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의 은밀한 비밀

보스의 은밀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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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둔 건축학과 학생 주하는 마지막 학기 개강 첫 날, 한 조직의 보스인 도혁과 우연하게 엮이게 된다. 그는 자꾸만 태연하게 그녀의 일상에 끼어든다. 모두가 어려워하는 남자가 이상하게도 그녀 앞에서만 고분고분하고, 얌전하게 굴었다. 가벼운 관계라고 생각했던 주하는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무서운 건 그 남자가 아니라,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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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프롤로그

"보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도혁은 짜증스럽게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언제 샀는지 상수는 본 적도 없는 빨간 스포츠카였다. 이런걸 타고 다녔었나?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매일 검은색 세단만 타고 다니던, 심지어는 본인이 운전하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운전석을 여니까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떠나려는 도혁을 다급하게 다시 불렀다. 

"백 대표님!"

"어, 간다."

"아니, 어디 가시는데요! 형님! 아! 형님!!!!!"

상수는 미련 없이 운전해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절규했다. 생전에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양지에서 사업을 하질 않나. 갑자기 대표라고 부르라고 하고. 요즘은 도대체 어딜 다니는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난리였다. 사업을 벌여놓고 대표까지 달았으면 뭐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래봤자 처맞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던데. 물론 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 백보스 대체 어디 가시는 거야!"

"너 모르냐? 그 뭐냐... 한서대학교? 거기 가시는 거잖아."

어느새 따라 나온 기찬의 말에 상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뭐? 대학교? 고등학교도 겨우 나온 인간이라 그런 곳이랑은 영 관계가 없었는데 이 나이 먹고 무슨 대학교를 들락날락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둘은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의아한 일이었다. 

"아니, 인마. 수업 들으러 가시겠냐? 여자 보러 가시는 거지. 내가 볼 땐 확실해."

"여...자...?"

이해가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다른 조직원들과 백퍼센트 고자라고 수군거리던 게 고작 지난주였는데, 무슨 여자? 심지어 대학생...? 하지만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 기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히 알려고 하면 단명해."

맞는 말이긴 했다. 남아있는 일이 문제였을 뿐이지. 그런 걸 궁금해하는 것보다는 서명이 없는 서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더 이득이었다. 진짜, 더럽게, 궁금하긴 했지만. 

"...근데 언제부터?"

"얼마 안 됐을걸. 최근에 새벽 4시에 들어온 날 있잖아. 그날부터."

열흘이나 되었을까. 정말 얼마 안 된 기간이라 상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사업을 한다니 어쩐다니 했던 게 그쯤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부하들이 지금 너무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는 지경이니까.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 악마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수는 기찬을 살살 꼬드겼다. 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10년 가까이 조직에 있었지만 여자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12시 반인가? 그때까지 술 마시고 계셨는데, 갑자기 잠시 바람 쐬러 나가셨거든. 그 뒤론 연락이 아예 없다가... 갑자기 한서대학교에 자주 가시는 중이라. 여자 아닐지 추측 중."

"그러니까, 빚 받으러 가는 게 아니고?"

"그걸 보스가 왜 직접 하냐."

기찬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상수를 쳐다보았다. 집에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도혁이 직접 가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는지. 물론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기는 했다. 사실은 기찬이 여자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아니,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100명 중 99명이었고 1명 정도가 비웃어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무슨 뒤뜰에 틀어진 라디오도 아니고. 하지만 기찬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가까운 조직원인 상수라도 설득해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상수 또한 금세 흥미를 잃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이상하잖아. 믿을 수가 없는데?"

"내가 증거를 찾아올게."

"뭐?"

"그다음에 같이 가보자. 그 한서대학교에."

