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72화

Author: 윤지
통화가 연결되고 전화 건너편에서 유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추경은 씨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대요. 그래서 병원비를 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박민정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말해주었다.

추씨 집안과 박민정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리고 박민정과 추경은은 더더욱 아무런 혈연이 없으니 이 일은 자연히 유남준에게 맡기면 된다.

“알았어. 사람을 보내서 처리하도록 할게.”

“네.”

박민정이 전화를 끊었다.

병원 안.

병상에 누워있는 추경은은 정말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 집에 남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번에는 하마터면 정말 저승사자와 만날 뻔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가 병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추경은이 힘겹게 두 눈을 뜨고 쳐다보았지만 찾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서다희였다.

“새언니는요?”

추경은이 잔뜩 갈라진 입술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병원비를 지급하는 것 뿐인데 사모님이 직접 오실 필욘 없죠.”

그녀를 대하는 서다희는 유난히 차가웠다.

대표님을 대신해서 추경은이 정말 교통사고를 당한 건지 아니면 연기를 하는 것인지 확인해보러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교통사고는 진짜였던 모양이다.

추경은은 오른쪽 다리에 깁스하고 있었는데 보름 내에는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듯했다.

“아.”

박민정이 오지 않았다는 말에 추경은은 눈에 띄게 실망한 눈치였다.

“혹시 사촌 오빠도 알게 된 거예요? 그럼 사촌 오빠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괜찮아요. 이곳에서 치료받다가 몸이 좋아지면 집에 돌아갈게요. 그리고 앞으로 절대 오빠를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추경은의 정체를 몰랐다면 서다희도 아마 그녀의 불쌍한 모습을 정말 믿었을 것이다.

서다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병실을 나와 병원비와 입원비 등을 모두 지급하고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확인되었습니다. 방금 치료기록을 훑어보았는데 가짜가 아닙니다.”

“그럼 간병인을 불러서 그녀를 돌보게 하도록 해.”

어쨌든 추씨 집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3화

    결국, 유남준의 최종 선택은 욕실로 가서 찬물샤워를 하는 것이다.요즘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때로는 저도 모르게 박민정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남준 씨.”갑자기 귓가에 박민정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다급히 샤워기를 끄자 그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빌어먹을, 이제 환청도 들려?”짜증이 난 유남준이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요즘에는 머리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서다희와 다른 사람들이 말해준 요 몇 년 동안의 기억은 대체 왜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지 모르겠다.유남준은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켜고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지 말지 망설였다.그런데 그때, 마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음성 알림을 들어보니 발신자는 박윤우였다.“아빠.”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는 박윤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응.”유남준은 이제 박윤우의 호칭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엄마도 빨리 와서 아빠한테 인사해.”박윤우가 박민정의 곁으로 가 그녀를 끌어당기며 말을 걸었다.결국, 박민정은 박윤우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헛기침을 두 번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남준 씨, 좋은 밤이에요.”유남준 씨?박윤우도 비로소 이 호칭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엄마, 우리 반 친구들 엄마는 다 남편을 여보라고 부르는데 엄마는 왜 아직도 아빠를 이름으로 불러? 엄마도 빨리 여보라고 해.”그것도 모자라 박윤우가 몇 마디 거들었다.“이름을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니지. TV에서도 싸울 때만 상대방의 이름을 부른단 말이야.”박민정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대체 평소에 뭘 보고 다니기에 이런 걸 배운단 말인가.“윤우야, 나와 윤우 아빠는 이제 노부부니까...”박민정이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그녀와 유남준은 결혼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노부부는 남편에게 그렇게 오글거리는 호칭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윤우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알았다.”“응?”“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4화

