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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Author: 경옥
고준안의 마음은 여전히 거센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얼굴에 스치는 감정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계연수는 겉보기엔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지만 속에는 단단한 기질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억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등을 돌릴 사람이라는 것도.

그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그녀의 자발적인 마음. 조금씩, 천천히, 그녀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고준안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표정을 가다듬은 뒤 부드럽게 말했다.

“다행이다. 제때 돌아올 수 있어서.”

그는 마차를 힐끗 보며 덧붙였다.

“짐은 다 실었느냐?”

계연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더 묻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마차에 오르도록 하고 자신은 곁을 지키며 따라가 도착하면 함께 정리하겠다고 했다.

계연수는 본능처럼 사양하려 했다. 그러나 고준안의 진지하고도 진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끝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마차에 올라 있던 고씨는 휘장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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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문춘귀   제345화

    그녀는 뒤뜰의 작은 회랑에 걸터앉아 있었다. 뒷마당으로는 산들바람이 잔잔히 불어왔다.장 선생의 편지는 길지 않았다.계연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렸다. 편지에는 계연수의 두 개 점포가 모두 이미 매각되었으며 그림 한 점 역시 좋은 값에 팔렸다고 적혀 있었다. 은자의 액수가 적지 않으니 직접 와서 받아 갈지, 아니면 사람을 보내 전해 줄지 묻는 내용도 함께였다.계연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직접 가는 편이 낫겠다고 마음먹었다.돈을 받는 일은 순조로웠다.장 선생은 묵직한 돈주머니를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송문남가에 있던 점포는 위치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 거리 자체가 값이 높은 곳은 아니지요. 장사는 그럭저럭 되었지만 큰돈을 받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인근 점포들보다는 조금 높게 쳐서 은 구백 냥에 팔았어요. 그리고 성북의 다른 한 곳은 그보다 못해, 육백 냥에 넘겼습니다.”계연수는 송문가의 점포가 본래 값이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정도 값에 팔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장 선생.”장 선생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별말을 다 하십니다. 제가 도운 게 뭐 있겠습니까.”그는 이어 지난번 그림 값 사백여 냥을 그녀에게 건네며 의미심장한 어조로 덧붙였다.“당신 그림은 매번 화루에서 가장 높은 값에 팔립니다. 정말로 경성을 떠날 생각이라면, 몇 점 더 그려 두십시오. 그 사람도 분명 사 갈 것입니다.”그 말 속에 숨은 뜻이 스며 있었다.계연수는 그동안 매년 포산루에 서너 점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그림 값이 결코 낮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장 선생, 조금 더 분명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장 선생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말을 지나치게 흘렸다는 걸 깨달은 듯 급히 말을 돌렸다.“그저 한 말입니다. 당신 그림을 사는 이는 여럿이니 더 그려 두라는 뜻이었

  • 주문춘귀   제344화

    심서준은 계연수의 눈동자에 어른거리는 옅은 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슴이 조여 오는 것을 느꼈다.어릴 적, 그녀가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계연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소리 내어 울었고 아버지의 품으로 파고들곤 했다.지금의 그녀는 달랐다. 눈물이 맺혀도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수많은 억울함을 삼킨 사람처럼, 더는 울음을 밖으로 흘리지 않는 얼굴이었다.심서준이 낮게 물었다.“왜 슬퍼하는 겁니까?”그와 그녀 사이의 과거 때문일까? 아직도 두 사람의 지난날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서늘한 손끝이 계연수의 턱에 닿았다.그녀는 순간 굳어졌다.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눈물이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이러고 싶지 않았다. 심서준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억제할 수가 없었다.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더 시렸다. 그녀는 목이 잠긴 채 떨리는 음성이 겨우 흘러나왔다.“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심서준의 손끝이 멈췄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굳어 있던 숨이 서서히 풀렸다. 그는 배꽃에 빗물이 맺힌 듯한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낮게 탄식했다.“다 지난 일입니다.”계연수는 고개를 숙인 채 수놓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그리고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지난 일이지요.”목소리 끝에 가느다란 쉰 기운이 묻어 있었다.손수건에 얼굴을 가린 채, 그녀는 여전히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다만 어깨선 아래로 떨어진 기운과 낮게 깔린 눈빛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심서준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울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계연수 또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밀려오는 감정을 애써 눌러 담으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심 대인, 오랜만에 먹어보았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그리고 고개를 조금 더 숙였다.“고맙습니다.”심서준은 충혈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안의 빛은 유난히 또렷했다.그는 한동안 말을 잊은 듯 바라보다가 다시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일도

