이상 모든 건 동후의 몫이 되었다.

“기부금액 적다고? 박람회 참가 자격은 각 그룹이 적십자사에 기부한 금액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거 아니야? HT그룹은 작년에 이미 600억 원을 기부했어, 근데 적다고?”

대표의 기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동후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 문제에 대해 알아보려고 최 비서님께 연락드렸지만, 사용할 수 없는 번호라고...]

...

동후는 다음 말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곧 서재는 정적에 휩싸였고 서준은 인상을 지으며 오늘 대표실에서 유니폼을 벗던 하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휘몰아쳤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하연은 시골에서 태어나 수도권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는 노력 끝에 옷가게를 열었지만 서준과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그렇게 하연은 한씨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주는 용돈을 제외하고는 추가 수입이 없었다.

‘돈도 없는 여자가 어디로 갔을까?’

“우선 시골로 가 봐.”

그는 하연이 알려준 고향 주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고, 그녀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D국 국제 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 담당자에게 전화해. 총책임자랑 얘기를 해 봐야 겠어.”

전화를 끊은 서준은 휴대폰을 집어 던졌고, 그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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