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밖에 나와 에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민정 씨, 내 신곡 들어봤어?”에리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박민정은 그의 기쁜 마음을 망치고 싶지 않아 광고를 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아니. 신곡 나왔어?”“응. 빨리 들어봐. 그리고 어떤지 말해줘.”에리는 친구에게 맛있는 것을 나눠주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알겠어.”박민정은 전화를 끊고 먼저 노래를 들어보기로 했다.음악 플랫폼을 연 그녀는 에리의 이름을 검색하지 않아도 바로 신곡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벌써 인기 차트 2위에 올라와 있었고, 곧 1위에 오를 기세였다.박민정은 노래를 재생했다. 에리의 목소리는 맑고 풍부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공익 광고의 배경음악이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전달했다.뮤직비디오도 있었는데 에리가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몇몇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박민정은 노래를 끝까지 듣고 뮤직비디오도 끝까지 다 봤다. 에리가 아프리카에 가서 그런 광고를 찍은 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같은 시각, 인터넷에서는 에리가 가난한 지역을 돕기 위해 이미지를 신경 쓰지도 않고 그 광고를 찍은 기사가 점점 실검 1위로 올라가고 있었다.많은 팬들이 댓글을 남겼다.[역시, 우리 오빠야. 진짜 멋져. 가난한 지역을 돕기 위해 이미지도 신경 쓰지 않다니.][에리의 노래도 잘하고 사람도 정말 멋지네.][신곡도 엄청 좋던데.][그것뿐이야? 얼굴도 엄청 잘생겼잖아. ㅋㅋㅋㅋ]에리의 팬은 줄어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었다.에리가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광고를 찍었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이 공익 광고를 위한 노래는 가족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노래는 한 어머니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내용이었다.박민정이 다시 에리에게 전화하고는 축하를 건넸다.“축하해. 곧
서다희는 에리의 팔로우 수가 더 늘었다는 소식을 유남준에게 전했다.유남준의 기분은 더 나빠졌다.“요즘 여자들은 보는 눈이 다 이렇게 나쁘나?”그가 보기에 남자 연예인은 기생오라비와 다를 바 없었다.서다희는 사실 자기 약혼녀도 에리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에리는 혼혈이고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또 친절하고 귀여웠다. 이 표현들은 모두 서다희 약혼녀가 에리를 설명할 때 쓴 단어들이었다.서다희는 심지어 약혼녀에게 자신과 에리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냐고 물었었다.“대표님. 이런 연예인들은 금방 인기가 식을 겁니다.”“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캔들을 만들어 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서다희도 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박민정이 알게 되면 또 사과해야 하기에 절대 득이 될 상황은 아니었다.“서두르지 마. 천천히 해.”“네, 알겠습니다.”“그리고 또 한 가지, 유성혁이 이미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회장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이번에는 할아버지라도 그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유성혁은 끝내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가?“최씨 집안에서는 뭐라고 해?”유남준이 또 물었다.“최씨 집안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정보를 수집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 최씨 집안 사람들이 본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서다희가 대답했다.“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어떻게 안 보고 지나칠 수 있겠어?”유남준은 오늘 밤 윤우가 돌아오면 윤우와 박민정을 데리고 본가로 가서 그들이 겪었던 모든 굴욕을 되갚아 줄 계획이었다....박윤우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매일 활기가 넘쳤다.오늘도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잔뜩 신이 나 보였다.“엄마, 봐봐. 이거 누나들이 나한테 준 거야.”그는 자신의 작은 책가방을 열었다. 원래는 거
본가로 돌아가 저녁을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박민정은 약간 의아했다.“갑자기 본가는 왜요?”“그냥 저녁을 먹으려고 가는 거야. 겸사겸사 좋은 구경도 하고.”유남준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더 묻지 않았다. 박윤우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세 사람은 차를 타고 본가로 떠났다.본가.유명훈은 상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얼굴색은 유난히 어두웠다.어린 유지훈이 옆에 있지 않았으면 그는 진작 유성혁에게 손을 썼을 것이다.거실에서.유성혁의 장인과 장모는 양쪽에 앉아 있었고 유성혁 부부는 서서 유명훈의 꾸중을 듣고 있었다.“할아버지, IM 그룹이 이렇게까지 저를 괴롭힐 줄 몰랐어요. IM 그룹이 아니었으면 진주의 대부분 시장을 진작 점령했을 겁니다.”유성혁은 아직도 변명하고 있었다.유명훈은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었다. 유성혁이 몇천억의 빚을 졌다는 것을 알고 바로 사람더러 잘 조사해 보라고 했다.공동구매라, 겉으로는 혁신적인 프로젝트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인 보장은 전혀 없었고 오직 투자금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였다.“그때 남준이가 유앤케이 그룹을 다루고 있을 때 진주의 모든 기업들이 남준이와 맞섰어. 그런데도 남준이는 그때 파산 신청을 하지 않았어. 아무리 변명을 해도 네가 무능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유명훈은 전혀 유성혁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유성혁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유남준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지금은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일 뿐인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시각장애인더러 회사를 운영하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한들 누가 장애인의 말을 믿고 따르겠어?’