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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구아람이 임수해를 향해 눈짓했다.

임수해가 다가가 문을 열었다.

“구 사장님! 구 사장님!”

어제 사고를 친 부사장 고명이 임수해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구아람은 불쑥 나타난 고명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고 선생님, 왜 아직도 여기 계시는거죠? 선생님의 사직서는 제가 이미 수리한 상태에요. 다른 일자리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

“구 사장, 당신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돼! 내가 이 호텔에서 일한지가 20년이야, 난 내 몸이 병들어가면서도 이 호텔을 위해 일했어. 구회장도 날 쉽게 대하지 못하는데 당신이 날 해고해?”

고명이 얼굴을 붉히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제가 호텔의 모든 인사 자료를 읽어봤는데, 확실히 많이 아프시더라구요. 지방간에, 담낭염에 공짜를 아주 많이 드셨나 봐요.”

구아람이 피씩 웃으며 말했다.

고명은 구아람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애리, 애리스가 저질 침구를 판매한 건 전 정말 몰랐던 사실이에요. 3년동안 쭉 애리스와 합작을 해왔고 또 가격도 마침 적당했고 중요한 건 성주에서 아주 유명한 브랜드인지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아람은 서류를 고명한테 던졌다.

“3년동안 당신이 애리스와 거래했던 모든 내역이에요, 지금껏 재무관리하시면서 이 재무제표가 문제 있는 건 보이지 않았다는 거에요?”

고명은 서류를 집어 들어 부리나케 펼쳐 댔다.

“심지어 저한테 익명의 제보까지 들어왔어요.”

구아람이 커피잔을 들어 홀짝이며 말했다.

“누군가가 요즘 들어 당신이 애리스와 부쩍 가깝게 지내면서 거액의 돈을 빼돌려 저질 침구를 사드렸다는 제보를 들었어요.”

화들짝 놀란 고명이 휘청거렸다.

“전 증거 없이 사람을 해고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에게 증거가 쥐여진 이상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고 선생님, 의의 있으시면 우리 법적 수단으로 해결보도록 하시죠.”

“구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제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이 일 소문나기라도 하면 저 성주에서 쫓겨나요!”

고명은 손발을 싹싹 빌며 말했다.

“애초에 애리스가 먼저 저에게 딜을 걸어왔어요. 모든 제안은 김 사장 쪽에서 한 거에요. 전 침구가 다 거기에서 거긴 줄 알았어요. 김사장이 제품을 속이고 있는지는 몰랐어요.”

구아람이 웃기 시작했다.

호텔을 20년 경영해온 부사장이 자기 목숨 챙기겠다고 바보인 척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하세요, 자세한 내용은 당신이 제일 잘 알 테니까, 더 듣고 싶지도 않아요. 저랑 여기서 이럴 시간에 이력서나 몇 장 더 쓰시지 그래요? 임 비서, 내보내.”

고명은 버림받은 개 마냥 내쳐졌다.

사무실 밖으로 쫓겨난 고명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두고 봐, 누가 더 센지.”

구아람은 마음이 넓은 편이었지만 이런 일에서만큼은 인정 사정없었다.

“고명이 호텔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나 봐요, 사장님이 해고하실 줄 알고 누군가가 제보도 해오고…….”

임수해가 기뻐하며 말했다.

“제보해온 사람 없었어.”

“그럼? 설마 슬쩍 떠보신 거 에요?”

“응.”

구아람이 게임기를 켜며 분노를 토해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 아니니, 고작 두마디에 모든 걸 실토하잖아.”

임수해는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고명이랑 애리스가 3년동안 해 먹은 액수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고명한테 그 돈 다 물어내라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너무 빡빡하게 굴면 다른 사람들의 반발심을 불러와 뒤에서 날 찌를 수도 있어. 게다가 고명은 구회장님이 직접 뽑은 사람이라, 내가 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어.”

구아람이 게임 안에서 도끼를 든 채로 사람을 쫓으며 말했다.

“옆에서 고명 좀 잘 지켜봐. 고명이 김은주 오빠랑 만나는 걸 보면, 바로 보고해.”

