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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5화

Author: 윤지
아침 7시, 서다희는 신랑 들러리들과 함께 도착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진주시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그의 체면이 서는 듯했다.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박씨 가문 옛 저택을 보며 감탄했다.

“서 비서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일반 부자들의 결혼식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요.”

“유남준 씨의 오른팔이잖아요. 일반 부자는 비교도 안 돼요.”

그들은 옛 저택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편 박민정과 진서연은 신부방 문을 막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신랑 들러리들에게 온갖 장애물을 설계했고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다.

방 안에 앉아 있는 민수아는 매우 긴장됐지만 그녀들에게 잊지 않고 당부했다.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다희한테 술 먹이지 마. 걔 술을 잘 못 마셔.”

“알겠어요.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 서다희편에 서고 친구보다 남편이 더 중요한가 봐요.”

진서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민수아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지금은 고생 좀 시켜야 해. 너무 쉽게 내 귀한 딸을 데려가면 소중히 여기지 않을 거야.”

민수아 어머니가 그의 손을 때리며 말했다.

“당신이 날 데려갈 때는 왜 몰래 친척들에게 봐달라고 했어요?”

전형적인 사랑꾼인 민수아 아버지는 아내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민수아 어머니는 서다희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딸은 모든 면에서 평범했지만 서다희는 달랐고 그녀는 십억대 연봉을 받는 서다희가 회사 대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박민정은 그런 민수아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갑자기 자신이 결혼했을 때 박형식과 한수민이 대화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당시 박형식은 그녀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결혼 후 억울한 일이 있으면 꼭 아빠한테 말해. 아빠는 영원히 네 편이야.”

그의 말을 듣고 한수민이 입을 열었다.

“시골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지참금도 없는데 당신은 딸을 시집보내면서 오히려 돈을 더 얹어주다니, 정말 처음 보는 상황이에요.”

박형식이 비꼬며 말했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 우리는 딸을 시집보내는 거지, 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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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86화

    “좋아.”민수아가 말했다.“부탁할게.”박민정은 핸드폰을 들어 정수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같은 시각 정수미는 회사에 있었고 박민정이 전화 온 걸 보자 흥분하며 서둘러 받았다. “민정아, 무슨 일이니?”“그게 제 친구가 대표님의 선물을 받고 결혼식에 참석할 시간이 되시면 오시라고 해요.”박민정은 말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정수미는 어제 자신이 거절당한 줄 알고 오늘 내내 바쁘게 일하고 있었는데 박민정의 말을 듣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물론 시간 있지. 민정아, 주소를 보내줘. 곧 갈게.”“알겠어요.”박민정은 서다희와 민수아의 결혼식 주소를 정수미에게 바로 보냈고 그녀는 주소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비서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정 대표님, 잠시 후 고객과의 약속이 있어요.”“이후 일정은 모두 취소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급한 일이 생겼어.”정수미가 말했다.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어 회사 일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고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알겠어요.”비서는 이해가 안 갔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정수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정수미가 떠나자마자 윤소현이 찾아왔고 그녀는 비서에게 물었다.“엄마가 급하게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비서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둘째 아가씨의 친구가 결혼해서 정 대표님이 결혼식에 참석하러 가는 거예요.”그 말을 들은 윤소현은 질투심이 섞인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엄마는 정말 동생을 많이 아끼고 챙기시네요. 친구 결혼식에도 참석하고 말이에요.”비서는 그녀의 비꼬는 듯한 말을 듣고 설명했다.“정 대표님은 아마 둘째 아가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일 거예요.”“물론 알고 있어요.”윤소현은 바로 받아 말한 후 다시 비서에게 물었다.“다혜는 어때요?”유다혜는 결국 그녀의 친딸이고 자신이 아무리 냉혈적이라 해도 완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의사 말로는 상태가 일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87화