  • 주문춘귀   제343화

    그녀는 심서준 앞에 선 자신이 너무도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아까 내뱉은 그 한마디가, 어쩌면 심서준에게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가늘게 떨리던 속눈썹이 한 번 흔들리더니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훗날 제가 심 대인께 도움이 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인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이 옅게 드러나 있고 부드러운 잔머리가 목덜미에 흘러내려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봄날처럼 연하여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여린 햇살 아래의 풍경처럼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분위기였다. 꾸밈없는 진심, 겸손함, 안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그 부드러움. 그 모든 것이 심서준의 시선을 붙들었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 위에 머물렀다. 장대한 체구가 조금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섰다.그녀의 눈꺼풀 위로 시선이 내려앉는다. 은은하고 따뜻한 향기가 어둑한 마차 안을 맴돌며 번졌다. 그 향기 속에서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묘한 온기가 피어올랐다.그는 낮고 약간 쉰 음성으로 물었다.“무엇이든… 이라 하였습니까?”계연수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그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곧장 먹빛처럼 짙은 두 눈과 마주쳤다.그 눈동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그의 그림자 안에 완전히 감싸여 있다는 것을.순간 심장이 북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계연수는 떨림을 억누르며 지극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심서준은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게 그녀를 응시한 뒤, 짧게 말했다.“좋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아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두 사람 사이 작은 탁자 위의 상자를 가리키며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가씨를 위해 가져왔습니다.”계연수는 그제야 탁자 위의 작은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은으로

  • 주문춘귀   제342화

    마차 안에 들어서는 순간, 심서준에게서 배어 나오는 서늘하고도 깊은 침향의 향이 먼저 감돌았다.안은 어둑했다. 가운데 작은 탁자 위에 상아 팔각등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심서준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현색 옷자락은 어둠에 스며 거의 윤곽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 존재감만은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마차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었다. 침수향목으로 짜인 차체는 그의 기질처럼 은은한 고아함을 품고 있었다. 사방 벽에는 자개가 촘촘히 박혀 있어 어두운 불빛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고 내벽에는 은실로 검은 월라에 수놓은 망천도(辋川图)가 한 폭 가득 펼쳐져 있었다.계연수는 감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시선을 차벽에 두었다.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그림자 때문에 지금 그의 표정이 얼마나 엄숙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심서준의 시선은 단정히 앉아 있는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유독 자신의 앞에서만 그녀는 언제나 이토록 긴장해 있었다.오늘 낮, 다른 사내 앞에서 웃으며 편안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앞에서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웃은 적이 없었다.심서준은 몸을 바로 세웠다. 어둠에서 얼굴이 조금 더 드러났다. 그리고 곁에서 제법 묵직한 상자를 하나 꺼내 계연수 앞으로 내밀었다.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상아등에 새겨진 학 그림자가 상자 위에 어른거렸다. 그 위에 얹힌 그의 손가락은 유난히 또렷하고 고왔다.“무엇입니까?”계연수가 조심스레 물었다.“열어보십시오.”상자를 받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다. 안에는 가지런히 포장된 약첩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계연수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했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심 대인,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제게도 은자가 있습니다.”이명유 일로 손에 들어온 돈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 어머니의 약값 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심서준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았다.“진 태의에게 아가씨의 어머니 병세를 물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다 하더군요. 이 약을 거절해도

  • 주문춘귀   제341화

    고준안은 곁에 앉아 작은 탁자 위에서 고개를 숙인 채 차를 달이고 있는 계연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제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고씨는 그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슬쩍 바라본 그 한 번의 시선에 담긴 뜻을 어머니로서 단번에 알아차렸다. 고준안의 눈은 분명 계연수를 향하고 있었다.그녀는 문득 지난번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때 어머니는 고준안이 먼저 혼담을 꺼냈지만 계연수가 거절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그 무렵 고씨는 이미 계연수와 함께 휘안현으로 떠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고준안은 경성에서 벼슬길에 오른 몸이니 괜히 그의 앞길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딸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그러나 그 길은 그녀의 병환으로 무산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고준안의 마음은 아직도 변치 않은 듯했다. 그는 딸이 한 번 시집갔다 돌아온 과거도 개의치 않았고 이토록 정성을 다했다. 예전부터 늘 묵묵히 자신을 돌보아주기도 했다.이런 인품이라면… 혹여 이 혼사가 이루어진다 해도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그날 오후, 고준안은 남아 일을 거든 것도 모자라 밖에 나가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해가 완전히 져 어둠이 내린 뒤에야 함께 저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대문을 나서는 순간,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계연수의 집 앞에 마차 한 대가 조용히 서 있었던 것이다.고준안은 그 마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 오후 길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마차였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곁에 서 있는, 남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에게로 옮겨갔다. 낮에 계연수에게 먼저 말을 건 인물이었다.심부의 마차. 심 후작의 것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계연수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인가?그는 무심코 다시 한 번 마차를 훑어보았다.그 순간, 창가의 휘장이 스르르 걷혔다.어둠 속에서 젊고 고귀한 얼굴이 드러났다. 서늘한 눈동자가 곧장 그를 향했다. 그 안에는 냉담함과 어딘가 모르게 내려다보는 듯한 기색이 스쳐 있었다.그 한눈에 가슴 깊숙이 묘한 압박이 내려앉았

