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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달갑지 않은 만남

“내려!”

어차피 시내로 들어왔기에 택시를 잡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신연지도 그를 따라 병원까지 가서 전예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녀는 한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당당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신연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차를 향해 소리쳤다.

“그렇게 보러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여태까지 참았대?”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신연지가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검은색 벤틀리가 그녀의 앞에 멈추어 섰다.

차에서 내린 강태산이 공손하게 말했다.

“도련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작은 사모님, 이만 집으로 가시죠.”

신연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강태산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자긴 애인 만나러 가고 난 무조건 집에 돌아가라는 거잖아?’

기분이 나쁘지만 걸어서 돌아갈 수는 없기에 그녀는 순순히 강태산을 따라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혼 서류를 언론에 공개하면 박태준을 엿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잃는 게 더 많았다.

어차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 더 참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전예은 성격에 박태준을 내버려둘 것 같지도 않았다.

다음 날, 신연지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

휴대폰을 보니 진유라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허 원장님이랑 내일 만나기로 했어. 난 고객 미팅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

진유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골동품 가게를 차렸다. 신연지도 종종 가서 도와주고는 했다.

신연지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아침을 먹고 외출했다.

신당동에서 나가 살려면 출퇴근하기 편리한 거처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는 곧장 부동산으로 가서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약했다. 작업실과 거리도 가깝고 가구가 많지 않아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기에도 편리했다.

아파트도 외부인 출입금지라 보안도 상당히 괜찮았다.

게약을 마친 뒤, 신연지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곧 진유라의 생일이 돌아오는데 괜찮은 핸드백으로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았다.

진유라가 좋아하는 브랜드사에서 한정판 신상을 출시했는데 마침 백화점에 그 브랜드가 있었다.

신연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7층으로 올라갔다.

“고객님, 혹시 원하시는 제품이 있을까요?”

점원이 깍듯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여름 신상으로 출시된 제품 있던데 현물 있나요?”

점원이 죄송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한정판 제품이라 예약이 다 나갔어요.”

신연지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감사해요.”

그녀가 걸음을 돌리는데 오피스 정장을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오며 점원에게 말했다.

“며칠 전에 박 대표님께서 예약한 핸드백 가지러 왔어요.”

신연지는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예전에 뉴스에 나왔던 전예은의 매니저였다.

“네, 고객님. 혹시 신분증 확인 가능할까요? 그리고 박 대표님께서 직접 주문하신 제품이라 본인 확인도 필요합니다.”

“전예은 씨가 여기로 와서 찾으라고 했어요. 저는 전예은 씨 매니저 김청하라고 합니다.”

점원은 카운터로 가서 박태준의 연락처를 찾았다.

신연지는 묵묵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들뻔했지만 어차피 이혼할 마당에 그가 누구에게 명품을 선물하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뒤에서 김청하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신연지 씨?”

신연지는 상대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뒤돌아섰다.

“무슨 일이죠?”

김청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그 얼굴이면 원하는 남자를 얼마든지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붙잡고 있나요? 저라면 그냥 포기하고 새로운 사람 찾았을 거예요.”

“전예은 씨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던가요?”

신연지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정말 우습군요. 세상이 변한 걸까요? 옛날에는 불륜녀들이 혹시라도 들킬까 봐 숨어서 지냈는데 말이죠. 요즘은 불륜녀가 정실 부인을 찾아와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나 봐요?”

김청하는 기세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못 받는 쪽이 불륜녀에 가깝죠. 예은이랑 박 대표님은 옛날부터 서로를 사랑했으니까요.”

“김 매니저는 결혼 안 하셨죠?”

신연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알려줘요. 남편분께 예쁜 여자 소개시켜 드릴게요. 김 매니저는 마음이 넓은 분이니까 그런 상황이 닥치면 현명하게 처리하겠죠?”

김청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신연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가서 전예은 씨한테 전해요. 내 남편이 사준 그 가방, 내 지분도 있으니까 절반 금액을 내 계좌로 입금하라고요. 박태준 씨가 선물한 건 맞지만 우리가 아직 이혼한 사이는 아니니까 부부 공동재산 맞죠? 3일 내에 입금을 안 하면 사기로 고소할 거예요.”

김청하는 조용한 성격이라고 알려진 신연지가 이토록 강한 멘탈의 소유자일 줄은 몰랐다.

당황한 김청하가 침묵하는 사이, 신연지는 당당하게 밖으로 향했다.

이때, 뒤에 있던 점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말했다.

“사모님, 박 대표님께서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시는데요?”

점원은 박태준에게 전화를 걸 때까지도 이런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는 분명히 비서실에 연락했는데 박태준 본인이 바로 전화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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