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너희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김수미는 정색하며 말했다.“온재준도 쟤 형보다 못하잖아! 돈만 있으면 뭣보다 나아. 온지유를 봐! 다른 사람들한테 부러움 받고, 칭찬받고… 어디 가나 온지유가 온채린보다 낫다고 하지. 네 딸은? 영감을 만나도 돈만 있으면 평생 걱정거리 없이 살 수 있어!”“엄마!”장수희는 인정하지 못한다.“나는 엄마처럼 돈만 보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다 나보고 그렇대. 이게 다 엄마 닮아서 그런 거였네. 난 내 딸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아!”“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가 뭐가 어때서!”김수미는 화를 내면서 말했다.장수희는 점점 흥분했다.“내가 지금 어떤데? 남편도 죽었고, 이 지경이 됐는데 뭐가 좋아!”“그건 네가 쓸모가 없어서 그렇지.”김수미는 장수희를 나무라기만 했다.“네. 그래요. 내가 소용이 없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가세요! 가서 아들이나 찾으세요. 이런 쓸모없는 딸은 찾지 마세요!”장수희는 이런 어머니를 두고 있다는 게 씁쓸했다.온지유는 문밖에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다 들었다.온지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들이 화를 가라앉힐 때야 문을 두드렸다.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장수희는 동네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들어오세요.”온지유가 들어왔다.장수희는 온지유를 보고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오히려 김수미가 일어나 얼른 웃으며 대접했다.“지유구나. 얼른 와서 앉아라.”김수미는 유난히 다정하게 대했다.“차라도 마실래? 한잔 따라줄게.”김수미의 행동에 장수희는 더욱 이해가 안 갔다.분명 장수희와 온지유 사이가 좋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니 딸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다.온지유도 김수미의 행동에 부담스러워서 차갑게 말했다.“차는 괜찮아요. 숙모 찾으러 왔어요.”그러자 김수미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래. 네 숙모랑 이야기 나눠라.”김수미는 장수희를 보고 당부했다.“수희야. 너도 작작 해라. 지유가 그래도 조카
온지유는 장수희가 그들과 만났다는 걸 잘 알고 있다.장수희가 소리를 질러서 말했는데도, 온지유는 침착하게 물었다.“그날 삼촌이 납치된 현장에 다른 한 사람이 있었어요. 여자였는데 저한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변성 처리를 했어요. 당신들이 다 저를 모함하는데, 누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저를 납치한 사람도 한 명 더 있었고요. 전화한 사람이랑 같은 사람이라고 봐요. 그러니 삼촌을 죽인 사람을 찾으려면 숙모가 필요해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장수희는 믿지 않았다.“그냥 자기 살려고 다른 사람 있다고 모함하나 본데, 너 그렇게 살지 마!”장수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이다.온재준이 온지유를 납치해서, 이런 응보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장수희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잘못을 온지유한테 덮어씌우면 아무도 자기를 탓하지 않기 때문이다.“숙모. 잘 생각해 보세요. 삼촌의 죽음이 이대로 넘어갈 수 있는지. 저한테 그 여자를 알려주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게요.”온채린도 듣고, 온지유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해서 약간 비정상적이었다.온지유가 갔다.장수희는 화가 나서 책상을 뒤집혔다.온채린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엄마, 뭐 하는 거야?”장수희는 눈을 붉히며 말했다.“온지유가 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따로 있대. 자꾸 자기 죄를 덮어씌우려고 하잖아. 그냥 우리를 한 번도 생각해 준 적이 없어!”장수희는 또 울기 시작했다.온채린은 장수희를 끌어안았다.“엄마, 이러지 마.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보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그리고 엄마가 이렇게 속상한 걸 바라지 않을 거야.”발인하는 날이 밝았다.하늘에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분위기도 이상하게 침울했다.다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온재준을 할머니 할아버지의 묘비 옆에 묻혔다.정미리는 온경준과 함께 서 있었는데, 온경준은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말하지 않았다.다만 장수희와 온채린 모녀는 펑펑 울며 온재준의 묘비를 끌어
주소영은 피하지 않고 다만 머리를 옆으로 살짝 돌리고 다시 온지유를 쳐다보았다.“지유 씨. 화가 많이 나신 거 같네요. 사람 때는 거 폭행이에요. 범죄야!”온지유도 지지 않았다.“소영 씨가 한 짓보다는 못 하죠.”주소영은 겁먹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어떤 일이요? 지유 씨, 사람 함부로 모함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여행하러 왔어요.”“온지유! 뭐 하는 거야!”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여진숙이 걸어왔다. 표정은 사람을 때리려는 것처럼 하고 말했다.“간이 컸구나! 소영이를 때려? 우리 집안 핏줄이 배 속에 있는데, 어디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거야?”여진숙이 이쪽으로 와서, 주소영을 편들어 주었다.주소영은 이것만 믿고, 이겼다는 표정을 지었다.“아주머니, 괜찮아요.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제가 임신한 걸 보고 질투해서 그런가 봐요. 이해해요.”여진숙은 야박하게 굴었다.“지가 못 낳아서, 다른 사람도 못 넣게 하냐? 무슨 못돼 먹은 버릇이야!”온지유는 주소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주소영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금 기세가 올라가 있었다.주소영이 원했던 결과였다.온지유가 자기한테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분명 화가 날 것이다.주소영은 온재준을 살릴 리가 없다.온재준이 온지유를 어떻게 하지 못하니, 언제 가서 온지유한테 알리면 끝이다.그러면 주소영도 납치에 참여해서 감옥에 가게 될 거다.감옥에 가고 싶지 않아서, 그 죄를 뒤집혀 쓸 사람이 필요했다.그 사람이 온재준이었다.온재준만 죽으면 주소영이 한 일은 아무도 모르게 될 것이다.“가만히 서 있을 거야?”여진숙은 주소영을 부축하며 말했다.“한 번만 더 소영이 괴롭히기만 해봐. 그땐 가만히 안 있어! 내 손자가 잘못되기만 하면, 너 가만 안 둬!”주소영이 이어 말했다.“지유 씨. 아주머니랑 같이 여행하러 왔다고 했잖아요. 왜 믿지를 않아요? 여기의 공기가 좋아서 산책하기 좋고, 아이한테도 좋다고 해서 왔어요.”주소영은 배를 어루만지며 온지유 앞에서 자
