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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멀어지는 게 더 어려워서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0 23:45:21

화요일 저녁.

송유지는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채도하와의 마지막 대화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퇴근하면 연락해.

—네.

—저녁 꼭 먹고.

—또 시작이네요.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지막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네가 먼저 연락했잖아.

맞았다.

거리를 두겠다고 한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먼저 연락한 것도 자신이었다.

유지는 가방을 들었다.

“송유지.”

나현이 옆에서 불렀다.

“왜.”

“오늘은 표정 좀 괜찮네.”

“내 표정이 뭐.”

“어제는 세상 끝난 사람 같았거든.”

유지는 피식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

“연락 왔지?”

“……응.”

“역시.”

나현이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근데 너.”

“응?”

“내가 떨어져 있어 보라고 한 건 그 사람 반응 보라고 한 말 아니야.”

유지가 걸음을 멈췄다.

나현이 말했다.

“네 마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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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8.들키지 않아도 되는 표시

    다음 날 아침.송유지는 가방을 들다가 안쪽 지퍼에 달린 작은 키링을 봤다.흰색.어제 채도하와 같이 산 것.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달아뒀는데도 괜히 손이 갔다.유지는 키링을 한 번 만지고 가방을 닫았다.별것 아닌 물건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둘만 아는 표시 같아서.휴대전화가 울렸다.도하였다.—출근했어?유지는 바로 답했다.—가는 중이요.잠시 뒤.—키링 안 뺐지.유지는 피식 웃었다.—왜 그게 먼저예요?—궁금해서.—안 뺐어요.읽음.그리고.—나도.유지는 그 두 글자를 보고 괜히 웃었다.회사에 도착한 뒤.유지는 책상 옆에 가방을 걸어두었다.잠시 후 나현이 지나가다가 멈췄다.“이거 뭐야?”유지의 심장이 순간 뛰었다.“뭐가?”나현이 가방 쪽을 가리켰다.“안쪽에 뭐 달려 있네.”유지는 바로 가방을 살짝 당겼다.“아, 이거.”“새로 샀어?”“응.”“혼자?”유지는 잠깐 멈췄다.나현의 눈이 가늘어졌다.“아.”유지가 웃었다.“왜.”“그 사람이랑 샀구나.”이번에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응.”나현이 키링을 한 번 더 보고 웃었다.“커플이네.”유지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티 안 나잖아.”“근데 너 지금 표정은 티 나.”유지가 가방을 닫았다.“일이나 해.”나현이 웃으며 지나갔다.유지는 다시 모니터를 보다가 잠깐 멈췄다.예전이었다면 누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나현에게 들킨 정도는 오히려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누군가에게 자신과 도하가 ‘연인’으로 보이는 일에.점심 무렵.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이번 주말에 올 거야?유지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전에는 당연하게 가던 부모님 집.그런데 이제는 괜히 망설여졌다.도하와의 관계를 밝힌 뒤로.그 집에 들어갈 때마다 모든 공기가 달라질 것 같았다.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응. 갈게.답장은 조금 있다 왔다.—도하도 올 거야?유지의 손이 멈췄다.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7. 평범하게 만나고 싶은 날

    다음 날 오후.송유지는 퇴근 시간을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들었다.어젯밤 채도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내일은 네가 먼저 연락해.유지는 채팅창을 열었다.—오늘 뭐 해요?읽음.답장은 금방 왔다.—기다리는 중.유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뭘요?—네 연락.유지는 그대로 화면을 바라봤다.이제는 정말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사람이다.—그럼 저녁 먹어요.—응.—오늘은 제가 정할게요.—그래.유지는 잠깐 고민하다 한 줄을 더 보냈다.—근데 오늘은 특별한 데 말고요.잠시 뒤.—그럼 어디.유지는 바로 답했다.—그냥 평범하게요.퇴근 후.둘은 회사와 집 사이쯤 되는 곳에서 만났다.유지가 고른 곳은 작은 분식집이었다.도하는 가게 앞 간판을 보고 잠깐 멈췄다.“여기?”“왜요.”“아니.”“싫어요?”“아니.”유지가 웃었다.“오늘은 이런 거 먹고 싶었어요.”도하는 문을 열어줬다.“들어가.”가게 안은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았다.학생 둘.퇴근한 회사원 몇 명.가족 손님 하나.딱 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유지는 메뉴판을 보다가 물었다.“도하 씨 떡볶이 먹어요?”“먹지.”“진짜?”“왜.”“이런 거 잘 안 먹을 것 같아서.”“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유지가 웃었다.“맨날 멀쩡한 식당만 데려가잖아요.”“네가 그런 데 좋아하는 줄 알았지.”“저 이런 데도 좋아해요.”“이제 알았네.”둘은 떡볶이와 김밥, 튀김을 주문했다.유지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떡볶이를 한입 먹었다.그리고 바로 물을 찾았다.도하가 컵을 밀었다.“맵잖아.”“괜찮아요.”“안 괜찮아 보이는데.”“맛있으면 됐지.”도하가 한숨처럼 웃었다.“그러다 또 속 아프다 하지.”유지는 물을 마시며 말했다.“잔소리 시작.”“걱정이지.”“뭐든 걱정이래.”“맞는데.”유지는 결국 웃었다.정말 별것 아닌 대화였다.그런데 좋았다.언니 이야기 없이.엄마 이야기 없이.죄책감도.주변 시선도.그냥 오늘 뭐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6. 먼저 다가간 사람

