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야죠. 면접 끝까지 봐야죠.”그는 능청스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구진원입니다. 진실의 진, 원할 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연미혜는 간단히 악수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력서 봤어요.”연미혜는 이력서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이제부터 제가 구진원 씨를 면접해 보는 건가요? 아니면 계속해서 저를 테스트하실 생각인가요?”그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전 뭐, 둘 다 괜찮습니다.”이력서에 따르면, 그는 알고리즘에 강점을 둔다고 했다.연미혜는 그가 데이터 정제, 특성 엔지니어링, 하이퍼파라미터
연미혜는 김태훈의 말을 듣고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김태훈은 이력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물었다.“이력서는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 실력은 어때?”“수준급이었어요. 인공지능 쪽에 입문한 지는 2년도 안 됐는데, 이미 대부분 박사급 개발자보다 뛰어나요.”“오... 그 정도야?”김태훈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타고났네. 마음에 들어?”“후보로 생각하고 있어요. 다만...”“며칠 못 가고 훌쩍 떠날까 봐 걱정이지?”“맞아요...”물론 CUAP이든 Infinite-CM이든, 구진원은 정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게
월요일 아침, 연미혜가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AI 학술지에서 그녀의 논문이 정식 게재 승인되었다는 메일이 도착했다.잠시 후, 김태훈이 업무 관련해서 찾아왔다가 그 소식을 들었다.“논문 게재 승인되었어요.”“난 예상했어.”그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유명욱 교수가 검토하고 좋다고 한 논문이라면 당연히 통과됐을 거라 믿고 있었다.업무 이야기를 마무리하던 연미혜가 시계를 흘끗 보며 물었다.“점심 같이 드실래요?”김태훈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오늘은 안돼. 약속 있어.”“무슨 약속이요?”“소개팅.
그 뒤로 경민준은 단체 대화방에 짧은 메시지를 하나 더 남겼다.[고객 접대 중. 너희끼리 얘기해.]그러고는 더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하승태도 차에 올라탄 후 단톡방을 확인했지만, 굳이 이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나도 좀 바빠... 너희들끼리 얘기 나눠.]그러고는 카톡 창을 닫아버렸다.정범규는 말없이 점 세 개만 남겼다.그렇게 되자 임지유도 발 빠르게 응수했다.[난 식사 약속이 있어서 이만... 다음에 얘기하자.][...]대화방엔 더 이상 아무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다들 해
잠시 후, 경민준이 전화를 받았다.“하원했어?”경다솜은 대답했다.“네...”“엄마 보고 싶어?”“네.”“엄마한테 전화는 안 했어?”“네.”경민준은 웃으며 말했다.“전화해 봐. 오늘은 엄마가 받을 거야.”그 말에 경다솜의 눈이 반짝였다.“정말요?”“응. 전화해 봐.”“네!”전화를 끊자마자 경다솜은 연미혜의 번호를 눌렀다.연미혜는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병원과 고씨 가문에서 한 번씩 마주친 걸 제외하면 딸과는 벌써 한 달 넘게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그 사실이 마음을 건드렸다.그녀는
식사를 마친 뒤, 경다솜이 무심코 말을 꺼냈다.“아... 엄마, 아빠는 출장 갔대요.”그제야 연미혜는 경민준이 출장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각.연미혜가 샤워 중인 사이, 침대 위에 두고 온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전화를 먼저 받은 건 경다솜이었다.화면에 하승태의 이름이 뜬 것을 본 경다솜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승태 삼촌, 다솜이에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하승태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다솜아... 안녕.”그때, 연미
그동안 임씨 가문 산하의 엘리스 그룹은 핵심 기술도, 고급 인력도 없어 적자를 겨우 메우며 유지되는 상태였다.이번 출장에서도 경민준은 시간을 쪼개 해외에서 인재들을 수소문했고, 엘리스 그룹에 맞는 기술자 몇 명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그가 손을 뻗은 이상, 엘리스 그룹은 조만간 다시 숨통이 트일지도 몰랐지만 이 모든 일은 연미혜가 몰라도 무관한 일들이었다.만약 연미혜가 아직 경민준을 마음에 남겨두고 있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오히려 상처가 될 뿐이라는 걸 하승태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굳이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점심
하승태는 여전히 무반응이었다.그때 마침 누군가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고 상대는 연미혜와 김태훈까지 아는 사람이었다.자연스레 넷이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들 사이엔 빠르게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됐다.그 곁에 서 있던 손아림은 대화에 낄 틈도 없이 방치된 채 멍하니 서 있었다.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상황에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결국 억지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정범규가 중얼거렸다.“승태는 요즘 따라 두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것 같네.”