    대부분의 작곡가는 모두 자신만의 판단을 가지고 있다.박민정 역시 2위에 놓여 있는 그 곡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정말 그녀의 노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게다가 2위에 있던 그 곡은 처음에 다운로드 수와 재생량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반나절도 되지 않아 갑자기 비약적으로 치고 올라온 거지?여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시간이 늦었으니 박민정은 내일 진서연에게 연락하여 조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진서연을 찾기도 전에 진서연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보스, 큰일 났습니다.”“무슨 일이야?”“오늘 아침 대회 실시간 랭킹을 살펴보니 2위에 있던 곡이 보스를 앞질렀습니다.”그리고 진서연은 마음속으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누군가 대회에서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비록 대회 측에서 데이터를 조작할 수 없다고 여러 번 선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참가자가 패배를 인정할 순 없다.“네가 가서 조사해봐. 증거를 찾아내야 해.”증거가 없다면 박민정은 다른 참가자들을 함부로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마어마한 노력이 깃들었기 때문이다.“알겠습니다.”진서연이 전화를 끊고 박민정이 대회 실시간 랭킹을 다시 열어보니 과연 2위에 있던 참가자가 이미 그녀를 추월해 있었다.그러자 일부 네티즌들이 나서 언변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난해? 이 어디가 좋다는 거야? 어떻게 을 추월한 거지?”첫눈은 바로 2위에 있던 곡이다. 그리고 메인 타이틀은 사랑이다.그리고 박민정의 은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를 찬양하는 곡이다.같은 시각, 또 다른 네티즌이 나서 반박하기도 했다.“뭐래. 분명 이 더 듣기 좋거든.”“진짜 장난해? 도 괜찮지만 과는 비교할 수 없어.”“맞아. 우리도 모두 듣는 귀가 있다고.”대부분의 네티즌은 그래도 의 편에 서주는 모양이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상황이 바뀌더니 수많은 네티즌이 우르르 달려와 너도나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5화

    글쎄 청각장애인인 박민정이 무슨 수로 그토록 훌륭한 곡을 써낼 수 있겠어.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모두 민 선생님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었군.이를 포착한 윤소현은 곧바로 박민정이 앞으로 음악계의 비난을 받고 다시는 곡을 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한편, 박민정의 곡 댓글 창에서는 호평 일색에서 슬슬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이 노래도 들어보니 그저 그런데.”“뭔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그래, 나도 느꼈어. 박민정이라는 작곡가 말이야, 설마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처럼 여기저기에서 베껴오는 건 아니겠지?”“윗댓 말이 맞아. 애초에 더 물어볼 게 있나? 이건 분명 베껴온 작품이야. 그렇지 않으면 신인이 무슨 수로 이렇게 훌륭한 노래를 써내겠어.”“나도 들어봤는데 이 곡 분명 민 선생님 작품을 베낀 거야.”“설마 외국에서 유명한 대가에게 빌붙으려고 이름을 다 바꾸고 같은 민자를 따서 민정이라고 지은 건 아니겠지?”“...”각종 혹평이 호평을 모두 잠식시켜버렸고 정상인이라면 이 변화가 마냥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러나 박민정은 댓글들을 읽지 않았고 오히려 진서연이야말로 가끔 박민정이 표절했다는 말을 듣고는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이 사람들 지금 뭐라는 거야? 애초에 민 선생님과 대표님은 동일인물인데 말이지.”애초에 대회의 공정성을 위해, 다른 선수들이 대회에 무슨 내막이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박민정은 자신이 민 선생이라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그런데 오히려 지금 일부 네티즌들에게 이 사실을 들킬 줄 생각지도 못했다.“그런데 이런 혹평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진서연이 기술 부서 사람을 불러 조사에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곧 이 혹평들의 IP 주소가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러고 보니까 이게 전부 댓글 알바라는 거네.앞서 2위 의 재생횟수와 다운로드 데이터를 올려준 것도 박민정에게 악플을 단 이들과 같은 IP 주소였다.진서연은 기술 부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6화