    다음 날 아침.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입술을 만졌다.어젯밤 일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첫 키스.짧게 닿았던 입술.그리고 두 번째.조금 더 오래 머물렀던 순간.무엇보다 마지막에 자신이 한 말.—다음에는 제가 먼저 할까 하고.유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내가 왜 그랬지.”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채도하였다.—일어났어?유지는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네.곧바로 답장이 왔다.—잘 잤어?—네.유지는 여기서 멈추려다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도하 씨는요?—잘 잤어.잠시.—생각보다.유지의 손이 멈췄다.—뭐가요?답장은 조금 늦었다.—어제 생각 많이 날 줄 알았는데.유지의 심장이 빨라졌다.—안 났어요?—났지.—그럼 뭐가 생각보다예요.—잠은 잘 잤다고.유지는 피식 웃었다.—저는 계속 생각났는데.보내고 나서 멈칫했다.너무 솔직했나 싶었다.하지만 이미 읽었다.잠시 뒤.—뭐가.유지가 입술을 깨물었다.모를 리 없었다.일부러 묻는 게 분명했다.—몰라서 물어요?—확인.유지는 어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도하도 똑같이 써먹고 있었다.결국 짧게 답했다.—키스요.읽음.몇 초.—나도.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웃었다.이제는 정말 예전과 달랐다.서로 알고도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유지의 표정이 바로 굳었다.—밥은 먹었니.평범한 문장이었다.그런데 며칠간 연락이 없었던 엄마였다.유지는 한참 화면만 바라봤다.그리고 천천히 답했다.—응. 엄마는?조금 있다 답장이 왔다.—먹었어.그게 끝이었다.도하 이야기도 없었다.헤어졌냐는 질문도 없었다.그런데 유지에게는 이 짧은 대화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완전히 끊으려는 건 아니라는 뜻 같아서.유지는 휴대전화를 가슴 쪽에 잠깐 붙였다가 다시 내려놓았다.엄마가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그렇다고 오늘 당장 모든 걸 해결할 필요도 없었다.그저 다시 말을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5.다음에는 미루지 않을게

    집으로 돌아온 뒤.송유지는 현관문을 닫자마자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아직도 닿았던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채도하가 처음으로 입을 맞춘 곳.입술은 아니었다.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했다.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다음에는 이마로 안 끝낼게.유지는 그대로 현관문에 등을 기대었다.“진짜 미쳤나 봐.”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조금 전까지 엄마와 울고 싸우다시피 이야기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마음은 아직 무거웠다.그런데 그 무거운 마음 한가운데.도하가 있었다.도망치지 않고.같이 버티겠다고 한 사람.휴대전화가 울렸다.유지는 화면을 보자마자 웃었다.채도하였다.—들어갔어?유지는 바로 답했다.—네.잠시 고민하다 한 줄을 더 보냈다.—이마 아직 뜨거워요.보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아, 왜 보냈지.”읽음.답장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유지는 괜히 침대 위에 휴대전화를 던졌다.몇 초 뒤 다시 울렸다.—그럼 다음엔 다른 데 해야겠네.유지의 눈이 커졌다.한동안 화면만 바라봤다.예전의 도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유지는 입술을 깨물며 답했다.—말만 하지 말고요.이번에는 읽음이 뜨자마자 답이 왔다.—알겠어.유지는 그대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다음 날.엄마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유지도 먼저 하지 않았다.어제 대화가 너무 길고 무거웠다.서로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대신 아버지에게 짧은 메시지가 왔다.—엄마 오늘은 그냥 두자.유지는 그 문장을 한참 보다가 답했다.—응. 아빠도 너무 걱정하지 마.보내고 나니 마음 한쪽이 조금 저렸다.엄마만 힘든 게 아닐 것이다.아버지도.도하도.자신도.모두 같은 일을 다른 자리에서 견디고 있었다.점심 무렵.도하에게 전화가 왔다.“네.”—바빠?“아니요.”—목소리 괜찮네.유지가 피식 웃었다.“뭘 기대했는데요.”—울고 있을까 봐.“어제 다 울었어요.”—다행이네.“그게 다행이에요?”—오늘은 안 울잖아.유지는 잠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4. 허락이 없어도

