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 그룹 CEO, 고씨 가문의 가장 젊고 유능한 후계자...」박예찬은 곧 호산 그룹, 즉 유앤케이 그룹 본사 건물을 찾아 묵묵히 위치를 적었다.곧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이 보였다.「이지원이 호산 그룹 대표와 함께 집으로 가 부모님을 뵀다. 아마도 그녀는 재벌가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박예찬의 작은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윽고 그는 즉시 이지원의 자료를 뒤지러 갔다.다크웹에서 그는 이지원에 대한 많은 폭로를 발견했는데, 하나하나가 매우 경이로웠다.그것들을 보는 박예찬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나쁜 아빠!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여자랑 눈이 맞을 수 있어?! 정말 창피해!’박예찬은 원래 이것들을 전부 공개해보려고 했지만 생각을 해보니 이건 ‘쓰레기 같은 아빠’를 너무 쉽게 곤란하게 하는 거라 생각되었다.‘이런 여자는 끝까지 남아서 아빠로 하여금 스스로 애초의 잘못을 뉘우치게 해야 해.’...다음 날.조하랑은 이번에 돌아와 일을 찾았다.조씨 가문의 세상 둘도 없는 보배딸로서 그녀의 아버지는 조하랑에게 돌아와 지사를 관리하고 자신을 단련하라고 하셨다.그래서 그녀는 자주 별장에 와 살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그곳에는 가정부가 있었다.또 박예찬은 어른 같은 아이라 거두기도 매우 쉬웠다.“민정아, 예찬이 말 잘 들어. 지금도 자기 방에서 쿨쿨 자고 있는걸?”조하랑은 씻으면서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럼 다행이네. 에스토니아에 있을 때 내가 예찬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했는데 윤우 일 때문에 늦어졌어. 그래서 나도 유치원을 찾을 생각이야.”“응?! 유치원?!”조하랑은 손을 멈칫했다.‘이런 똑똑한 애가 유치원에 가면 그곳에 있는 어린애들한테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예찬이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다른 애들을 괴롭히지는 않을 거야. 또 아주 잘생겼으니까 유치원 다른 남자애들 체면도 서지 않을 것이고.’“왜 그래?”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야, 나한테 맡기면 돼. 내가 아는 국제 유치원
그때 김훈의 전화가 걸려왔다.“이 자식! 너는 외롭게 늙어 죽을 작정이야?! 누가 너더러 맞선 상대를 그냥 날려버리라고 했어?! 간땡이가 부었어?!”노인은 잔뜩 화나 보였다.“할아버지, 저는 지금 바빠요.”“바빠? 내가 모르는 줄 알아? 밖에 나가서 날마다 그 나쁜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전혀 진취적이지 않다는 거?”김훈은 끝내 인내심을 잃었다.“지금 당장 나한테 와라. 그렇지 않으면 네 모든 길을 끊어버릴 테니까!” 그렇게 김인우는 어쩔 수 없이 우선 돌아갈 수밖에 없다.호산 그룹.박민정은 회사에 온 후 곧장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유남준의 전담비서인 서다희는 세련된 차림새와 요염함을 잃지 않은 박민정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게 되었다.서다희는 아직도 옛날 박민정이 치장하기 싫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녀는 매일 어두운 색조의 옷을 입으며 볼품없이 보여 전혀 고귀한 사람 같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눈앞의 여인은 아름답고 눈에 띌 뿐만 아니라 온몸에 고귀한 기품과 매력이 배어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민정 씨, 무슨 일 있어요?”박민정이 냉담하게 말했다.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온 얼굴에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은 오늘 매우 바쁘셔서 아마 민정 씨를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서다희는 그대로였다.그는 원래 그녀에게 별로 호감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박민정을 데리고 유남준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박민정은 하도 서다희에게 문전박대를 많이 당해서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그녀는 올라오기 직전, 이미 유남준의 일정에 대해 알아보았고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아, 그래요? 그럼 대표님께 말씀하세요. 저희의 협력도 여기서 끝내자고요.”이윽고 말을 마친 박민정이 떠나려 하자 과연 서다희가 태도를 바꿨다.“민정 씨, 잠시만요. 그럼 대표님께 한 번 여쭤볼게요.”그러다 그들은 비서 사무실을 지나게 되었다.이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일해 온 몇 명의 비서들은 하나같이