주소영은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며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벌 받을 일도 없어요.”여진숙은 두 사람이 암시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온지유를 보니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여진숙이 냉정하게 물었다. “산책하러 나왔다가 너를 만나다니.”주소영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까 물어봤는데, 온지유 언니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 같아요. 바로 이 근처에서요.”“장례식?”여진숙의 얼굴이 굳어지며 주소영을 급히 끌어당겼다. “그 사람과 같이 있지 마, 불길해!”온지유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갑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러분이 있는 이곳 전체가 다 묘지입니다.”“이런 곳이었다니, 소영아, 너 왜 이런 곳에 온 거야.” 여진숙이 말했다. “가자, 다른 곳으로 가자. 이곳은 음기가 강해서 태아에게 좋지 않아!”그들이 얘기하는 동안, 마침 묘지 입구에 서 있던 온채린은 주소영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어두워졌다.저 여자다!온채린은 손을 꽉 쥐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 거지?그녀가 어머니와 함께 온지유를 비방했던 것은 그녀가 시킨 일이었다.그녀가 정말 온지유를 알고 있는 걸까?온지유와 무슨 원한이 있는 걸까?갑자기 그녀는 온지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죽음에 다른 범인이 있고, 주모자가 있다고 했던 말이...“온채린.” 장수희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뭘 보고 있는 거니?”그녀는 방금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겪은 후라 얼굴이 좀 초췌해 보였다. 집에 가려던 참에 온채린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온채린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마침 온지유의 모습을 보았다.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그 여자 뭐 하러 봐? 네 아버지가 죽었는데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 그녀는 정말 냉혈한 물건이야!” 장수희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온채린은 정신을 차리고 장수희를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
“아빠에게 사촌 언니가 엄마를 괴롭히고 경찰이 엄마를 구속시켰다고 말한 건 나였어요. 그래서 아빠가 화가 나서 사촌 언니를 찾았지만 그가 사촌 언니를 납치해서는 안 됐어요. 아마도 사촌 언니가 말한 대로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했을지도 몰라요. 우리를 도와준 그 여자가 그랬을 수도 있어요.”온채린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아무 이유 없이 남을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만약 목적이 있었다면...아빠도 그녀의 거짓말을 믿었던 걸까?“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장수희는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온채린이 말했다. “만약 아빠를 해친 다른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빠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고 범인을 처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끝났어?”여이현의 큰 키의 커다란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뒤에는 차가 세워져 있었다. 온지유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물었다.온지유는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끝났어요.”“모두 돌아갔어. 너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여이현은 그녀가 늦게 온 것을 보고 말했다.온지유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아까 주소영과 당신 엄마를 봤어요. 잠시 얘기했어요.”여이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온지유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여기 왔다고?”온지유가 말했다. “여행하러 왔다고 해요.”여이현은 침묵했다.온지유는 자신이 누명을 썼던 일과 삼촌이 자신을 납치하려 했던 일을 여이현에게 말할지 고민했다.아마도 그에게 또 다른 번거로움을 줄까 봐 걱정했다.번거로운 일을 줄이는 게 낫겠지.“가요.” 온지유가 말했다.그녀는 차에 타려고 했지만 여이현이 움직이지 않자 그를 돌아보았다.여이현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여기 여행하러 왔다고? 너한테 뭐라고 했어?”온지유는 태연하게 말했다. “당신 엄마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겠어요?”여이현은 대충 이해했지만 온지유의 반응에 의문을 가졌다. “