“할아버지, 돈을 잃은 사람이 저만이 아닙니다. 남우도 마찬가지잖아요. 남우가 유앤케이 그룹을 운영하기 시작한 후로 유앤케이 그룹은 겉으로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상 IM 그룹의 압박을 받고 있잖아요.”유성혁은 죽더라도 한 놈을 끌고 같이 죽을 작정이었다.유명훈은 이미 10년 이상 회사를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유명훈은 그들이 이 시간에 올 줄 몰랐다.그리고 그는 또 유남준에게 물었다.“남준아, 왜 예찬이를 데려오지 않았어?”유명훈은 박예찬을 보고 싶어 했다.측근의 말에 의하면 예찬이는 매우 똑똑하다고 한다. 지난번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했으니 유남준과 퍽 닮았다는 평가가 있었다.“예찬이는 요즘 김씨 가문에 있어요. 며칠 후에 돌아올 겁니다.”“아직도 김씨 가문에 있어? 김 회장도 참 염치가 없지. 친손주가 없으니 남의 손주를 계속 데리고 있네.”유명훈은 이 말을 할 때 눈에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자기 집에 있던 김훈은 괜히 귀가 간지러웠다.유명훈은 또 유남준에게 말했다.“먼저 앉아. 이따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네.”세 사람은 거실에 앉았다.최현아의 부모는 그들 앞에서 유명훈에게 돈을 빌리거나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최현아는 초조해하며 유성혁의 팔을 당겼다.유성혁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방금 장모님이 말씀하신 일은...”유명훈은 그 일을 다시 떠올렸다.“이따가 남우가 오면 남우한테 얘기해 봐. 난 늙어서 이런 일에 관여할 수 없어.”유명훈은 유지훈이 태어날 때부터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를 더 편애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명훈은 결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최상 그룹은 유씨 가문의 회사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을 쉽게 도와준다면 괜히 유앤케이 그룹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최현아의 부모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하필 이때 박윤우가 입을 열었다.“증조할아버지, 혹시 저분들이 돈을 빌리던가요?”유명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윤우는 큰 눈을 뜨더니 전에 있었던 일은 모두 잊은 듯이 순진한 얼굴로 최현아의 부모를 바라봤다.“할아버지, 할머니. 제 저금통에 몇만 원이 있을 거예요. 필요하시면 제가 먼저 빌려 드릴게요.”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그들은 그 몇만 원이 필요하지 않았다.최현아의 어머니는 비꼬듯이
고영란이 최현아의 어머니에게 다가가면서 압박했다.“며칠 전, 제가 외출해서 없었죠. 돌아와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돈이 윤우더러 지훈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면서요?”최현아 어머니는 고영란의 기세에 압도되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고영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사돈이라 봐준 거였는데 제가 만만하게 보였나요? 우리 윤우를 무릎 꿇리려고 했다니, 당신들이 그럴 자격이 있나요?”“우리 윤우가 지훈이를 해쳤다고 한들 뭐 어쩌라고요?”최씨 가문 사람들, 그리고 유성혁은 찍소리도 못했다.박윤우는 고영란을 싫어했지만 눈앞의 상황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할머니가 내 편을 들고 계시다니.”고영란은 이대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요즘 최상 그룹이 많이 어렵다고 들었어요. 남우에게 돈과 물자를 빌리려고 한 거 맞죠?”최현아의 부모는 눈을 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분명하게 말해두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회사는 내 두 아들이 힘들게 일구어낸 거예요. 왜 우리가 당신들 손실을 메워줘야 하죠? 그렇게 잘난 당신들 아들이나 사위에게 도움을 청하세요.”결국 최현아 부모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고영란의 쓴소리에 쫓겨났다.유명훈은 고영란에게 너무 과격하게 굴지 말라고 주의를 줬을 뿐, 다른 말은 더 하지 않았다.유성혁과 최현아도 의기소침해져 아들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저녁 식사를 할 때 고영란은 계속해서 박윤우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그리고 또 박윤우에게 말했다.“앞으로 윤우가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할머니한테 말해.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줄게.”박윤우는 그녀의 호의에 대해 조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여전히 약간의 거부감이 남아 있었다.“괜찮아요. 엄마가 해주실 거예요.”그 말을 들은 고영란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박민정도 그제야 윤우가 고영란에게 약간의 반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고영란은 박민정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혹시 윤우와 예찬이더러 나를 멀리하라고 했니?”“
박민정이 너무 급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기에 하마터면 유남준의 몸에 부딪힐 뻔했다.유남준은 손을 들어 그녀를 부축했다.“고마워요.”박민정이 감사 인사를 전한 후 그에게 물었다.“윤우 찾으러 온 거예요?”“응.”“그럼 얼른 들어가요. 아니면 윤우가 잠들어 버릴 거예요.”박민정이 속삭이며 말했다.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유남준의 목덜미에 닿았다.유남준의 목울대가 약간 움직였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박민정이 떠난 후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박윤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그녀와 함께 자고 싶다며 투정을 부렸다.박윤우는 펑펑 울고 있었다. 밖에서는 혼자 자면 그만이었지만 집에서는 엄마, 아빠와 같이 자고 싶었다.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박윤우 옆에 누웠고, 유남준은 다른 쪽에 누웠다.박윤우는 각자 두 사람의 손을 꼭 잡고는 가슴 앞에 모았다. 