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현은 함미현과 함께 병실에 있으면서 염혜란을 처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박민정이 보낸 경호원들이 너무 철저히 지키고 있어 그녀가 염혜란에게 접근할 때마다 감시를 받고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윤소현은 염혜란에게 손댈 기회가 없었다.저녁이 되어 윤소현은 함미현과 함께 간병인 실로 향했다.문 하나만 열면 바로 염혜란에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새벽쯤 윤소현은 밀려오는 잠을 참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조심 염혜란의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염혜란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윤소현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일을 지시했지만 직접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믿을만한 놈이 하나도 없어.”윤소현은 미리 준비해 놓은 약과 주사기를 꺼내 염혜란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통증에 의해 깨어난 염혜란은 비록 말은 하지 못했지만 소리를 질렀다.깜짝 놀란 윤소현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염혜란은 간병인을 했었고 시골 출신이라 건강을 회복한 후 체력은 임산부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윤소현의 손을 잡고 주사기를 떨어뜨렸다.그때 소란스러운 소리에 병실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뭐 하는 거야!”윤소현은 급히 주사기를 침대 아래로 밀어 넣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저는 그냥 일어나서 아주머니 상태를 확인한 거예요. 왜 들어오셨죠? 깜짝 놀랐잖아요.”소란스러움에 깨어난 함미현이 달려왔다.병실 안에서 염혜란이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왼손은 오른팔을 감싸고 있었다.“엄마, 왜 그래?”놀란 함미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염혜란에게 달려갔고 염혜란은 윤소현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더니 입에서 거품을 뱉어내며 쓰러졌다.윤소현은 그 모습을 보고 남몰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이 늙은 년을 처리했어!’“빨리. 빨리 의사를 불러.”함미현은 급하게 응급 벨을 눌렀다.다른 한편 박민정은 갑자기 꿈속에서 깨어났고 선잠을 자던 유남준도 그녀의 기척에 잠에서 깼다.“무슨 일이야?”박민정은
정씨 가문.정수미는 단잠을 자던 중 전화로 인해 깨어났다.그녀는 전화를 받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정말 그렇게 말했나요?”“네. 제가 똑똑히 미현 아가씨가 하는 말 들었습니다. 미현 아가씨께서 돈과 권력을 위해 대표님을 속이셨다고 하셨어요. 말씀하시면서도 대표님을 엄마가 아닌 대표님이라 지칭하셨고 자기 때문에 염혜란이 그렇게 된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함미현과 윤소현을 지켜보던 사람은 함미현이 한 말만 듣고 윤소현이 한 말을 듣지 못했다.정수미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물었다.“그래서 뭘 속였죠?”사실 정수미도 속으로 생각하는 바는 있었지만 자기 생각을 믿기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다.“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아마 미현 아가씨가 소현 아가씨를 두려워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정수미는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오싹함을 느꼈다.“알았어요. 주소 보내줘요. 염혜란 씨 보러 가야겠어요.”“네. 알겠습니다.”정수미는 전화를 끊고 손을 내려놓았다.발코니로 걸음을 옮긴 그녀는 검을 하늘을 바라보며 공허하고 슬픈 마음을 느꼈다.그녀는 단지 자신이 낳은 딸, 이 세상에 있는 그녀의 유일한 혈육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딸이 자신을 미워하기를 원하지 않았다.‘왜 미현이는 내가 염혜란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까?’정수미는 목구멍이 뭔가에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을 밝혀야 했다. 함미현이 그대로 자신을 오해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정수미가 차에 올라타자 기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몸도 안 좋으신데 쉬시는 게 어떠세요?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가셔도 되잖아요. 길이 꽤 멀어서 최소 세 시간 이상 걸릴 거예요.”정수미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차에서도 쉴 수 있잖아요.”“알겠습니다.”기사가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하자 정수미가 눈을 감았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어렵게 얕은 잠에 빠졌지만 꿈에서 20여 년
정수미는 박민정의 시선을 마주하고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낯설지 않은 눈이었다.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박민정은 정수미와 마주치자 예의 있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정수미는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두 딸 때문에 정수미는 박민정에게 호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그래. 오랜만이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그녀는 먼저 말을 꺼냈다.“병원에 당연히 친구 보러 왔죠. 정 대표님도 그렇지 않으세요?”박민정은 정수미가 염혜란을 보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그럼 같이 갈까요?”박민정이 제안하자 정수미는 거절하지 않고 대답했다.“좋지.”박민정은 앞서 걸었고 유남준은 그녀의 옆에서 따라갔다.정수미는 그 둘을 보며 윤소현이 항상 말하던 박민정과 유남우의 관계를 떠올렸다.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뒤따르던 정수미가 유남준에게 말했다.“유 대표님,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함께 오시는 걸 보니 아내를 정말 아끼시는군요. 앞으로도 아내를 잘 지켜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마시고요.”정수미의 말에 유남준과 박민정은 모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박민정은 정수미가 자신의 딸인 윤소현을 위해 가시 돋친 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유남우에게 관심을 둔 적도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적도 없었다.유남준은 정수미의 말을 알아차리고 돌아서며 말했다.“저는 제 아내를 믿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의 가정사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딸이나 잘 보살펴 주시죠.”정수미는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얼어붙으며 말문이 막혔다.옆에서 걷고 있던 비서가 정수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유남준이 정말 박민정과 유남우 사이의 일을 모르는 걸까요?”“글쎄. 모른 척하는 사람에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지.”정수미는 딸인 윤소현의 말이 맞다고 믿으며 유남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두 일행은 동시에 수술실 앞에 도착했다.함미현과 윤소현은 박민