그녀는 깜짝 놀라듯 여이현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은 매우 차갑고 눈은 얼음같이 싸늘했다. 그는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 “너 요즘 이상해. 내가 알아차릴까 봐 무서운 거야?”온지유의 심장은 반 박자 천천히 뛰었다.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무슨 걸 알아차린다는 거예요?”여이현은 말했다. “처음 네가 나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몰래 병원에도 가고!”온지유는 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내 생활은 아무 이상 없어요. 당신이 괜히 의심하는 거예요.”“그럼 이유를 말해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여이현은 온지유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계속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온지유는 손을 맞잡아 긴장을 풀고 나서 말했다. “여이현, 당신이 이상하다는 거 못 느껴요?”“내가 이상해?”겨우 여이현은 그런 이유를 들었다. 그녀의 말은 신빙성이 좀 떨어졌다.“내가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야?”온지유는 말했다. “당신 요즘 나에게 너무 신경 쓰고 있어요.”그 말을 듣고 여이현은 약간 입술을 다물었다.“내 생활의 작은 행동들이 당신에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요.”그녀는 화살을 여이현에게 돌리고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말했다.온지유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요. 병원에 가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어요. 내가 우유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관심 없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당신은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어요.”“당신이 나에게 대해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나를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혹시 나를 좋아하게 된 거 아니예요?”그 말을 듣고 여이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냉담하게 말했다. “온지유, 선을 넘었어!”온지유는 담담하게 시선을 돌리며 그가 이런 대답을 할 줄 예상하고 있었다.예전에는 그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터놓지 않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지유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했다. 온재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지유야.”정미리가 갑자기 들어왔다.온지유는 움직임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정미리는 그녀 옆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온지유도 이를 눈치 채고 그녀 옆에 앉았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이번에 여이현이 왔잖니.” 정미리가 말했다.“네.”정미리는 온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가 이혼할 거라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이번에 도와주러 오고 전혀 이혼하는 것 같지 않더구나. 이렇게 된 거면 굳이 사람을 귀찮게 할 필요 없잖니.”그들은 여이현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갚기 힘들어질 것이다.온지유는 말했다. “우리가 고향에 오는 걸 여이현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감사 인사를 할게요.”“그런데 왜 그가 너를 도와주지?” 정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네가 좋은 남편을 만난 줄 알았을 거야. 결혼을 숨기든 말든 상관없었을 거야. 지금 사람들은 내가 좋은 사위를 뒀다고 얼마나 열성적인지 몰라. 여이현이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너희를 이해할 수가 없어.”그뿐만 아니라 그녀도 이해할 수 없었다.사랑 없는 결혼인데도 그는 항상 자신의 일처럼 그녀의 일을 챙겨준다.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그를 남편이라고 외부에 말한다.정미리는 다시 말했다. “나는 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를 사랑하는 남자를 찾고 돈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 물론, 이현이는 모든 면에서 훌륭하지만 결국 한순간의 꿈일 뿐이야.”온지유는 어머니가 자신이 빠져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알겠어요, 엄마.”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이 결혼은 반드시 끝낼 거예요.”정미리는 온지유의 손을 잡으며 약간 마음이 아팠다. “미안해, 지유야.”온지유
장수희는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온재준이 땅속에서라도 편히 잠들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온재준이 헛되이 죽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온지유, 온재준의 일로 우리가 큰 대가를 치렀어. 우리도 고통을 겪었어.” 장수희는 이 며칠 사이에 한순간에 늙어버린 듯 보였고 머리에는 몇 가닥의 흰머리가 생겼다. “장례식 동안 내가 너에게 심한 말을 한 것에 대해 미안해. 내가 이성을 잃었었어. 이제 온재준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어.”“숙모” 온지유가 한 번 불렀다. “모든 일은 이미 지나갔어요. 저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요.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옛일에 얽매여서는 안 돼요. 온채린의 실습 문제는 제가 해결할게요. 비록 그녀가 여진그룹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절대 그녀를 억울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이 말은 그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온지유의 인맥은 그녀들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에 절대 손해 보지 않을 것이다.“고마워, 온지유.” 장수희는 안심하며 웃었다.온채린도 따라서 말했다. “고마워요, 사촌 언니.”