    한 시간 뒤.박민호가 출근하고 있는 호산 그룹 지사에 이른 박민정.다가오고 있는 그녀를 직접 마중하고자 박민호가 회사 앞으로 나왔다.“누나, 사무실 구경시켜 줄 테니 얼른 올라가자.”정장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박민호는 그렇게 박민정을 이끌고 사무실로 향했다.걸어가고 있는 내내 직원들은 박민호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박 대표님.”180도 달라진 박민호의 현재 모습에 박민정은 그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사무실로 들어온 두 사람, 박민정은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박민호는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자, 물이라도 한잔해. 배 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커피는 삼가는 게 좋잖아.”“고마워.”섬세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동생이 마냥 기특한 순간이었다.“나한테 고맙다고 하지 않아도 돼. 누나, 우리 어릴 적에도 자주 같이 놀았었잖아.”말하면서 앉는 박민호에게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네 모습 아주 보기 좋아.”‘아빠, 아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민호 지금 아주 잘살고 있어.’후회라는 것을 하고 있는 듯한 박민호의 모습이다.“이렇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대표님 덕분이야. 정말 좋은 분이시고 평생 고마워하면서 지내야 하는 분이셔.”박민호가 말하고 있는 대표님은 바로 유남우이다.박민정 역시 유남우가 좋은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나 둘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그래. 알고 있어.”“참, 누나, 볼일 있어서 나 찾아온 거 아니야?”박민호가 물었다.박민정은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윤석후를 상대로 네가 소송을 제기했으면 좋겠어. 돈 좀 갚으라고.”잠시 멈칫거리다가 박민정은 결국 두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그 사실을 박민호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말이다.“윤씨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누나 이미 하지 않았어? 나까지 나서면 좀 그렇지 않겠어?”박민정이 어떠한 속셈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박민호이다.자기한테 박씨 가문 재산을 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7화

    홍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어쩔 수 없이 홍주영은 사무실에서 나왔고 앞으로 기나긴 시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유남우의 말을 전달하기 위해 홍주영은 윤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윤소현 씨, 도련님께서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저녁에 중요한 손님과 만나야 하므로 오늘은 시간이 좀 힘들다고 하십니다. 안타깝지만 연출은 함께 보러 가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웨딩드레스를 보고 있던 윤소현은 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바로 발끈하고 말았다.“정말로 시간 없는 거 맞아요? 알리지도 않고 지금 이렇게 전화하는 건 아이고요?”유남우 곁에 있는 여자라면 그게 누구든 윤소현은 늘 지금처럼 이렇게 날이 서 있다.홍주영은 거듭 사과하면서 똑같은 말을 전했다.“죄송합니다만 부탁하신 대로 도련님께 전달하고 연락드리는 바입니다.”말하면서 홍주영은 대표이사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유남우를 바라보았는데, 대신 거짓말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도련님께서 사죄의 의미로 선물을 준비해달라고 하셨습니다.”유남우가 자기한테 선물을 준비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윤소현은 화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앞으로 오늘처럼 이렇게 거절하지 말라고 전해줘요.”“네.”기나긴 시간을 끝으로 홍주영은 고객에게 드릴 선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윤소현에게 가져다주라고 분부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우가 사무실에서 나왔다.“주영아.”그의 부름에 홍주영은 바로 다가갔다.“도련님.”“잠깐 일 보러 나갈 건데 혹시나 회사에 일 있으면 전화해.”“네.”“참, 윤소현 씨 화 좀 풀어드리려고 도련님 명의로 선물을 보냈습니다. 고객에게 드리려고 준비했던 선물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보냈습니다.”유남우의 수석 비서로 홍주영에게는 그럴만한 권력이 있다.하지만 유남우는 그 말을 듣고서 눈빛이 차가워졌다.“앞으로 네가 그 사람에 관해서 어떻게 해결하든 묻지 않을 건데 내 이름 걸고 그 무엇도 하지 마.”순간 홍주영은 어리둥절하기만 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네.”...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8화