박민정은 영상을 들여다보며 충격을 받았다.영상 속에는 윤소현이 저지른 죄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박민정은 윤소현이 이토록 잔인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영상이 아니었다면 박민정은 윤소현이 한 일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유남준 역시 영상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충격에 빠졌다.박민정이 핸드폰을 꺼내며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유남준이 그녀를 막아섰다.“잠깐만.”“왜요?”명확한 증거가 있으니 윤소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이 영상만으로 윤소현을 확실하게 몰아세울 수 없어. 지금 아주머니에게 수술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 사람인지 생각해 봐.”박민정이 순간 깨달았다.“이해했어요. 저 사람들이 윤소현이 아주머니를 해친 게 아니라, 주입한 약물이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거죠?”“그래.”유남준은 박민정이 자신의 의도를 이해한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박민정은 그제야 조금 전까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유남준이 막아서 다행이었다.그녀는 경호원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영상은 저한테 보내주세요.”“네.”경호원은 빠르게 영상을 박민정의 이메일로 보내주었다.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수술실 문이 드디어 열렸다.의사가 문을 열고 나오자 함미현이 급히 달려가며 물었다.“선생님, 어머니는 어떻게 됐나요?”의사가 깊은숨을 내쉬며 답했다.“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세요.”그 말에 함미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왜 이렇게 됐죠? 어젯밤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요?”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정수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앞으로 다가갔다.“미현아,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먼저 어머니께 가서 마지막 인사라도 드려.”함미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수술실로 뛰어갔다.정수미는 의사를 한쪽으로 불러내며 조용히 말했다.윤소현도 그 모습을 보고 뒤따르려 했지만 정수미가
애초 그녀가 함미현에게 박민정의 자리를 대체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렇게 큰 변화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동하의 병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염혜란은 후회하지 않았지만 죄책감을 느꼈다.그녀는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앞으로 다가갔다.윤소현은 염혜란이 박민정에게 진실을 말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염혜란은 마지막 힘을 다해 한마디 했다.“미... 안... 해요.”그녀의 손이 침대에서 떨어지며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함미현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엄마!”윤소현은 염혜란이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한숨을 돌렸다.‘늙은 년이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네.’박민정은 염혜란이 자신에게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 계속 생각했다.‘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지?’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정수미가 밖에서 들어오며 염혜란이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그녀는 함미현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미현아, 너무 슬퍼하지 마. 그렇게 울다가 몸 상한다.”함미현은 정수미의 목소리를 듣고 염혜란이 그녀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정수미를 노려보았다.그 시선에 정수미는 가슴이 내려앉았다.함미현은 주먹을 꽉 쥐고 억눌린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엄마랑 단둘이 있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정수미는 잠시 망설였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그녀와 윤소현, 박민정은 수술실을 나섰다.밖은 이미 밝아져 있었다.수술실 안에서는 함미현의 통곡 소리가 들렸고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정수미는 걱정스러운 한편 괴로운 마음도 들었다.‘미현이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본 걸까? 마치 내가 염혜란을 죽였다는 듯이 봤는데...’윤소현이 혼란스러워하는 정수미에게 다가갔다.“엄마, 어제 밤새 쉬지 못하셨죠?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그녀의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수미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미현이 기다려야지