본론으로 돌아와, 온지유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 앨범을 열고 바로 사진을 그녀들 앞에 놓고 물었다. “당신들을 꼬드긴 사람이 이 사람이에요?”장수희와 온채린은 사진을 보고 약간 흥분하며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켰다. “맞아요, 맞아요!”그들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어떻게 알았어요?”온지유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묘지에서 그녀는 주소영의 사진을 몰래 찍어 두었는데 바로 그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녀의 추측이 맞았다.이렇게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이 사람을 알아요. 그녀는 나에게 문제를 일으키려고 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요. 당신들 가족을 노린 거죠.”온지유는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뒤에서 이 모든 일을 주도한 사람이 주소영이었다.온채린은 말했다. “난 봤어요. 묘지에서 그 여자가 언니를 해치려 했지만 우리 아빠를
하지만 감동보다는 오히려 속이 울렁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문지원은 당장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지석훈도 뒤따라 들어오며 물었다.“속이 안 좋아?”“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세 끼 식사도 꽤 규칙적으로 하고 날것 이거나 차갑거나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는데...”문지원은 배를 움켜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지석훈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듯 방으로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가져왔다.문지원은 놀라며 물었다.“언제 산 거예요?”지석훈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문지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5분 후,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다시 나왔다. 한 손은 여전히 배 위에 올려져 있었고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정말 임신한 것이다!그녀와 지석훈이 결혼한 지 겨우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임신하다니.지석훈은 오히려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보면 그 역시 겉모습처럼 평온하지 않고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정말 임신한 거예요?”문지원은 아직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번 달 초에 생리가 끝났기 때문이다.“아마 생리가 끝난 후 며칠 사이일 거야.”지석훈의 목소리는 문지원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녀의 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임신 테스트기는 가끔 틀릴 수도 있으니 이런 일은 직접 검사를 받아보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녀는 손에 든 검사지를 보고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의사는 마침 지석훈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축하합니다, 지 원장님. 부인께서 임신 2주 차입니다.”“감사합니다.”지석훈은 침착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병원 진료실을 막 나오자마자 지석훈은 문지원을 품에 안았다.“너무 좋아. 우리 아이가 생겼어.”문지원은 남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며 멍하
물론 손에 있는 일을 무턱대고 모두 남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과한 부담을 주는 일이다.문지원은 비서를 사무실로 불렀다.“올해 25살이죠?”비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녀의 나이는 모두가 다 아는데 문지원 회장이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혹시 소개팅을 시켜주려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비서는 고마웠지만 거절하며 말했다.“문 사장님, 저는 아직 젊어서 당장은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전 당신더러 결혼하라고 하는게 아니에요.”문지원은 펜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말했다.“그냥 평소에 잡다한 일들을 맡기고 싶어서요.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은 평소에 굳이 내게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비서는 그 뜻을 이해했다.이건 곧 그녀에게 승진과 급여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문지원이 그녀의 의견을 확인한 후 급여를 조금 올려줬고 비서에게 몇 명의 적합한 인재를 추가로 모집해서 예비 인력으로 두라고 지시했다.“평소에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마다 보고하면 돼요.”비서는 한숨을 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녀 혼자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일정이 정리되자 문지원은 업무에서 상당 부분 해방되었다.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다 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고 긴급 통지가 오면 또 회의를 위해 야근을 해야 했다.이제는 오후 4시 반쯤이면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비서가 몇 명을 더 찾아서 양성해 두었기에 업무가 적절히 분배되어 모두 바빠 죽을 정도가 아니라 적당히 딱 맞는 분량을 처리할 수 있었다.그 덕에 문지원은 지석훈과 함께 결혼 후의 삶을 더욱 즐길 수 있게 되었다.지석훈도 이에 매우 만족해했다.“널 주려고 선물을 챙겨왔어. 들어가서 한번 봐.”그가 집 문 앞에 다가서더니 걸음을 멈췄다.문지원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안은 어두컴컴했다.“뭐 숨겨놨어요? 아직 불도 켜지 않았네요, 수상하게.”탁! 하며 불이 켜지자 거실의 모든
