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은 마치 압력계로 눌러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선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육경한의 사나운 태도에 놀라 가슴이 두근두근 심하게 떨렸다.콩알만 한 눈물이 눈에 고였고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육경한은 선미의 얼굴 중 어느 부위가 그렇게 닮았는지 주의 깊게 살피다 두 눈이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둘 다 위로 휘어진 여우 눈이지만 소원의 눈에는 아무리 비천할 때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선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쪽 바닥에서 뒹굴고 놀아나 비굴하고 아부하는 데 능숙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그래서 남자를 잘 유혹할 만한 이 여우 눈에는 아부와 순종만이 가득했다.소원과 가장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가장 닮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았다.선미는 꾹 참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계속 이대로 누르면 자기 턱이 분명 육경한의 손에 의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놓아달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육경한은 눈꺼풀을 내리깔며 흥미를 잃은 것처럼 손을 놓았다.선미는 관성에 의해 바닥에 주저앉았고 심장이 여전히 쿵쾅쿵쾅 심하게 뛰었다.자기 턱이 가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가짜였다면 이미 부서졌을 것이다.육경한은 상반신을 펴고 긴 다리를 무심하게 꼬고 앉아 쌀쌀한 말투로 명령했다.“술을 따라.”선미는 부들부들 떨며 술을 따랐고 육경한은 술잔을 술을 벌컥벌컥 마셨으며 어느새 두 병을 다 마셨다.양주는 술기운이 셌다.육경한은 어느새 시선이 흐릿해졌고 눈앞의 여자도 점점 매일 밤 그의 곁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여자와 닮아갔다.육경한은 모호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소원아...”이 이름은 선미가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육경한이 처음으로 선미를 지목했을 때 육경한은 선미를 옆에 두고 밤새도록 말없이 얼굴만 바라봤다.육경한은 선미에게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고 심지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게 명령했다.그때부터 선미는 자기가 소리를 내면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게 들통나기에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걸 눈
그리고 육경한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선미가 가늘란 손가락을 내밀자마자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꺼져!"선미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술잔이 선미의 얼굴을 스쳐 뒤쪽의 액정화면에 부딪혀 와르르 깨졌다.남자는 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치켜뜨고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악마처럼 음흉한 소리를 냈다."꺼져!"그 무서운 표정에 선미는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옷 단추를 잠글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뛰쳐나갔다.밖으로 막 나왔을 때, 영숙이한테 한 발 걷어 맞았다."이년아, 그 남자가 너 좀 더 쳐다보면 데려갈 줄 알았냐?”선미의 마른 몸은 바닥에서 끓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니에요.”"그렇게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더니, 이젠 정신 차렸지?”영숙이는 영수증 한 묶음을 꺼내 선미의 얼굴에 내던졌다. "오늘 밤의 손실한 돈을 다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선미는 그 영수증 위에 찍혀진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고 놀라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정말 잘못했어요!”이 돈은 그녀가 죽어서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네가 벌린 일이야. 사람은 마음이 하늘보다 높아서는 안 돼.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는 단지 너더러 함께 술을 마시라는 것일 뿐인데, 너는 밥 한술에 배불러지고 싶어 하잖아!”영숙이는 조금도 공감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늘에 너 같은 작은 참새가 날아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아?”그녀가 이렇게 건방지게 작은 참새 따위가 가지 위로 날아올라 봉황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큰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이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큰놈에게 미움을 사면 안 된다.육경한처럼 일이 많은 사람한테도 웃는 낯으로 받쳐줘야 한다. 영숙이는 선미의 순진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를 따라가서 사는 삶은 여기보다 더 비참할 것이야.