이때 구아람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수해야, 나 지금 볼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데 메시지 누가 보냈는지 한번 봐줘.”

구아람이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임수해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구가네 비밀조직’이라는 채팅방에서 도련님들이 보낸 메시지에요.”

이 채팅방은 둘째 오빠 구용파가 만든 단톡방이었는데, 구아람과 네 명의 오빠가 있었다. 비밀조직이라 이름 지은 건 아람과 신경주가 결혼한다는 걸 비밀로 해야 한다는 의미 에서였다.

구아람은 하던 게임도 그만두고 핸드폰을 빼앗았다.

필경 임수해는 아직 아람이 이혼한 상황을 모르고 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다. 구회장한테 얘기가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큰일이었다.

[구진: 나 진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신경주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셋째 오빠: 나 요즘 신씨 집안에 뭐 있는지 알아보고 있잖아, 내가 한달안에 신씨 그룹 망하게 할 거야.]

[넷째 오빠: 난 일주일안에 신경주 손발을 부러뜨린다고! 맹세해.]

[구윤: 아멘.]

[구아람: 스톱! 오빠들, 왜 이러는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구윤이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구윤: 신경주가 결혼발표를 했어. 게다가 지금 네가 상간녀라고 소문이 자자해, 두 사람 사이에 네가 끼여들어서 휘저었다고, 신경주가 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고, 둘은 부득불 헤어졌던 거라고.]

[넷째 오빠: 둘이 어쩔 수 없이 헤어졌던 거라고? 어떻게 이 둘, 영원히 만날 수 없게 해줘?]

[구윤: 넷째야, 그런 하찮은 사람들 때문에 화 내지 마, 얼마 못 가서 잠잠해질 거야.]

[구윤: 일단 화 가라앉히고 가만 있어봐.]

[구윤: 큰 형도 좀 가만히 있어요,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넷째 오빠: 아람아, 30분후면 네에 관한 찌라시들 다 없어질 거야, 신경주 재혼 얘기도 없어질 거고.]

[구아람: 그러지 마, 오빠.]

[구아람: 그냥 냅둬.]

구윤이 물음표를 던졌다.

[구아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신경주 전 와이프는 백소아잖아, 난 구씨 집안 큰딸 구아람이고…….]

[구윤: 맞네, 너 3년동안 신경주랑 언론에 오른 적 없으니, 다른 사람들은 너 본적도 없을 거야. 그러니 너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네.]

[구아람: 누군가는 이 일 땜에 골치 좀 아프겠어.]

아름은 입꼬리를 올렸다.

‘신경주, 그렇게 원한다면 내가 그 소원 들어 줄게. 하지만 네 여자가 이렇게 나온다면 용서 못해. 내가 받은 대로 갚아 주겠어.’

신씨 그룹은 갑자기 터져 나온 결혼설에 난리가 아니었다.

홍보팀 한설희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진동했다. 신경주 결혼에 관한 언론보도가 성주를 넘어 전국에 퍼졌다.

신사장이 결혼을 한다는 것도, 재혼이라는 소식도 곳곳에 자자하게 퍼졌다.

감히 상상할 수도 할 수 놀라운 스피드로!

“제일 먼저 결혼소식을 보도한 건 <성주일보> 라고 해요, 김은주 아가씨가 사장님을 직접 찾아가 소식을 내보낸 거라고 하더라구요.”

한설희는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클릭수가 백 만을 넘고 있어요. 신경주 전 와이프가 누구냐는 둥 지금 작은 사모님을 공격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어요.”

“잡아서 처넣어.”

신경주가 차갑게 내뱉었다.

성주뉴스매체는 신씨 그룹에 속해 있었다.

“누굴 말씀하시는 거죠?”

“이딴 악플 올린 사람들 다 잡아.”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은 저희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텐데요…….”

한설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모님이 이 글들을 보셨다면 얼마나 슬프겠어요…….”

신경주는 갑자기 안색이 굳어지더니 핸드폰을 들어 구윤한테 연락했다.

신경주는 요즘 구윤한테 연락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누가 보면 자기가 구윤을 짝사랑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핸드폰 화면에 김은주 이름이 나타났다.

신경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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