문지원은 이 주제가 다소 위험하다고 느꼈다. 비록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배석훈이 결혼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를 먹어보지 않았다고 해도 돼지가 뛰어다니 것을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문지원은 그러면서도 반쯤 빚어놓은 만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이에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너희들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아이를 가져야지. 평소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단다.”문지원은 잔소리를 듣고 나서 나오니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시어머니는 문지원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거의 마음을 쏟아붓는 수준이었다. 비록 문지원의 집안 사정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혼수 때 오랜 세월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사서 선물해 주었다. 사실 지석훈도 자기 집이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희 집도 너희의 것이지만, 이건 내가 어른으로서 선물하는 거란다.”게다가 그 집에는 문지원의 이름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그래서 시어머니의 출산 독촉에도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버텨야만 했다. 다행히도 시어머니는 어린 이들에게 엄격하게 구는 편은 아니었다. 만두를 빚을 때 한 번 그런 말을 했고 또 떠나면서도 지석훈을 불러 몇 마디 잔소리했다. 문지원은 그 모자간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돌아가는 길에 문지원은 약간 궁금해져 지석훈에게 물었다.“나갈 때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셨어요?”“정말 알고 싶어?”“네.”그러자 지석훈은 문지원의 머리를 숙이게 한 후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며 귀 옆에서 낮게 속삭였다.“우리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셨어.”남자의 낮고 진한 목소리는 얼굴을 붉히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해 문지원의 귀가 금세 붉어지고 말았다.저녁이 되자 지석훈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문지원의 머리를 받치고 이마를 맞대며 낮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문지원은 마치 파도 속에 잠긴 것
그 눈빛 속에서 조용히 터져 나오는 그 소유욕. 마치 옛 시대의 군벌과 그의 부인 같았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운 없는 사람이 되어 몰래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자신의 상상에 자극받아 목소리가 떨렸다.“지석훈 씨,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봐주세요.”지석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진작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진작가는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여러 세트의 사진을 찍었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문지원에게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문지원은 모든 사진에 다 만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었다.“대략 며칠 안에 나오나요?” 그녀가 물었다.사진작가는 답했다.“빠르면 이삼 일정도 걸릴 겁니다. 그때 완성된 사진들을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인 부탁이 하나 있는데 혹시 두 분께서 응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바로 아까 찍은 사진 중 몇 장이 제가 개인적으로 아주 마음에 들어서 사진관 벽에 걸어두고 싶습니다.”문지원은 사진관에 들어올 때 봤던 사진 벽이 생각났다.“그 벽에 걸어두시겠다는 건가요?”“네.”사진작가는 그 벽은 사진관의 특별한 기념 및 홍보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잘 나온 사진들은 사진 주인에게 동의를 구한 뒤 동의하면 벽에 전시한다고 한다..문지원은 옆에 있던 지석훈을 바라봤다. “저는 괜찮은데, 당신은요?” 지석훈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마음대로 하도록 해.”며칠 후 문지원은 사진작가가 보내온 사진을 받아 소중히 간직했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 사진관 벽에 전시된 사진들이 곧 사람들의 눈에 띄어 사진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 것이다.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의 조합과 최상의 촬영 기술 덕분에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네티즌들은 저마다 아아 소리를 냈고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마치 옛 시대의 군벌 부인 같다.”“완전 대박이다.”“3분 안에 그들의 모든 정보를 알고 싶다.” 하지만 이 모