    여자아이를 지켜주고자 앞으로 나서는 박민정을 보고서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아했다.“누구시죠? 이 꼬마 우리 정 대표님께서 데리고 가셔도 된다고 보호자인 할아버지께서 이미 동의하셨다고요.”“그쪽이 지금 이 아이를 유괴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증명할 수 있어요?”박민정이 되물었다.여자는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내가 누구 비서인지 알기나 해요? 우리 정 대표님께서 유괴한다고요? 그럴 필요가 있는 분이신 것 같아요?”“그쪽이 누구든 그쪽 대표님이 누구든 제가 알 바 아니에요. 대낮에 거리에서 싫다는 아이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고 있는데 그럼 보고만 있을까요?”박민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이윽고 여자아이를 품에 꼭 안고서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려고 했다.“괜찮아. 경찰에 신고하면 돼.”박민정이 신고하려고 하자 여자는 바로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잠시만요.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억한 심정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여자아이에게 물었다.“어떻게 된 일인지 아줌마한테 말해주면 안 될까?”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닦으면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랑 길거리에서 꽃을 팔고 있었는데 저 아줌마들이 저를 입양하겠다고 다가왔었어요.”“예쁜 언니, 저 할아버지랑 영원히 같이 살고 싶어요. 저 아줌마랑 가고 싶지 않아요.”여자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참으로 어리석은 아이구나. 네 할아버지 얼마나 가난한지 몰라서 그래? 그렇게 계속 네 할아버지랑 같이 살게 되면 너만 힘들어질 거야. 나중에 어른이 돼서 후회할지도 모른다고.”경제가 상부구조를 결정하고 있다 보니 돈이 ‘왕’일 때도 많다.여자아이는 바로 여자의 말에 반박했다.“저 어리석지 않아요.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고 돈은 필요 없어요.”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여자아이가 터득하지 못하고 있자,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한숨만 내쉬었다.두 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79화

    정수미의 손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여자아이는 정수미의 손 대신 박민정의 손을 꼭 붙잡았다.“예쁜 언니, 저 좀 바래다 주시면 안 돼요? 저 무서워요... 할아버지한테 가고 싶어요.”지금으로서는 박민정이 그녀에게 가장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듯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을 잡은 여자아이를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박민정은 여자아이의 손을 꼭 잡고서 정수미에게 말했다.“정 대표님, 정말로 이 아이를 입양하고 싶으시다면 일단 아이의 생각부터 확인하고 존중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수미는 얼어붙었던 손을 서서히 내렸다.“같이 가자. 나도 같이 바래다줄게.”앞장선 여자아이의 뒤를 따라서 좁고 좁은 골목길을 여러 개나 지나서야 아주 평범한 저택 앞에 이르게 되었다.이곳은 도시 중심이라 이치대로라면 여자아이의 생활환경도 조건도 그리 나쁘지 않아야 한다.여자아이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여자아이는 갑자기 박민정의 손을 뿌리치고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곁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사랑아.”“할아버지, 저 다른 사람 딸로 살고 싶지 않아요. 평생 할아버지 곁에서 살고 싶어요. 그러니 할아버지도 저 버리지 말아 주세요. 네?”어르신은 단번에 손녀인 사랑이를 꼭 껴안고서 정수미를 바라보았다.“정 대표님, 죄송합니다만 저 사랑이 보내지 못할 것 같아요.:이윽고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네주면서 덧붙였다.“돈은 다시 돌려드릴게요.”사랑이를 정수미에게 입양 보낸다고 마음을 먹고 은행 카드까지 받았었으나 텅텅 비어 버린 집을 보게 된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아내도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잃은 어르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곤 사랑이 하나뿐이다.사랑이 역시 할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다.앞으로 사랑이 곁에 얼마 있어 주지 못할 것 같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낫은 집안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입양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었다.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의 ‘이별’을 겪고서 그 마음이 달라졌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880화

