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에게 약을 다 먹인 후, 유남우는 다시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혔다.열이 난 상태에서 어렴풋이 잠든 그녀는 여전히 머리가 아팠고 목도 아팠다.유남우는 어디 가지 않고 해열 패치를 가져와 그녀의 이마에 붙여주었다.박민정은 머리가 순간 많이 시원해졌으며 그녀는 덥석 유남우의 손을 잡았다.“남준 씨, 나 너무 아파요.”유남우는 침을 살짝 넘기었다.“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거짓말...”박민정은 온몸에 힘이 없어 유남우의 손을 잠시 잡더니 손을 놓았다.반대로 유남우는 그녀의 손을 다시 꼭 잡았다.한 시간 뒤, 박민정은 겨우 열이 내렸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유남우가 일어서서 떠나려고 할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그녀의 핸드폰을 들고 보니 민기 씨라고 적혀있었다.유남우는 정민기라는 보드 가드에 대해 뒷조사를 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간단한 인물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연지석이 박민정의 곁에 붙여둔 사람이었다.유남우도 진주시에서 돌아온 후에야, 박민정이 말했던 뚱이가 바로 연지석이라는 것을 알았다.연지석은 어느 신비한 가문의 사생아였다. 연지석네 가문은 정규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장사를 하는 것이었다.유남우는 정민기의 전화를 끊고 박민정의 핸드폰을 꺼버렸다.정민기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박민정의 핸드폰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옆에서 박윤우는 정민기를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아저씨, 우리 엄마가 전화를 받았나요?”“아마도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돼서 꺼진 것 같아.”정민기는 이렇게 말하고 박윤우를 달래주었다.“윤우야,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저씨가 네 엄마 데리러 갈게.”“네.”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정민기가 일어서서 나가려고 할 때, 추경은 얼른 따라붙었다.“민기 오빠,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제도 새언니를 찾는 데 도울게요.”‘민기 오빠?’정민기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무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해요. 전 낯선 사람이 제 차에 타는 걸 싫어해서요.”추경은은
‘유남우?’정민기도 유남우와 박민정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민정을 데려간 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유남우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도 한시름을 놓았다.하지만 정민기가 시름을 놓은 한 편, 유남준는 이미 사람을 시켜 전면적으로 박민정을 찾아 나섰다.정민기한테서 소식을 얻진 않았지만, 그래도 얼마 걸리지 않아 박민정을 데려간 게 유남우라는 것을 알아냈다.유남준이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이미 새벽 1시였다.그는 주먹을 꽉 주었다.일 분 뒤, 유남준은 이미 차에 올라탔다.경호원은 유남우의 개인 별장 위치를 알아냈기에 그들은 그곳으로 가면 되었다.하지만 중도에, 유남준은 기사 보고 차를 세우라고 했다.“갈 필요 없어요.”기사와 부하들은 다 어리둥절했다.유남준은 생각 정리를 마쳤다. 박민정이 좋아하는 사람이 유남우라면, 심지어 유남우를 위해서 밤늦게 집에 안 돌아온 이상, 차라리 그녀의 뜻을 들어주는 게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다음 날, 서다희가 해운 별장에 가서 업무 보고를 하려던 찰나, 유남준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먼저 변호사를 알아봐 줘.”서다희는 어리둥절했다.“변호사요? YN 그룹을 인수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변호사님께 이혼 합의서를 하나 작성해 달라고 해.”유남준은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서다희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대표님, 사모님과 이혼하려는 건가요?”유남준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말했다.“그 사람이 나랑 이혼하려는 거야.”“어제 사모님께서 오셔서 이혼해달라고 난리를 피우셨어요?”서다희는 그저 궁금해서 계속 물었다.모든 것이 공개된 이후, 두 아이도 아버지를 인정했고 박민정도 엄청 오랫동안 이혼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유남준은 서다희가 말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서 참으며 대답했다.“어젯밤 온밤 돌아오지 않았어. 알아낸 결과, 우남우의 개인 별장에 갔더라고.”이 말의 뜻은 아주 분명했다.박민정이 바람을 피웠으니, 그가 이혼을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는 말이었다.유남
박민저의 두 눈에는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낯선 환경이었다.‘여기가 어디지? 나 어제 묘원에 갔었던 거 아니야? 그 뒤에 남준 씨가 왔고 날 데려간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그녀는 자신의 옆에 엎드려 있는 유남우를 보았다. 유남준과 완전히 다른 옷차림이었고 이곳은 해운 별장도 아니었다.박민정은 자신의 상태를 한번 확인했는데 옷이 그대로여서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비록 아주 가볍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옆에 있는 사람을 깨게 했다.유남우는 두 눈을 뜨며 물었다.“일어났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아무 문제 없는 두 눈, 박민정은 지금 눈앞의 사람이 유남준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제가 왜 이곳에 있어요?”“민정아, 너 어제 묘비 앞에서 쓰러졌었어. 난 네가 열이 나는 걸 보고 널 여기로 데려왔어.”유남우가 말했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침대 옆에 해열 패치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고마워요.”“내가 말했잖아.