    윤소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싫어요. 안 가요. 너무 오래 같이 있으면 정들어서 나중에 헤어지기 힘들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 정수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엄마, 얼른 가요. 우리 같이 들어가요. 이렇게 북적거리는 결혼식은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윤소현이 말했다.“그래.”정수미는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안쪽 로비에 도착하자 정수미는 바로 박민정을 발견했다.오늘 박민정은 신부 들러리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화장은 가볍게 했지만 여전히 주위를 압도할 만큼 아름다웠다.정수미는 박민정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윤소현이 막아섰다.“엄마, 동생이 바쁜 것 같은데 우리 방해하지 말고 옆으로 가서 앉을까요?”윤소현은 지금 정수미가 박민정과 계속 접촉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두 사람이 별로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정수미는 유언을 수정했고 만약 나중에 두 사람이 더 많이 접촉하게 되면 정수미가 모든 유산을 박민정에게 넘겨주는 건 아닌지 윤소현은 걱정됐고 그때 가서 자신한테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그래.”정수미는 별생각 없이 그저 박민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윤소현과 함께 신부 측 손님 자리에 앉았다.결혼식에 참석한 유명 인사들이 대부분 신랑 측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을 향한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다.정수미와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몇 명의 여성들이 중얼거렸다. “민수아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서다희랑 결혼하다니요.”“서다희가 비록 엄청나게 부유한 집안은 아니지만 서씨 가문이 진주시에서도 손꼽히는 집안이고 게다가 서다희는 유남준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잖아요.”“맞아요. 인생이 핀 거죠.”“예전에 어떤 가문의 부잣집 딸이 서다희를 쫓아다녔는데 거절당했대요. 민수아 성격이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아요.”몇 사람은 민수아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친구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그런데 민수아 옆에 있는 들러리는 누구예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한 여성이 박민정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88화

    “예쁜 줄 알았는데 얼굴에 저렇게 긴 흉터가 있다니, 누가 저런 흉터가 있는 얼굴을 좋아하겠어요.”한 여성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그녀들은 박민정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줄 알고 각자 단정히 앉아 경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박민정이 그녀들 옆을 지나쳐 정수미 앞으로 다가갔다.“정 대표님, 윤소현 씨,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박민정이 정중히 묻자 정수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앞에 있던 여자들은 박민정이 정수미를 ‘정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정말 정수미였다.‘이 들러리가 정 대표님을 안다고? 괜히 아는 척하는 거 아니야?’정수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아. 널 방해한 건 아니지?”방금까지 박민정을 무시하던 여자들이 엄마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이 사람이 설마 박민정이에요? 유남준의 아내이자 정수미의 친딸인 박민정이요.”“아, 박민정!”몇 사람이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는데 비록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정수미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민정아, 굳이 엄마를 챙기려고 하지 않아도 돼. 편할 대로 해”윤소현도 따라 말했다.“맞아, 동생. 우린 한 가족이니까 편하게 대해.”앞에 있던 여성들은 그제야 방금까지 무시하던 사람이 정수미의 딸이고 돈 많은 남자 찾으러 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박민정이 걸어올 때 그 여자들의 불친절한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었고 그들의 경멸하는 눈빛을 느꼈다.그녀는 정수미가 갑자기 이렇게 행동한 것이 자신을 돕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약간 감사했다.“그럼 다른 일이 없으면 먼저 가볼게요.”“그래. 가서 일 봐.” 정수미는 온화하고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박민정이 떠난 후, 그녀의 시선은 멀리 있던 여자들에게로 향했고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모든 사람이 당신들과 같은 건 아니에요.”그 여자들은 정수미의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숙이고 급히 자리를 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89화

