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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

Author: 향임
한아름은 무릎 방석 위에 쓰러져 몸을 웅크린 채로 눈을 반쯤 감고 연신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있었다.

너무 지치고, 너무 배가 고팠다. 전날부터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와 점점 가까워지는 말소리에 한아름은 화들짝 놀라 깨어났고, 거의 반사적으로 무릎을 세우고 양손을 모아 머리를 조아렸다.

소 부인은 그녀의 모습에 곧장 눈시울이 붉혔다.

“아름아, 대체 왜 이러는…”

오 마마가 소 부인을 부축하며 탄식했다.

“아씨, 부인께서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아시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그녀의 모습에 소형준은 급히 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에 닿은 그녀의 어깨뼈가 너무나 날카롭게 느껴졌다.

이렇게 말랐던가?

2년이란 시간 동안 분명 조금씩 살도 올라 이렇게까지 야위진 않았었다.

겨우 1년 사이에…

그때, 소미진이 다급히 외쳤다.

“오라버니, 손 놓으세요! 아름이는 약한 몸을 겨우 회복했을 테니, 어릴 때부터 넘어짐에 익숙해진 저와는 다르니 그리 잡으면 안 됩니다.”

아름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마치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처럼 앙상했었다.

그녀의 손목을 잡고 글씨를 가르칠 때도 힘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소미진과 달랐다.

소미진은 어릴 때부터 무술을 배우고 말 탔기에 강하고 용감했다. 하지만 그런 강한 여인이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져야만 했다.

잠깐의 연민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는 차갑게 손을 뗐다.

“소아름, 조상님 앞에서 반성하라고 했는데도 영 소용이 없구나.”

그의 시선이 바닥을 스치다가 문득 멈췄다.

무릎 방석 옆에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저건 뭐지?”

여위고 창백해진 얼굴 위로 식은땀이 흐르는데도, 눈빛 속에 고집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조상님 앞에서라면 저를 한아름이라 부르시는 게 맞습니다. 아직 그분들께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까요.”

소형준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눈빛을 똑바로 바라봤다.

분명 처음 돌아왔을 땐 그리도 얌전하고 순한 아이였다.

사당에 들지 않아도 성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며, 그저 가족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하던 아이였다.

그를 바라바보던 눈동자에는 항상 존경심으로 가득했다.

가장 쉬운 글자를 써도, 손뼉을 치며 ‘오라버니는 정말 똑똑하시네요. 저도 오라버니처럼 되고 싶어요’를 외치며 환하게 웃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사냥터에서의 사건 하나로 고작 1년 사이에 이리 바뀌었단 말인가!

“조상당에 못 들어간 것이 그리도 억울했던 것이냐?”

소형준은 다시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었다.

“비록 시골에서 컸어도, 내가 그 두 해 동안 뭐라도 가르치지 않았더냐?”

“조상님 앞에서 감히 그릇을 엎으려 들다니, 어디서 그런 뻔뻔함을 배운 거냐!”

한아름은 여전히 어깨의 통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손목까지 잡혀 뼈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예전에 글씨를 배울 때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었다. 마치 도자기를 만지듯, 혹시라도 깨지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행동했었다.

이미 한 번 부러져 다시 붙은 그 손을 소형준은 지금 다시 산산조각 내려는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통증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창백해진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밥그릇을 엎다니요? 예법은 몰라도 염치는… 알고 있습니다.”

소형준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염치는 알고 있다고? 좋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그는 그녀의 손목을 확 잡고 그 웅덩이 앞에 세웠다.

“이게 뭔지 말해보거라.”

한아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 표정은 마치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경멸감 어린 웃음이었다.

“왜 웃는 것이냐?”

소형준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의 그 웃음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웃음을 예전에 단 한 번, 사냥터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모두가 한아름이 화살을 쐈다고 단정 지었고, 자신도 별다른 의심 없이 그 판단을 따랐던 그 순간. 그녀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당황한 눈빛이 애원하는 듯하더니 결국 이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무엇을 비웃는 걸까?

그의 비겁함?

위선?

아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큰 그림을 고려했을 뿐이다.

그때 만약 그가 인정했더라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틈을 타 태자까지 끌어들이려 했을 것이다.

그는 소씨 가문을 위해, 태자를 위해, 조정의 안위를 위해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그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 생각이 옳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소미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오라버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이따 하인더러 깨끗이 치우라하면 됩니다. 아름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니 조상님들께서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소 부인은 한아름의 손을 잡아주려고 다가갔다.

“아름아, 어디 다친 데 없느냐?”

한아름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무너졌다.

소형준은 반사적으로 달려가며 손을 뻗었고, 그러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하얀 신발 끝에 붉은 자국이 번지고 있었다.

“... 피?”

“피를 흘린 거야? 대체 왜?!”

소 부인의 정원.

한아름은 기절한 상태에서도 고통에 시달리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려던 소 부인은 정신을 차린 그녀가 갑자기 손을 뿌리치는 바람에 움찔했다.

소 부인은 손에 들린 손수건을 움켜쥔 채 잠시 멍해졌다.

“아름아… 왜 그러느냐?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것이냐?”

한아름은 그저 시선을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부인께 폐를 끼쳤네요.”

소 부인은 옆에 놓아둔 옷가지를 꺼내 들었다.

“발에는 약 좀 발라놨다. 그리고 이건 네가 입을 새 옷이란다. 어미가 직접 고른 건데… 맞을지 모르겠구나. 어서 한번 입어보렴.”

한아름은 말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 방에 가서 갈아입겠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성난 기색이 섞인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황후께서 하사하신 화려한 옷을 도저히 벗기 싫었던 모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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