  • 주문춘귀   제340화

    심서준의 담담한 한마디에 계연수의 머릿속은 순간 새하얘졌다.이 말은 어딘가 묘하게 남는 여운이 있었다.반면, 그의 검은 눈동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계연수는 무슨 일로 찾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곧장 캐묻는 것이 옳지 않은 것 같아 망설여졌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마음속으로 가늠하는 사이, 눈앞의 휘장이 갑자기 스르르 내려왔다.안에서 여전히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밤에 이야기하지요.”그 한마디가 계연수의 입안에서 맴돌던 모든 말을 막아버렸다.그녀는 작게 답한 뒤, 발걸음을 돌려 대문 쪽으로 향했다.고준안은 내내 앞문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수가 다가오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는 분이냐?”계연수는 용춘의 손에 들린 문방 상자를 받아 들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심가의 마차였습니다. 안에는 심 후작께서 계셨습니다.”고준안의 눈빛이 잠시 멈췄다가 미묘하게 풀렸다. 아까 스치듯 올라왔던 긴장도 옅어졌다.심부 같은 문벌은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계연수가 발을 들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가문이었다.그는 그녀의 곁을 나란히 걸으며 옅게 웃었다.“심 후작은 소문과 조금 다르군.”아까 계연수의 몸에 가려 심서준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런 집안에서 먼저 길을 내어 준 것만으로도 드문 일이었다.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심 후작은 매사에 날카롭고 인정에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적어도 그리 모질게만 보이지는 않았다.계연수는 발밑을 바라보며 걸었다.고준안의 말이 마음을 스쳤다.분명, 조금은 달랐다.그녀는 심서준의 눈에서 온기를 본 적이 있었다. 기억 속의 그처럼 차갑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짐은 많지 않았기에 두어 번 오가니 금세 옮겨졌다.집 안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계연수는 용춘과 춘화가 물건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어머니를 방에 모셨다.다시 바깥으로 나오자 고준안이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숯불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는 키가 크고 수려한 용모에 푸른 옷을 입

  • 주문춘귀   제111화

    계연수는 노부인이 자신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이 집안에 노부인이 계시니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이토록 순박하고 진심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은 계연수밖에 없었다.사씨 노부인은 사람을 보는 자신의 안목을 의심치 않았다. 계연수는 노인이 생각한 대로 솔직하고 입 발린 말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그녀는 사람을 대할 때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대했다.‘이 아이도 한때는 계씨 가문의 귀한 아가씨였는데…’계씨 가문이 한창 잘나갈 때, 계

  • 주문춘귀   제99화

    이제 막 술시가 지났기에 그가 그리 늦게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예전의 계연수는 이렇게 이른 시각에 잠든 적이 없었다. 설령 먼저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만 들리면 곧바로 일어나 그의 옷을 갈아입혀 주곤 했다.오늘은 밖에서 이명유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길에서 동료들을 마주쳤는데 이명유는 휘장을 쓰고 있었기에 그들로서는 곁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자연스레 그녀를 그의 아내로 여겼다. 사람들은 그에게 부부 사이가 참으로 화목하다며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옥현의 마음 한구석이 텅 비

  • 주문춘귀   제102화

    용춘은 눈물을 머금은 채로 이명유를 바라보며 말했다.“명유 아가씨, 오해이십니다. 꼭 저희 집안에 범인이 있다는 것이 아니오라,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졌는데 어쨌거나 조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인을 해한 범인을 찾지 못한다면 또 똑같은 일이 언제 벌어질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요?”용춘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아이의 말이 맞다.”그 말과 함께 오랜 시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사씨 노부인이 안으로 들어섰다.임씨는 노부인을 보자마자 서둘러 다가가서 노부인을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용춘

  • 주문춘귀   제88화

    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녀가 아직 소녀였을 때의 목소리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심서준의 걸음이 멈췄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깊게 내려앉았다. 완만히 이어진 곡선은 마치 고운 운산이 겹겹이 이어진 듯했다.몸속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정욕과 충동이 요동쳤으나 얼굴에는 여전히 고결하고 냉담한 기색만이 남아 있었다.그는 다시 몸을 돌려 그녀 곁에 앉았다. 계연수가 그의 소맷자락을 꽉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그해, 물에 빠진 뒤에도 그녀는 지금처럼 이렇게 그의 소매를 꼭 붙잡고 있었다.심서준은 허리를 굽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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