    채도하의 차가 벤치 앞에 멈췄다. 송유지는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헤어지라고 했던 엄마의 말. 울던 얼굴.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까지. —헤어지겠다는 약속은 못 해. 그 문장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차 문이 열렸다. 도하가 내렸다. 유지는 그를 보자마자 시선을 피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해놓고 막상 얼굴을 보니 울 것 같았다. 도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유지 앞까지 걸어왔다. “많이 기다렸어?” 유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자.” 그 한마디뿐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왜 울었는지. 바로 묻지 않았다. 유지는 그게 고마웠다. 차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유지는 창밖만 바라봤다. 도하는 라디오도 켜지 않았다. 조용한 차 안. 유지는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았다. 결국 도하가 먼저 말했다. “밥은?” 유지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 상황에도 그거 물어요?” “안 먹었잖아.” “어떻게 알아요.” “얼굴 보면.” 유지는 고개를 숙였다. “못 먹었어요.” “뭐라도 먹자.” “지금은 싫어요.” 도하는 더 권하지 않았다. “알겠어.” 다시 침묵. 그런데 이번에는 유지가 먼저 말했다. “엄마가 헤어지래요.” 도하의 손이 핸들 위에서 아주 조금 굳었다. 유지는 그걸 봤다. “역시.” 도하가 낮게 말했다. 유지는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었어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어제 혼자 결정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응.” 유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도하 씨는.” “응.”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신호에 멈췄다. 그제야 유지 쪽을 봤다. “네가 뭐라고 했는데.”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63. 허락받지 못한 연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송유지는 한동안 외투를 벗지 못했다.거실 불을 켜놓고 소파 끝에 앉아 있었다.엄마가 울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그럼 안 하면 되잖아.너무 쉬운 말처럼 들렸지만.유지도 수없이 해봤던 일이었다.안 좋아하려고.연락하지 않으려고.멀어지려고.그런데 결국 여기까지 왔다.휴대전화가 울렸다.채도하였다.유지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네.”—도착했어?“네.”도하는 바로 다음 말을 하지 않았다.유지도 마찬가지였다.한동안 서로 숨소리만 들렸다.“도하 씨.”—응.“괜찮아요?”이번에는 도하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아니.유지는 눈을 감았다.자신과 같은 대답이었다.“엄마가 한 말 때문에요?”—다.“…….”—어머니 우신 것도 그렇고.도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아버지가 유리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물은 것도.유지는 손끝을 만지작거렸다.“미안하다고 했잖아요.”—응.“진짜 미안해요?”도하는 잠시 말이 없었다.—응.유지의 가슴이 조금 아팠다.그래도 듣고 싶었다.“그럼 저랑 사귀는 게 잘못 같아요?”이번에는 침묵이 더 길었다.유지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도하 씨?”—아니.대답은 단단했다.유지가 눈을 떴다.—미안한 거랑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건 다른 것 같아.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유리한테 미안한 마음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아.“…….”—근데 그 마음 때문에 너까지 없던 사람처럼 만드는 것도 아닌 것 같고.유지의 눈빛이 흔들렸다.—오늘 어머니 말씀 듣고 나도 많이 생각했어.“뭘요?”—우리가 앞으로 계속 이런 질문을 듣겠구나.유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건 맞았다.엄마 아빠가 끝이 아닐 수도 있었다.친척.언니의 친구들.도하의 지인들.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들.누구든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왜 하필.어떻게.언제부터.언니한테 미안하지 않느냐고.유지가 작게 말했다.“벌써 피곤하네요.”도하가 아주 짧게 웃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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