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이 보는 앞에서 유남우에게 된소리를 듣게 되자 윤소현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감히 그를 더는 자극할 수 없어서 윤소현은 화를 억누르면서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갔다.윤소현이 떠나고 나서 유남우의 시선은 늘 그랬듯이 박민정에게 향했다.“앞으로 또 이러한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오늘처럼만 해. 뒤로 물러서지 말고 그대로 갚아주면서.”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유남우는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박민정을 그대로 두고 사무실로 돌아갔다.사무실 안에서.윤소현은 유남우가 돌아온 것을 보고 울먹이면서 무척이나 억울한 듯 연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남우 씨, 왜 형님 앞에서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왜 그렇게 소리쳤냐고요! 아직도 형님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유남우는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고 물음을 물음으로 돌려주었다.“여기가 어디야? 집이야? 안방이야?”윤소현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그러고 싶어? 내 약혼녀가 되어 가지고 형수한테 그러고 싶어?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윤소현은 그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회사로 온 것도 온전히 어머니 뜻이었어.”“앞으로 형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머니께서 형수를 보낸 거라고. 너도 알다시피 형이 지금 앞이 보이지 않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틈을 타서 형을 죽이려고 하는지 알기나 해? 그래서 형수한테 그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고 회사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고 있는 거라고.”유남우의 해석을 듣고 난 윤소현은 그제야 화가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윤소현은 고개를 푹 떨구고 나지막이 말했다.“진작에 알려주지 그랬어요.”“나한테 있어서 중요한 일이 아니니 말하지 않은 거야. 너한테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일 줄은 몰랐어. 앞으로 회사에 오지 마.”“네?”“내 말대로 해. 난처해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불효자로 이익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윤소현이지만, 유남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윤소현이다.따라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유로운 유남준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박민정은 그를 보게 된 순간 엉뚱 맞다는 생각뿐이었다.“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죠?”유남준은 화가 단단히 난 듯한 박민정의 소리를 듣고 나서야 천천히 눈을 떴다.“내 앞에서 지금 남우한테 전화해. 너 그만둔다고.”‘고작 이거 때문에 날 납치한 거야?’그에게 납치를 당한 이유가 이것 때문일 줄은 몰랐다.“싫어요.”잘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둘 사람은 없다.하물며 윤소현에게 엿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겼는데, 이대로 그만둔다면 윤소현에게 항복한 셈밖에 안 된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내 아이를 품고서 남우랑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깟 인연을?”순간 박민정은 가슴이 턱 막혀 왔다.기억을 잃은 그가 아니라면 아마 이미 골백번 때리고 말았을 것이다.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유남준은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정말로 그런 생각이 있었나 봐?’“박민정, 너 임신한 몸이야! 애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있는 애 엄마라고!”“네 명성이 바닥을 나든 나락으로 떨어지든 상관없는데, 두 아이까지 그런 꼴 당해야겠어? 우린 너랑 그렇게 놀아줄 기운도 깎일 체면도 없어.”양쪽에 늘어져 있던 두 손이 당겨지는 순간이었다.유남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민정은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하도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라 옆에 있던 부하들은 미처 반응을 하지도 못했다.다들 하나같이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박민정은 온몸의 힘을 다해 유남준을 향해 연신 주먹을 날렸다.그에게 손목이 잡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왜? 찔려? 그래서 화가 나는 거야?”박민정에게 맞은 곳이 아프기는커녕 간지럽기만 했다.이러한 느낌이 마냥 의심스럽기만 했다.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개진 박민정은 언성을 높였다.“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세상에 자기 아내가 바람피웠으면 하는 남편도 있어요
“단양길입니다.”운전기사가 대답했다.유남준의 기억대로라면 단양길에는 차도 사람도 드문 편이다.그러한 점을 감안하여 유남준은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따라가.”“네.”실은 몇 년 전에 단양길이 속해 있는 이쪽 구역을 호산 그룹에서 도맡아서 상업 거리로 탈바꿈해 버렸다.인적이 드문 예전과 달리 지금은 북적북적한다는 말이다.차에서 내린 박민정은 급히 처리할 일도 없고 하여 온 김에 둘러보기로 했다.마침 계절도 바뀌게 되고 하니 박윤우와 박예찬에게 새 옷을 사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길을 따라서 걷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자기 쪽을 향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얼굴에 흉터를 보고서 다들 수군거리는 줄 알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멀지 않은 곳에 승합차 한 채가 내내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승합차는 7, 8미터 정도 되고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의 차가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박민정은 유남준이 홧김에 이미 가버린 줄 알았는데, 내내 뒤에서 쫓아올 줄은 몰랐다.그대로 제자리에 멈춰 선 박민정은 심호흡을 한번하고서 승합차를 향해 걸어갔다.다가오는 그녀를 보고서 운전기사는 당황해 마지 못했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사모님께서 이리로 오고 계십니다.”유남준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윽고 박민정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운전기사는 차창을 내려주었고 박민정은 뒤에 있는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언짢아했다.“대체 뭐 하려고 따라오는 거예요?”“나 지금 임신한 몸이라 정서 파동도 꽤 심한 편이에요. 싸우고 싶으면 남준 씨가 내려와요. 내려와서 싸우자고요.”“...”유남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냥 박민정 홀로 이 거리를 걷기에는 위험할 것 같아 뒤에서 지켜주고 있었던 것뿐인데 말이다.하지만 임신한 걸 감안하여 유남준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타, 두원으로 바래다줄게.”병 주고 약 주는데 일가견이 있는 유남준이다.먼저 차로 강제로 끌고 올라와서 한바탕 모욕을 주더니 인제 집으로 바래다주