    우연인지 아닌지 얼마 걷지 않아 차 한 대가 박민정 곁에 서서히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오자 유남우의 또렷한 이목구비가 시야로 들어왔다.“민정아.”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서 그를 바라보았다.“여기서 다 보네요.”지난번 유남우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 지금의 박민호가 있게끔 그가 도와준 바도 있으므로 박민정은 어느새 그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져 있었다.“여기서 뭐 해? 내가 바래다줄까?”유남우의 물음에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따가 택시 타고 가면 돼요.”유남우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나 더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박민정의 거절에 유남우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고 하였다.이윽고 그가 차에서 내려왔다.“그럼, 같이 좀 걷자.”더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 박민정은 묵인해 버렸다.선남선녀가 따로 없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몸은 좀 괜찮아졌어?”유남우가 적극적으로 화제를 찾아 나섰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많이 좋아졌어요. 고마워요.”한수민에 관해서 자기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유남우는 더는 묻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계속 묵묵히 함께 걸었다.그렇게 한참을 걷고서 박민정은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늦은 시간이라 제자리에 멈춰 섰다.“그만 가 봐야겠어요.”“그래.”이윽고 박민정은 택시 한 대를 잡았다.그녀가 탄 택시가 사라질 때까지 유남우는 홀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이미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남우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시간이 모든 걸 해결하고 변화한다는 말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전에 그 박민정이 자기와 점점 멀어지고 어색해지고 있으니 말이다....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가정부와 함께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그때 박윤우가 달려왔다.“엄마, 서연 이모한테서 전화 왔어.”박민정은 바로 손을 닦고서 전화를 받았다.“서연아, 무슨 일이야?”“보스님, 누가 댓글알바

Latest chapter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6화

    “지금, 이 나이니까 더 이혼하자는 거예요. 굳이 남은 인생을 당신한테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고영란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방에 들어갔다.그러나 유지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러다가 문득 여태껏 이혼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술부리는 원인이 분명 아버지 재산 때문인 것 같았고 며칠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이튿날.유명훈의 장례식은 계속 진행되었고 박민정의 친구들도 모두 오게 되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손연서의 말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씩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는데 장례식의 침울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최현아는 눈웃음을 살살 지으며 한쪽에서 사람들과 유명훈의 유언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욱과 고영란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그렇게 유명훈의 장례는 총 3일 동안 진행 후 끝났다.고영란은 담담한 얼굴로 박민정과 유남준, 그리고 유남우에게 말했다.“나랑 네 아버지는 이만 갈라서려고 해.” 순간 모든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옆에 서 있던 유지욱의 안색도 좋지 못했다.그는 원래 유명훈의 장례가 끝나면 계속해서 여행이나 다니려고 했었는데 뜬금없이 고영란한테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되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일시적으로 심술부리는 거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지금 애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해, 진짜 이혼하려고?”“네.”고영란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이고 지금처럼 사는 게 저는 너무 괴로워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갑시다.”고영란은 지금 그들의 의견을 구하려는 게 아니다.유지욱도 자존심이 꽤 센 사람이라 단번에 그러자고 하더니 두 사람은 법원으로 출발했고 두 아들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자식들도 이미 다 컸고 자기 혼인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과 같이 돌아가는 차 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5화