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 할 필요 없다니까.”유남우는 온몸 잠을 못 자서인지 일어서면서 살짝 비틀거렸다.유남우가 쓰러지려는 것을 본 박민정은 얼른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1.9m 되는 유남우를 박민정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넘어졌다.조식을 준비해 온 도우미는 두 사람이 한데 끌어안은 장면을 보더니 얼른 고개를 숙였다.“둘째 도련님, 아침 식사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도우미는 조식을 내려놓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유남우가 이미 약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젯밤 그가 데려온 여자는 유남우의 약혼녀가 전혀 아니었다.도우미는 계단을 내리면서도 내심 두려워했다.‘둘째 도련님께서 새 애인이 생겼는데 그걸 봤다고 날 죽이지는 않겠지?’방안에서, 박민정은 허둥지둥 유남우의 품에서 빠져나와 다른 쪽으로 굴러갔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죄송해요.”유남우는 이런 박민정의 모습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준이 전화를 받았다.유남준의 차가운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이제 시간이 났나 보지?”박민정은 유남준의 말이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다.“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했어요?”“지금 당장 해운 별장으로 와.”유남준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박민정은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유남우는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걸어 나왔다. 그는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박민정을 보며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침은 먹었어? 내가 바래다줄까?”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에요. 저 혼자 가면 돼요.”이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또 유남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그제야 떠났다.파라다이스 밖에는 차가 별로 없었다. 박민정은 한참 동안 기다려서야 택시를 잡았으며 기사님더러 해운 별장으로 가달라고 했다.유남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박민정은 그래도 가 봐야 할 것 같았다.해운 별장 내, 강연우가 도착한 후 이혼 합의서 초안을 작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박민정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별장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서다희는 문 앞에 선 채,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한눈에 유남준의 옆에 서 있는 강연우를 알아보았다.‘이 남자가 여기에 왜 왔지?’강연우가 말없이 떠나는 바람에, 조하랑은 그를 몇 해 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엔 그는 돌아온 후,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다.박민정은 그런 강연우에 대해 정말 일말의 호감도 없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강연우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로 하고는 유남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남준 씨, 저를 왜 불렀어요?”유남준은 말없이 바로 전에 작성된 합의서 초안을 박민정 쪽으로 밀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읽어봐. 별문제 없으면 사인해.”박민정은 합의서를 보려고 한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서다희가 낮은 소리로 콜록 기침하였다.박민정은 고개를 돌려 서다희를 한눈 보고는 또다시
유남준은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박민정의 팔목을 다시 붙잡았다.“박민정!”유남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내가 어떻게 하면 이혼해 줄 건데?”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간힘을 썼다.“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이 손 놔요! 나는 예찬이랑 윤우, 배 속의 아이만 있으면 된다고요!”박민정이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남준 씨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포기한다면 바로 이혼서류에 사인할게요.”유남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지금 나랑 장난해? 유씨 가문의 아이들을 당신이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아?”유남준의 손등에는 지난번에 물었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박민정은 개의치 않고 더 세게 물었다. 유남준은 깜짝 놀라더니 박민정의 머리를 누르며 소리쳤다.“이거 못 놔?”‘개도 아니고 왜 자꾸 물어뜯는 거야!’박민정은 피가 나는 걸 확인하고는 놓아주었다.“장난치는 건 내가 아니라 남준 씨 아닌가요? 내가 낳은 아이를 당신이 왜 데려가는 건데요!”박민정이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유남준을 발로 찼을 것이다. 통증이 밀려왔지만 박민정은 더한 짓도 할 수 있는 여자이기에 유남준은 손을 놓지 않았다.“재판까지 가보겠다는 뜻이야?”박민정은 얼음처럼 차가운 유남준의 목소리를 들고서야 정신이 들었다.‘유남준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기억을 잃어도 넌 여전히 나쁜 놈이야!’“뜻대로 하세요. 절대 물러날 생각 없거든요.”박민정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불안해했다.‘변호사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야. 그래도 승소할 수만 있다면 우리 예찬이랑 연우를 지킬 수 있어.’“재판장님이 바람나서 아이들을 방치한 엄마의 편을 들어줄 것 같아?”유남준의 말은 비수가 되어 박민정의 가슴에 꽂혔다.“내가 바람났다고요?”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증거있어요? 내가 언제…”“어제 외박한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널린 게 증거야!”유남준이 말을 이었다.“유남우가 그렇게 좋으면 이혼해 줄게. 이혼하고 나서 유남우가 윤소현과의 혼약을 취소할지는 모르지…”퍽!방 안에 소