갑자기 뒤에 나타난 차를 보고서 민수아는 적지 않게 놀랐다.이윽고 고개를 돌리자마자 서다희가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여긴 왜 왔어? “의혹투성이인 두 눈으로 서다희는 민수아에게 물었다.“수아야, 너 여기서 지내는 거야?”민수아는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근데 그게 왜?”“어떻게 이 집에 들어오게 된 거야?”“내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민수아는 자기와 박민정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서다희는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수아야, 여기는 박씨 가문 옛 저택이야. 절대 내놓을 리가 없다는 말이지. 너 누구한테 속은 거 아니야?”민수아가 누군가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불법으로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민수아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사기를 친 것이라면서.민수아는 그 말을 듣고서 진상을 털어놓았다.“걱정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 민정이가 나한테 빌려준 거야.”‘민정이?’서다희는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박민정 씨 그러는 거야? "“그래.”민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서다희는 아직 추경은과 밥을 먹었었던 그날의 일에 박민정 역시 연관되어 있음을 생각지도 않았었다.단지 민수아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본 것으로 생각해 왔었다.“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나랑 민정이 친구야.”서다희는 도저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며칠 못 본 사이에 약혼녀가 자기 회사 대표님의 아내와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다른 이들이라면 좋아서 방방 뛸 지도 모른다.하지만 서다희는 그렇지 않다.유남준과 박민정 사이의 러브 스토리가 하도 우여곡절이 많기 때문이다.“수아야, 박민정 씨 사람은 괜찮은데 우리하고는 신분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래서 난 네가 박민정 씨와 만나면서 더 깊이 알아가는 걸 바라지 않아.”“우리 신분이 어때서? “민수아는 지금 갈수록 그의 말에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두 사람에게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박민정은 경비실로 몸을 숨겼다.경비원은 갑자기 들이닥친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사모님, 괜찮으세요?”“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네.”박민정은 그에게 정문에 있는 감시 카메라를 켜달라고 부탁했다.이윽고 박민정은 화면을 뚫어지게 지켜보기 시작했다.문 앞에서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던 서다희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 추경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다희 오빠.”추경은은 서다희를 향해 수줍은 듯 종종걸음으로 달아갔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서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서게 되었다.추경은에게 그 어떠한 호감도 없는 모습으로.“경은 씨, 그냥 서 비서라고 불러주시죠.”추경은은 그 말에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왜 그러는 거예요?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예요?”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추경은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면서 세상 가녀린 척을 했다.“미안해요. 그만 화 풀어요. 그 여자한테는 제가 가서 직접 사과할게요.”“사과는 왜 하는 거죠?”서다희가 물었다.그러자 추경은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우리 사이 오해했잖아요... 그래서 사과하려고요...”서다희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녹음을 털어놓았는데, 지금과는 정반대인 추경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오늘 다희 오빠랑 왜 사적으로 만나려고 하는 지 알아? 꼬리 치려고 그런 거야. 근데 네까짓 게 끼어들 수 있을 것 같아?”추경은은 순간 사색이 되고 말았다.서다희는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추경은 씨, 앞으로 그냥 남남으로 지내시죠. 오빠니 뭐니 그런 소리도 하지 말고요. 저한테는 동생이 없거든요.”그 말에 사색이 되었던 추경은의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그날 민수아와 했던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다.‘대단한 여자였어! 감히 녹음을 하다니!’‘앞으로 조심해서 말하고 행동해야겠어!’이미 까밝혀진 상황임으로 추경은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