상수는 진짜인가 싶어서 가늘어진 눈으로 기찬을 보았다. 기찬은 당당한 표정이었다. 증거.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게 맞다는 증거? 상수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궁금하긴 했으니까. 다음 날, 기찬이 '안 보는 게 낫겠다'라고 할 때까지 그는 별생각이 없었다. 사람이란 무릇 보지 말라고 말리면 더 보고 싶어지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기찬이 불붙인 호기심 때문에 상수는 결국 보면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어떤 여자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 하는 백도혁을. 꿈에 나올까 봐 무서운 그런 것을. 기찬을 원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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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도혁은 짜증스럽게 말하며 차 문을 열었다. 언제 샀는지 상수는 본 적도 없는 빨간 스포츠카였다. 이런걸 타고 다녔었나?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매일 검은색 세단만 타고 다니던, 심지어는 본인이 운전하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운전석을 여니까 수상했다. 그러나 그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떠나려는 도혁을 다급하게 다시 불렀다. "백 대표님!" "어, 간다." "아니, 어디 가시는데요! 형님! 아! 형님!!!!!"상수는 미련 없이 운전해서 사라지는 그를 보며 절규했다. 생전에 관심도 없더니 갑자기 양지에서 사업을 하질 않나. 갑자기 대표라고 부르라고 하고. 요즘은 도대체 어딜 다니는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난리였다. 사업을 벌여놓고 대표까지 달았으면 뭐라도 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래봤자 처맞기밖에 더하겠냐마는.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던데. 물론 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아, 백보스 대체 어디 가시는 거야!" "너 모르냐? 그 뭐냐... 한서대학교? 거기 가시는 거잖아."어느새 따라 나온 기찬의 말에 상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뭐? 대학교? 고등학교도 겨우 나온 인간이라 그런 곳이랑은 영 관계가 없었는데 이 나이 먹고 무슨 대학교를 들락날락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둘은 아니었지만 이건 정말 의아한 일이었다. "아니, 인마. 수업 들으러 가시겠냐? 여자 보러 가시는 거지. 내가 볼 땐 확실해." "여...자...?"이해가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다른 조직원들과 백퍼센트 고자라고 수군거리던 게 고작 지난주였는데, 무슨 여자? 심지어 대학생...? 하지만 그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듯 기찬은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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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주하는 개강 첫날부터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5학년 2학기. 이제 졸업 작품으로 전시회를 마치고, 졸업 논문만 쓰고 나면 길었던 학교생활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나 술이 당기는지. 학교를 다니는 4년 반 동안 그렇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었다. 건축학과는 제법 술을 많이 마시는 이미지가 있었는데도 주하는 술을 즐기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마실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날 좀 보기 드물게 취해있었다. 길에서 커다란 남자와 부딪혔을 때, 별생각 없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사과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과가, 제법 성의가 없네?"주하는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고 하기엔 확실히 주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실은 그런 게 중요하진 않았다. 태어나서 실물로 본 사람 중에, 눈앞의 남자가 가장 크고 잘생겨서 그녀는 다른 생각이 별로 들질 않았다. "뭐 무릎이라도 꿇어드려요?"명백히 술에 취한 얼굴인데,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보는 목소리가 제법 차가웠다. 비꼬는 것 같은 말투이기도 했다. 겁 없는 얼굴, 목소리, 태도. 취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었다. 아무리 그를 본다고 하더라도. 도혁은 그래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솔직히 사과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 건, 그도 술이 조금 들어갔기 때문이었기에. 그런데 도혁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눈앞의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몇 년간 잠잠했던 몸이 반응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하와 똑같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그 눈을 빤히 보았다. 취해서인지 그 눈이 딱히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럼 어쩌라고요?"도혁은 주하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노랫소리가 쾅쾅 나오고 있는 클럽 앞, 누가 봐도 취한 목소리와 눈빛 같은 게 아니었다면 그녀를 미성년자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었다.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에 가볍게 입은 옷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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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뭐, 근처에도 방은 많으니까요."이 근처엔 널린 게 모텔방이었다. 도혁은 주하의 말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날 때부터 도련님이라 이런 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물론 갑자기 둘이 택시 타고 호텔을 찾아가는 건 좀 웃긴 것 같기도 했다. "흠.""손으로만 해줄 테니까 가려면 가고요.""뭐?"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저보다 2배는 큰 남자를 보면서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가 싶다가도, 무슨 자신감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술에 취해놓고도 눈빛은 살아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이렇게 커다랗고 처음 보는 남자를 모텔방에 데려가려고 하면서 손으로 해준단 얘기를 하는게 신기해진건 그 탓이었다. "나도, 그거 좀 궁금해서 가보려는 것뿐이라서."