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현이 병원에 나타났고, 강시원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휠체어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 몸에 밴 고귀한 분위기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강시원은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 아이보리 원피스가 그녀를 더 다정하고 여리게 보이게 했다. 누가 봐도 한마디하게 될 조합이었다. 천생연분이라고.“재현아...”김옥주는 손자를 보자마자, 마치 쌓인 걸 쏟아낼 곳을 찾은 듯 울음을 터뜨렸다. 다리가 풀려 서 있기조차 힘겨운 모습이었다.“네가 어떤 며느리를 들였는지 봐! 네 할아버지 돌아가셨는데, 저건 울지도 않아! 양심 없는 것, ”“할머니,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그가 말을 끊어냈다.“지금은 먼저 할아버지를 편히 모시는 게 제일 중요해요. 윤지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탓하려면... ”서재현은 옆에서 굳어 있는 하윤지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왼쪽 뺨은 살짝 부어 있었고, 선명한 손자국 다섯 개가 박혀 있었다.그의 눈 밑으로 알아채기 힘든 아픔이 스쳤다. 언제나처럼, 습관처럼, 그는 잘못을 끌어안았다.“탓하려면 저를 탓해요. 거래 얘기하느라 휴대폰을 안 봐서 윤지 전화랑 메시지를 놓쳤어요. 할머니, 정말 화가 안 풀리면 저를 때려서 풀어요. 제가 할아버지께 죄지었어요...”하윤지는 그가 진심을 다해 말하는 얼굴을 바라봤다. 꼭 아내를 지키는 데 미쳐 있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그가 수년 동안 장애를 가장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이런 모욕을 대체 왜 받아야 했을까. 명백한 원흉이면서도 구원자인 척했다.김옥주는 하윤지를 욕할 수는 있어도, 친손자인 서재현을 탓할 수는 없었는지, 그저 울기만 했다.그 틈을 타 강시원이 앞으로 나와 김옥주의 등을 다독였다. 눈물이 맺힌 얼굴은 더 애처로워 보였다.“할머니, 오빠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 떠나셨으니까, 이제 서씨 가문은 할머니가 나서서 버티셔야 해요. 할머니가 너무 슬퍼하다가 쓰러지면, 할아버지가 어떻게 편히 계시겠어요?”강시원은 서씨 가문 셋째의 양녀였다. 셋째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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