그의 눈빛에는 박민정이 읽을 수 없는 기분이 가득했다.“5년도 안 됐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이 나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어? 연지석이 준거야?”박민정은 그녀가 떠난 후로 유남준이 한 번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다는 것을 몰랐다.요 며칠, 유남준은 더욱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박민정과 연지석이 함께 있는 그림들로 가득했다.“지석이랑은 그냥 친구입니다. 제 돈은 전부 제가 직접 벌어들인 거고요...”박민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은 큰 손바닥을 그녀의 어깨에 떨어뜨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어떻게 벌었는데? 이걸로?”박민정의 머릿속에는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유남준을 쳐다보았다.“뭐라고 하셨어요?”그의 손은 매우 뜨거웠지만 내뱉은 말은 오히려 그렇게 냉혹했다.박민정은 말문이 막혀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세게 쥔 탓인지 손톱은 당장이라도 손바닥 안을 뚫고 들어갈 지경이었다.유남준은 그녀의 귀가에 몸을 숙이고 말했다.“연지석이 얼마를 줬는지 말해. 나는 두 배로 줄 테니까!”유남준은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그녀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박민정을 영원히 품속에 가두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아직도 너희 가족이 나한테 얼마를 빚졌는지 기억해? 이제 더 원하지 않겠어. 그냥 액수만 말해. 나랑 이런 장난 치지 말고. 성실하게 말하면 내가 전부 다 줄게!”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민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뺨을 호되게 갈겼다.“이 개자식!”유남준의 수려한 얼굴이 화끈거렸다.다만 아프지도 않은 지 그는 오히려 박민정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말해! 얼마를 원하냐고!”박민정은 자신이 잘못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진작 알았지만 자신이 한 번도 그를 알아가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그저 줄곧 유남준이 결벽증이고 꽃 도령이며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다.그러나 이제야 그녀는
갑작스러운 이지원의 방문에 조금 전의 뜨거웠던 분위기가 금세 사그라들었다.그래서 유남준은 다시 박민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러자 박민정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이러한 행동은 유남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예전엔 박민정이 먼저 다가왔지만 지금은 모든 게 변했다.“대표님, 저랑 나눌 일 얘기라는 게 뭐죠?알 수 없는 표정의 유남준, 그리고 지난번의 실패에 직면하여 박민정은 그 일을 서서히 그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유남준은 침울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어쩐지 그녀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숨기고 있다고 느껴졌다.“자선활동 좋아한다며? 내일 와. 데리고 갈 데가 있으니까.”박민정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는지라 그 제안을 승낙한 후 몸을 돌려 떠났다.문을 밀어 열자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는 이지원을 발견했다. 이지원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그녀를 가로막았는데, 눈 밑에는 온통 박민정에 대한 관심뿐이었다.“민정 씨, 정말 살아있었네요. 잘됐어요. 우리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이지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았다.“그쪽은...”이지원은 어리둥절해 했다.“저 몰라요?”박민정은 그녀에게 딱히 더 설명하지 않았다.“저희 친한가요? 저는 별로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요.”말을 끝낸 박민정은 바로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그렇게 자리에 남겨진 이지원은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윽고 그녀는 몸을 돌려 유남준의 사무실로 갔고 그는 이지원이 온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일이야?”“오늘 뉴스에 대해 설명드리러 왔어요. 몰카에 찍힐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기자가 또 인터넷에까지...”오늘 아침, 비서는 유남준에게 인터넷 뉴스에 대해 알려주었다.그가 이지원을 집으로 데려가 부모님을 뵈었는데, 이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위해서라는 뉴스를 말이다.그럼에도 유남준은 홍보팀에 처리를 맡기지 않았다. 주로는 박민정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는데 오늘 보니 그녀는 딱히 별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민정 씨, 내가 충고하는데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못 본 척을 하든 못 들은 척을 하든 기억상실을 했다 해도 남준 오빠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박민정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듣고 있었다.