더욱 화가 난 박민정은 해운 별장을 나갔다. 어제 자신이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열이 펄펄 오르더니 결국 쓰러졌고 박민정을 발견한 유남우가 데리고 갔다.박민정은 이곳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유남준은 되레 박민정한테 이혼서류를 내밀었고 박민정을 바람난 여자라고 모함했다.유남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남우가 왜 박민정을 데리고 갔는지 묻지 않았기에 박민정은 더욱 억울했다.‘남준 씨가 아픈 건 알지만 판단력을 잃을 정도로 머리를 다친 건 아니잖아.’이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박민정은 유남준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줄 알았으나 발신자는 유남우였다. 박민정이 전화를 받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집에 도착했어?”박민정은 유남우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했다.“그럼요.”“알겠어. 그런데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왜 혼자 추모 공원에 쓰러져 있었던 거야?”사실 유남우는 어젯밤에 무슨 상황인지 조사했었기에 알고 있었다.“몸살 때문인가 봐요.”박민정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자 유남우는 박민정이 예전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던 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유남우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푹 쉬어. 너무 무리하지 마.”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요즘 휴가 내려고 했었어요.”“그래.”전화를 끊은 유남우는 마음이 아팠다. 유남우 기억 속의 박민정은 어릴 적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알려주던 사람이었다.‘알려주지 않는 걸 보면 이제는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나 봐.’한편 유남준의 주치의 오진욱은 해운 별장에서 유남준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누가 대표님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오진욱은 유남준의 방에서 나오더니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유남준이 머리를 다친 건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서다희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사모님이에요.”오진욱은 한참 동안 멍해 있더니 박민정이라는 것을 눈치채고는 계속해서 물었다.“어떻게 때렸는데요?”서다희는 유남준의 아랫사람한테는 친절한 편이었기에 직접 꽃
서다희가 말을 이었다.“어제 사모님께서 한수민을 보러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하는 중이에요.”유남준은 생각에 잠겼다.‘내가 정말 민정을 오해한 걸까?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꽃병으로 내 머리를 내리친다는 게 말이 돼?’“민정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두원 별장으로 간 것 같아요.”유남준은 밀려오는 두통을 참으며 말했다.“쉬고 싶으니 이만 나가봐.”“강 변호사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혼은 빨리할수록 좋잖아요.”눈치 없는 서다희의 말에 유남준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돌려보내.”“알겠어요.”서다희가 나간 뒤, 유남준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고민 끝에 일어나 방문을 열자 서다희와 마주쳤다.“두원 별장으로 가자.”서다희는 유남준이 기억을 잃어도 박민정을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네. 차 대기시킬게요.”진주시의 하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려지더니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큰비가 내릴 것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차는 별장 안으로 들어가 멈추었고 유남준은 차에서 내렸다.“남준 오빠, 왔어?”추경은의 목소리를 들은 유남준이 입을 열었다.“민정이는 어디에 있어?”박민정부터 걱정하는 유남준의 말에 추경은은 미간을 찌푸렸다.“새언니 정말 이상하다니까? 어젯밤에 집에 들어오지도 않더니 오늘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부터 싸는 거야. 어디 가냐고 물었는데 내가 상관할 바 아니래.”추경은이 말을 이었다.“남준 오빠, 새언니 너무 건방진 것 같아. 은근히 유씨 가문을 무시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예의가 없어.”유남준은 추경은의 말을 무시한 채 서다희한테 지시했다.“민정이한테 전화 걸어.”“네.”서다희도 추경은을 없는 사람 취급하자 추경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한참 후에야 박민정이 전화를 받았다.“서 비서님, 어쩐 일이세요?”박민정은 박씨 가문 옛 저택으로 돌아가서 민수아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사모님, 지금 어디에
