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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민민루
하윤지의 뒷모습이 두 사람 눈앞에서 사라졌다.

서재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강시원이 그를 밀어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이상했다.

서재현은 하윤지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디가 달라졌는지는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었다.

차에 올라탄 서재현은 눈을 감고, 최근 며칠 사이의 일들을 되짚었다.

강시원이 몇 번이나 말을 걸었지만, 그는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강시원은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눈 밑이 아릴 정도로 참고 또 참다가, 결국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희미한 훌쩍임이 들리자, 서재현이 그제야 눈을 살짝 들어 올렸다.

“왜 그래?”

“오빠, 화났어?”

강시원은 눈이 빨갛게 젖어 있었다. 억울한 사람처럼 입술을 떨었다.

“민우가 실수로 딸기 다치게 해서, 윤지 언니가 힘들어했지...”

서재현은 잠깐 침묵했다.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아니.”

“그럼 왜 윤지 언니한테 또 강아지까지 사 줬어? 민우가...”

“그냥 개 한 마리일 뿐이야.”

강시원이 더 말하려는 순간 서재현이 단호하게 끊었다.

“시원아, 너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 없어.”

“오빠...”

강시원의 눈에 믿기지 않는 빛이 떠올랐다.

그런데 서재현은 처음으로 강시원의 감정에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목소리도 한층 가라앉았다.

“민우가 정말 무서워하면, 너희를 다른 집으로 옮겨줄 수도 있어.”

그 말에 강시원의 얼굴이 확 굳었다.

“오빠, 나는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러길 바랄게.”

서재현은 다시 눈을 감았다. 미간에는 피로가 어렸다.

“윤지는 몇 년 동안 서씨 가문에서 온갖 일을 다 해왔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어.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서 의지하는 게 뭐가 잘못이야. 앞으로 민우는 그 강아지랑 좀 떨어지게 해.”

강시원은 손바닥이 터질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눈 밑에서는 짙은 증오가 들끓었다.

하지만 하윤지는 그걸 전혀 몰랐다.

하윤지는 임미진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고, 먼저 사설 탐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강시원이 아까 보인 태도는 너무 수상했으니까.

그다음 침실로 들어가 자기 물건을 정리했다. 포장하고, 상자에 담고, 드레스룸 가장 안쪽에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서재현이 서명한 그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간단한 캐리어를 들고 나가려는 순간, 거실에서 맑은 강아지 울음이 들렸다.

하윤지는 뒤를 돌아봤다.

이동장 안, 손바닥만 한 강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윤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윤지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녀는 다가가 이동장까지 함께 들어 올렸다.

한 시간 뒤, 택시는 고급 아파트 입구에 멈췄다.

2년 전, 하윤지는 연지아의 이름으로 이 아파트를 사 두었다.

그때는 로펌이 가까워서 야근이 늦어지면 잠깐 쉬어갈 곳이면 충분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2년 뒤의 오늘, 그곳이 자기에게 남은 유일한 몸 둘 곳이 될 줄은 몰랐다.

하윤지가 지문을 찍자, 곧바로 환호성이 들려왔다.

“surprise!”

연지아가 백합 한 아름을 안고 튀어나왔다. 이동장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빛났다.

“딸기?!”

연지아는 백합을 하윤지 품에 쑤셔 넣고 놀리듯 말했다.

“너 얘까지 데려왔어? 진짜 마음 단단히 먹었네. 안 돌아갈 거지?”

“딸기 아니야.”

하윤지는 오래도록 함께였던 작은 그림자가 떠올라 눈을 내리깔아 아픔을 감췄다. 캐리어를 안으로 끌고 들어오며 말했다.

“얘 이름은 연자야.”

“연자?”

연지아는 비숑을 품에 안고 장난을 쳤다.

“어디서 훔쳐 온 거야?”

“서재현이 준 거야.”

연지아가 멈칫했다.

“너... 아직도 못 놓은 거야?”

다른 건 하나도 안 가져오면서, 왜 이것만 데려왔냐는 뜻이었다.

“너 혼자 상상하지 마. 연자를 거기 두면 또 딸기처럼 될까 봐 데려온 거야.”