문지원은 약간 마음이 움직였다.하지만 웨딩 촬영은 이미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섬에서 몇 세트 찍었고 그 후 결혼식 현장에서 또 몇 세트 찍어 셀 수 없을 정도였다.게다가 이번 촬영은 개인 예약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사진관이 꽤 유명하다고 들었다.물론 사진관 이름에 걸맞게 예약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이 정도면 지석훈이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 예약을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웨딩사진만 찍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하지만 문지원 역시 이런 곳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기에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몰랐다.“한번 보세요. 이건 저희가 예전부터 선보였던 스타일들이에요.”사진작가는 친절하게 앨범 한 권을 꺼내 보였다.앨범에는 이전 고객들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이 있었고 모두 아름다웠다.이 사진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정말 최고였다.문지원은 그중에서도 민국 시대 주제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요?”사진작가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진을 한 번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됩니다. 먼저 메이크업하고 옷을 갈아입으세요. 직원들이 촬영 스튜디오를 설치할게요.”옷은 사진관에서 준비한 것으로 하고 지석훈의 요구에 따라 전부 새 옷이었다.사실 문지원은 소품용 옷을 입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한 번 입었다가 나중에 벗으면 되는 거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안에 옷을 받쳐 입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지석훈은 직업병이 발동했고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급히 새 옷을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원래 걸리던 시간에서 15분이 더 추가되었고 메이크업 등 기타 과정도 진행해야 했다.문지원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2시간이 지난 후였다.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곧은 치파오가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고 문지원은 옷자락을 살짝 들어 올렸다. 마치 지난 옛 시대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결혼 후 문지원은 휴가를 내서 신혼여행을 갈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요즘 지석훈이 거의 계속 병원에 머무르며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을 떠올리며 본의 아니게 한숨이 나왔다. 비록 이미 익숙해졌긴 했지만 실망을 감추기는 어려웠다.비서도 그녀에게 물었다.“문 사장님, 신혼여행 가고 싶지 않으세요? 제 동창 중 한 명이 며칠 전에 결혼했는데 요즘 여기저기서 신혼여행 정보를 알아보며 준비 중이에요. 신혼여행이 없는 결혼은 반은 실패한 거랑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제대로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고 비서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문 사장님, 지 의사님이 일하시는 곳에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그녀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쨌든 문지원은 요즘 정신이 산만하여 업무에 집중할 기색도 없었다.문지원은 비서의 시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와도 지석훈을 보지 못해 한참 혼란스러워했던 자신을 깨달으며 약간 부끄러워졌다.“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기획서 한 부 복사해 가져다주세요.”점심 무렵, 문지원은 막 일을 끝내고 밥 먹으러 가려던 찰나, 핸드폰에 지석훈의 메시지가 떴다. 같이 밥을 먹자는 메시지에 문지원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본 직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웃음을 터뜨렸다.문지원은 재빨리 열쇠를 챙기고 회사를 떠났다. 지석훈은 그녀를 새로 오픈한 가게로 데려갔다.식사를 마친 후 문지원은 지석훈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병원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응?”지석훈은 눈썹을 치켜들며 고의적으로 물었다. “내가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그 말을 들은 문지원은 순간 당황했다. 사실 그녀는 지석훈이 자신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주길 바랐는데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업무에만 매달려 밤에야 겨우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그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지석훈은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지석훈은 항상 선을 지켰지만 오늘 밤엔 조금 달랐다. 그는 그녀를 침실에서 욕실로 다시 침대로 옮겨가며 몸 곳곳에 뜨거운 입맞춤을 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문지원은 여전히 몸속 깊이 스며든 감각이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예상대로 휴가를 냈고 이틀이 지나서야 회사에 다시 나왔다.회사 사람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문지원이 출근하자 하나같이 말했다.“문 사장님, 결혼 축하드려요.’문지원은 무려 사흘이나 결근했지만 다들 그 사흘 동안 무얼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분명 부부 생활이 아주 좋았겠지, 아니었으면 일까지 내팽개치고 안 나왔을 리가 없다.문지원은 직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얼굴을 들 수도 없어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지난번에 당한 적이 있었던 터라 문지원은 이제 출근 전에 거울 앞에서 꼼꼼히 점검했다.몸에 키스 자국이 드러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고 회사를 향했다.그렇지 않았다면 그 흔적들을 들켰을 경우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문지원이 예상치 못했던 건 며칠 지나지 않아 결혼을 축하하는 선물이 회사로 배달됐다는 것이다.문지원은 처음에 여울이 보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어보니 아니었다.