박윤우는 박민정을 따라 박씨 가문 옛 저택으로 향하면서 의문이 들었다.“엄마, 왜 여기로 온 거야?”박민정이 박윤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이곳도 우리 집이니까 온 거야.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세 낡아버리거든.”“그럼 아빠는 언제 오는데?”박윤우가 말을 이었다.“아빠가 보고 싶어.”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빠는 아파서 당분간 못 올 거야. 다 나으면 같이 지내자.”박윤우는 박민정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았다.‘쓰레기 아빠가 또 엄마를 화나게 했나 봐.’박윤우가 뒤로 누우며 말했다.“아빠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그럼 우리 네 식구 함께 캠핑 갈 수 있잖아.”며칠 전, 박민정과 박윤우가 통화할 때 같이 캠핑하러 가서 산책도 하고 재밌게 놀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박민정은 아무 말 없이 박윤우를 끌어안았다.‘나랑 이혼하겠다는 유남준과 무슨 캠핑을 가… 마주 보고 밥 먹는 것조차 싫어하겠지.’박윤우가 곤히 잠들자 박민정은 방을 나왔다. 문이 닫힌 뒤, 박윤우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스마트워치를 꺼내 이불속에 숨어들어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쓰레기 아빠가 기억을 잃어서 실수했나 본데… 이럴 땐 내가 도와줘야 해.’유남준은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전화를 받았더니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쓰레기 아빠.”유남준은 전화를 끊으려다가 문뜩 아들이 생각났다.‘윤우가 어떻게 나한테 전화를 걸었지?’“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유남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박윤우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또 엄마랑 싸운 거예요? 우리 지금 외할아버지가 지내셨던 집에 왔어요.”유남준은 이번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박민정을 바람난 여자로 몰아갔고 이혼서류에 사인하라고 협박했었던 것이다.“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 내일 해결할게.”유남준의 말을 들은 서다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내일 해결한다고? 대표님, 사모님한테
“엄마, 아빠랑 이혼 잘하셨어요.”유남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유남준 앞을 지나치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내가 능력이 없어서 이번에도 졌네.”유남준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유남우는 사실 그가 어떻게 반격할지 걱정되기보다 이번에도 졌다는 게 더 분통했다.밖으로 나온 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연락처를 훑어보다가 홍주영에서 멈칫하더니 결국에는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핸드폰을 다시 꺼야 했다.실내 안.거실은 유난히 조용했고 유지욱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남우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였는데.”고영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전’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고영란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지욱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아니에요.”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 달은 될수록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그리고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대로 다시 가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고영란은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혼하고 싶은데 지금 이혼하려면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했다.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한 달 동안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좀 생각해 보고요.”말을 마친 뒤 유지욱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한편.박씨 가문의 옛 저택.박민정은 유남준이 너무 걱정되어 한걸음에 집으로 돌아왔다.비록 서다희가 괜찮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이때, 밖에서 들리는 차 소리에 박민정이 다급히 차창 밖을 내다보니 유남준의 차도 마침 도착해 있었다.박민정은 빠르게 차에서 내린 뒤 유남준에게 달려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괜찮아요?”그러자 유남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당연하지, 다희가 나 괜찮을 거라고 알려줬잖아.”박민정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
유석진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 둘째 아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고영란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또한 왜 두 아들 사이에 지금 저런 모순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유남준도 괜히 고영란이 중간에서 난처하게 된 것 같아 일부러 유남우를 빤히 바라보며 유석진에게 말했다.“이번 일은 사과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에요. 큰아빠가 아무리 남우랑 같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별로 무겁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위협감이 느껴졌다.순간 유석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때, 그의 며느리인 최현아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끼어들었다.“남준 씨, 그래도 한 가족인데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그러자 유성혁도 한마디 거들었다.“남준아, 우리도 잘못했단 걸 알고 있어. 아버지가 이제 연세도 많아서 상황판단이 안 될 때가 많아.”유석진도 사실 지금 자존심을 부려서 될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말해주면 내가 다 들어줄게.”사실 유남준은 이 말만을 기다렸다.“금방 인수한 시내 중심에 있는 그 건물을 저한테 넘겨주세요.”그 땅은 유명훈의 땅이고 죽기 전 유석진에게 물려준 유산인데 지금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값이 올랐다.유석진이 이 땅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곳의 상권을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는데 나중에 아무 건축물을 세워 올려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안되지!”역시나 유석진이 단번에 거절했다.그가 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땅이었는데 유명훈이 죽어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여태껏 애를 먹고 있었다가 이제 겨우 손에 들어온 땅이고 또 자기만의 계획이 따로 있었다.“그러면 조만간 IM 그룹의 변호사를 만나셔야겠네요.”유남준은 더 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유석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집안 도우미에게 외쳤다.“모셔다드려!”그렇게 도우미들은 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고 거실에는 유남준 가족들만이 남게 되었다.유지욱과 고영란은 눈앞의 두 아들에게 뭐라고 말했으면 좋을지