    고영란도 유석진의 고함에 깜짝 놀라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여태껏 모든 집안일을 아내한테 떠넘긴 채, 홀로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유지욱이 원망스럽기만 했다.한 사람에 대한 단념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실망감이 천천히 쌓이면서 식어가는 것이다.보아하니 오늘 저녁에도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유지욱이 도착해보니 유씨 가문의 모든 친척이 다 모여있었다.그리고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란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왜 진작에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그의 물음에 고영란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제가 말해주지 않았다고요? 한 달 전에 전 분명히 아버님 건강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 와서 회사 일 좀 도와드리라고 귀띔해 줬어요.”“난 네가 우리 아버지 재산 때문에 나더러 오라는 줄 알았지.”유지욱의 말에 고영란은 큰 충격을 받고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두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유지욱 씨, 정말 어이없네요. 맞아요, 제가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원인이 아버님의 재산이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지욱 씨한테도 나눠줬으면 했어요. 그런데 그 재산이 전부 아주버님한테 넘어갔네요?” 그러나 유지욱은 여전히 시큰둥한 얼굴이었다.“그깟 돈 몇 푼 가지고 왜 그래? 우리가 모두 한 식구인데 주면 줬지.”유지욱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님들을 맞이하러 떠났다.그리고 유석진과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고영란은 제대로 마음이 상했다.박민정도 손자며느리로서 유남준과 같이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우연히 시부모님이 서로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그녀는 사실 유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로 시아버지인 유지욱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지욱은 젊었을 때부터 고집불통에 집안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그저 매일 여행이나 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여 유지욱과 고영란은 1년 중에도 만날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살짝 다가가 그에게 말했다.“남준 씨, 가서 어머님 좀 위로해 주세요.”여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4화

    유남준의 아버지, 유지욱은 계속 외국에서 살다보니 이 자리에 없었다.그러자 고영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지욱 씨는 지금 당장 오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방금 비행기 탔다고 했으니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유석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그러면 지욱이가 도착하고 나서 다시 말할 테니까 외부인은 참견하지 말아요.”순간 고영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줬는데도 제가 아직 외부인인가요? 저는 오늘 아버님께서는 왜 그리도 자식들을 편애하시지 꼭 물어봐야겠어요!”“제 아들들이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불공평한 대우도 다 받아들여야 하나요?”여태껏 유명훈은 많은 주식을 갖고 있었다.비록 유남준이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유명훈의 지분이 그대로 유석진네로 넘어가게 되면 유남준의 자리가 위태로워진다.더구나 유남우도 그의 재산이 필요한데 말이다!게다가 유명훈은 오랜 세월 동안 주식 말고도 분명 많은 재산을 모았을 텐데 그 돈마저 전부 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모습을 고영란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유석진은 유명훈의 앞을 가로막으며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여태껏 지욱이를 잘 붙잡아 두지 못한 제수 씨를 탓해야죠! 지욱이가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어요!” 고영란이 뭐라고 대꾸하려는데 유남준이 그녀를 말렸다.“엄마, 그만해요.”여태껏 유명훈이 유석진네만 편애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이기에 지금 아무리 그와 말싸움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유남우도 불쾌했지만 애써 덤덤한 척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형 말이 맞아요.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싸울 필요 없어요.”이 시각, 침대에 누워있던 유명훈은 호흡이 점점 더 가빠져 헐떡거리기 시작했다.그런데도 눈앞에서 자식들이 자기 재산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기만 했다.“지욱이...”그는 힘겹게 유지욱을 불렀다.유지욱은 평소에도 그의 말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3화

    최현아는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지만 박민정은 그저 냉담한 얼굴로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그러자 그녀는 뻘쭘해진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일은 무슨, 윤소현이 드디어 판결받았다고 해서 축하해주려고 왔지.”박민정은 분명 다른 속셈이 있다고 생각했다.지금 최현아와 그의 시아버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왠지 그럴수록 더 수상했다.“감사합니다.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일 하러 갈게요.”말을 마치자마자 박민정이 뒤돌아서니 역시나 최현아가 빠르게 그녀의 팔을 부여잡았다.“민정아,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박민정은 이제 와서 한 식구라는 그녀의 말이 그저 가소로웠다.“도대체 할 말이 뭔가요?”그리고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최근에 할아버지 건강이 점점 악화하면서 동서랑 남준 씨가 그립기도 하고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도 보고 싶은가 봐. 혹시 오늘 밤 할아버지 뵈러 같이 가지 않을래?”최현아는 최대한 상냥하게 물었다.사실 박민정도 할아버지의 건강이 여태껏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오늘 두 사람을 부른 이유도 아마 자신이 얼마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네, 알겠어요.” 최현아는 그제야 박민정의 팔을 놓아줬지만 그녀가 떠나가자마자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껏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재수 없는 것, 운발로 지금 자리에 올라앉은 주제에.” 차에는 낯선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박민정한테 화낼 필요 없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의 주식이랑 모든 돈을 너한테 넘길 수 있도록 잘 구슬리는 거야.”그러자 최현아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나도 알아, 저번에 이미 할아버지랑 말해봤다니까? 유남준 씨랑 민정이는 괜히 고고한 척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말한 상황이라 우리 쪽에 전부 몰리게 되어있긴 한데, 난 지금 성혁 씨 얼굴만 봐도 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2화