주하는 '그거'라고 말하며 도혁의 다리 사이를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꿈틀. 지목당한 그의 물건이 또 반응해 왔다. 한 발 빼면 다 없었던 일처럼 될 것 같아서, 도혁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여차하면 방에서 꼬시든 말든 하면 될 거고. 그러니까 이건 주하가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도혁도 술을 조금 마셨기 때문에 성사된 기적 같은 거였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용기가 그녀를 진짜 모텔방으로 이끌었다. 제정신이었으면, 아니 한잔이라도 덜 마셨어도 처음 본 남자랑 이런 곳엔 오지 않았을 거다. 눈앞의 남자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바지 속 '그것'이 아무리 컸어도. "벗어요.""나만?""손으로 해준댔잖아요. 싫으면 말고요."뭘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나 빼고 난리인지. 도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투덜거리지 않고 옷을 벗었다. 주하는 그제야 도혁이 정장을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골목길이 어두웠어도 이 정도도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는데,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못 알아챈 것이었다. 셔츠를 벗자 나타난 근육질의 몸과 상처들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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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금방이라도 쌀 것 같은데.""그럴 리가."괜히 한 번 도발해 본 거였는데 태연한 척 받아치는 목소리가 사실 조금 멋은 없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었다. 긴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래요?"그 말이 마치 엄청난 도발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버틸지 보겠다는 듯이. 도혁은 조금 오기가 생겼지만, 술이 조금 들어간 몸은 그의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간 성생활과는 담을 쌓고 살아서 그랬는지도 몰랐다. 그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게 핑계라는 것 정도는.술을 아무리 마셔도 이런 적은 없었다. 조직원들이 뒤에서 고자라고 수군거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이 동하지를 않았다. 몇 년 전의 경험도 아주 작은 호기심이 전부였었고. 그는 자신이 진짜 무성욕자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성욕이 없다는 건 그 자체로 불편할 일은 아니었다. 다른 것에 에너지를 쏟으면 그만이었다. 그저, 그 에너지를 많이 쏟을만한 적절한 대상이 조금 부족했을 뿐. 도혁은 오래 참지 못하고 주하의 손에 사정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온갖 핑계를 대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거다, 오늘 잠을 많이 못 자고 와서 그런 거다. 섹스하면 다를 거라고 주하를 한참이나 설득했지만, 그녀는 이만 가보겠다며 어깨만 으쓱거렸다. "손! 손으로라도 한 번 더 해 봐. 어? 방금 건 무효야."저 큰 덩치로 왜 이렇게 징징거리는지. 주하는 조금 질려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하기 전과 후가 꼭 다른 사람 같았다. 위험해 보였던 문신도, 큰 몸도, 낮은 목소리도, 더 이상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이렇게 다들 이 정도로 사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가 도혁이 너무 난리를 쳐서 알게 되었다. 그가 제법 빨리 사정해 버리고 말았다는걸.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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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도혁은 뭐라고 저장해야 할지 몰라 저장도 못한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아니라지만, 아침이 되니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사실 무슨 생각으로 번호를 받아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대체 그 여자랑 뭘 하겠다고. 짧은 해프닝으로 끝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어제를 기점으로 성욕이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형님! 계십니까? 들어가도 됩니까?""왜."그는 곧장 씻으러 가려다가 문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짧게 답했다. "아니, 어제 갑자기 사라지셔서... 차도 그대로 두고 가시고, 누가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방에 오셨는지 와봤습니다.""택시 타고 들어왔어. 말 나온 김에 차 좀 찾아와. 차키 여기 있으니까."도혁은 문을 열고 차키를 휙 던졌다. 도혁을 찾아온 성철은 키를 손으로 받아내며 문틈으로 그를 한참 살폈다. 성철의 눈에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술을 마시다가 사라진 적은 없었던지라 이상했지만 팬티만 한 장 걸치고 잠든 몸에도 상처는 없는 듯하고, 얼굴도 태연했다. 그래서 그는 알겠다고 말하며 멀어졌다. 도혁은 가만히 샤워기 아래에 서서 새벽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 여자의 목소리, 얼굴, 말투, 그리고 다른 모든 상황. "아."도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주치의를 만나야 하는 건지, 그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은 있었다.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지,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지."태규야.""예, 형님."도혁은 방 안에 있는 내선 전화기로 사람을 호출해 명령을 내렸다."홍성민한테 연락 넣어둬. 오늘 간다고.""예? 무슨 일로 짭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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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어때? 가족 때문에 빚이 좀 있긴 한데, 학교 선생님이야. 괜찮아."도대체 뭐가 어떻냐는 건지. 도혁은 술병을 빼앗아 자신이 따르고, 병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단숨에 한 잔을 다 마셨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어제와 같은 상태가 될지도 몰랐다.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스타일로 준비를 해본 건데?"