유남준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유석진 가족들은 조용히 자축하고 있었다.최현아도 너무 기뻐했지만 유독 유성혁만 우울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아빠, 그래도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꼭 이래야 할까요? 남준이가 잡혀가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득도 없잖아요. 그리고 만약 다시 풀려나서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요.”그러자 유석진이 미간을 찌푸리고 답했다.“왜 쓸데없는 일을 벌써 걱정하고 그래? 간이 그리도 콩알만 해서 큰일 하겠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유성혁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다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지훈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저는 할아버지가 한 행동이 맞다고 봐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유석진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하하, 역시 우리 손자가 똑똑하다니까. 네 말이 맞아.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일 순위여야 해. 절대 네 바보 같은 아빠를 닮아서는 안 된다.”그러자 유지훈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 저도 알고 있어요.”그리고 유석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들은 너무 일찍 기뻐했던 게 오후가 되자마자 유남준은 바로 풀려났다.그길로 옛 저택으로 오게 되었고 동시에 유석진네 식구들과 유남우를 전부 집으로 불러 모았다.이 시각, 유지욱도 마침 그곳에 있다가 눈앞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남준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아빠, 제가 지금부터 저 사람들의 실체에 대해 다 밝히려고요.”그리고 서다희가 한 무더기의 자료와 증명서를 건네주자마자 그는 유석진네 식구들에게 뿌려줬다.종이들이 공중에서 흩날리다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유석진은 그중 한 장을 주워 읽어보고는 너무 황당한 나머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남준아, 다 오해야. 우리가 왜 그런 짓을 하겠니?”그러자 유남준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되물었다.“우리 회사에 심어둔 사람들을 제가 다 데려올까
유남준은 사실 진작에 유남우와 유석진 쪽에 사람들을 붙여서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도대체 무얼 하려는지 궁금해서 일단 내버려두고 있었다.이튿날, IM 그룹으로 세무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서다희가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대표님을 감옥에 보내려고 아주 별짓을 다 하네요. 이런다고 그 사람들한테 득이 되는 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특히 유남우는 왜 자기 친형을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조사해 보니 역시나 회사 장부에 문제가 있었고 회사 자금을 불법으로 돌렸다는 증거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 모든 게 다 그들이 일부러 만들어낸 가짜 장부들이었다.그렇다고 해도 유남준은 회사 법인으로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연행되었다.가면서도 서다희에게 당부했다.“민정이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서다희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뉴스에서 하루 종일 보도될 예정이라 아마 얼마 안 돼서 알게 될 것이다.역시나 박민정은 출근길에 그에 관한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다.“어떻게 이럴 수가?”이때, 고영란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민정아, 남준이한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그러나 박민정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저도 방금 기사를 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당장 다희 씨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어머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그래.”고영란은 착잡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유지욱과 이혼하겠다고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아들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서다희는 빠르게 박민정에게 전화해서 유남준이 시킨 대로 알려줬고 모든 일은 다 대비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박민정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이때 서다희가 한마디 더 했다.“그런데 이 일은 절대 고영란 사모님한테 말하지 말아 주세요.”“알겠어요.”어쩌면 유남우 귀에도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