    조하랑은 그제야 화가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그러면 왜 저 여자한테 찾아갔어요?”“당연히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러 갔죠. 그리고 이지원에 대해 정신감정도 의뢰했거든요. 만약 진짜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거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 모든 게 다 쇼하는 거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려고 했어요.”김인우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다가 조하랑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예전에 제가 지원이한테 어떻게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하랑 씨도 잘 알잖아요. 만약 저를 구해줬던 사람이 형수님이었단 사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절대 그 애를 도와주지도 않았을 겁니다.”“지금은 그저 마땅히 받아야 할 벌만 받았으면 좋겠고요.”조하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제가 오해했네요. 정말 미안해요. 저는 인우 씨가 또 그새를 못 참고 다른 여자한테 찝쩍거린다고만 생각했어요.”그녀의 말에 김인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되물었다.“하랑 씨, 혹시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순간 조하랑의 얼굴이 새빨개졌다.“누, 누가 질투한다는 거예요? 그저 저를 배신한 인우 씨한테 화나고 그런 사람을 좋아했던 나한테 실망했을 뿐이라고요!”“알겠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리고 의사도 임산부가 흥분하면 아이한테 안 좋다고 말했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는 다정하게 조하랑을 품에 안았는데 순간 그녀는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온몸이 굳어버렸다.당연히 김인우도 눈치채고는 빠르게 물었다.“왜요, 부끄러워요?”“그, 그럴 리가요...”조하랑은 말까지 더듬으며 애써 덤덤한 척했다.“저도 안을 줄 알거든요?”그리고 똑같이 김인우를 꼭 안아줬는데 이번에는 김인우가 속으로 움찔했다.추운 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아 줬는데 거리를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계속 그들에게 멈춰졌다 가곤 했다.조하랑도 어느새 그걸 느꼈는지 재빨리 김인우를 밀쳐냈다.“됐어요. 이제 병실로 돌아가 봐야 하니까 인우 씨도 그만 돌아가요.”“저랑 같이 안 가고요?”김인우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1화

    김인우는 유남준의 마지막 한마디까지 다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그러면 지금 하랑 씨가 형수님이랑 같이 있다는 거지?”“응.”김인우가 왠지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것 같아 유남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줬다.“결혼 전에는 아무 여자나 끼고 놀아도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있는 마당에 좀 조심해야 하지 않겠어?”김인우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황당하다는 듯이 그에게 답했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버릇 고친지가 언젠데, 예전의 내가 아니야.”“응, 그러면 다행이고.”“그러면 지금 하랑 씨는 병원에 있는 거야?”“응.”유남준은 대답하자마자 전화를 끊었는데 보아하니 오늘에도 독수공방해야 할 것 같았다.김인우는 그길로 빠르게 조하랑 보러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가는 길에 방금 유남준이 했던 말을 곱씹어 보았다.‘설마 하랑 씨가 오해한 건가?’그러다가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무언가가 생각난 듯 자기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이 멍청한 놈, 그때 통화하는 걸 분명 옆에서 다 들었던 거야!”그는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이지원의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라고 했다.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조하랑이 막 잠들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누구세요?”박민정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간호사인가? 내가 가볼게.”“응.”박민정이 슬리퍼를 신고 문어구에 다가가 문을 열어보니 눈앞에 김인우가 서 있었다.“형수님, 하랑 씨 여기에 있나요?”김인우는 다급하게 물었다.박민정은 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가 들어가도 될까요?”그러나 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하랑은 김인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아니요. 민정아, 너는 일단 먼저 자. 내가 나가서 말할게.”말을 마치자마자 김인우를 한번 쏘아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갔고 김인우도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하랑 씨, 진짜 오해예요.”그러나 조랑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80화