이 목소리...육경한의 눈은 순간 뭔가에 홀린 듯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손을 짚고 바닥에서 일어나 이 여자를 자기 품에 껴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이때 그녀가 검은색 하이힐을 들어 올려 그의 손등에 발을 디뎠다.여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너 지금, 이 꼴이..."말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구두 굽이 남자의 손등을 짓눌렀는데 마치 남자의 손바닥을 뚫고 싶은 것 같았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들개 같아.”이 말을 마치자 검은 구두 굽은 육경한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소원아!"그는 그제야 막혔던 목구멍이 터졌다."가지 마!"그는 입안에 온통 피 냄새였고, 말도 안 되게 쉰 목소리였다.파란색 고급 차의 후미등이 깜빡였는데 마치 그를 비웃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가지 마...”모든 소리가 자동차의 시동 소리 속에 파묻혔다."가지 마...제발...”육경한은 눈 밑이 촉촉하게 되었고, 바닥 위로 눈물을 떨구며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소종이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날 밤, 소중은 육경한을 태우고 온 서울을 돌아다니며 소원을 찾았다.하늘가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소종은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셨으니 먼저 약을 드실래요?”사실 그는 육경한이 너무 많이 마셔서 환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한 것이었다.소원 씨가 죽은 지 이미 5년이 되었다.뒷좌석에 앉은 육경한은 검은색 셔츠 위에 흙을 뒤집어쓴 채 풀이 죽어 있었다.그는 손등의 핏자국을 보며 엉뚱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돌아왔어.”소종은 여전히 그가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만약 소원 씨가 아직 살아 있다면 대표님 집에 누워있는 사람은 또 누구야?'소종은 감히 계속 생각하지 못했고, 진저리가 났다....아침에 작업실에 가려 하는 윤혜인이 차에 올라탔는데 운전자는 기사가 아니라 곽경천이었다."오빠, 오늘 안 바빠?”"응, 내가 데려다줄게.”곽경천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소송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너무 어렵다.윤혜인은 이선그룹 법무부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소송에서 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이기고 지는 것은 둘째치고 그 긴 시간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놓았다.그녀는 지금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남자의 아내라는 신분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정말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다.윤혜인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내가 더 해보고 안되면 오빠 말대로 할게.""그래."곽경천은 윤혜인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알겠지?”"걱정하지 마, 오빠. 그럴 일 없을 거야.”차에서 내리려던 윤혜인이 갑자기 뭔가 생각나는 듯이 물었다."오빠, 주변에 괜찮은 남자 있어?”"응?""괜찮은 사람 있으면 구지윤한테 하나 소개해 줘.”곽경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구지윤의 뜻이야?”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에 얘기해 봤는데 싫지 않아서 하더라고.”윤혜인의 착각 때문인지 상관 곽경천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먼저 네 골칫거리부터 해결해.”구지윤 대신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윤혜인은 육선재 그 미친놈이 다시 찾아왔는데 구지윤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었다.차에서 내린 후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곽경천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출장 갔다 왔어?”배남준은 곽경천의 오래된 동창이다. 돈 많고 잘생겼는데 심지어 아직 여자 친구도 없다.윤혜인은 곽경천의 내키지 않은 표정을 보고 자신이 나서서 구지윤에게 남자를 찾아줄 생각을 하고 있다."응, 어제 왔다고 문자 받았는데, 왜?”이 말에 윤혜인은 몰래 좋아하며 뭔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심히 가.”몸을 돌리자마자 윤혜인은 휴대폰을 꺼내 배남준한테 메시지를 보냈다."남준 오빠, 바빠요?”빠르게 답장이 왔다."안 바빠.""무슨 일 있어?"그는 두 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오
윤혜인은 이준혁도 여기서 밥을 먹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가 술 한 병을 보내온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별로 좋은 뜻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배남준도 위층에서 기개가 당당하고 잘생긴 남자가 매서운 눈매로 그들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혜인아."그가 불렀다.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배남준을 보며 대답했다."네?”"무슨 일이야?"이 질문은 그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윤혜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어서 드세요.”배남준은 일을 캐묻는 스타일이 아니다. 윤혜인이 말하지 않으면 더는 묻지 않는다.웨이터는 옆에 서서 물었다. "아가씨, 이 와인을 따 드릴까요?”윤혜인은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버리세요.”웨이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술잔에 따르라는 줄 알고 병을 따서 술잔에 따르려고 하였다.윤혜인은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 "버리라고요.”그래도 어리둥절해서 하는 종업원을 보고 다시 말했다. "쓰레기통에 버리라고요.”"쓰, 쓰레기통에 버려요?"종업원이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네."윤혜인은 혼자 생각했다. '보기 좋아하면 잘 봐봐, 당신이 준 술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까지."종업원이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래도 아홉 자리 술을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니 그는 손까지 벌벌 떨었다.그녀도 종업원이 난처 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와인을 받아와 말했다."제가 할게요."그러더니 술을 쓰레기통에 깔끔하게 집어 던졌다.위층에서 모든 것을 본 이준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회거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분명 자기한테는 바쁘다고 해놓고 여기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가 보낸 술마저 쓰레기통에 버리니 말이다.그녀의 그 표정...이준혁은 그녀가 마치 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버린 후에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손을 닦았다.김성훈은 웃으며 말했다. "준혁아, 혜인 씨는 정말 너