연미혜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녀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바빠. 그리고 약속 지켜. 다솜이 외할머니댁엔 절대 못 가게 해.]잠시 뒤, 경민준에게서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알겠어.]이후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연락도 해 오지 않았다.어린이날 연휴 다음 주말은 마침 주말이었다.그날 오후, 연미혜는 가족들과 함께 관광지에서 래프팅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때 차예련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는데, 사진 속 인물은 임지유였다.차예련은 지금 쿠바나에 머무르며 패션쇼 준비로 한창이었다.사진을 본 연미혜는 메시지를 보냈다.[
‘넥스 그룹이랑 세인티가 해지한 건 알고 계신가요? 교수님의 제자인 김태훈 대표가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재능을 믿고 우쭐대는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여자한테 휘둘려서 점점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던데요. 혹시 그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염성민은 막 입을 열려다 말았다.곁눈질로 경민준이 있는 걸 본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사실 이 얘기는 전부 임지유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임지유의 옆에 경민준이 있었다.염성민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이런 말을 할 명분이 없었다.괜히 앞장서서 이런
임지유는 곧바로 해약서에 서명했다.배상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기한 내에 전액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이 소식을 들은 김태훈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생각보다 행동이 빠릿빠릿해서 좋은걸?”해약 이후의 처리 절차는 변호사가 맡았고, 임지유가 서명한 뒤로는 김태훈과 연미혜 모두 더 이상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이삼일 뒤, 유명욱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두 사람을 불러 모았다. 한동안 얼굴을 못 본 터라, 사제지간에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인 식당에 도착했는데, 식당 입
임지유는 계약 해지를 결정한 뒤, 곧바로 경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경매 날에 김태훈 어머님이랑 얘기하다가, 내가 말을 좀 잘못했어. 그걸 사모님이 딱 집어냈고... 게다가 김태훈 쪽은 아예 세인티랑 엮일 생각이 없어 보여. 만약 소송으로 가서 이긴다고 해도 나중에 또 딴지를 걸어 협력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담담히 결론을 내렸다.“그쪽이 처음부터 협력 의지가 없었다면, 괜히 시간 끌기보다 지금 깨고 다른 파트너 찾는 게 낫다고 봐.”경민준은 그녀가 무슨 말을 실수했는지 구체적으로 묻
‘김태훈 어머니가 연미혜를 좋아한다고? 그게 말이 돼? 진짜라면... 어제 김태훈 어머니한테 했던 말들은 대체...’임지유는 갑자기 이미연이 대화 도중 갑자기 통화하러 다녀온 일이 떠올랐다.머릿속에 전화를 받는다며 자리를 비운 장면이 스치자, 묘한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그녀의 낯빛이 안 좋아진 것을 본 경민준이 곁에서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그 말에 임지유는 정신을 가다듬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나 괜찮아.”그날 저녁, 임지유는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렸다.이미연이 연미혜를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날 아침, 경민준은 임지유, 경다솜과 함께 일찍부터 경기장에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하승태와 수연도 도착했다.경다솜이 그들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승태 삼촌, 안녕하세요!”“수연아, 와줘서 고마워!”수연이 경다솜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이제 곧 경기 시작되잖아. 다솜아, 많이 긴장돼?”경다솜은 고개를 저으며 또렷하게 말했다.“긴장되긴, 당연히 긴장 안 되지!”하승태는 다른 일정이 있어 경기엔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는 수연이를 데려다주러 잠깐 들른 것이었다.경민준이 그의 사정을 알고 먼저 말했다.
김태훈의 부모님이 자리를 뜬 뒤, 경민준이 물었다.“사모님이랑 얘긴 잘했어?”임지유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런 것 같아. 고마워.”임지유는 속으론 생각했다.‘방금 사모님 얼굴 보니까 연미혜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는 것 같던데....’사실 세인티와 넥스 그룹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이미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태훈이 미리 설명을 해뒀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임지유와 이야기를 나눌 때 울린 전화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화를 미리 녹음해 두고, 자리를 비켜선 후 멀리서 경민준과 임지유 쪽을 슬쩍
임지유는 며칠은 기다려야 소식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경민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김 회장님이랑 사모님께서 내일 경매 행사에 참석하신대. 우리도 같이 가보자.”그 말에 임지유는 미소 지으며 답했다.“좋아.”다음 날 저녁, 경매장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민준은 임지유를 데리고 곧장 김태훈의 부모님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직접 임지유를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김태훈의 부모는 이미 경민준과 연미혜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연미혜와 임지유 사이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지현승이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염성민이 다시 물었다.“성민아, 철호 아저씨나 아버지 말고,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유명욱 교수님 연락처 아는 사람 또 없어?”“없는 것 같아.”지현승이 대답했다.그렇게 말한 뒤,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말을 이었다.“근데, 너 전에 임지유 씨가 유명욱 교수님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마 지유 씨는 교수님이 연락처를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한테 직접 연락해서 해결될 일이라면, 임지유 씨가 알아서 연락하지 않았을까?”염성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