    김인우는 집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조하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식은땀이 맺힌 채로 급히 박예찬과 김훈에게 달려가 물었다.하지만 김훈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그가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길 바랐다.“나도 몰라. 하랑이가 방에 없다고? 화장실 간 거 아니야? 화장실은 찾아봤어?” 김훈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하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거기도 없어요.”“그거 참 이상하네.”김훈은 걱정스러운 척하며 말했다.“그럼 멀뚱멀뚱 서서 뭐 하는 거냐? 어서 찾아봐야지. 지금 임신 중이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박예찬도 거들었다.“오늘 아줌마가 좀 안 좋아 보이긴 했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에요?”그 말에 김인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곧장 조하랑을 찾아 나섰다.한편, 조하랑은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박민정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둘은 정수미와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병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화를 이어갔다.“하랑아, 너 그냥 이렇게 온 거야? 가족한테는 말 안 했어?”조하랑은 고개를 저었다.“응. 그냥 조용히 나왔어. 지금은 누구 얼굴도 보기 싫어.”“그래도 집에 한 통은 전화해. 안 그러면 걱정하실 텐데.”박민정이 말했다.“괜찮아. 다들 내가 자는 줄 알 거야. 내일 아침에 슬쩍 들어가면 돼.”조하랑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임신 후로 김인우와는 방도 따로 쓰고 있었기에 자신이 방에 없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알겠어.”박민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하랑아. 너 아까 말한 그 여자, 혹시 누군지 짐작은 가?”조하랑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난 김인우 주변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내가 남준 씨한테 한 번 물어볼게. 혹시 오해일 수도 있으니까.”“응, 좋아.”조하랑도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원치 않았다.박민정은 조하랑 앞에서 유남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유남준도 막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9화

    조하랑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걱정 마, 민정아. 나 그냥 좀 화가 났을 뿐이야. 아직은 냉정해.”그리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기분이 나빠서 그래. 내가 지금 그 사람 아이까지 품고 있는데 저렇게 행동하면 기분이 어떻게 안 상하겠어.”박민정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잠시 후, 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민정아, 나 네가 있는 곳으로 가도 될까?”“당연하지. 내가 데리러 갈게.”박민정은 임신한 친구의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된 마음에 바로 나섰다.하지만 조하랑은 코끝이 붉어진 채 대답했다.“아냐, 이미 차 탔어. 지금 가는 중이야.”그녀는 더 이상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김인우가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둘 수가 없었다.박민정은 그녀가 이렇게 단호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던 지라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알겠어. 그럼 내가 문 앞에서 기다릴게.”“응, 고마워.”...한편, 김인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있는 꽃집을 발견했다.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게 하고는 직접 차에서 내려갔다. 잠시 후, 그는 품에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돌아왔다.차에 다시 올라타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자. 좀 빨리 가 줘.”예전에도 김인우는 여자를 위해 꽃을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건 대부분 비서가 대충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꽃다발은 그가 직접 고르고 색을 맞춰 정성껏 고른 것이었다.운전기사도 그의 얼굴에서 어쩔 수 없이 번지는 미소를 보고는 감탄하듯 말했다.“사모님은 참 복도 많으시네요. 이사님께서 뭐든 다 챙기시니.”김인우는 입꼬리를 높이 올리며 웃었다.“당연하지.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사람이잖아. 그 정도는 해야지. 사실 하랑 씨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도 난 여전히...”하지만 마지막 말은 끝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는 조하랑을 보기 위해 한 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8화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