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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Author: 향임
한아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 눈동자 속에 번진 감정의 균열은 방금 전의 차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걸 확인한 소형민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무릎 꿇는 거 좋아하는 것 아니었느냐? 어디 실컷 꿇어보거라.”

소 부인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그녀가 당장 말리려던 그때, 소미진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더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소 부인이 급히 다가가 물었다.

“또 무릎이 아픈 것이냐?”

소형민과 소형준도 급히 그녀 곁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한아름은 이미 수하들에게 둘러싸여 그대로 사당으로 끌려갔다.

사당 문이 무겁게 닫히고, 한아름은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라도 발을 쉬게 하며 깊고도 무거운 숨을 토해냈다.

가슴 한켠에 희미한 기쁨이 피어올랐지만, 그보다 더 짙었던 건 쓰라림과 죄책감이었다.

오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다.

벌써 3년,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전에 몰래 보냈던 돈과 옷가지들이 제대로 전해졌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별로 좋은 곳이 아니었다.

한아름은 여전히 도망치고 싶었다. 오 할머니까지 이 지옥으로 끌어들일 순 없었다.

게다가 황후가 자비를 베풀어 자신을 놀아줄 리 없었고 소씨 가문이 간청한 결과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오 할머니까지 일부러 이곳으로 모셔 온 건, 분명 이유가 있다.

뒤죽박죽 얽힌 생각 속에서 어느덧 해가 저물고, 사당안은 어둠으로 가득 찼지만 아무도 등불 하나 켜러 오지 않았다.

살짝 감은 눈 위, 이마에 땀이 맺혔다.

여기는 별원도, 암실도 아니라고,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그저 창밖의 소리이지 짐승들의 울부짖음은 아니라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백여 일 동안 각인 된 공포는 눅눅한 공기 속에 섞여 사방에서 밀려들고 있었다.

……

그 시각, 소미진의 뜰은 등불로 환히 밝혀져 있었다.

침대 맞은편 탁자 위엔 조그마한 냉풍기가 놓여 있었고 얼음통 위로 정교한 대나무 부채가 달려 있었다.

소형준이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자, 시원한 바람이 소미진의 몸을 감쌌다.

이 냉풍기는 내무부에서 처음 만든 시제품으로 동궁에 바치는 물건이었다.

시회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실력을 뽐냈던 소형준이 태자에게서 상으로 받아와 소미진에게 선물한 것이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친 소미진은 침대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소형민이 사 온 얼음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소 부인이 매실차를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소미진의 땀을 닦아주고 있는 소형민을 보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넌 참… 이 아이만 너무 살뜰히 챙기더구나. 이리도 찬 걸 자꾸 먹다간 탈이라도 나면 어쩌냔 말이다.”

그러자 소미진은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먹을 테니 형민 오라버니는 탓하지 마세요.”

소 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딱 반만 먹는 거다.”

소미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쉬워했다.

“그럼… 제가 백미루에 한 상 차리라 할 테니 저랑 함께 해주신다고 약속해 주세요.네?”

소형준은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배꽃주를 가져올게.”

그러자 소미진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유겸.”

문 밖에서 무사를 차림의 여시위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백미루에 가서 한 상 차려오거라. 형민 오라버니께서 즐기시는 금옥쌍선은 물론 형준 오라버니를 위한 부부고승, 어머니께는 부귀만당을 준비하거라.”

유겸은 조용히 명을 받들고 물러났다.

그 뒤로 안채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뒷마당을 지나, 발걸음을 꺾어 조용한 사당으로 향했다.

......

사당 안.

한아름은 너무 오래 무릎 꿇고 있어 다리가 저렸고 조금씩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축축히 젖은 발바닥의 피비린내를 그녀 스스로도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어둠에 대한 공포였다.

그녀는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이 어둠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팽팽히 당겨진 활줄처럼 경직된 그녀가 정신을 잃으려는 그때, 갑자기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백옥 같은 뺨 위로 가느다란 피자국이 그어졌다.

하지만 한아름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그저 바닥에 박힌 암기에 꽂혀 있었다.

암기에는 작은 쪽지가 묶여 있었다.

그녀는 잠시 더 기다렸고, 주변을 살폈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그제야 조심스럽게 암기를 뽑아내 쪽지를 풀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공양상 앞으로 몸을 움직였고 희미한 등불을 빌려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규칙을 지켜라. 그렇지 않으면, 그 대가는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한아름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붉은 불빛이 그녀 눈동자에 비치고 그 속엔 꺼지지 않는 고집과 결기가 일렁였다.

그녀는 그 쪽지를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적힌 글자 하나하나를 씹고, 찢고, 삼켜버렸다.

그녀 혼자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을 텐데 지금은 다르다.

오 할머니가 아직 저택에 계시고, 그녀는 여직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소씨 가문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처소에 모여 문안을 드렸다.

소 부인은 전날 밤 편히 쉬었는지 안색이 밝고 생기가 돌았다.

소미진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름이 돌아오니, 어머니도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얼굴빛이 훨씬 좋아지셨어요.”

그 말에 주변을 살피던 소형민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이 몇 시인데, 왜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것이냐? 기본 예의도 모른단 말이냐?”

그러자 소 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아름이 오면 그때 밥 차리면 된다.”

소미진도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돌아온 거라 낯설고, 긴장돼서 늦게 잠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니 늦잠 자는 것도 이해해야지요.”

하지만, 소형민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1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진전이 없군. 이럴 거면 대체 규칙은 뭐 하러 배운 것이냔 말이다.”

“됐다. 아름이도 동생이니 모르면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유모, 아름이를 부르거라.”

“예, 부인.”

잠시 후, 오 유모가 급히 들어왔다.

“부인… 아름 아씨가 방에 안 계십니다.”

소 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럼, 어디로 갔단 말이냐?”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방 안 침구 상태를 보니, 아예 누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소미진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어제 우리가 너무 심하게 말해서 홧김에 집을 나간 건 아닐까요?”

그러자 소형민이 탁자를 쾅 내리쳤다.

“가출?! 감히 그런 짓을!”

그때 소형준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어젯밤 아름이를 방으로 돌려보낸 게 어느 시각이었지요?”

소 부인은 당황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돌려보내? 나는 시킨 적 없는데… 그거, 네가 돌려본 게 아니었느냐?”

세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한아름이 사당에서 밤새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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