택배 상자의 외관을 살펴봐도 발신자가 적혀 있지 않아 더욱 수상했다.“이거 가져온 사람이 누가 보낸 건지 말했어요?”문지원이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로비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두고 바로 가버렸어요.”문지원은 뭔가 직감적으로 찜찜한 마음이 들어 그 택배를 챙겼고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는 브로치 하나와 축하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문지원은 축하 카드를 집어 들어보니 카드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결혼 축하해요.”글씨체는 아주 정갈하고 예뻐 여성의 필체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짐작이 갔다.문지원은 그 브로치를 지석훈에게 보여주자 그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 없이 브로치
여울은 아직 최주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최주하도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문지원이 알기로 여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고 결국 받아들이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도 괜히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게다가 얼마 전 지석훈이 슬쩍 귀띔하듯 말했다.“며칠 전에 여울 씨가 병원에 재검진받으러 왔는데 주하가 데리고 왔었어.”그 말을 듣고 문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평소에 말도 없고 조용하던 여울이 은근히 비밀 많은 타입이었던 모양이었다.그렇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다음 달 중순이 되었다.지석훈은 아예 와인 농장을 통째로 빌려 며칠에 걸쳐 그곳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꾸며놓았다.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바로 거기였다.그 와인 농장은 웬만한 호텔 못지않게 컸고 내부에는 수년간 숙성된 고급 와인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고 결혼식 날 손님들이 오면 바로 꺼내어 대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들은 결혼 소식을 널리 알리진 않았다.이건 문지원이 원한 방식이었다.그녀는 온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는 그런 결혼식보다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축하받는 걸 선호했다.행복은 굳이 남들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그런데 결혼식이 한창일 때 지석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프러포즈했다.해변에서 했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진중한 분위기였다.“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예전엔 내가 사랑인 줄도 모르고 놓쳐버렸던 순간이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남은 인생...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그의 말이 끝나자 하객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문지원은 무대 위에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식이 끝날 무렵, 문지원은 멀리서 검은색 카이엔 SUV가 그녀의 친구 여울을 데리러 오는 걸 보았다.차창이 천천히 내려가자 예상대로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주하였다
문지원은 문득 자신이 계획에 철저히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처음부터 계획한 거죠?”“응.”지석훈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사실,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숨겨온 것이었다....해변에서의 프러포즈 이후 문지원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손가락에 반짝이는 반지가 생겼다는 점이었다.이 반지는 지석훈이 특별히 맞춤 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휴대폰을 보다가 두 달 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가 있었다는 구매 기록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접한 지석훈의 부모님은 곧바로 혼인신고부터 하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문지원은 우연히 지석훈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타이르는 말을 듣게 되었다.“네 아빠랑 난 애초에 너한테 기대도 안 했어.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 같은 애한테 누가 시집오겠나 싶었거든. 그런데 다행히 네가 능력 있어서 지원이 같은 좋은 아이를 데려왔으니 얼른 확실히 붙잡아야지.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 나중에 그 아이가 너 버리고 떠나버리면 그땐 어디 가서 울어도 소용없어!”문지원은 그 대화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그런데 신기한 건 지석훈이 워낙 점잖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집안 분위기도 매우 조용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퇴직해 한가로운 성격으로 매일 독서나 산책을 즐기는 조용한 스타일이었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호탕한 성격으로 남편에게 엄격하면서도 친화력이 강한 사람이었다.두 분 모두 차분한 듯하면서도 내면에 장난기를 숨기고 있는 아들을 낳을 것 같진 않았는데 이게 바로 유전자의 신비인가 싶었다.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 주는 모습에 문지원도 안심했다. 확실히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한편 문지원의 아버지는 지석훈과 따로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