강민우 그 꼬마 마왕이 아직 집에 있으니까.

하지만 하윤지는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고, 연지아에게 딸기가 이미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방에서 서재현이 서명한 서류를 꺼내 연지아에게 건넸다.

“이거 봐.”

“뭔데?”

연지아는 의심스럽게 받아 들고 몇 장 넘기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거...”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서씨 가문이 서울 최고 부자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서씨 가문과 협업만 해도, 연지아의 작은 로펌은 당장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질 판이었다...

그런데...

흥분이 가라앉자마자, 연지아의 미간에 걱정이 맺혔다.

“윤지야, 이거... 좀 별로 아닌가?”

하윤지가 의아해했다.

“왜?”

“너랑 서재현, 이혼할 거잖아. 그런데 지금 그쪽 건을 우리 로펌이 맡으면 나중에 마주치면 얼마나 애매해.”

“감정은 감정이고, 일은 일이야. 별개지.”

하윤지가 웃었다.

“그리고 꼭 내가 맡으라고 지정한 것도 아니잖아.”

“네 말은...”

연지아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알아서 계산하고 움직인다는 거지. 알았어.”

연지아는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랑 서재현 이혼하는 데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말해. 내가 깔끔하게 처리해 줄게.”

“있기는 있어.”

하윤지는 사양하지 않고 위임장도 꺼내 들었다.

서재현이 직접 서명한 것이었다.

앞부분은 그럴듯한 눈속임이었고, 중간에 이런 문장이 끼어 있었다.

[이혼 절차는 한송 로펌 연 변호사가 전권 대리한다.]

연지아는 그걸 보는 순간 거의 튀어 오를 뻔했다.

“윤지야, 이걸 어떻게 해낸 거야? 슬쩍 바꿔치기한 거야, 아니면 몰래 수를 쓴 거야?”

하윤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하윤지에게는 어떤 방법을 썼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위임장이 있으면, 연지아가 서재현을 대신해 이혼 절차를 전부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서재현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겉으로는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이니까.

연지아는 하윤지의 수완에 감탄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하윤지의 얼굴을 보다가 서재현의 서명을 흘겨보며 툭 던졌다.

“서씨 가문은 보물 주워 놓고도 똥덩이 취급하는 전형이네. 좋은 게 좋은 줄도 모르고. 네 친정도 그렇고...”

연지아는 말만 꺼내도 화가 치밀어 보였다.

“무슨 친정이야. 너를 여기저기 눌러놓기만 하고, 서씨 가문이랑 한통속이 되어서 너 괴롭히고. 네가 잘되면 자기들 복이 뺏기는 것처럼 굴고, 진짜 다들 미쳤어.”

하윤지는 말없이 웃었다.

“됐어, 언니. 그렇게 화내지 마. 걔들이 그런 게 원래 하루이틀도 아니잖아.”

하윤지는 어릴 때 보육원 문 앞에 버려진 그날부터 알았다. 앞으로는 다시는 ‘집’이 없을 거라는 걸.

그들이 하윤지를 찾았던 것도, 서씨 가문이라는 큰 나무에 기대어 살려고 했을 뿐이었다.

하윤지는 기대한 적이 없었다.

침실 정리를 마친 뒤, 하윤지는 다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직 챙기지 못한 물건이 많았다. 천천히 옮겨야 했다. 급하게 빼내다가는 눈치가 새서 이혼이 더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

마당에 들어서자 안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서재현 일행이 이미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윤지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따질 마음도 없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게스트룸 앞을 지나려는 순간, 안에서 애교 섞인 투정이 들려왔다.

“민우가 오늘도 아빠 달라고 난리였어...”

강시원의 목소리에는 피곤한 듯한 한숨이 섞여 있었다.

“오빠, 나한테 약속했잖아. 이혼해도 민우는 한부모 가정 아이로 만들지 않겠다고...”

하윤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 안에서, 서재현의 침묵과 강시원의 억울한 훌쩍임이 번갈아 하윤지 가슴을 두드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그제야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울지 마. 내가 윤지한테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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