함미현은 한동안 지나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이제 어떡하죠? 어떻게 이렇게 악랄할 수 있죠? 정수미에게 말해도 될까요?”함미현은 더 이상 정수미를 엄마라고 부르기 싫었다.박민정은 정수미가 함미현을 도와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영상은 줄게요. 정수미에게 얘기해서 도와달라고 해도 되지만 저는 정수미가 정말 윤소현에게 손을 댈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윤소현은 정수미가 어릴 적부터 키우던 딸이었으니 말이다.박민정은 정수미가 혈연을 우선시하는 성격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금은 오히려 정수미가 두 딸 중 누굴 선택할지 궁금해졌다.함미현은 바로 결심했다.“지금 바로 가야겠어요.”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자기 멈춘 그녀는 치명적인 문제를 떠올렸다.‘윤소현이 내 약점을 잡고 있는데...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수미에게 얘기하면 어떡하지? 그러면 정수미는 나랑 동하를 가만두지 않을 텐데...’“왜 그래요?”박민정은 함미현이 망설이는 모습에 의아했다.함미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정씨 가문에서 제 위치는 정말 낮아요. 제가 영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포기할래요. 민정 씨, 고마워요. 먼저 가볼게요.”함미현은 급히 호텔을 떠났다.박민정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까지 정수미에게 따지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저러는 거지?’호텔을 나선 함미현은 윤소현이 염혜란을 해친 영상을 손에 쥐고 무거운 마음을 억눌렀다.그녀는 너무나도 우울했다.“엄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수미를 찾아가야 할까?”함미현은 앉아서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윤소현이 왜 갑자기 염혜란을 해친 건지 궁금해졌다.‘엄마가 죽는다고 윤소현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지?’함미현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한참을 앉아 천천히 생각한 그녀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내 신분이 드러난다면 정수미가 복수를 하겠지만 친딸이 어디 있는지 무조건 물을 거야. 근데 정씨 가문의 친딸은
10분 후.어느 정도 마음의 위안을 얻어 진정된 함미현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이제 윤소현으로 바뀌었다.방 안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윤소현은 차오르는 눈물에 목소리도 똑바로 낼 수 없었다.“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다 엄마를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날 위해서였다고?”윤소현의 말을 듣는 순간, 정수미는 분노 섞인 헛웃음을 터뜨렸다.“날 위해서 사람을 죽이고, 남을 해쳤단 말이니? 어디 한번 말해봐. 염혜란 씨를 죽인 게 어떻게 날 위해서였다는 건지.”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던 윤소현이 입을 열었다.“염혜란만 사라지면, 미현이한테는 엄마만 남잖아요. 그러면 미현이도 굳이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써도 될 거고.”“고작 그 이유라는 거니?”정수미는 윤소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윤소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엄마, 저는 그냥 엄마가 행복하시길 바랐던 거예요.”“저는 엄마를 위해서 제 친엄마인 한수민이랑 천륜까지 끊었는데 미현이가 양엄마를 끊어내지 못할 건 또 뭔데요? 걔가 못 끊겠다고 하니까 제가 대신 나서서 직접 끊어준 거예요. 덕분에 미현이한테는 지금 한 명의 엄마만 남게 됐잖아요!”윤소현의 태도는 아주 당당했다.정수미는 말을 마친 윤소현의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이런 못된 것!”정수미의 손바닥이 거쳐 간 윤소현의 뺨은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정수미가 살면서 처음으로 윤소현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다.“엄마, 어떻게 저를 때리실 수가 있어요? 저는 항상 엄마를 친엄마라고 생각해왔는데, 미현이 오니까 이젠 저한테 손찌검도 하시네요.”윤소현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정수미를 올려다보았다.“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게 다 내 잘못이라는 거니? 내가 너랑 한수민을 끊어낸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어? 내 가정을 파탄 낸 사람이 바로 한수민이었으니까! 그리고 너는 그 여자랑 윤석후의 딸이었고. 내
정수미에게 붙여둔 미행인이 박민정과 유남준에게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모든 것을 전해 들은 박민정이 혀를 찼다.“정말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네. 그래도 이제 함미현이 걱정하고 있는 게 뭔지는 잘 알겠네요.”유남준 역시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한 듯했다.“윤소현이 이미 함미현의 정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정수미 친딸이라는 함미현 씨가 윤소현 말에 너무 고분고분 따르더라고요. 이제 모든 게 다 이해가 되네요.”박민정인 이제 정수미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곁에 딸이라고 남아 있는 사람 중에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친딸도 가짜였다니.이제는 염혜란까지 사라졌다. 박민정은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를 마치고 유남준과 함께 돌아갔다.운전기사는 박민정을 회사 정문에 내려주었다.박민정이 차에서 내리려 하던 그때, 유남준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잠시만.”“왜요?”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던 유남준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니야. 저녁에 데리러 올게.”“알겠어요.”박민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들어 회사에서는 꽤 많은 신입 직원들을 채용했고, 그중에는 호산 그룹에서 건너온 사람들도 꽤 많았다.회사로 들어선 박민정은 오늘따라 유난히 떠들썩한 회사 분위기를 눈치챘다. 자세히 보니 여직원들 여럿이 스튜디오와 고층을 오가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서연아, 무슨 일이야?”진서연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이게 다 우리 회사 요물들 때문이잖아요.”“요물들이라니?”서류 뭉치를 들고 지나가던 설인하가 말했다.“연지석이랑 에리잖아요.”설인하의 말을 들은 박민정도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그럴 만도 한 것이 그 두 명은 정말 요물이 다름없었다. 생김새부터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탓에 회사 여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보스, 요즘에 그 능력 있는 홍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