부정이 아니라 인정을 하고 있는 박민정의 말에 서다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사모님, 저와 추경은 씨 사이에는 처음부터 그 어떠한 관계도 없었습니다. 수아가 지금 이 일로 저와 헤어지려고 하는 거 알고 계십니까?”“그래서요? 저한테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요?”박민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되물었다.“만약 제가 수아한테 두 사람이 몰래 커플 레스토랑으로 간 것을 알리지 않았더라면 다음번에는 더 심한 짓까지 할 수 있잖아요. 아닌가요?”“젊은 여자가 작정하고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냐 말이에요.”순산 서다희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남자로서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추경은 씨는 젊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화끈하고 게다가 집안까지 좋아요. 일반인 남자들이 가만히 놔둘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요. 하물며 작정하고 들이대는데 마다할 수 있는 남자가 몇이나 될 것 같아요?”“수아한테 알린 것도 사심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서 비서님이 추경은한테 홀려서 앞으로 추경은 씨의 말에만 끔뻑 죽을까 봐 그런 것도 있어요.”서다희는 모든 말을 다 듣고서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했다.“추경은 씨와 따로 둘만 만난 건 잘못했습니다. 낮도 아니고 밤에 만나서 더더욱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다소 멋쩍은 듯이 박민정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조금 전에 보신 것처럼 전 이미 추경은 씨와 선을 딱 그었습니다. 그러니 수아한테대신 좀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제 얘기를 듣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거든요.”박민정은 조금 전에 백업한 동영상을 서다희에게 건네주었다.“수아 소중히 여기고 예쁘게 사랑해 주세요.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좋은 여자예요.”서다희는 박민정이 건네주는 USB를 받고서 다소 당황했으나 차로 돌아와서 동영상을 직접 확인하고 나니 모든 의혹이 풀렸다.그는 바로 동영상을 민수아에게 보내주었다.드라마를 보고 있던
“뭐라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윤석후가 물었다.“당연히 엄마 말대로 해야죠. 근데 문제는 지금 한수민이 사인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거예요.”윤소현은 모녀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관한 계약서까지 준비해 두었다.그 말을 듣게 된 윤석훈의 눈빛은 확 달라지면서 차갑기 그지없었다.“앞으로 우리가 걷게 될 길에서 한수민은 틀림없이 걸림돌처럼 내내 거슬리게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이쯤에서 한 방에 해결하는 게 좋겠어.”“아빠가 나서서 그 사인 받아줄게. 겸사겸사 이혼 서류도 작성해야겠어.”“네.”...아무리 흉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가족은 절대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하지만 이 집안만큼은 그 말과 어긋나는 쪽으로 걸으려는 모습이다.오전에 한창 업무에 몰입하고 있을 때, 간병인으로부터 박민정은 또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민정 씨, 얼른 좀 오세요. 큰일 났어요.”박민정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수민의 병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윤석후와 윤소현도 병실 안에 함께 있었는데 한수민에게 강제로 사인을 받고 있었다.간병인이 밖에서 박민정에게 알려주었다.“아침 일찍부터 오셨는데, 오자마자 사모님의 손을 잡고 사인을 강요하고 있지 뭐예요. 길 가던 행인이라도 저렇게 무정하게 굴 것 같지 않아요.”“이혼 서류에 사인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요.”간병인은 박민정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박민정이 나서서 한수민을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박미정은 윤석후가 서둘러서 이혼하려는 그 마음을 알고 있다.한수민과 그 어떠한 관계도 엮이지 않게 빚에 시달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부녀 사이를 끊어버리는 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으나 두 사람이 일단 이혼하게 되면 박민정은 돈을 받을 곳이 없게 된다.윤씨 가문의 모든 재산도 본래는 박씨 가문의 것이다.박민정은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정민기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던 그때 의사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박민정을 불렀다.“박민정 씨?”박민정은 그 소리에
윤소현은 순간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진작에 동의하셨으면 아까 그런 고통을 받지 않으셔도 되었을 텐데요.”말을 마친 윤소현은 합의서를 꺼내서 한수민의 앞에 내려놓았다.한수민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펜을 들어 자신의 이름을 사인하고는 또 붉은 색 지장까지 남겼다.이 모든 것을 마친 한수민이 윤소현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예전만큼의 애정이 전혀 없었다.“너 같은 배은망덕한 녀석을 애지중지 키웠으니 나도 참 눈이 멀었지.”윤소현은 한수민의 욕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누가 당신보고 절 애지중지 하랬어요? 저는 원래 당신과 정이 없었어요. 저는 정수미가 키운 거예요.”이 말을 들은 한수민는 갑자기 전에 자기가 박민호에게 박민정을 얘기한 것이 떠 올랐다. 그때 그녀는 박민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민정이는 가정부가 다 키웠어. 그래서 난 그 애한테 정이 전혀 없어.”‘다 내 업보야...’“이혼 합의서에도 사인해.”윤석후는 한수민을 빈털터리로 내쫓을 합의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한수민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이혼 합의서에는 사인할 수 없어.”만약 이 합의서에 사인을 안 하면 한수민은 그나마 절반의 부부 재산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합의서에 사인을 하면 그녀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었다.“사인 안 해?”윤석후는 또 손을 들어 한수민을 때리려고 했다.“어디 또 한 번 때리기만 해봐!”옆에서 줄곧 군소리 안 하던 박민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윤석후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쳐다보았다.“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야?”박민정도 윤석후와 긴말하지 않고 문 쪽을 보며 외쳤다.“민기 씨.”정민기는 줄곧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으며 박민정이 자기를 부르는 것을 듣고 얼른 들어왔다.윤석후는 자기보다 덩치가 크고 어린 정민기를 보더니 삽시에 깃발을 내렸다.“소현아, 가자.”“네.”윤소현은 모녀간의 연을 끊는 합의서를 잘 챙기고 떠났다.두 사람이 간 후, 한수민은 더는 참지 못하고 침대에 푹 쓰러졌다. 그녀는 가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