하지만 도혁의 옆에 앉은 사람은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여기서 소개팅하겠다는 건 아니었기에 그는 그저 술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룻밤. 그 정도만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힐끔거리는 사람을 위주로 한 명씩 눈을 맞춰보았다."......"그러다가 문득, 그는 지금 자신이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해프닝으로 끝내기로 해놓고, 확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았다. 이럴 거면 그냥 마음에 걸리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보는 게 나았을 것을. "잠시만."도혁은 다시 룸에서 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다니던 11자리의 핸드폰 번호를 눌러보았다. 저장하지 못한 채, 외워버린 번호를.그러나, 번호를 차단당했다는 건 신호가 가자마자 거의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도혁은 하루 종일 고민한 게 조금 허탈할 지경이었다. 어차피 전화 연결 따위는 되지 않을 것이었는데. 도혁은 금방 다시 방으로 들어가 성민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뭐, 뭐 어쩌라고?"성민은 커다란 도혁이 위협하듯 내려다봐서 순간 움찔거렸다. 사실 위협을 당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도혁이 너무 커다란 사람인 데다가 표정이 험악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이 사실이었다."핸드폰.""뭐? 내 핸드폰?"도혁은 대답하지 않고 살짝 인상을 썼다. 성민은 조금 투덜거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굳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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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성철아.""예, 형님."성철은 갑작스러운 부름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성철은 그저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리는 어떻게 되어가냐.""그... 게..."그러나 이어지는 질문에 성철은 당황해서 옆 사람을 보았다. 그는 무슨 정리냐고 묻지도 못하고, 무슨 대답이든 하긴 해야 해서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눈으로 SOS를 보냈다. 하지만 모인 이들 중에 그 누구도 '정리'라는 단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성철은 어쩔 수 없어 도혁에게 되물었다. "형님, 어떤 정리인지 자세히 말씀해주시면...""노친네가 하던 일, 다 정리하라고 했잖아."성철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도혁이 말하는 '노친네'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처음 이 조직을 만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혁은 제 아버지가 2년 전쯤 일선에서 물러나며 조직을 그에게 물려줄 때부터 조직에서 하던 일을 전부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까. 그는 언제까지나 그런 일만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 전쯤, 부하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긴 내렸다. 그사이에 한 번도 진척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 한 번도. 그러니까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까먹었을 정도로. "아, 그, 그 정리, 말씀입니까? 당연히, 예, 되고 있습니다...! 하하!"성철은 아주 과장되게 웃었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또 물어보지 않을 텐데 여기서 멍청하게 그런 건 안 하고 있다고 실토할 필요는 없는 법이었다. 도혁은 성철의 대답을 듣고 다른 사람 이름을 불렀다. "태규야.""예, 형님...!!"성철과 태규는 도혁의 할아버지가 조직을 만들 때부터 있었을 정도로 오래된 부하였고, 지금도 도혁의 양팔을 맡고 있었다. 처음엔 막내였어도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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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오주하. 만 23세. 생일은 11월 17일. 현재 한서대학교 건축학과 5학년 2학기 재학 중. 9학기 중의 6학기는 과에서 1등. 전액 장학금. 졸업 후에 취업 예정. 가족은 부모님, 그리고 고등학생인 여동생 한 명. 가족들은 지방 거주. 그래서 서울에 혼자 자취 중이고, 위치는 학교 앞 원룸.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 별다를 것 없는 정보의 나열이었는데 읽는 내내 자꾸만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이 끼어들 틈 같은 것은 없는 종이 한 장이었는데도, 심드렁하던 주하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듯했다."오주하."그는 입 밖으로 그녀의 이름을 내뱉어보았다. 심장이 쿵 떨어지기라도 한 듯, 기분이 이상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놓으니 피가 그제야 손끝까지 통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언가가 가슴 안쪽을 긁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요동치는지, 아직도 정답을 찾지 못해서 도혁은 조금 마음이 답답했다. 주하를 떠올리니 숨이 한 박자씩 어긋나는 듯했다. 그게 불편한 것 같기도, 불쾌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동시에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떨리는지는 모르겠어도."...하..."종이를 읽고 또 읽어도 주하는 평범하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도혁이 살아온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까 언감생심 쳐다도 보지 않는 게 맞는 일이었다. 이대로 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쭉 그렇게 생각했는데도, 종이에서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미친 게 아니고서야. 도혁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이제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냥 미친 것으로 하자고. 도대체 언제인지는 몰라도 건너서는 안 될 강을 이미 건넌 게 틀림이 없었다. 그는 되돌아가는 방법 같은 건 알지 못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했다. 우선은, 오주하의 경계심을 무너트릴 방법부터 찾아야만 했다. 앙큼하게 가자마자 전화번호를 차단했을 것이 틀림없는, 그녀에게 다가갈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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