    박민정은 약간 당황했다.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저급한 수법은 처음이었다.‘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지나가던 손님들은 이 광경을 보고 박민정한테 손가락질하며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당신 스스로 넘어진 거잖아요. 함부로 누명 씌우지 마요.”이 소란은 정수미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고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윤소현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박민정은 떠나는 뒷모습만 보였다.“소현아, 괜찮아?”정수미는 즉시 윤소현을 부축했고 윤소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근데 제가 동생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어요.”“민정이를 설득했다고? 뭐라고 설득했는데?” 정수미가 의아해했다.“엄마를 원망하지 말라고 했는데 동생은 동의하지 않았고 절 밀어 넘어뜨렸어요.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기한테서 빼앗은 거라면서요.”윤소현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예전 같으면 정수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이 양녀의 본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소현아, 민정이는 그런 애가 아니야. 게다가 그 애는 기억을 잃었는데 날 원망할 게 뭐가 있겠니? 앞으로 이런 수작 부리지 마. 그리고 넌 성격이 세서 이런 불쌍한 역할은 소화할 수 없어.” 정수미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똑똑히 말했고 눈빛은 차가웠다.윤소현은 완전히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연기해 왔고 무언가를 강제로 얻지 못하면 이런 연기를 통해 어떻게든 얻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정수미는 단번에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 보았다.“엄마, 저 연기한 게 아니에요. 못 믿겠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물어볼 필요 없어. 난 너와 민정이가 어떤 애인지 잘 알아. 그만하고 별일 없으면 돌아가. 괜히 여기 남아서 소란 피우지 말고. 남의 결혼식이니 너무 보기 흉하게 굴지 말아.” 정수미는 한 마디를 남기고 안으로 걸어가 박민정을 따라갔고 윤소현은 홀로 그 자리에 서서 충격에 빠진 듯했다.이때 예상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90화

    박민호는 옷을 정리한 후 윤소현 앞을 지나갔다.윤소현은 이를 악물며 분노했지만 그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박민호, 두고 봐. 모두 두고 봐.”‘지금은 날 무시할 수 있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너희들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윤소현은 몇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약간 초라하게 자리를 떴다.한편 박민정은 화장실에서 나오자 정수미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며 말했다. “정 대표님, 윤소현 씨를 위해 오신 건가요?”그녀는 정수미가 항상 윤소현을 감싸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런데 정수미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민정아, 오해야. 난 사과하러 왔어.”“사과요?” 박민정은 의아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신이 그녀의 양녀를 밀어 넘어뜨린 것으로 보이는데 왜 자신에게 사과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정수미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난 네가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절대 먼저 소현이를 밀어 넘어뜨리지 않았을 거야. 소현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너무 오냐오냐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해. 기분 상하게 해서 정말 미안했어.”정수미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똑똑히 말하자 박민정은 약간 놀랐고 입술을 깨물었다. “전 떳떳해서 기분이 상하진 않았어요. 그저 윤소현 씨가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쓰는 게 우스웠어요.”정수미는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자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다행이야. 소현이가 한 일 때문에 마음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지금 박민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잘 돌보고 빨리 기억을 회복하는 것이다.“결혼식이 곧 시작되니 우리 나가서 얘기하자.”“네.”정수미는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윤소현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고 그녀는 정수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과 함께 나오는 것을 보자 불안함이 커졌으며 급히 일어나 다가갔다.“엄마, 동생.”정수미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너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윤소현은 약간 당황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91화

    이것이 바로 방성원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설인하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뭐라고?”방씨 집안의 절반 자산이라니, 한때 파산했던 설씨 집안의 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대한 금액이었다.방성원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믿기지 않는다면 더는 방법이 없어.”그리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재산은 두 사람의 아이들 이름으로 넘어갈 텐데, 장인 장모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설인하는 여전히 의심스러워했다. “날 속이려는 거지? 난 어린애가 아니야.”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곧바로 변호사에게 서류를 작성하라고 할게.” 방성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서류를 작성한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설인하는 그가 더 이상 집요하게 굴까 봐 서둘러 자리를 떴다.한편, 신부 대기실에는 화려하게 꾸민 민수아가 있었고 박민정과 진서연도 메이크업을 끝낸 상태였다.그리고 들러리 중 한 명은 바로 정민기였다.정민기는 처음엔 들러리가 되는 걸 꺼렸지만 진서연이 들러리를 맡았다는 말을 듣고 마지못해 수락했다.서다희는 다부진 체격의 정민기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제 주변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정민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싫어요?”서다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잠시 후에는 저한테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정민기는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럼 꽃다발은 제 쪽으로 던져요.”그는 그 꽃다발을 진서연에게 주고 싶었다.서다희는 OK 사인을 보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 수아가 알아서 잘 던질 거예요.”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여러 절차가 끝난 후 신부가 부케를 던졌고 정민기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을 받아냈다.그가 망설임 없이 진서연에게 꽃다발을 건네자 진서연은 놀란 듯 물었다.“저한테요?”“네.”정민기는 신랑 신부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92화