“다 말했나요?”이지원의 어안이 벙벙해하는 모습에 박민정은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확신하면서 이민정 대스타님께서는 왜 원한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왔을까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냉소를 흘리고는 자리를 떠났다.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지원은 예전의 도도하던 박씨 가문 아가씨일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자신이 박씨 가문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박민정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일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지금 박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는데도 박민정은 뭘 믿고 아직도 이렇게 도도한 척한단 말인가? 이지원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때 매니저 윤재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원 씨, 전에 가지고 싶다던 곡 말인데요, 희망이 보여요.”“정말?”“다만...”매니저가 조금 머뭇거리자, 이지원이 말했다.“뭐가 문제야? 말해 봐.”“민 선생이 해외의 마이너 플랫폼에 올린 곡이 하나 있는데 아직 저작권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제가 이 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분명 히트할 거예요. 우리가 조금만 편곡하면 돼요...” 매니저의 말은 그냥 표절하자는 뜻이었고 이지원은 물론 알아들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저작권이 없다면 그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없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이지원의 동의를 구한 매니저는 그제야 마음 놓고 작업에 들어갔다.한편 전화를 끊은 이지원은 어떻게 박민정을 상대할지 고민했다....박민정은 집으로 가지 않고 예전에 살던 하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박민정의 어머니 한수민과 동생 박민호는 하씨 가문을 말아먹은 뒤 저택까지 저당 잡혔고 그곳에는 지금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박민정은 죽음으로 위
“난 왜 본 적이 없지?”그러자 박예찬이 입을 열었다.“민기 아저씨의 신분은 아주 비밀스러워 엄마가 위험에 처하지 않은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아.”“그래서 해외에 있었을 때도 주변에 보디가드가 있단 말만 들었지, 본 적이 없었구나.”조하랑은 찹쌀떡을 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곁에도 전문 경호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몸을 숨기지 않고 항상 그녀와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어 한눈에 찾아볼 수 있었다.연지석은 해외에서의 신분이 특수해 그의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경호원을 보내 박민정의 가족을 지키게 했다. 십분 후, 정민기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꼿꼿한 정장 차림으로 다른 사람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조하랑은 그를 보자마자 두 눈이 반짝거렸다.“미남이시네...”박예찬은 센스 있게 그녀에게 티슈를 건네줬다.“입 좀 닦아, 이모.”조하랑은 침을 꿀꺽 삼켰다.박민정은 자기 절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얼빠였지만 마음속 깊이 숨겨둔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를 위해 조하랑은 27살이 될 때까지 결혼은 물론 연애도 해보지 못했다.“들어와요. 이분은 제 친구 조하랑이예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박민정의 말에 정민기는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이때 박예찬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저씨, 내일이면 단오잖아요. 들어와서 찹쌀떡 드세요.”정민기의 차갑고 딱딱한 얼굴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괜찮아, 고마워.”박민정은 그가 혼자 있기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찹쌀떡을 조금 담아서 그에게 건네줬다.“미리 명절 축하드려요.”“네, 고마워요.”정민기는 찹쌀떡을 받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나간 후 조하랑은 궁금해서 물었다.“이 자식 왠지 느낌상 보디가드 같지 않은데?”“무슨 뜻이야?”“뭐랄까... 딱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느낌이 그래...”정민기가 박민정에게 주는 느낌도 보통 경호원이랑은 차이가 있었다.비록 정민기가 박민정을
