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라오네트 창립 30주년 송년회. 정찬영 회장은 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선언한다. “하나뿐인 내 딸의 남자를… 이 자리에서 찾겠다.” 그날 이후, 회사 전체는 ‘회장의 딸’이 누구인지 찾기 위한 조용한 전쟁에 빠져든다. 그리고 그들 몰래, 정 회장의 딸 정민영은 까만 뿔테 안경 너머로 세상을 또렷하게 바라보며 법무팀에 신입으로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평생 공부만 해온 그녀 앞에 세 남자가 서서히 다가온다. 말 한마디 없는 경호팀의 남자 최강 분석으로 사랑을 이해하려는 남자 강산 질투를 감춘 채 속삭이는 그림자 유나연 입술이 스칠 듯 가까워지는 순간마다 민영의 마음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밤, 그녀의 입술이 머무는 곳에서 사랑도, 회사의 운명도 함께 뒤흔들린다.
Lihat lebih banyak오후의 빛은 유리창을 통과하며 각도를 바꾸고 있었다.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였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공기의 결은 조금씩 달라졌다.민영은 문서를 넘기다 말고 손끝을 잠시 멈췄다.집중이 흐트러진 건 아니었다.오히려 너무 고요해서 스스로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질문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이 선택이 맞는지, 이 방향이 옳은지,지금의 감정이 잠깐 스쳐 가는 건 아닌지.하지만 오늘은 그 질문들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대신 이상할 정도로 분명한 감각만이 남아 있었다.'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부담 없이 자리를 잡았다.민영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확답을 요구받지 않는 상태.그 여유가 자신을 나태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오히려 이런 여백이 있어야 다음 걸음을 정확히 내딛을 수 있었다.“정 사원.”고개를 들자 최강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는 회의실에서 바로 나온 듯 서류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민영은 그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네.”“잠깐 괜찮으십니까.”그 말투에는 언제나처럼 강요가 없었다.민영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복도를 따라 함께 걸으며 둘은 나란히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누가 맞추는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 있었다.그 사실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다는 점이 민영에게는 작은 안정으로 다가왔다.“아까 말씀드린 외부 일정 말입니다.”최강이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정 사원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민영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머릿속에서 일정과 감정이 빠르게 정리되었고,그 과정에 망설임은 없었다.“동행할게요.”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지금은 피할 이유가 없어요.”최강은 그 대답에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표정에는 안도도, 놀람도 없었다.마치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알겠습니다.”그는 차분하게 말했
퇴근 시간이 건물 전체를 천천히 밀어내고 있었다.사무실의 불빛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고, 복도에는 발소리보다 여운이 더 오래 남았다.민영은 모니터를 끄고도 잠시 그대로 앉아 있었다.오늘은 하루를 정리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의자를 밀고 일어날 때, 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한 박자 뒤에 있었다.그 간격이 불편하지 않았다.오히려 이제야 자기 리듬을 정확히 되찾은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서자 낮보다 훨씬 낮아진 공기가 몸을 감쌌다.이 시간의 회사는 일보다 사람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민영은 그 흔적들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 안에 머물러도 괜찮았다.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문이 열리며 익숙한 그림자가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최강이었다.그는 민영을 보자 아주 짧게 고개를 들었다.놀람도, 기다림도 아닌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같이 내려가시죠.”그의 말은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질문처럼 들리지 않았다.“네.”민영은 그 대답이 이상하리만치 쉽게 나오는 걸 느꼈다.엘리베이터 안에서 둘은 나란히 섰다.어제와 다르지 않은 거리였지만, 공기의 결은 조금 달랐다.침묵이 더 얇아졌고, 말은 굳이 그 위에 올려지지 않았다.그 침묵이 오늘의 상태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다.“오늘”최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러나 그 말은 완성되지 않았다.민영은 그 멈춤을 기다렸다.“회의에서”그가 다시 말했다.“정 사원 의견이 상황을 정확히 잡아줬습니다.”칭찬처럼 들리지 않게 사실처럼 말하는 방식.민영은 그 방식이 이제 익숙했다.“그냥”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지금은 흐름이 보여서요.”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빠져나갔고, 둘은 그 흐름에 조용히 섞였다.건물 밖으로 나서자 저녁 공기가 조금 더 차가웠다.민영은 코트를 여미며 숨을 들이마셨다.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마음은 이상하게 따뜻했다.“오늘은 집으로 바로 가십니