    정수미는 박민정과 접촉할수록 자신이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는 걸 느꼈다.그러나 박민정은 다소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해요, 가고 싶지 않아요.”정수미는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럼 내일은 어때? 주말이잖아.”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수미가 재촉했다. “우리 회사에 잠깐 들를 수 있을까? 너한테 줄 게 있어.”“그게...” 박민정은 망설이며 물었다. “뭔데요?”“오면 알게 될 거야. 꼭 와.”아침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정수미는 참지 못하고 가볍게 기침을 했고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입을 가렸다.박민정은 그녀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대답했다. “알겠어요.”“그럼 약속한 거야.”“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수미는 박민정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뒤에야 차에 올랐다.차에 앉은 그녀는 꽉 쥐고 있던 손수건을 펼쳤다. 그 위에는 선명한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피까지 토하신 거예요?” 비서가 깜짝 놀라 묻자 정수미는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부터 그랬어. 별일 아니야.”“대표님, 이러시면 안 돼요. 병원에 가야 해요.” 비서가 걱정스레 말했으나 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이 몸으로 병원에 간다고 몇 년 더 살 수 있겠어?”비서의 눈에는 연민이 가득했다.“그래도...”“장 변이 유언장을 거의 다 작성했을 거야. 내일, 그걸 가져오라고 해.”비서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큰 아가씨에게도 연락할까요?”정수미는 잠시 망설였다.“됐어. 소현이는 너무 이기적이니까 유언장을 알게 되면 난리를 칠 거야. 내가 죽은 후에나 알게 해.”“알겠습니다.”...박민정은 집에 돌아온 후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막상 깨어나면 꿈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이제 민수아가 따로 나가 살게 되면서 집에는 박민정과 설인하, 진서연, 그리고 유남준, 정민기, 박윤우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아침 일찍 박윤우가 방문을 두드렸다. “엄마, 오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593화

    모든 것이 안배되었다.유남준은 박민정과 박윤우를 데리고 직접 차를 몰아 정씨 그룹 지사로 향했다.정수미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 곁에는 한 눈에 봐도 세련된 중년 여성이 함께 있었다.“언니, 아이를 찾았으면 집으로 데려가 친자 확인을 해야 하지 않아?” 정수미의 동생인 정보주는 묻는다. 그녀는 과거 인터넷에서 윤소현을 도왔던 이모였다.정수미는 차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아직도 모르니? 그때 소현이가 너더러 괴롭히라 했던 사람이 바로 내 친딸이자, 네 조카야.”“뭐라고?” 정보주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럼 어쩌지? 나 정말 몰랐어!”“알아. 나도 그땐 몰랐으니까. 그래서 아이에게 상처를 줬고 내 친외손자에게도 그랬지.” 정수미는 씁쓸히 답했다.정보주는 조카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앉아 있기에도, 그렇다고 일어서기에도 불편한 자리였다.“이따가 어떻게 사과하지?”“걱정 마. 민정이는 착한 아이라 말 잘 들을 거야.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거든.” 정수미가 말했다.“어디가 안 좋은 건데? 병원엔 가봤어? 내가 아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소개해줄까?” 정보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다가왔다. “입구 경비가 작은 아가씨께서 오셨답니다.”정수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주의 손을 잡았다. “가자. 민정이를 맞이하러 가야지.”“그래.”정보주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녀는 비록 정씨 성을 가졌지만 정수미의 사촌일 뿐 친여동생은 아니었다. 늘 정씨 가문의 후계 문제로 고민해왔던 그녀는 이제 박민정의 존재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둘은 서둘러 내려갔고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윤소현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편애가 심각하군.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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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90화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9화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8화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7화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6화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5화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4화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3화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2화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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