평소에 곽경천한테 아부하는 것처럼 배남준에게 똑같이 했다. 어쨌든 효과는 똑같다."넌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배남준은 담담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요?" 윤혜인이 의아해했다."음, 아름이에게 어떤 아빠를 찾아주고 싶어?”아름이 아빠라...윤혜인은 얼핏 아름이가 좋아하는 그 남자를 떠올렸다.그리고 그녀는 빠르게 이 생각을 접었다. 누가 돼질지언정 그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요구는 한 가지에요, 아름이한테 잘해주면 돼요.”"그럼 너한테는?""나한테?"배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고 바른 사람이면 돼요.”배남준은 따뜻한 음료를 윤혜인에게 건네며 물었다. "내가 네 조건에 맞는다고 생각해?”콜록콜록윤혜인은 방금 뜨거운 음료를 마셔서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배남준이 일어나 그녀의 등을 다독이려 하자 그녀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하고는 괜찮아졌다.그녀가 어색한 듯 또 한 번 물을 마시자 배남준은 숨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경천이한테 네가 아름이 아빠를 찾아주고 싶다고 들었는데, 나는 어때?”윤혜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남준 오빠...”"혜인아, 나는 감정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할 나이가 됐어. 우리는 여러모로 잘 맞고, 아름이도 나를 좋아하잖아.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그렇다, 그냥 딱 어울린 것뿐이다. 배남준은 학문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이성과의 애정 이런 것에 대해 줄곧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그는 줄곧 착실하게 생활하는 습관이 되었다.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니 결혼 상대가 윤혜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윤혜인도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녀가 익숙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으로 말이다.그녀는 묵묵히 생각해. 보았는데, 결국 그녀도 배남준이 가장 적합한 상대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서로 잘 알고 있으니, 그가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윤혜인은 더는 발버둥 치지 않았다.배남준은 고개를 돌려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며 물었다."혜인아?”이준혁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잡으려는 짐승과 같았다.윤혜인은 두 사람이 이러다가 싸움이라도 날까 봐 두려웠다. 배남준 같이은 공부만 해 온 사람은 싸워봤자이 이 미친놈이랑 싸우면 분명 손해 볼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남준 오빠, 먼저 차에 들어가 계세요. 이 사람이랑 몇 마디하고 갈게요.”배남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물었다."괜찮겠어?"이 말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이준혁이 손에 힘을 더하게 의 손을 더 힘껏 쥐게 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가서 배남준을 때릴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황급히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리고서서 그를 가로막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이 모습은 본 이준혁은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윤혜인이 배남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남준 오빠. 제가 곧 찾아갈게요.”배남준은 그이 남자의 표정을 보고 그녀를 해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머리를 약간 갸우뚱한 채로 밖으로 나갔다.배남준이 멀어지자 그녀는 시무룩하게 손을 뿌리쳤다."이제 좀 놔줄래요?”이준혁은 손에 힘을 줄였을 뿐, 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네가 바쁘다고 한 이유였어?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게?”말 속에 가득한 질투심이 느껴졌다.만약 곽경천이 그녀에게 이준혁이 남자가 예전에 첫사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이준혁이이 남자가 자기를 사랑해서 질투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웃으며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대표님,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이준혁이은 입술을 오므린 채리고 입을 열려고 한 순간하자 그녀가 계속 말했다. "질투 나면 준혁 씨도 다른 여자랑 데이트해요., 상관없어요,. 저는.”이런 상황을 그녀는 개의치 않을뿐더러 두 팔을 들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참을 수 있으면 그녀는 정말 그를 리스팩해할 것이다.순간, 남자는 안색이 냉랭해졌는데 화날 것 같으면서도 참고 있는 듯하였다."난 바람피운 적이 없어.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잔 적도 없어.”남자의 고백에 윤혜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비아냥거렸다."그럼, 대표님이 참 정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걸 그랬어요. ”"저에게 이렇게 애틋하게 대하다니, 우리 사이에 아이는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잊게 생겼네요냐고 묻겠어요.”아이 얘기가 나오니, 이준혁의 기세가 조금 약해졌다.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뜻밖의 일이었어.”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결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그들의 첫 아이에 대한 그의 가슴앓이는 윤혜인 못지않았다."대표님은대표님의 뜻밖으로 대표님의 찐 사랑을 구하러 가셨고, 또 뜻밖으로 위험에 빠진 저를 버리고 가신 거예요?”정말 좋은 핑곗거리라고 윤혜인은 생각했다. 윤혜인은 입꼬리를 조금 올리더니 말했다."그러면 제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고 친밀한 행동을 하는 것도 뜻밖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우리 둘 다 뜻밖으로 저지른 일인데 대표님도 너무 따지지 마세요.”윤혜인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남자의 안색은 점점 먹물처럼 어두워졌다."아까 그 남자랑 같이 나를 상대하기로 마음을 굳혔구나?”이준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가 망가져도 괜찮다는 뜻인가?”이 말은 조금도 포장하지 않은 협박이었다. 그도 더는 감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남자를 망가뜨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긴장한 기색도 없이 물었다. "대표님, 이건 또 협박인가요?”'또'라는 한 글자 때문에 남자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하지만 그는 부인하지 않고 대답했다. "맞아.”그녀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걸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에 비하면 그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이준혁은 마음이 조금 씁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