집 안의 불을 켜지 않은 채 민영은 현관에 잠시 서 있었다.밖에서 따라온 밤의 공기가 아직 코트 자락에 남아 있었고,그 공기 속에는 카페의 온도와 골목의 조용함이 겹겹이 묻어 있었다.문을 닫는 소리가 생각보다 작게 들렸다는 사실이오늘 하루가 부드럽게 끝났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자 집은 늘 그래왔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그 침묵이 오늘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이미 한 번 사람의 체온을 기억해 둔 자리처럼.소파에 앉아 등을 기댄 채 민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아까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다시 흘러갔다.결론을 미룬다는 말,서두르지 않겠다는 선택,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받았다는 감각.어느 하나 크게 울리지 않았는데도마음의 한쪽을 차분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다.비어 있는 시간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천천히 모양을 갖추는 중일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내려앉았다.민영은 이제야 왜 요즘의 일상이 지루하지 않은지를 조금 알 것 같았다.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건 없이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매일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부엌으로 가 물을 한 잔 따르며 민영은 유리컵 속의 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아주 미세한 진동이 표면에 남아 있다가 곧 고요해졌다.그 모습이 지금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안정된 상태.휴대폰이 탁자 위에서 가볍게 울렸다.민영은 곧바로 손을 뻗지 않았다.지금은 확인이 아니라 여운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잠시 후 화면을 켰다.-오늘 무리하지 않으셔서 다행이었습니다.짧은 문장. 그러나 그 안에는 오늘 하루를 같이 건넜다는 확인이 담겨 있었다.민영은 답장을 길게 쓰지 않았다.대신 이렇게 적었다.-덕분에요. 오늘은 편하게 머물렀어요.전송 버튼을 누르자 이상하게도 어깨의 힘이 조금 더 풀렸다.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기댈 수 있다는 감각은 설명보다 훨씬 따뜻했다
“아직”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모든 문장을 끝내지는 않았어요.”그리고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어떤 문장을 남겨두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아요.”최강은 그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의 눈빛에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그 문장”그가 낮게 말했다.“제가 옆에서 지켜봐도 괜찮겠습니까.”민영은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창밖을 한 번 바라보았다.유리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가 멀어졌다.세상은 여전히 자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 거리면 괜찮을 것 같아요.”그 대답은 허락이면서도 선언이었다.누군가를 곁에 두겠다는 선택.그러나 아직 완전히 이름 붙이지 않은 선택.카페의 불빛 아래에서 둘은 말을 아꼈다.아껴진 말들은 공기 속에 겹겹이 쌓여 다음 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민영은 그 여백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지금은 이 정도의 온도가 가장 정직했기 때문이다.남겨둔 문장은 언젠가 이어질 문장을 위해 존재한다.민영은 그 생각을 가슴에 담고 컵을 내려놓았다.오늘 밤은 결론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카페의 음악은 조금 전보다 더 낮아져 있었다.사람들의 말소리는 유리잔에 부딪혀 둔해졌고,시간은 벽에 걸린 시계보다 느리게 흘렀다.민영은 컵 가장자리에 손끝을 얹은 채 아직 식지 않은 온기를 가만히 느꼈다.이 자리에 더 오래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최강은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지나가는 사람들 위를 따라가지 않았고, 어딘가 머물러 있었다.마치 지금 이 시간 자체를 놓치지 않겠다는 사람처럼.민영은 그 침묵이 자신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놓았다.“이런 시간”민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예전엔 조금 불안했어요.”최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서요.”민영은 말을 끝내고 잠시 자신의 숨을 들여다보았다.
연회장 내부는 이제 어느 정도 다시 평정을 찾은 듯 보였지만, 그 평정은 진짜 고요가 아니었다.잔을 부딪히는 소리, 테이블마다 들리는 가벼운 웃음, 웅성임이 적당히 섞인 공기…겉으로 보기엔 화기애애했지만 모두가 조금씩 다른 의도를 품고 있었다.민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잔 옆에 놓인 냅킨을 괜히 접었다 폈다.손가락 끝에는 아직 떨림이 남아 있었다.몸이 아니라 마음이 떨리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아까… 그 말.“제가 있습니다.”그 말이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단순히 보안팀 직원의 멘트일 뿐인데, 아
연회장이 다시 조금씩 안정되는 듯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었다.잔에 담긴 샴페인의 거품이 표면을 넘어오지도 못하고 금세 가라앉는 것처럼,그 안의 분위기는 잔잔하게 흔들리는 표면 아래에서 끓고 있었다.정민영은 주변의 대화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하지만 귀는 생각보다 솔직했다.“정씨 성 가진 애들 다 긴장하겠네.”“우리 부서 정주희는 아까부터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던데?”“10월 입사자들 중 누가 제일 가능성 있어 보이냐?”“아니, 회장의 딸이면 사원으로 뽑히겠냐? 말도 안 되지.”“그렇지. 최소 대리부터 시작하지
연회장 문이 다시 닫히자, 안의 소란스러운 열기와 바깥의 차가운 복도 공기 사이에는 얇은 막 하나가 생긴 듯했다.민영은 그 문턱을 넘어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시선이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을 느꼈다.'아무도 날 모를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숨이 가빠지지.'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녀의 손끝은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특히 오른손 아버지의 말이 뇌리에 박혔을 때 자기도 모르게 움켜쥐었던 그 손은 아직도 굳게 말린 채였다.테이블은 의외로 조용했다.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불편할 만큼.같은 법무팀
복도는 여전히 잔잔했고, 창문 밖 겨울밤의 바람은 그 너머에서 얇게 흐르는 것처럼 들렸다.민영은 창문 아래 난 좁은 벤치에 조심스럽게 앉았다.볼룸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악 소리는 이 거리까지 닿지 못하고 단지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는 정도로만 존재했다.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아버지의 말이 해리처럼 번졌다.“여덟 달 동안 스스로를 증명해보게.”그 문장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민영은 완벽히 알지 못했지만,알아서는 안 되는 느낌도 같이 있었다.“……그러니까요, 아버지… 왜 이런 선택을….”민영은 이마에 손을 댄 채 낮은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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