박예찬은 박민정이 힘들게 자신을 돌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아무리 연지석이 괜찮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주변은 너무 위험하므로 박예찬은 엄마가 안전한 남자 곁에 있기를 바랐다.조하랑은 박예찬이 이런 궁리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녀도 옆에서 거들었다.“우리 아빠는 비록 내가 비즈니스 관계의 결혼을 하길 바라지만 소개해 준 재벌집 자제들은 다 괜찮게 생겼어.”박민정은 두 사람의 말에 당해내지 못하고 박예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좋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랑이 이모를 대신해서 나가는 것뿐이지, 너에게 아빠를 찾아 주려고 나가는 건 아니야.”“알았어.”박예찬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TV에서 방영하던 로맨스 드라마를 떠올렸다. 사랑은 보통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며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야말로 가장 쉽게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 박예찬과 박윤우는 아직 너무 어려서 엄마를 지킬 힘이 없었고 만약 국내에 있는 동안 괜찮은 남자를 찾아 엄마를 보살피게 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박민정은 이런 박예찬의 속궁리를 알 길이 없었다.밤이 되자 박예찬을 다독여 재운 뒤 박민정은 조하랑과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너 내일 강연우를 찾으러 가려고?”조하랑은 부정하지 않았다.“그래,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내일 본가로 돌아온대. 민정아, 나 대신 선 자리에 나가줘서 고마워. 만약 이번 일로 강연우를 만나지 못한다면 난 아마 평생 후회할 거야.”박민정은 그녀를 안아줬다.“우리 사이에 굳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조하랑은 약간 목이 메어왔다.“너와 유남준은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어?”“그냥 그대로지 뭐...”그 말을 듣고 조하랑은 박민정을 꼭 끌어안았다.“하랑아, 나 갑자기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거라는 말이 정말 맞다고 느껴져.”박민정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너와 강연우는 서로 사랑하니까. 꼭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조하랑을 위로하고 박민정은 쉬러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박민정은 조하랑을 문 앞까지 바래다줬다.나가기 전 조하랑은 몹시 긴장해 있었다.“민정아, 나 오늘 어때?”조하랑은 본바탕이 아주 좋았다. 둥글고 커다란 두 눈과 계란형 얼굴에 부드러우면서도 귀여움까지 겸비하고 있었다.“너무 예뻐.”“그럼 됐어. 너 그거 알아? 난 연우를 만난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긴장돼. 연우가 혹시라도 나를 싫어할까 봐...”“아냐, 그럴 리가 없어.”“우리 하랑이가 이렇게 예쁜데, 누가 싫어한단 말이야.”박민정이 조하랑을 안심시키자, 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문을 나섰다. 박민정은 그녀를 바래다주고 방으로 돌아갔다.“엄마.”박예찬은 왠지 벌써 깨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하랑은 새벽 3, 4시 때부터 깨나서 준비했다.“우리가 너무 떠들어서 깬 거야?”박민정이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 물어보자, 박예찬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엄마, 하랑이 이모가 만나려고 하는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박민정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래, 하랑이 이모한테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그녀는 대학교 때 강연우를 만난 적이 있었다.그는 그들 동기 중 가장 잘생긴 남학생이었지만 아쉽게도 가정형편이 별로였다.조하랑과 강연우가 같이 있으면 외모는 진짜 잘 어울렸지만, 집안 조건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엄마에게는 연지석 삼촌이 좋은 사람이야?”박민정은 멈칫하더니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답했다.“물론이지. 지석이 삼촌은 우리에게 엄청 잘해주잖아.”“그럼, 우리 돌아가면 지석이 삼촌 받아주면 안 돼? 주변에 예쁜 여자가 많긴 해도 다 엄마보다 별로야. 그리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엄마를 지켜줄 거라고 믿어.”박민정은 또 한 번 놀랐다.유남준의 미니 버전 같은 아들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며 박민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윽고 그는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너 어제 엄마 보고 선보러 가라며?”“내가 확률 계산을 해봤는데 엄마가 성공적으로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