그리고 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두 사람 손 잡으면 안 돼?”박민정이 의문스러운 얼굴을 보였다.“왜 손을 잡아야 하는데?”“유치원 친구들의 엄마, 아빠도 다 손잡고 있더라고. 내와 같이 있을 때 두 사람 손잡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손잡아 줘, 응?”박민정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사실 손을 잡지 않는 엄마, 아빠도 있어...”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하지만 박윤우는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말했다.“아빠, 깍지 껴야 해요.”깍지라...유남준은 아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박민정과 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맞잡은 손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유남준에 진작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남자의 얼굴이 너무나도 잘생겨 보였다.저녁이라 그런지 박민정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다음 날 아침, 박민정은 남자의 품 안에서 눈을 떴다.그녀는 비몽사몽인 채로 눈을 떴는데 곧바로 눈앞의 잘생긴 유남준의 얼굴을 발견했다.박민정은 조금 움직이자 자신이 유남준의 팔에 꼭 안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옆을 돌아봤는데
“뭐라고 답장했어?”박민정이 물었다.“새언니한테 그랬지. 너랑 친구 하지 말라고 해서 네 연락처 삭제했더니 이제 연락이 안 된다고.”조하랑이 대답했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대답 잘했네.”“내가 바보도 아니고.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투자한 돈을 잃었는데 어떻게 받을 생각을 해? 받을 수 있겠냐고?”“교훈 삼아야지.”조하랑은 친척들이 자신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생각해 줄 필요도 없었다.“참, 민정아. 김 회장님께서 너랑 얘기하고 싶대.”“알겠어.”박민정이 바로 대답했다.김훈은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민정아, 너 학부모 위원회 회장 자리를 원한다며?”박민정과 최현아가 학부모 위원회 회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치원의 모든 학부모들에게 알려졌다. 김훈도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예찬이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김훈은 더욱 신경을 썼다.“네, 하지만 당선되지 못했어요.”박민정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김훈이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깟 회장 자리, 내가 한마디 해 놓으면 해결할 수 있어. 기다려봐, 내가 해결해 줄게.”“아니에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박민정은 다급하게 거절했다.김 회장이 예찬이를 아끼는 마음에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민정아, 사양하지 마. 내가 젊었을 때 너희 할아버지와 친구였다니까.”김훈이 말했다.박민정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녀가 태어난 후로 은정숙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그녀가 세 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떴다.“그게 아니라 학부모 위원회는 이미 선거를 끝내서요.”“그럼 다시 선거를 하면 되지. 네가 될 때까지 말이야.”김훈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박민정이 동의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고 이 일을 처리했다.이번 일의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유명훈이었다.김훈이 전화를 걸고 나서 얼마 지나지
게다가 박민정은 새로운 공지문을 게시하여 학생들의 입학, 주차 등의 여러 사항을 다시 정리했다.최현아는 박민정이 분명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무리 그래도 지훈이는 유씨 가문의 장손이야. 내가 밉다고 해서 지훈이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면 유씨 가문 사람들이 절대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그 문자를 본 박민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윤우를 괴롭힐 때는 윤우가 유씨 가문의 아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최현아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반에서 다른 아이들이 지훈을 따돌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박민정, 아무리 그래도 넌 지훈이의 작은 엄마잖아. 너무 선을 넘지 마.]박민정은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최현아를 보고는 더는 답장하지 않았다.‘윤우를 괴롭힐 때는 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박민정은 예전부터 누군가가 자신의 아들을 괴롭히면 백배로 갚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반드시 바로잡아줘야 하는 법이다.그녀는 유지훈의 부모도 아닌데 왜 그를 봐줘야 한단 말인가?박민정은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학부모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대체로 자기 아들을 대했던 것처럼 유지훈에게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학부모들은 지금 최현아를 깊이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 때문에 큰 손해를 봐 가정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유지훈은 박예찬처럼 강한 멘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같이 놀아주지 않자 채 하루도 안 되어 멘탈이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그리고 그제야 박예찬을 괴롭히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집에 돌아간 후 최현아는 그에게 타이르는 식으로 말했다.“지금 공부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해. 네가 공부를 잘하면 증조할아버지도 너를 더 좋아하게 될 거야. 그때면 네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거라고.”“친구가 없는 게 뭔 대수라고.”유지훈은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